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포동 김갑수씨의 사정
허지웅 지음 / 아우름(Aurum)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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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포동 김갑수씨의 사정 (아우름 출판, 2014년)



영화 전문가, 기자, 방송인으로서 허지웅씨를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폐간한, FILM 2.0, SCREEN 잡지를 정기 구독할 때도 늘 그의 기사를 발췌해서 읽는 편이었고, 2009년에 발간된 대한민국 표류기(절판)라는 책도 언젠가 꼭 읽어야지 하면서 책장 깊은 곳에 꾹꾹 눌러 보관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의 직설법 때로는 독설 , 순간순간 반짝이는 어휘 '모두 수준급이다'라는 생각은 언제나 하고 있습니다.

방송인으로서 인기를 얻고 발간된 이 소설이 그의 경력에 방점을 찍었더라면 좋았을텐데요. 사실 소설가로서 그에 대한 평가는 의문에 가깝더군요. 이 소설은 '글쟁이'로서 그의 장점을 대체로 계승합니다. 시니컬하고, 독설적이고, 때로 유머러스 합니다. 하지만 독특한 아우라가 있는 그의 '글'와는 다르게 소설은 평범하더군요.

일단 이야기의 구조부터 평범합니다. '주인공의 다채로운 성생활일지에 썸씽스페셜한 진리를 녹인다. 그리고 독자에게 전달한다. '는 '엠마뉴엘'스러운 흐름은 철지난 패딩점퍼 같이 답답한 느낌이었고요, '사정'이라는 중의적인 제목을 사용해 '이거 재미있지?' 라며 독자에게 건넨 것도 지나치게 유치한 발상으로 느껴졌습니다. 또, 소설이 포함하고 있는 대화의 밀도며 메시지도 허술한 편이더군요. 유머의 뼈대는 대체로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런류의 소설이 꽤나 발간되던 때도 있었지만, 너무나 오래 전 이야기네요.

글의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는 화자의 겸험담인 '인터미션'이 훨씬 낫다고 생각들었는데, 그것조차 일부는 절판된 전작인 '대한민국 표류기'에서 가져다 쓴 것이라니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 소설은 (아주 솔직히 이야기하면) 20대 남성들간의 술자리에서 종종 언급되는 이런저런 모험담을 여러개 연결시켜 쓴 책으로, 스포츠 신문의 성인컬럼을 여러개 이어붙인 소설 같았습니다.

장점이라고하면... 어리고 자라나는 남자 청소년이 읽기에는 재미있겠습니다. 야하고 대체로 '성기'에 대한 이야기고, 대화는 성기고, 때때로 김갑수씨의 인생이 뭔가를 담고 있는것 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청소년들의 올바른 성교육을 위해서는 허지웅씨가 MC 로 출연했던 마녀사냥을 몇 편 몰아 보는것이 좀 더 다양하고 포용적인 관점에서 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네요.

2018년 혈액암투병중임을 밣히고 대부분의 활동을 마무리했던 작가는 항암이 마무리 되었고, 다시 건강을 되찾았음을 얼마전에 밝혔습니다. 다시 소설가로 활동할 생각인지는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의 오랜 팬으로서 다음 소설로는 '섹스', '화장실', '군대이야기' 말고 부탁드리겠습니다. 우리는 경험해보지 못한 삶의 어두운곳 어딘가에서 다시 돌아온 작가이기에,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소중한 인생에 대한 조언을 부탁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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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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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은행나무, 2016년)

영 제 Origin of species


지난 두 편의 소설로 호평과 혹평을 번갈아가며 받았던 정유정 작가의 소설입니다. 두 소설은 각각 '7년의 밤' , '28'이라는 소설이었고 이 소설을 포함한 3권의 책을 '악의 3부작'으로 명칭코자 한다더군요. 아주 좋게 말하면 박찬욱의 복수 3부작과 비견될만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복수는 나의 것》(2002), 《올드보이》(2003), 《친절한 금자씨》(2005) 로 이어지는 박찬욱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찬사도 받았지만, 실망감도 주었습니다.

