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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 - 결정과 발발 나남신서 477
박명림 지음 / 나남출판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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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국전쟁에 관한한 기존에 알려진 가장 권위있는 저서로는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 The origin of Korean War>을 들 수 있다. 중국학과 일본학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던 미국내 한국학의 수준을 커밍스는 '기원'을 통해 대번에 끌어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아마 이는 다른 한국학 연구자들에게는 하나의 거대한 장벽으로 느껴졌으리라 여겨진다. 커밍스의 저작을 능가하는 혹은 그 수준에 준하는 한국전쟁 관련 연구는 당분간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얘기할 때, 박명림의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이 출간됐다. 

이 책에서 유독 돋보이는 지점은 저자의 학자적 성실성이다. 오래된 과거의 사실, 한국전쟁은 소수 권력자들 내부의 은밀한 회의를 통해 일어났다. 그 은밀성에 힘입어 전쟁의 발발과정을 추적하기 위한 자료수집은 까다롭고 지난한 과정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1950년을 전후로 한 당시의 수많은 자료를 섭렵했고, 동시에 꼼꼼하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러나 많은 자료를 수집했다고 해서 그 저작이 역작으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모아진 자료를 이론적 토대 위에서 치밀하게 재구성하고, 그것을 설득력있게 독자들에게 전달할 때 역작이 탄생한다. 역작의 기준이 이와 같다면 '발발과 기원'은 틀림없는 역작이라고 감히 추천한다. 저자는 '남북관계' '동아시아' '세계정세'의 세 가지 층위에서 한국전쟁의 발발과정을 추적하며, '대쌍관계동학'이라는 이론적 틀을 통해 자신이 구성한 역사를 독자앞에 펼쳐놓았다. 

 책에서 가장 논쟁적인 지점은 한국전쟁이 북한에 의한 '남침'이냐, 남한이 북한의 남침을 유도한 '남침유도'이냐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남침'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한다. 김일성-박헌영의 치밀한 계획과 스탈린, 모택동의 동의 아래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이라는 견해. 책 말미에는 '남침유도'라고 주장한 커밍스에 대한 반박도 실려있다.

'한국전쟁이 어떻게 일어났니?'라고 묻는다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북한'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것이다. 누구나 이처럼 자신있게 말하는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객관적으로 검증해보려는 이성적 노력은 소원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념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 실증하는 자료없이 반세기 동안 이데올로기의 공허한 메아리에만 의존해오던 많은 사람들에게 엄한 계고를 동시에 하고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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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 구운몽 최인훈 전집 1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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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그런 소설이었다. 고등학교 때 처음 <광장>을 읽었을 때는 그랬다. 초겨울의 냉기가 한반도 주변을 돌고 도는 11월의 느닷없는 오후에 나는 <광장>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 읽기를 통해 르누아르식 회화의 따스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고, 가파른 비탈을 내달리는 숨가쁨도 얻을 수 있으리라는 알 수 없는 기대감에 젖어서... 늦은 밤 다시 <광장>을 펴들었다. 먼동이 대륙의 어디쯤에는 터올 무렵까지도 나는 계속해서 책을 뒤적였다.
 

민족, 이데올로기, 60년대와 해방 직후 한반도의 현실 그것의 전체성과 인과성을 리얼하게 그려냈기 때문에 <광장>이 가치있다고 혹자는 평한다. 맞는 말이다. 뻔한 사랑이야기로만 점철되었더라면 <광장>이 지금처럼 신화화되었을 가능성은 훨씬 줄어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 전체성 안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인간의 "사랑"이다.  "사랑" 이든 "거대서사"든 어느쪽에 밀착해서 읽는가 하는 것은 독자의 자유다.
 

아래는 낙동강 전선의 작은 굴에서 죽어가는 은혜를 지켜보고 있는 명준의 심정을 묘사한 부분이다.
 

눈을 뜨고 은혜를 들여다본다. 그녀도 눈을 뜨고 남자의 눈길을 맞는다. 서로, 부모미생전 먼 옛날에 잃어버렸던 자기의 반쪽이라는 걸 분명히 몸으로 안다. 자기몸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사랑스러울 리 없다. (중략) 이 여자를 죽도록 사랑하는 수컷이면 그만이다. 이 햇빛. 저 여름 풀. 뜨거운 땅. 네 개의 다리와 네 개의 팔이 굳세게 꼬여진, 원시의 작은 광장에, 여름 한낮의 햇빛이 숨가쁘게 헐떡이고 있었다. 바람은 없다.(p.163)
 
최인훈은 <광장>을 6번에 걸쳐서 개작했다고 한다. 김현은 이를 꼼꼼하게 분석하면서, 작가가 이명준의 연대기적 오류를 바로잡은 것과 문장 다듬기에 각고의 노력을 보였다는 점을 지적한다. 나 역시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가 문장을 세심하게 다듬은 흔적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었다. 내놓은 자식같은 글이 있고, 돌아서기만 하면 눈에 밟히는 글이 있다. <광장>은 최인훈에게 후자에 가까웠었던 것 같다. 매 구절마다 한땀 한땀 바느질 한 흔적이 보인다. 이 작품이 현재의 독자들에게도 여전히 저릿한 감동을 주는 이유에는 작가의 작품에 대한 이런 애정도 한몫 했으리라 짐작해본다.

문장을 다듬는 수고로움만으로 이 작품을 평가하는 것은 당연히 어불성설이다. 구차하게 동의를 구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야밤에 이책을 두 번 읽게 만든 작가가 고맙고도 원망스럽다. 걸작을 읽은 후, 짧게나마 생각을 남기지 않을 수 없다는 조바심에 발자국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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