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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 별점
저는 소설을 읽고, 나름의 기준을 바탕으로 별점을 내립니다. 그리고 이 책은 별점 4.5개를 주었습니다. 이건 이 책이 반드시 소장해야 할 책이라는 의미입니다. 관심없으시겠지만, 뭐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책의 감상을 이야기를 하려면, 극의 흐름을 따라가야 할 것 같아요. 그 편이 가장 이해시키기 쉽겠네요. 초반에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하고 '애플스토어'에서 진상을 부리고 있는 오베를 만났을 때,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롤’의 스크루지 영감이 생각나더군요. BMW를 몰기 시작했다는 이유로 오랜 이웃에게 저주를 퍼붓고, 자신을 따르는 고양이에게는 꺼지라고 나막신을 던지고, 이웃에게 친절 베푸는 것을 아까워하는 오베는 상상 속 스크루지 영감의 현신같은 인물이 었습니다. "그래요, 뭔가 사회에 불만이 가득한 노인의 이야기입니다." 작가는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60 살에서 한살 모자란 59살의 오베라는 남자입니다.

◆ 감상 1
이야기의 전개는 얼마 전에 읽은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노인'과 흡사하게 흘러갑니다. 우리는 현재와 오버랩되는 과거의 오베를 만나게 됩니다. 성실하고 묵묵하게 살았던 젊은 날의 오베, 그를 가로막는 몇 개의 시련, 오베를 첫눈에 반하게 한 소냐와의 만남, 그들에게는 행복도 찾아오지만 슬픔도 찾아옵니다. '100세노인' 알란 칼손의 이야기와 비슷한 방식이지만, 확실히 다릅니다. 오베의 불행과 그것을 풀어나가는 방법은 알란 칼손의 환타지적인 그것과는 다릅니다. 오베의 불행은 단지 운좋게 피할수 있는것들이라거나, 환상적인 모습의 실체없는 것들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오베의 불행은 얕게 뿌리 박은 꽃나무에 쉴세없이 몰아치는 우박과 같은 불행입니다. 훨씬 현실적인 위협이고, 쿡쿡 찌르는 아픔이 느껴지고, 씁쓸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런 그에게 "우리는 사느라 바쁠수도 있고, 죽느라 바쁠수도 있어요, 오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요" 라고 했던 소냐. 그녀는 흑백만을 볼수 있는 오베가 알 수 있는 모든 색깔입니다.
이들을 다시 일어나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요, 주저하지 않게 하는것은 무엇인가요? 저는 이와 같은 의문을 '대지 '(펄벅)의 주인공 왕룽을 만나 느껴본 적이 있었습니다. 삶이란, , , 여전히 알수 없지만 말이죠.

◆ 감상 2
소냐의 죽음 이후, 이 이야기는 우리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로 귀결됩니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무언가를 수리하고 있는 이, 질문보다는 짧은 대답이 어울리는 이, 음악이나 책같은 추상적인것 보다는 손에 쥘수 있는 것을 신뢰하는 이,
그동안 어떤 서양 소설도 아버지의 헌신을 이토록 낭만적이고, 쓸모있는 것으로 다룬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은 윗 세대의 완고함과 고집은 단지 바꾸어야 하고, 개혁해야 할만한 것을 여기는 소설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시아의 정서에 합당한 아버지 상을 표현한 소설같았습니다. 소설의 한단어 한단어를 사부곡으로 채우고 있는 소설은 아닙니다만, 오베의 모습에서 아버지가 보여서, 가장 어이없는 부분에서조차 슬픔이 찾아왔습니다. 국제시장의 덕수를 볼때와 같이 먹먹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 감상 3
위에 설명했지만, 이 소설은 클래식으로 이름난 소설, 그리고 트랜디한 영화가 주는 감동을 동시에 선사합니다. 때로 슬픔이 너무 깊을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독자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것에 빠지지 않도록 오베의 날카로움, 때때로 악바리 같은 근성은 종종 웃음거리를 선사하니까요. 과거와 현재는 매우 균형잡혀 있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습니다. 이 책을 완독한다는건, 당신 아버지 어머니 혹은 할아버지, 라도 독자의 인생 누군가를 회상케 합니다.
그러니 참 좋은 책입니다. 추천하고 싶고, 괜찮다면 서점에서 한권 골라 주말밤에 읽어 버렸으면 하는 책입니다.
아, 번역이 참 좋다는 이야기를 했던가요? 번역이 참 좋은 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