이번 소설은 다소 평이한 편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흔히 '사이코 패스'라고 일컬어지는 살인마가 주인공 점을 제외하고 말이죠. 연쇄 살인범이 화자로 등장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의 소설은 충분히 많이 발매되었는데요. 제가 읽은 소설 중 제대로 된 소설은 '조이스 캐럴 오츠'의 '좀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조이스 캐럴 오츠'만이 보편적인 도덕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논리로 이야기를 진행하기 때문입니다.

'좀비'를 읽은 박찬욱 감독의 추천사를 한번 돌아보도록 하죠.

악인의 입장에서 서술된 일지다. 그렇다고 독자에게 악덕을 설득하거나 악행에 대해 변명하지는 않는다. 악을 권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그러니까 보기보다 위험한 책은 아니다. 차라리 좀비 는 독자로 하여금 잠시 그 악인이 되어보도록 한다. (.. 중략) 입체영상을 보게 해주는 안경 같은 것이다. 이걸 쓰면 사이코패스의 눈으로 세상과 사람들, 그리고 자기 내면을 관찰할 수 있다. 어쩌면 반대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입체로 존재하는 세상이 이 안경을 끼면 평면으로 보인다. 사이코패스의 시선은 매우 폭력적으로 세계를 단순화하니까.

'조이스 캐럴 오츠'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추천사 중


'종의 기원'은 주인공의 심리를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공들여 서술합니다. 하지만, 사이코패스로서의 시선이 아닌 '보편적', '도덕적' 시선으로 진행됩니다. 따라서 독자로 하여금 주인공에 대한 '연민'은 자아낼지언정 주인공의 행동에 대한 설득에 한계를 보입니다. 완독 후에는 어리둥절한 느낌이 들고 여러 생각에 빠집니다. 1. 이 정도로 설득력이 떨어지면 주인공을 기질적 사이코패스가 몰아갈 것이 아니고, 오히려 반사회적 연쇄살인범으로 설정해야 아귀가 맞아떨어지지 않았을까? 2. 너무나 상상력이 빈곤해서 절대 연쇄 살인범이 될 수는 없는 작가구나. 3. 작가는 자신의 장점을 조금도 모르고 '재미있는!','신기하다!', '파이팅!' 이 정도의 신조(Motto)를 추진력 삼아 소설을 디자인하는 중인 건가?

이 소설은 진짜 프로 골퍼가 아닌 온라인 게임에서 존재하는 골프 고수와 같은 느낌입니다. 온라인에서라면 제법 큰소리치는 프로게이머 정도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필드에서라면? 글쎄요입니다. 돌이켜 보면 보면 작가는 전작에서도 같은 실수를 했던 걸지도 모릅니다. 왜 개가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을 해야 하는 걸까요? 개는 개인데 말이죠. 작가가 다음번 소설을 쓸 때는 보편적이지 않은 '개'나 '사이코 패스'가 화자인 소설에 집착하기보다는 보통 사람이 악을 접할 때의 감정을 확실하게 서술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28'과 '종의 기원' 책까지 두 권을 종합해보면 상상력의 한계가 명확한 작가니까요. 그럼에도 '28'이 줬던 실망감에 비하면 다소 평이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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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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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과 천둥 (현대문학, 2017년)

원 제 蜜蜂と遠雷 (2016년)


온다 리쿠의 초기 작품은 '미성년의 불완전성'에서 우러나는 아름다움이나 공포를 통해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류의 소설이었습니다. 단편적인 아이디어나 순간순간의 청량함이 돋보이는 소설로 가독성과 흡입력이 뛰어난 반면에 깊이는 다소 떨어지는 류의 소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추정컨대) 다작을 통한 경험이 쌓이고 인간적인 성숙함을 더해가며 순차적인 발전을 거듭한 것 같습니다.

