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나무숲 - 완전판 (황금가지, 2020년)
초판 (로크,2008년)
오래전에 한번 읽고 재발간이 되면 소장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소설입니다. 책에 대한 감상은 희미하게만 남아있었지만, 당시의 소장 욕구는 선명하게 남아있어서 재발간 후 즉시 구매로 이어지게 되었네요. 첫 번째로 읽었을 때는 대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여러 명이 거쳐간 책이라 구겨진 표지에 윤기가 반들반들했던 사소한 것들이 기억에 나네요. 깊은 감동과 샘솟는 영감을 받아 가며 빠르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상업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완성도에 빠져들었습니다. 두 번째로 읽은 후에도 비슷한 감상은 들더군요. 일반적인 칙릿소설이나 판타지 소설에 우리가 바랄 수 없는 것들이 담겨 있는 소설입니다. 함량이 낮은 대화, 정돈되지 않은 짜임새, 과장된 감정들, 유치한 관계 설정 같은 단점들이 보이지 않는 소설입니다. 중심인물 간 감정의 흐름이 부드럽게 전개되고, 주변 인물의 등장과 퇴장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세계관도 탄탄해서 이물감이 들지 않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이 책은 몇 쪽 넘기지 않아도 강력한 가독성으로 독자를 사로잡습니다. 여러 미스터리가 커다란 올가미같이 궁금증을 유발하더군요. 책을 덮은 후에도 극 중 인물의 이미지가 한참 동안 머릿속을 맴돕니다. 이 모든 것은 10년 전에도 유효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나이를 먹어서일까요. 오래전과 느끼지 못했던 소소한 단점들도 느껴졌습니다. 일단 결론에 이르기까지 헛걸음이 빈번히 반복되어, '동어 반복'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나 바옐이 자신을 향한 고요의 존경심(혹은 애정)을 외면하는 장면이 반복 노출되었는데, 김치 없이 먹는 고구마같이 흐름을 뻑뻑하게 만드는 느낌이었습니다. 16부작 드라마 내내 여자 주인공의 마음을 몰라주는 남자 주인공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더군요. 이런 일련의 흐름은, 담백하고 쿨하게 관계를 진전시키는 최근의 흐름과는 동떨어지게 느껴졌습니다.
지난 첫 완독 시에도 비슷한 감정이 들었지만 섬세한 이야기 흐름이나 등장인물의 입체성에 비해 결론은 성기게 마무리되었습니다. 한꺼번에 입속으로 빨려 들어간 아이스크림 덩어리처럼 지나치게 급하게 결론으로 치닿는 느낌이 들더군요. 결론에서 이루어지는 중요 인물의 갑작스러운 심경 변화도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세계관의 구축과 이야기의 종결이 서로 결함을 보완해 주지 못하고, 다른 쪽의 미성숙함을 부각시켰습니다. 또, 파격적인 결과를 위해 소설이 가졌던 장점 중 너무 많은 부분을 포기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 아쉬운 마음도 있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여전히 좋은 책입니다. 우리나라 장르문학의 수준을 10년 정도 앞당긴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책의 발간 일에 재구매한 것을 조금도 후회하지고 있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