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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평점 :
7년의 밤
■ 결코 원치 않는 일이 일어났네요. 이 소설은 '7년의 밤' (리뷰 보기 = http://blog.naver.com/haoji82/70113275157) 작가인 정유정씨의 소설입니다. 전작은 상업적으로 대단한 반향을 불러 일으키면서 정유정 작가를 돌연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했고요.(아직까지도 베스트 셀러 순위에 머물러 있더군요.) 순문학계에서도 신선한 이슈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전작의 성공은 단단한 인물들과 합이 꼭 짜여진 이야기, 의외성을 가진 인물 배치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적지 않은 비약과 비현실적이고 우연한 설정이 거푸 등잠함에도, 월등한 장점으로 단점을 커버한 완성도 높은 소설이 었죠.
단점
■ 이번 소설은 작가가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첫번째는 인간의 욕심에 의해 버려지거나, 소모되는 애완견에 관한 이야기, 두번째는 광주 사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버려지는 개와 사살되는 인간을 모자이크식 구성을 통해 나열하며, 버려지거나 식용되는 동물에 대한 가련함을 말하고 싶었던것 같아요. 또, 무력한 시민들의 집회나 학살장면을 통해서는 현대사의 추악한 단면을 회상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느하나 성공하지 못합니다. 이유는 복합적입니다. 일단 과장된 감정씬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감정이 절제된 장면간의 전환보다는, 호소력 짙은 감정씬이 자주 등장하는데요. 독자의 입장에서는 손발이 오글거릴 정도의 유치한 이야기거나, 흐름에 방해될 정도의 방만한 문장들 입니다. 죽어가는 개를 향해 "링고, 안돼" "링고, 가만있어" 같은 따옴표가 반복되는 상황이라니... 일부 젊은 여성들이 자신을 타인화시켜 혀짧은 소리로 내는 "링고는 슬퍼요." "링고는 있잖아요..." 같은 말투와 다름없이 유치하더군요.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보편적인 정서'로는 이해가 힘듭니다. 선량한 사람이 희생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사람을 노리고 다니는) 도사견을 보호하기 위해 폭행을 행사 한다거나, 사람들이 끊임없이 죽어가는 지자체의 예방 처치를 나만 살기 위한 집단 학살 수준으로 치부하는 작가의 문장에는 도통 설득력이 없습니다. 왜 거리에서 '믿음천국, 불신지옥'같은 플랜카드를 들고 다니는 노인분들과 같더군요. 극히 개인적인 감정을 토대로, 독자에게 호소하니 먹힐리가 없습니다. 솔직히 중반 이후로는 이 작가가 전작에서 반짝거리는 보편적 상업성을 가지고 있던 그 작가가 맞나 자꾸만 생각나게 했습니다.
또, 괴병이 발생된 가상의 도시 '화양'에서 일어난 일들이라는 배경자체가 평범한건 아닙니다만, 모든 에피소드가 현저히 개연성이 떨어집니다. '치명적 바이러스의 확산' '썰매를 타고 싶은 수의사' '아버지를 죽이고자 하는 싸이코 패스' '계엄령에 반발하는 군중들' '인터넷 매체의 여기자의 취재전쟁' '가족의 생사가 불분명한 간호사' '사랑하는 애인을 잃은 도사견의 복수' 가 등장하는 한권짜리 소설이니까요. 작가가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런 많은 갈래의 주제는,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이야기의 진행으로 귀결되기 보다는,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만 초점이 맞추어 진행됩니다. 개연성이 떨어질 뿐더러, 흥미도 감소하지요. 결국에는 알수 없는 길로 통통 튀는 기발함이나 설득 가능한 에피소드는 없고 여러 시점에서의 신파만 나열 됩니다. 제목조차 실패가 아닌가요? '28' 이라니... 되뇌여 반복할때마다, 좋지 않은 기분이 들게 하는 제목이지요.
장점
■ 이 소설의 장점은, 잘 읽힌다는 겁니다. 그렇게 말도 않되고 혀를 차면서도 끝까지 읽게 되는 가독성이라니... 이상의 장점은 찾지 못했습니다만,,,
총평
■ 과거의 작품을 굉장히 좋아했던 독자로서, 정유정 작가님이 잠시 휴가를 떠날때가 아닌가 싶네요. 좋아한다던 찰스 디킨스, 레이먼드 챈들러, 스티븐 킹의 소설을 다시 읽어 봐야 할때라고 생각합니다. (정유정 작가의 스티븐 킹에 관한 이야기 =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30&contents_id=6052)
전도 유망한 작가의 2년 3개월만에 신작. 다음 이야기도 이렇다면 곤란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