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 구운몽 최인훈 전집 1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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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그런 소설이었다. 고등학교 때 처음 <광장>을 읽었을 때는 그랬다. 초겨울의 냉기가 한반도 주변을 돌고 도는 11월의 느닷없는 오후에 나는 <광장>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 읽기를 통해 르누아르식 회화의 따스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고, 가파른 비탈을 내달리는 숨가쁨도 얻을 수 있으리라는 알 수 없는 기대감에 젖어서... 늦은 밤 다시 <광장>을 펴들었다. 먼동이 대륙의 어디쯤에는 터올 무렵까지도 나는 계속해서 책을 뒤적였다.
 

민족, 이데올로기, 60년대와 해방 직후 한반도의 현실 그것의 전체성과 인과성을 리얼하게 그려냈기 때문에 <광장>이 가치있다고 혹자는 평한다. 맞는 말이다. 뻔한 사랑이야기로만 점철되었더라면 <광장>이 지금처럼 신화화되었을 가능성은 훨씬 줄어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 전체성 안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인간의 "사랑"이다.  "사랑" 이든 "거대서사"든 어느쪽에 밀착해서 읽는가 하는 것은 독자의 자유다.
 

아래는 낙동강 전선의 작은 굴에서 죽어가는 은혜를 지켜보고 있는 명준의 심정을 묘사한 부분이다.
 

눈을 뜨고 은혜를 들여다본다. 그녀도 눈을 뜨고 남자의 눈길을 맞는다. 서로, 부모미생전 먼 옛날에 잃어버렸던 자기의 반쪽이라는 걸 분명히 몸으로 안다. 자기몸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사랑스러울 리 없다. (중략) 이 여자를 죽도록 사랑하는 수컷이면 그만이다. 이 햇빛. 저 여름 풀. 뜨거운 땅. 네 개의 다리와 네 개의 팔이 굳세게 꼬여진, 원시의 작은 광장에, 여름 한낮의 햇빛이 숨가쁘게 헐떡이고 있었다. 바람은 없다.(p.163)
 
최인훈은 <광장>을 6번에 걸쳐서 개작했다고 한다. 김현은 이를 꼼꼼하게 분석하면서, 작가가 이명준의 연대기적 오류를 바로잡은 것과 문장 다듬기에 각고의 노력을 보였다는 점을 지적한다. 나 역시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가 문장을 세심하게 다듬은 흔적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었다. 내놓은 자식같은 글이 있고, 돌아서기만 하면 눈에 밟히는 글이 있다. <광장>은 최인훈에게 후자에 가까웠었던 것 같다. 매 구절마다 한땀 한땀 바느질 한 흔적이 보인다. 이 작품이 현재의 독자들에게도 여전히 저릿한 감동을 주는 이유에는 작가의 작품에 대한 이런 애정도 한몫 했으리라 짐작해본다.

문장을 다듬는 수고로움만으로 이 작품을 평가하는 것은 당연히 어불성설이다. 구차하게 동의를 구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야밤에 이책을 두 번 읽게 만든 작가가 고맙고도 원망스럽다. 걸작을 읽은 후, 짧게나마 생각을 남기지 않을 수 없다는 조바심에 발자국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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