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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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도에 출간된 '보건교사 안은영'이라는 소설의 드라마화로 핫한 작가가 된 정세랑님의 소설입니다. 인터뷰에 의하면 "만약 지난 세기 여성 예술가들이 일찍 죽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일가를 이뤘다면 어땠을까?"같은 의문에서 시작된 소설입니다. 일가의 중심인 심시선 할머니가 강연, 인터뷰, 회고록 같은 수단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 부분과, 그녀의 가족들의 대화를 통해 흘러가는 두 줄기의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됩니다.


읽은 것 자체가 후회스럽고, 읽는 동안 몇 번이나 그만두고 싶었던 소설입니다. 매듭을 짖기까지, 적절한 완성도의 구성을 갖춘다거나, 양질의 가독성으로 독자에게 어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더군요. 등장인물의 대화 위주로 진행되는 소설은 시종일관 산만했습니다. 이런 산만함은 결국 주제의식, 구성, 예지력 같은 소설을 소설답게 만드는 요소를 이야기에 끌어들이지 못하고 거대한 먼지 구름처럼 둥둥 떠다니게 만듭니다.


이것이 소설이야, 이것이 정세랑이야


이렇게 이야기한다면 진심으로 할 말이 없습니다. 많은 등장인물은 저마다의 개성이 드러나기에는, 등장 시간이 너무 짧거나, 평면적입니다. 인물의 괴팍한 성격이나 특수한 상황이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들어 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된 작가라면 인물을 둘러싼 환경을 천천히 어루만져 주고 성격이 우러나오기까지 힘써야 합니다. 하지만 정세랑 작가는 소설의 첫 장부터 판타지 소설 속 그것 같이, '가계도' 붙여 놓고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틔어지는 되는 인물 관계에는 관심이 없음을 보여줍니다. 몇 편의 리뷰를 찾아봤는데, (심지어 호의적인 리뷰에서도)가계도가 없이는 소설의 흐름에 참여할 수 없었다는 글이 있었습니다.


작가의 후기에 쓰여있는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다.'


문장은 대단히 우아하지만, 오만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정도 소설에, 이 정도 이야기 깊이나 관계의 파격이, 21세기를 대표하는 사랑이라고 표현하는 건 분명히 교만한 겁니다. 20세기를 살았던 여성이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를 지나치게 얇은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도 불편했습니다. 이 소설 속에 통속소설 속 비운의 여자의 삶이나 칙릿 소설속 상업적인 캐릭터를 뛰어넘는 어떤 철학이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더군요. 


무엇보다 지루한 소설이었습니다. 딱히 반짝이는 지점도 가독성을 증대시키는 부위도, 출중한 메시지도, 긴박한 구성이나, 반전, 아무것도 등장하지 않는 소설입니다. 주요 서점의 차트 상단을 차지하고 있는 핫한 작가의 소설, 그것만이 이 소설의 유일한 장점처럼 느껴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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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우지 2023-04-06 1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 공감합니다. 제가 이 책을 읽는 동안 자꾸 그만 읽고싶어 지고 각 장에 심시선 할머니 부분만 읽으며 스킵하게 되는 이유를 까오지 님의 글을 보며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작가님의 오만함이랄까요 뭔가 우월함이랄까요; 저한테는 글이 거북하게 보입니다.

jibae2dda 2023-08-14 1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독성이 너무 떨어져요. 세대를 아우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