망내인 - 네트워크에 사로잡힌 사람들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망내인 (한스미디어, 2017년)

원 제 網內人 (2017년)


중국 작가의 소설은 의식적으로 많이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국내 '중국 소설'시장의 척박한 환경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소홀하게 되더군요. '찬호께이' 라는 작가의 책이 국내에 적지 않은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도 몇 년이나 지나 알게 되었네요. 900 쪽에 달하는 이 책을 단숨에 읽은 저 또한 작가의 마니아가 되었습니다. '의미있고, 기분전환에 좋은 스릴러'를 찾는 지인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기도 했는데요. 추천받은 지인들은 하나같이 '찬호께이? 찬호께이라고?' 두 번 묻더군요. 작가는 홍콩의 추리소설 작가로 이름은 '찬호께이' 입니다.

이 책의 장점은 섬세한 캐릭터 묘사에 있습니다. 극의 초반부는 제법 지루하게 느껴지는데요. 천천히 흐르는 큰 강과 같아서 흐름이 느껴지지 않지만, 한참을 들여다보면 자연스럽게 큰 바다와 같은 광활한 흐름을 이루게 됩니다. 이렇게 완성된 커다랗고 넘실거리는 이야기는 깊이 있고, 섬세한 이야기의 완성을 가능케 하더군요. 작가는 북미의 스릴러 작가보다는 일본 추리 소설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사회파 소설 작가로 분류되는 일부 작가의 영향력이 상당히 느껴졌습니다. 소설 중에 직접 언급되는 '홍콩의 거주문제' 같은 사회적인 이슈를 풀어내는 방식은 '미야베 미유키' 와 대단히 유사한 느낌을 보이더군요. 뿐만 아니라 극 속에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여러 소설의 대략적인 스토리 라인을 알고 있다면 이 소설에서 악역이 누구이고, 이야기의 진행은 어떻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어느 정도 가능할 정도로 '일본 추리소설' 애호가로서의 면모를 숨기지 않았습니다

책을 가까이하지 않는 대다수의 독자에게 다가올 이 책의 단점은 900쪽에 달하는 볼륨입니다. 책을 선뜻 집기 어려울 정도로 두꺼운데요. 만약 첫 몇 장의 번거로움을 이겨낸다면 후회하지 않을 일시적인 어려움일 겁니다. 이 책의 또 다른 단점은 작가의 기복 있는 필력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 책을 읽은 후 작가의 책을 연달아 3편 정도 읽게 되었는데, 대표작과 그렇지 않은 소설 간에 기복이 너무 커서 같은 작가의 책이라고는 믿기지 않더군요. 작가의 모든 책을 섭렵하고 싶어도, 확고한 '베스트셀러' 제조기로서의 면모에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수 없다면 (허블, 2019)

이해할 수 없는 소설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일은 흔한 일입니다. '작가가 국내외의 석학이다', '작가가 예쁘다', '작가가 TV에 출연을 했다', '작가가 애국심이 넘친다.' 같은 다양하고 종잡을 수 없는 이유 때문에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소설이 대단히 뛰어나다' 같은 이유는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이유로는 부족할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SF 소설(심지어 단편소설집)이 베스트셀러에 몇 주간 꾸준히 머물러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매체에서 2019년 올해의 도서 중 한편으로 이름을 올린 것은 기쁘면서, 기괴한 현상입니다.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테드창키드' 혹은 '존스칼지키드'가 무럭무럭 자라 베스트셀러의 순위를 좌지우지하는 힘 있는 독자들이 되었구나!라는 감탄이 들었으며, 제목도 상당히 마음에 들더군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완독 후에 감상은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이 소설집이 제가 바랬던 장르와 문학의 장점을 모두 취하는 류의 신세계 소설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단편 소설을 평가함에 있어서 모든 단편을 한 줄이나 두 줄로 뭉뚱그리기에는 재미나 깊이의 차이가 있습니다만,) 이 책의 대부분의 단편에서 책의 이야기와 결부되는 공상과학 아이디어는 구체적이고 신기롭게보다는, 추상적이고 단조로운 쪽이었습니다. 소설 속의 상상력과 메시지는 균형을 이루지 못해서 간신히 균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마치 작은 조약돌로 큰 암석을 떠받들고 있는 밸런싱 아트 같은 소설들이더군요. 책의 문학적 깊이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작가는 상상력을 통해 삶의 깊숙한 가치를 품어내는 흉내를 낼 뿐 사실은 얕은 청량감에 몰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느 한방 면도 '명장'칭호를 받기에는 부족한 소설로 '이야기 속에 과학을 다루었다.'라는 시작에 의의만을 가질 수 있겠더군요.

