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절판


누구였더라? 스페인, 아니 아르헨티나 작가였나. 이젠 작가 이름 따윈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여간 누군가의 소설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노작가가 강변을 산책하다가 한 젊은이를 만나 벤치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나중에야 깨닫는다. 강변에서 만난 그 젊은이는 바로 자신이었음을. 만약 젊었을 때의 나를 그렇게 만나게 된다면 알아볼 수 있을까?-21쪽

세상의 모든 전문가는 내가 모르는 분야에 대해 말할 때까지만 전문가로 보인다.-42쪽

모르긴 해도 6.25나 월남전에서 나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인 놈들도 있을 것이다. 그놈들이 다 밤잠을 설치고 있을까? 아닐 거다. 죄책감은 본질적으로 약한 감정이다. 공포나 분노, 질투 같은 게 강한 감정이다. 공포와 분노 속에서는 잠이 안 온다. 죄책감 때문에 잠 못 이루는 인물이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나는 웃는다. 인생도 모르는 작자들이 어디서 약을 팔고 있나.-44쪽

"봐요, 다들 재밌어하시잖아요."
은희는 내게 말했다. 은희는 모른다. 내가 추구하던 즐거움에 타인의 자리는 없다는 것을. 나는 타인과 어울려 함께하는 일에서 기쁘을 얻어본 적이 없다. 나는 언제나 내 안으로 깊이깊이 파고들어갔고, 그 안에서 오래 지속되는 쾌락을 찾았다. 뱀을 애완용으로 키우는 이들이 햄스터를 사들이듯이, 내 안의 괴물도 늘 먹이를 필요로 했다. 타인은 그럴 때만 내게 의미가 있었다. 노인들이 손뼉을 치며 좋아하는 것을 보자마자 나는 즉각적으로 그들을 혐오하게 되었다. 웃는다는 것은 약하다는 것이다. 타인에게 자기를 무방비로 내준다는 뜻이다. 자신을 먹이로 내주겠다는 신호다. 그들은 힘이 없고 저속하고 유치해 보였다.-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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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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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특별판)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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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의 생
에밀 아자르 / 문학사상사 / 199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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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둥지 잃은 파랑새
에밀 아자르 지음 / 한보출판사 / 199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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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를 처음 접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상실의 시대』를 읽고 충격을 받았다. 소설을 이렇게도 쓰는구나 했다. 이후 『해변의 카프카』도 기대하면서 읽었는데, 어쩐지 독서 이후 드라이아이스처럼 머릿속에서 날아가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는 그런 걸 '하루키월드'라고도 하더라. 그래도 신작소설이 나올 때마다 늘 손이 간다. (눈보다 손이 가는 느낌을 뭐라고 할 수  있을까?)『1Q84』도 흥미롭게 읽었고,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가 순례를 떠난 해』도 그러했다. 『상실의 시대』를 읽으면서 서로 다른 여자들의 상을 상상해 보았고, 『해변의 카프카』를 읽으며 정말로 하늘에서 물고기가 떨어질듯 했고, 놀이터에 뜬 달을 보며 『1Q84』를 생각했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가 순례를 떠난 해』를 읽으면서는 역을 좋아해서 틈만 나면 지하철로 달려가는 꼬마아이 한 명을 생각했다.(꼬마는 진짜 지인이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가 순례를 떠난 해』는 이전의 작품들과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심리학적이고 상징적인 요소들은 여전히 많지만, 곳곳에 드러난 이전보다 명징해진  표현들에서 더욱 그러하다.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또는 없는) 것들, 사랑(또는 상처)을 주고 받을 때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들. 글이 순수하게 느껴진다.


"기억을 어딘가에 잘 감추었다 해도, 깊은 곳에 잘 가라앉혔다 해도, 거기서 비롯된 역사를 지울 수는 없어."(51) 


대학생 때 죽음만 생각하던 나날들을 쓰쿠루는 생각해 보았다. 벌써 16년 전 일이다. 그즈음 그는 생각했다. 그저 가만히 자신의 내면 깊은 곳만 응시하면 이윽고 심장이 자연스럽게 멈춰 버릴 것이라고. 정신을 날카롭게 집중하고 한곳에 초점을 맞추면 렌즈가 햇빛을 모아 종이에 불을 피우듯 심장에 치명상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의 뜻에 반해 몇 달이 지나도 심장은 멈추지 않았다. 심장은 그렇게 간단히 멈추지 않는 것이다.(427)



아카마쓰 게이(미스터 레드), 오우미 요시오(미스터 블루), 시라네 유즈키(미스 화이트), 구로노 에리(미스 블랙), 하이다와 쓰쿠루, 그리고 사라. 이들의 각각의 면모도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 색채의 풍성함 때문에, 허망하게 사라지지 않을 우정을 알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때 뭔가를 강하게 믿었고, 뭔가를 강하게 믿을 수 있는 자기 자신을 가졌어. 그런 마음이 그냥 어딘가로 허망하게 사라져 버리지는 않아."(436~437)



