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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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은행나무, 2016년)

영 제 Origin of species


지난 두 편의 소설로 호평과 혹평을 번갈아가며 받았던 정유정 작가의 소설입니다. 두 소설은 각각 '7년의 밤' , '28'이라는 소설이었고 이 소설을 포함한 3권의 책을 '악의 3부작'으로 명칭코자 한다더군요. 아주 좋게 말하면 박찬욱의 복수 3부작과 비견될만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복수는 나의 것》(2002), 《올드보이》(2003), 《친절한 금자씨》(2005) 로 이어지는 박찬욱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찬사도 받았지만, 실망감도 주었습니다.

이번 소설은 다소 평이한 편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흔히 '사이코 패스'라고 일컬어지는 살인마가 주인공 점을 제외하고 말이죠. 연쇄 살인범이 화자로 등장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의 소설은 충분히 많이 발매되었는데요. 제가 읽은 소설 중 제대로 된 소설은 '조이스 캐럴 오츠'의 '좀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조이스 캐럴 오츠'만이 보편적인 도덕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논리로 이야기를 진행하기 때문입니다.

'좀비'를 읽은 박찬욱 감독의 추천사를 한번 돌아보도록 하죠.

악인의 입장에서 서술된 일지다. 그렇다고 독자에게 악덕을 설득하거나 악행에 대해 변명하지는 않는다. 악을 권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그러니까 보기보다 위험한 책은 아니다. 차라리 좀비 는 독자로 하여금 잠시 그 악인이 되어보도록 한다. (.. 중략) 입체영상을 보게 해주는 안경 같은 것이다. 이걸 쓰면 사이코패스의 눈으로 세상과 사람들, 그리고 자기 내면을 관찰할 수 있다. 어쩌면 반대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입체로 존재하는 세상이 이 안경을 끼면 평면으로 보인다. 사이코패스의 시선은 매우 폭력적으로 세계를 단순화하니까.

'조이스 캐럴 오츠'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추천사 중


'종의 기원'은 주인공의 심리를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공들여 서술합니다. 하지만, 사이코패스로서의 시선이 아닌 '보편적', '도덕적' 시선으로 진행됩니다. 따라서 독자로 하여금 주인공에 대한 '연민'은 자아낼지언정 주인공의 행동에 대한 설득에 한계를 보입니다. 완독 후에는 어리둥절한 느낌이 들고 여러 생각에 빠집니다. 1. 이 정도로 설득력이 떨어지면 주인공을 기질적 사이코패스가 몰아갈 것이 아니고, 오히려 반사회적 연쇄살인범으로 설정해야 아귀가 맞아떨어지지 않았을까? 2. 너무나 상상력이 빈곤해서 절대 연쇄 살인범이 될 수는 없는 작가구나. 3. 작가는 자신의 장점을 조금도 모르고 '재미있는!','신기하다!', '파이팅!' 이 정도의 신조(Motto)를 추진력 삼아 소설을 디자인하는 중인 건가?

이 소설은 진짜 프로 골퍼가 아닌 온라인 게임에서 존재하는 골프 고수와 같은 느낌입니다. 온라인에서라면 제법 큰소리치는 프로게이머 정도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필드에서라면? 글쎄요입니다. 돌이켜 보면 보면 작가는 전작에서도 같은 실수를 했던 걸지도 모릅니다. 왜 개가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을 해야 하는 걸까요? 개는 개인데 말이죠. 작가가 다음번 소설을 쓸 때는 보편적이지 않은 '개'나 '사이코 패스'가 화자인 소설에 집착하기보다는 보통 사람이 악을 접할 때의 감정을 확실하게 서술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28'과 '종의 기원' 책까지 두 권을 종합해보면 상상력의 한계가 명확한 작가니까요. 그럼에도 '28'이 줬던 실망감에 비하면 다소 평이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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