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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뇌와의 대화 - 하버드 의대교수 앨런 로퍼의
앨런 로퍼 & 브라이언 버렐 지음, 이유경 옮김 / 처음북스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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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뇌와의 대화라는 책입니다. ‘브리검 여성병원’의 앨런로퍼 라는 신경과 의사가 쓴 책입니다. (‘브리검 여성병원’이라는 명칭은 ‘피터 벤트 브리검 병원’ , ‘로버트 브렉 브리검 병원’, ‘보스턴 여성병원’의 이름을 합쳐서 지었다고 하더군요.) 개인적인 호기심이 동해, 조금 알아 봤더니,
하버드 의대는 대학 병원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주변에 여러 병원들을 하버드 의대와 협력 병원으로 두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 병원들 중에는 Massachusetts General Hospital 말고도 Children's Hospital, Beth Israel Deaconess Medical Center, Brigham and Women's Hospital 등이 큰 병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라는 전문가의 ]글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편하게 하버드 의과 대학 교수가 쓴 책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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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여건상, 대학 병원의 교수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참 많았습니다. 담당 환자에게는 신과 같은 지위의 사람이라고는 해도, 보편적인 시선으로 보면 (어느 직장이나 마찬가지로), 뛰어난 사람도 있고, 질척거리는 사람도 있고, 겸손한 사람도 있고, 형편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반드시 본인의 의사생활을 통틀어 마주쳤던 가장 기묘한 순간이 있기 마련입니다. 대부분 , 극도로 흥미진진한 순간을 담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예시1> 미약한 호흡곤란 증상만을 호소하는 환자에게서 ‘돌연히’ 이상한 느낌을 받아, 초스피드로 심장 초음파를 했더니, 혈관이 꽉꽉 막혀, 5분 후에 돌아가셔도 이상할 게 없는 상태였던지라 응급시술을 시행했다. (그러므로, 환자를 살릴 수 있었다.)
<예시2> 1차 병원에서 폐암으로 의심을 받고 대학병원에 찾아왔던 남자환자가 종합 소견을 통해 폐암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병원에 환자가 줄줄이 비엔나로 쏟아지는 덕에 입원하기까지, 한 달 이상의 시간이 걸렸고, 대기 시간동안 변화했을지도 모르는 암을 추척 관찰하기 위해 영상검사를 다시 실시하였다. 암 덩이가 크거나 작아지진 않았지만, 놀랍게도 장소를 이동하였다. (엥?) 환자는 암이 아닌 폐흡충증으로 결론 났다. (환자는 살 수 있었다.)
뭐, 대부분 ‘환자를 살릴 수 있었다.’ 라거나 ‘환자가 살 수 있었다.’ 로 귀결되는 이야기이지만,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드라마틱한 사건임에는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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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첫 몇 장도 그런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었습니다. 작은 동네 병원도 아니고, ‘하버드 대학 병원’의 이야기입니다. 미국이 이곳저곳에서 몰려드는 다양하고, 희귀한 케이스의 환자를 소개하는 작가의 이야기를 당연히 재미있습니다. 확실히 흥미진진하더군요. 미드 ‘하우스’를 생각나게 할 만큼, 드라마틱한 에피소드가 쏟아지니까요.
중간 중간 같은 과 레지던트에게 독특한 캐릭터를 부여해서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들거나, 증상이 비슷한 (하지만 예후는 전혀 다른) 환자의 이야기를 비교함으로서, 쉽고 논리적으로 최신 의학을 설명하는건 프로 작가의 힘을 빌렸을거라는 추측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흥미로운 환자 소개도 열명을 넘어가면 지루한 법이니가요, 작가는 ‘교훈을 준 일화들’ 이라는 장에 이르러,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뭉텅뭉텅 서술합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책 전체를 통틀어 유머가 돋보이는 장이었습니다. 한 단락 소개하자면,
‘(40년전) 내 옆에는 주디 바낙이라는 여학생이 앉아 있었다. 그녀 옆에는 로저 스턱스맨 이라는 히피 부류의 남 학생이 앉아 있었다. 거의 40년이 지난 지금도 내가 주디를 잘 기억하는 이유는 의대에 여학생이 다섯명뿐이었기 때문이다. 의대는 모르몬교도가 여학생보다 더 많았고, 히피가 여학생보다 더 많았다. (180P)’
환자나 질환에 관한 서술은 정석적으로 진행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는 위트있게 풀어내니 책이 한층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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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장부터는 현직의사로서 접할수 밖에 없는 의학적인 문제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토론시간에 누구나 한 두 번은 생각 해 볼만한 화두였으니, 뻔하게 흘러갈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생명을 다루는 최전선의 직업군 종사자로서 적절한 예시를 통해, 본인의 경험이 묻어나는 깊이있는 성찰이 눈에 띄었습니다. 한 단락만 소개하자면,
(루이스 네이글’은 젊은 나이로 루게릭병으로 알려진 ‘ALS’ 에 걸린 환자입니다. 병의 차도가 심해져 그녀는 기계적 호흡 없이는 살아 갈 수 없게 되고, 그녀와 가족들은 그녀의 호흡기를 떼는 데에 찬성하게 됩니다. )‘의학적 능력으로 환자를 영원히 살려둘 수는 없지만, 오래 살려 둘 수는 있다. 우리는 백혈병 환자들에게 10번의 골수 이식을 해줄 수 있다. 우리는 실험적인 항암 요법을 시도할 수 있다. 또 우리는 혈소판 수혈을 계속 해 줄 수도 있다. ALS환자에게도 이와 비슷한 극단적인 조치들을 해줄 수 있지만, 어느 것도 질병을 바꿀 수는 없다. 그래서 문제는 이렇게 된다. 환자에게 의학이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지 않는 게 환자의 죽음을 돕는 것인가?
조력 자살의 경우를 가정해 보면 환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살기를 원치 않아요. 나에게 뭔가를 해주세요” 하지만 루이스 네이글 같은 환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극단적으로까지 나를 계속 도와주어야 하는 건가요?” 그렇지 않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음이 다가온다. (231P)
그외에도 유명인사(마이클 제이 폭)의 예를 통해 파킨슨 병에 대해 알아봤던 부분도 흥미로웠습니다.(작가는 자신이 파킨슨 병의 전문가는 아니라고 강조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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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뿐만 아니라 삶의 여러 방면에 걸쳐서 흥미로운 글이었고, 좋은 에세이 였습니다. 가독성은 준수한 편이었지만, 자주 등장하는 의학용어며 문장의 밀도가 빡빡해 후르륵 읽어 버릴수 있는 책은 아닙니다. 대저 뇌과학이란 의과대학생에게도 생소한 용어가 자주 등장하는 분야이니 일반인에게 익숙할리 없습니다.
저는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좋겠습니. 하지만, 이 책이 너무 길고 이해가 되지 않아, 잠만 올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앞의 부분을 전부 지나치고, 이 책의 ‘209- 234 p’ 에 이르는 ‘종반전’의 내용만은 꼭 한번 읽어 보세요. 너무나 큰 감동을 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죽음에 이르는 한 사람의 마지막을 꼭 필요한 문장으로 잡아냈습니다. 거기에 담긴 의사로서의 무력감도, 마지막을 고하는 사랑의 가슴아픔도, 현장의 침묵과 어색함과 기계음까지 담아낸 이 책의 하이라이트 입니다.
당신은 의학 드라마의 작가인가요? 현직 신경과 의사인가요? 아니면 죽음의 마지막 한순간을 담고 싶은 소설가인가요? 그렇다면, 이 책을 꼭 한번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이 책을 반드시 두번 읽게 될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