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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된 언어 - 국어의 변두리를 담은 몇 개의 풍경화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199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뛰어난 글발을 자랑하는 고종석의 이 책은 언어, 특히 모국어인 한국어에 대한 그의 깊은 관심을 드러낸다. 그는 민족주의와 순수주의의 이름하에 행해지는 국어순화운동 등에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말은 본래 번역어에서 시작되었고, 한자문화권에 속한 것이며 근대 이후 일본어를 통한 서구어들의 영향도 적지 않다는 것. 우리말 뿐 아니라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서로를 '감염'시키며 생명력을 얻어간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순수한 언어란 이미 죽은 언어이며, 그것을 주창한다는 것은 전체주의적이고 파시스트적인 발상이라고 한다.
그의 박학다식함에 우선 압도당하기도 하지만, 그의 주장들은 모국어에 대해서만큼은 애국심, 민족주의가 바로 떠오를만큼 철처하게 배워온 우리들로서는 한번쯤 깊이 생각해볼만한 주제이다. 그가 스승이라고 서슴지않고 말하는 복거일의 '영어공용화' 주장은 여러 논의를 불러일으키지만, 일리는 있는 말이다. 어차피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이며, 가능하면 보다 많은 사람들과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나눌 수 있으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이 모든 논의 속에서도 나는 고종석의 국어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끼게 된다. 우리의 생각을 이보다 더 적나라하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한국어뿐이므로...우리 다음 세대는 어떨지 모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