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심원단 (알에이치코리아, 2020년) 미키 할러 시리즈 Mickey Haller series
마이클 코넬리는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작가로, 모든 소설을 따로 진열한 책장을 갖출 정도로 특별하게 아끼는 작가입니다. 매력 있는 3개의 각각 다른 시리즈물을 연재 중인 시리즈의 대가지만, '전작을 그다지 고려하지 않고 후속작을 쓰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이번 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작에서 피고인의 이중성에 환멸을 느껴 정의 구현과 동시에 검사장 선거 출마를 선언했던 미키 할러가) 피고인에게 폭행을 당하고 법원을 나뒹구는 의외의 시작을 맞이한 순간이나, 그 후에는 멘토를 찾아가 '이 또한 작전의 일종' 임을 고백하는 순간은, 전작을 고려하지 않고 후속작을 쓰는 게 맞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전편의 성장을 이어간다'라는 면에서는 이 소설은 해리포터 시리즈는 아닙니다. 각 권 간의 연속성은 떨어지며, 전편에서 쌓아올렸던 미키 할러의 성장은 부정되고, 전편에 부여받은 캐릭터의 개성은 희석됩니다. 하지만 저는 클래식한 스릴러 시리즈물을 쓰는 작가라면 의당 '마이클 코넬리'를 본받아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또한 하게 되었네요. 전작의 성공을 이곳저곳 뭉개버리고, 갑작스럽게 세계관의 부정적인 변화가 찾아오고, 주인공의 성장을 제한되게 설정하며, 캐릭터의 개성을 희석시켜 유연하게 만드는 것은 (비록 독자의 믿음을 배신하는 서술이지만) 창의적인 스토리 라인을 도드라지게 만들더군요. 거기에 더해 전통적인 요소인 '주인공을 생명의 위협에 몰아넣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거나, '지인의 죽음'을 통한 어두운 색채의 증가는 낱권의 완성도를 한층 도약시켰습니다.
이 소설의 첫 몇 장면은 '피고인의 폭행, 멘토와의 만남, 살인사건 의뢰'같이 알 수 없는 장면으로 이어지며,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일관되게 예측 불허의 구조를 띄고 있었습니다. 이런 진행은 이 소설이 '소설'이라기보다는 실제 일어난 사건의 단면을 정확히 재현하는 듯 보이게 만들더군요. 권선징악, 기승전결의 전형성에서 벗어난 결말에 이르면, 스릴러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짙게 만듭니다. '마이클 코넬리' 소설 대부분에서 다루어지는 '원죄론'에 관한 고민은 이 소설에서도 빠지지 않는데요. 일관되게 변호사의 대의명분, 즉 '피고인을 위해 맞서 싸워 주는 것'이라는 주제를 통해서만 진실에 다가가는 주인공을 통해 느껴지는 다른 가치와의 충돌, '설득 가능한 주장에 현혹되지 않고 진실을 추구함'으로 인해 마주하게 되는 결과를 통한 교훈적인 메시지는, 킬링 타임용 스릴러의 철학으로는 (다른 장점과 마찬가지로) 차고 넘치는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