작가가 국내를 대표하는 이과대학을 나온 사실은 어필하고 싶었다면 프로필에 관련 사실을 중점적으로 기입하기보다는 관련 서적이나 논문을 좀 더 깊이 파고들거나, 최신 지견에 대한 이해가 높았으면 좋지 않았을까요? 작가는 인터뷰를 통해 차기작으로 장편소설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장르 문학에 몸을 더 담고 조금씩 힘을 키우며 장편을 준비하는 것이 좋았을 것 같은데요. 이 정도의 소설집으로 (종잡을 수 없는)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었으니 다음에 등장한 설익은 장편 또한 그다지 기대가 되지는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실망스러웠습니다. 이 책은 '테드창 키드'나 '존스칼지 키드'의 소설보다는 '베르나르베르베르 키드'의 소설이더군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가씨와 밤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아가씨와 밤 (밝은세상, 2018년)

원 제 La Jeune Fille et la Nuit (2018년)



특정 작가를 떠올리는것 만으로 소설의 특징에 대한 생각을 우르르 떠올리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드물게 '기욤 뮈소'는 그런 것을 가능케 하는 작가입니다. 스펙타클과 로맨스의 조화, 빠른 전개와 높은 가독성, 진부한 것으로 취급되는 것을 감각적으로 해석하는 스타일리시함으로 특정지을 수 있는 작가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상업적인 측면에서 이 정도로 각광받는 작가 중, 속편을 내놓지 않고 오리지널만 지속적으로 선보이는 것도 좋아보이더군요. '기욤 뮈소'는 국내에도 팬이 참 많은 작가입니다. 얼마 전에도 기염뮈소를 좋아하다는 분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 분이 마지막으로 읽은 작가의 소설이 '종이여자'라고 하더군요. 그 뒤로는 작가에 대한 흥미가 확 줄었다고 하는데, 저 또한 같은 시점에 작가에 대한 흥미가 크게 떨어진 기억이 있네요. 세어보니 '종이 여자'는 작가의 소설 중 9번째로 읽은 소설이더군요. 우연의 일치라기엔, 자신의 스타일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작가에 대한 흥미가 10편을 넘기기는 어려운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종이여자'를 2011년에 읽었으니, 기욤 뮈소의 소설을 마지막으로 읽은지도 10년이 되었네요. 10년만에 읽은 소설이었기 때문일까요, 그동안 제가 알고 있던 작가의 '돌출된 특징(혹은 유사성)', 천편일률스러움' 에서 어느정도 벗어나는 소설이었습니다.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첫 페이지를 읽고 나서, 1990년대와 2000년대의 교차하는 시점을 반전으로 사용한 판타지 스릴러가 아닐까 라는 추측을 했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제 추측은 사실이 아닌것으로 드러나더군요. 이 책은 미스테리한 '실종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의 행적이 조금씩 쌓이면서, 살인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는 정통 스릴러의 형식을 띄고 있었습니다. 10여년 전 '종이여자'를 읽은 후 기욤 뮈소를 야구의 에이스에 비교하는 리뷰를 남겼더군요.

"야구에서 에이스는 말이죠, 직구가 안 되는 날에는 변화구를 던지고요, 때로는 직구만의 강약 조절을 통해서 승부하죠. 기욤 뮈소는 여러 의미에서 상업 문학의 에이스 같은 존재인것 같아요. (중략) 작품성이나 이야기의 얼개가 뭉게 지더라도 새로운 장르를 끌어안는 파격반전으로 일정수준 이상의 가독성을 유지시키는 작가입니다. "

이렇게 당시에는 '에이스의 직구 실종'을 포함한 비유 글을 남겼는데, 이 소설을 읽고 든 생각은 "당신은 더 이상 에이스가 아니군요" 라는 말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이책의 가장 큰 약점은 전형적인 스릴러로 '살인자'의 등장이 뜬금 없었다는 겁니다. '복수를 원하는 미스테리한 인물'의 범주에 올랐던 많은 인물들이 책의 말미에 이르르면 결국 자신만의 사연을 가진 조연에 머무르게 되더군요. 그 뒤로 등장한 '살인자'는 극의 진행과 그다지 상관없던 인물로, 독자에게 추리의 희열을 선사하기 보다는 의아함을 자아냈습니다. 이런 전개는 결국 전체적인 긴장감에 힘을 빠지게 만들고 이 책의 가치를 낮추는 주요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소설은 내 불안감과 죄책감을 치유해주지는 못 했지만, 잠시 동안이나마 온몸을 짓누르는 압박감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었다. 말하자면 소설은 나에게 일종의 모르핀이었고, 시시때때로 덮처오는 공포로부터 나를 방어해주는 방파제 였다

