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 일기 4

                                         황동규



    러시 아워에 비좁은 지하철을 타고
    오랜 만에 발도 한번 밟히고
    돌아와 저녁을 짓는다
    창 밖에 어둠이 밀려와 쌓인다

    책을 읽다 보면
    마음이 너무 비좁다는 생각이 든다
    어지럽게 쌓여있는 기억과 기억, 추억,
    저 시효가 영 지나가지 않는 부끄러운 일들,
    조금씩 밀어 자리를 만들고
    또 몇 개의 이름과 연대와 사건을 쌓아놓는다

    잠깐 존다 벌써 늦은 밤이다
    일기예보를 보려고 텔레비를 튼다
    AIDS 걸린 흑인 고아 소녀애를 양녀로 맞아
    입맞추며 좋아하는 삼십대 백인 여자가 나타난다
    갑자기 한쪽으로 확 쏠리는 정신,
    세상은 비좁아도 살아볼 만하다는 생각이……
     


     
  • 이십대는 불안한 계절이다. ‘불안한 계절은 사회탓이오’라고 남의 탓을 하다가, 곧 ‘내 탓’임을 깨닫는다. ‘러시 아워에 비좁은 지하철을 타고 가끔 발 밟힐’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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