벌꿀과 천둥은 작가의 기존 장점이 잘 녹아 있는 가운데 새로운 방법을 통해 깊이의 확장 또한 꾀한 소설입니다. 일관되지 않은 여러 명의 화자의 시선을 통해 서술되는 옴니버스 식의 진행이라든지, 확연하게 두터워진 볼륨은 이전 작품과는 차별되는 형식인데요. 이런 변화를 통해 경쾌한 가독성은 물론이고, 글이 품고 있는 이미지를 정확하게 전달하면서도, 여러 등장인물에 대한 풍부한 이미지를 심어주는데 성공합니다. 읽는 내내 따뜻한 기분이 유지되는 손 난로 같은 소설입니다.

가장 최근작인 이 소설이야말로 그녀의 대표작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상업적인 측면에서나 문학적인 측면 모두에서 말이죠. 2016년 하반기 나오키상 수상작, 2017년 서점 대상 1위라는 타이틀에 적합한 소설입니다.

다만,

후반부로 갈수록 음악의 아름다움에 대한 묘사나 공연의 경쟁을 통한 재미보다는 인간관계에서 우러나오는 가독에 초점이 맞춰 진행되는데요. 그로 인해 소설을 완독 후에도 피아노 콩쿠르에 대한 음악 소설이라는 느낌이 희석되더군요. 나름 새로운 시도로 가득한 소설임에도 작가의 전작과 비슷한 여운이 만연합니다. 안정적인 가독성 확보와 기존의 장점 수렴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는 해도 초반에 뛰어난 음악적인 색채가 뒤로 갈수록 옅어지는 건 아쉬운 부분입니다.

이 책의 또 다른 단점은 지나치게 동심 어린 표지와 두터운 볼륨인데, 이 책의 주요 독자로 예상되는 젊은 여성층에 어필할 만한 면으로는 보이지 않더군요.

+ 예전부터 일본의 클래식 음반시장이 국내에 비해 크고 공연의 퀄리티가 높다는 점이 부러웠는데, 작가는 오히려 한국의 이성진에 관해 언급하고 있었습니다. 이성진 님의 공연을 꼭 한번 들어보고 싶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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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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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될 때 (흐름출판, 2016)

원 제 When Breath Becomes Air (2016년)

결론을 말하겠습니다. 이 책은 대단한 책입니다. 이 책은 문학을 전공했던 신경외과 의사인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그가 갑작스럽게 폐암 선고를 받은 후 시작되었습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지나간 삶에 대한 회고와 동시에 죽음에 한 걸음씩 다가가는 자신의 변화를 이야기합니다. 문장 사이사이로 느껴지는 찐득거리기도 하고, 먹먹하기도 한 알 수 없는 감정을 통해 작가의 삶에 대한 애착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이 작품이 독서의 모든 측면에서의 즐거움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더군요. 작품의 초반에는 작가가 만들어낸 문장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감탄하게 되고요. 작가가 대면하는 신경외과 환자들의 만성적인 괴로움을 통해서는 일상적이고 건강한 삶에 감사하는 마음도 가지게 됩니다. 작가의 치열한 일상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저의 게으름에 대한 반성도 하게 되더군요.

창작과 진료를 병행하던 폴 칼라니티는 결국 비명에 가게 되고, 작가의 죽음으로 집념의 정수인 이 책은 완결되지는 못했습니다. 미학적이고 꼼꼼하게 구획된 완벽한 문장들은 뒤로 갈수록 점차 작가의 생명력과 같이 흐트러지고 성겨지게 되는데요. 퇴고하지 못한 것 같은 단어 선택, 단순한 문장으로 천천히 변화하게 되고 작가의 몸과 정신이 서서히 죽어감을 예상하게 됩니다. 독자는 이를 통해 소설을 통해서는 이르른 적 없는 도탄 같은 감정에 빠지고 맙니다. 그리고 미완성인 책의 남겨진 여백에는 작가의 부재로 인한 애틋함이 또한 담겨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는 너무나 좋은 리뷰들이 어디에나 존재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최대한 짧고 간결하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모든 아버지들이, 모든 의사가 읽어야 하는 필수 서적으로 저는 삶의 가장 위태로웠던 순간에 이 책의 좋은 문장들을 되새기며 위로받았습니다. 이 책을 읽고 당신도 위로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서점에 들어가 이 책을 구매하세요.