124 p

장점도 적지 않습니다. 중간 중간 가미되는 인용구는 작가가 정말 소설을 좋아하는 '소설광'이구나 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더군요 또, 본인의 장점인 가독성을 이곳저곳에 잘 우겨 넣어 책을 한번 손에 쥐면 뗄수 없도록 만드는 느낌도 출중한 소설이었습니다. 그러니 완성도 높은 책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보다는, 책의 권수를 늘리고 싶은 독자나 작가를 처음으로 접하는 독자들에게 어울리는 책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얼음나무 숲 - 완전판
하지은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음나무숲 - 완전판 (황금가지, 2020년)

초판 (로크,2008년)



오래전에 한번 읽고 재발간이 되면 소장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소설입니다. 책에 대한 감상은 희미하게만 남아있었지만, 당시의 소장 욕구는 선명하게 남아있어서 재발간 후 즉시 구매로 이어지게 되었네요. 첫 번째로 읽었을 때는 대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여러 명이 거쳐간 책이라 구겨진 표지에 윤기가 반들반들했던 사소한 것들이 기억에 나네요. 깊은 감동과 샘솟는 영감을 받아 가며 빠르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상업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완성도에 빠져들었습니다. 두 번째로 읽은 후에도 비슷한 감상은 들더군요. 일반적인 칙릿소설이나 판타지 소설에 우리가 바랄 수 없는 것들이 담겨 있는 소설입니다. 함량이 낮은 대화, 정돈되지 않은 짜임새, 과장된 감정들, 유치한 관계 설정 같은 단점들이 보이지 않는 소설입니다. 중심인물 간 감정의 흐름이 부드럽게 전개되고, 주변 인물의 등장과 퇴장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세계관도 탄탄해서 이물감이 들지 않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이 책은 몇 쪽 넘기지 않아도 강력한 가독성으로 독자를 사로잡습니다. 여러 미스터리가 커다란 올가미같이 궁금증을 유발하더군요. 책을 덮은 후에도 극 중 인물의 이미지가 한참 동안 머릿속을 맴돕니다. 이 모든 것은 10년 전에도 유효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나이를 먹어서일까요. 오래전과 느끼지 못했던 소소한 단점들도 느껴졌습니다. 일단 결론에 이르기까지 헛걸음이 빈번히 반복되어, '동어 반복'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나 바옐이 자신을 향한 고요의 존경심(혹은 애정)을 외면하는 장면이 반복 노출되었는데, 김치 없이 먹는 고구마같이 흐름을 뻑뻑하게 만드는 느낌이었습니다. 16부작 드라마 내내 여자 주인공의 마음을 몰라주는 남자 주인공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더군요. 이런 일련의 흐름은, 담백하고 쿨하게 관계를 진전시키는 최근의 흐름과는 동떨어지게 느껴졌습니다.

지난 첫 완독 시에도 비슷한 감정이 들었지만 섬세한 이야기 흐름이나 등장인물의 입체성에 비해 결론은 성기게 마무리되었습니다. 한꺼번에 입속으로 빨려 들어간 아이스크림 덩어리처럼 지나치게 급하게 결론으로 치닿는 느낌이 들더군요. 결론에서 이루어지는 중요 인물의 갑작스러운 심경 변화도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세계관의 구축과 이야기의 종결이 서로 결함을 보완해 주지 못하고, 다른 쪽의 미성숙함을 부각시켰습니다. 또, 파격적인 결과를 위해 소설이 가졌던 장점 중 너무 많은 부분을 포기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 아쉬운 마음도 있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여전히 좋은 책입니다. 우리나라 장르문학의 수준을 10년 정도 앞당긴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책의 발간 일에 재구매한 것을 조금도 후회하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 이번 완전판에는 지난 초판과는 다르게 '바옐'의 어린 시절 에피소드가 단편으로 담겨 있었는데요. 초판본과 완전판의 가격차이나, 긴 시간의 기다림을 합리화 시킬 만큼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번 완전판의 일러스트 표지보다 극 현실적이었던 구판 표지가 더 나은 것 같네요. 구입을 후회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배심원단 변호사 미키 할러 시리즈 Mickey Haller series
마이클 코널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배심원단 (알에이치코리아, 2020년) 미키 할러 시리즈 Mickey Haller series