https://blog.naver.com/haoji82/221645746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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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황금방울새 - 전2권
도나 타트 지음, 허진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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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방울새1, 황금방울새2 (은행나무, 2015)

원 제 The Goldfinch (2013)


이 소설을 읽으면서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떠올렸습니다. 행복과 불행의 부침을 겪지만, 결국 행복으로 귀결되는 주인공의 이야기, 등장인물 모두 항상 나쁘거나 착하기보다 장면에 따라 선악을 구분 지어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악한 행동이 때로는 주인공의 몫이기도 하며 으스스 한 기분을 가지는 캐릭터가 주인공의 절친한 친구기도 한 이야기, 불거된 모든 문제를 일 거에 정리하는 후련한 마무리 같은 것들 말이죠.

밀도 높은 문장으로 짜여진 소설이지만, 대체로 가독성과 몰입감이 좋은 소설입니다. 이야기의 커다란 흐름도 빠르고 역동적이며, 흐름을 끌고 가는 여러 트랩들은 순 문학이라기보다는 잘 만들어진 장르문학의 그것 같이 순도 높은 중독성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처음 몇 장을 읽는 데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지만 곧 독자들을 이야기의 한가운데로 몰고 갑니다.

이야기가 납득 가능하다는 점도 장점이겠습니다. 이야기의 근간을 형성하는 갑작스러운 사고에서 비롯된 어머니의 사망은, 이야기가 흘러가면서 조금씩 비뚤어지는 주인공의 모습과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게 연결됩니다. 뒤를 이어 불행한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하게 되고 일단락되는 이야기가 반복되는데 이런 반복은 이야기의 흐름을 점차 빠르게 만들고 풍성하게 하며, 한편으로는 주인공 생의 문제를 눈덩이처럼 점점 커다랗게 만듭니다.

그렇게 풍선처럼 커진 불안함을 이야기의 끝에 이르러 (심지어 주인공의 심연에 가지고 있던 불안정성마저도) 한 번에 소진시키는 영리한 반전으로 마무리하더군요. 이 소설은 지적인 호기심도 충족시켜주는데, 특히 이야기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명화에 대한 감상이나 중반 이후에 등장하는 고가구 복원에 대한 소재는 철저하게 준비된 소설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반면에 '단점'

이 소설의 단점은 너무 많은 불행과 마무리가 거듭되면서 어느 부분부터는 이 소설이 '현실성이 결여된' 소설 속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옆집에서 벌어지는 류의 생생한 이야기보다는 창작 연도가 100년 이상 된 명작 소설을 읽는 느낌을 가지게 되더군요.

그럼에도 작가의 다음 이야기는 기대되는 편인데, 한 권 소설보다는 3편이 넘어가는 2000 페이지 이상의 소설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토록 긴 분량의 이야기를 지속적인 궁금증을 유발하며, 짜임새 있게 풀어내는 솜씨는 타고난 이야기꾼이 아니면 발휘하기 어려운 실력이니까요.

+ 이 소설의 '디킨스'스러움은 저만 느낀 감상은 아닌 것 같더군요. 몇몇 리뷰에서 비슷한 뉘앙스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 미국의 유명 마술사 데이비드 카퍼필드(1956년 9월 16일 ~ )의 본명은 데이비드 세스 코트킨(David Seth Kotkin)으로 발음상의 이유로 디킨스의 소설에서 따온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었다고 하네요.


https://blog.naver.com/haoji82/221655089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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