마이클 코넬리는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작가로, 모든 소설을 따로 진열한 책장을 갖출 정도로 특별하게 아끼는 작가입니다. 매력 있는 3개의 각각 다른 시리즈물을 연재 중인 시리즈의 대가지만, '전작을 그다지 고려하지 않고 후속작을 쓰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이번 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작에서 피고인의 이중성에 환멸을 느껴 정의 구현과 동시에 검사장 선거 출마를 선언했던 미키 할러가) 피고인에게 폭행을 당하고 법원을 나뒹구는 의외의 시작을 맞이한 순간이나, 그 후에는 멘토를 찾아가 '이 또한 작전의 일종' 임을 고백하는 순간은, 전작을 고려하지 않고 후속작을 쓰는 게 맞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전편의 성장을 이어간다'라는 면에서는 이 소설은 해리포터 시리즈는 아닙니다. 각 권 간의 연속성은 떨어지며, 전편에서 쌓아올렸던 미키 할러의 성장은 부정되고, 전편에 부여받은 캐릭터의 개성은 희석됩니다. 하지만 저는 클래식한 스릴러 시리즈물을 쓰는 작가라면 의당 '마이클 코넬리'를 본받아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또한 하게 되었네요. 전작의 성공을 이곳저곳 뭉개버리고, 갑작스럽게 세계관의 부정적인 변화가 찾아오고, 주인공의 성장을 제한되게 설정하며, 캐릭터의 개성을 희석시켜 유연하게 만드는 것은 (비록 독자의 믿음을 배신하는 서술이지만) 창의적인 스토리 라인을 도드라지게 만들더군요. 거기에 더해 전통적인 요소인 '주인공을 생명의 위협에 몰아넣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거나, '지인의 죽음'을 통한 어두운 색채의 증가는 낱권의 완성도를 한층 도약시켰습니다.

이 소설의 첫 몇 장면은 '피고인의 폭행, 멘토와의 만남, 살인사건 의뢰'같이 알 수 없는 장면으로 이어지며,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일관되게 예측 불허의 구조를 띄고 있었습니다. 이런 진행은 이 소설이 '소설'이라기보다는 실제 일어난 사건의 단면을 정확히 재현하는 듯 보이게 만들더군요. 권선징악, 기승전결의 전형성에서 벗어난 결말에 이르면, 스릴러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짙게 만듭니다. '마이클 코넬리' 소설 대부분에서 다루어지는 '원죄론'에 관한 고민은 이 소설에서도 빠지지 않는데요. 일관되게 변호사의 대의명분, 즉 '피고인을 위해 맞서 싸워 주는 것'이라는 주제를 통해서만 진실에 다가가는 주인공을 통해 느껴지는 다른 가치와의 충돌, '설득 가능한 주장에 현혹되지 않고 진실을 추구함'으로 인해 마주하게 되는 결과를 통한 교훈적인 메시지는, 킬링 타임용 스릴러의 철학으로는 (다른 장점과 마찬가지로) 차고 넘치는 편입니다.

"내 말 잘 들어라." 리걸이 말했다. " 기소된 피고인을 위해 맞서 싸워주는 것보다 더 숭고한 대의명분은 없다. 이 일을 망치지 마라. 미키"

-231p

"더 할 말이 있어?" 내가 물었다. "잘 모르겠어서요. 우리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지 확신이 안 서네요. 모야가 그 마약단속국요원보다 더 좋은 표적임에는 틀림이 없지만요." 나는 제니퍼의 말뜻을 이해했다. 곧 있을 재판에서 모야가 의심스럽다고 몰아가는 게 연방 요원에게 주목하는 것보다 훨씬 더 쉽고 효과적일 것이다. 제니퍼는 진실을 추구하는 것과 우리 의뢰인에게 유리한 평결을 추구하는 것 사이의 미묘한 차이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다. 그 둘은 항상 같은 것은 아니었다.

253p


간단히, 이 소설은 뛰어난 법정 스릴러 소설을 보여줍니다. 손에 잡으면 빠져들 수밖에 없고, 읽는 내내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며, 고도의 두뇌 게임을 통한 희열과 여운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큰 단점이 있는데, 바로 출간 연도입니다. 국내에 '2020년'에 출시된 이 소설의 미국 출간 연도는 '2013'년입니다. 7년의 공백으로 말미암아, 이 소설 안에서는 시대에서 벗어나는 장면이 묘사되기도 합니다. 2013년에 출시된 소설이 2020년에야 번역본으로 만날 수 있다면, '2020년 발간 예정'인 미키할러 시리즈의 다음 편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진심으로 분발을 촉구하고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