덧. 알라딘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검색해봤다. 생각해보니 처음이었다. 도서목록이 무지 많아서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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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잡이 (반양장)
이청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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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과 머저리 (반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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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과 머저리 (양장)- 중단편집
이청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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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 글자 열린책들 세계문학 202
너대니얼 호손 지음, 곽영미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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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이와 즐거움과 어린아이의 환희 사이에는 외견상 많은 공통점이 있다. 심오한 유머 감각도 마찬가지지만, 지성 또한 즐거움과 별 상관이 없다. 늙은이에게나 어린아이에게나 즐거움은 겉에서 반짝거리고, 푸른 가지든 썩어 가는 잿빛 줄기든 밝고 유쾌하게 보이게 하는 섬광과도 같다. 그러나 한쪽이 진짜 빛이라면, 다른 쪽은 썩어 가는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인광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23쪽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그 환영들이야말로 가엾은 목사가 지금 상대하는 가장 진실되고 실체 있는 것이기도 했다. 목사의 삶과 마찬가지로, 너무나 거짓되어 우리 주위의 현실이 어떠하든 하늘이 영혼의 기쁨과 양식이 되도록 해놓으신 현실로부터 그 정수를 빼앗겨 버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면 말할 수 없이 비참할 것이다. 진실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온 우주가 거짓이어서, 만져도 모르고 손으로 쥐면 오그라들어 없어지고 마는 법이다. 그리고 목사 자신이 거짓의 빛 속에 있는 한 그는 한낱 그림자, 혹은 없는 존재가 되고 말 것이다. 딤스데일 목사를 이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오직 그의 영혼에 깃든 고뇌와 그의 얼굴에 나타난 거짓 없는 표정뿐이었다. 만약 그가 미소를 짓고 즐거운 표정을 지을 줄 아는 힘을 찾아냈더라면 딤스데일이란 사람은 진작에 존재하지 않았으리라!-183쪽

가장 대담한 사색을 하는 이들이 종종 가장 조용히 사회의 형식적인 규범을 따른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그들은 사상에만 안주한 채 그 사상을 피와 살을 갖춘 행동으로 전환하지는 않는다. 헤스터도 그런 경우에 해당하는 듯했다. 그러나 만약 어린 펄이 영적 세계로부터 그녀에게 오지 않았다면 상황은 전혀 달라졌을는지 모른다. 그랬다면 헤스터는 앤 허친슨과 손을 잡고 어떤 종파의 시조로서 역사에 이름을 남겼을지도 모른다. 예언자로 자신의 위상을 세웠을지도 모른다. 청교도의 토대를 뒤엎으려 했다는 이유로 그 시대의 준엄한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당연히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미의 사상적 열의는 아이의 교육에서 어떤 돌파구를 발견했다. 하늘은 이 아이의 기질로부터 여성의 싹과 꽃을 피우는 일을 헤스터의 손에 맡기고서 무수한 역경 속에서도 소중히 키우게 했다.-205쪽

"내겐 용서할 힘이 없소. 당신이 말한 그런 힘 따윈 내게 없소. 오랫동안 잊고 있던 지난날의 믿음이 되살아나 우리의 모든 행동과 괴로움을 설명해 주는구려. 첫발을 잘못 디뎌 당신은 악의 씨를 뿌렸소. 그러나 그 악의 씨가 이후로는 어두운 필연이 되어 버렸지. 내게 잘못을 저지른 당신을 세상 사람들은 죄받을 사람이라 생각할지 모르나 그것은 착각이오. 악마의 손에서 그 임무를 낚아채긴 했지만 나 또한 악마 같은 사람은 아니오. 이건 우리의 운명이오. 검은 꽃은 피는 대로 그냥 두시오! 이제 당신은 가던 길을 계속 가고, 그 자에 대해서는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하시오."-216~217쪽

사랑과 증오가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인가 하는 문제는 관찰하고 연구해 볼 만한 흥미로운 주제이다. 사랑과 증오가 가장 높은 단계에 이르면 극도의 친밀감과 마음의 이해를 요구하게 된다. 사랑과 증오는 한 인간으로 하여금 또 다른 인간에게 애정과 영적인 삶의 양식을 의존하게 만든다. 사랑과 증오는 그 상대가 없어지고 나면 죽도록 사랑하는 자나 죽도록 증오하는 자 모두를 쓸쓸하고 황폐하게 만든다. 따라서 철학적으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랑과 증오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 같다. 다만 하나는 천국의 광채 속에서 보이고, 다른 하나는 어스레하고 섬뜩한 불빛 속에서 보인다는 점이 다를 것이다. 비록 서로가 희생자이긴 했지만 이승에서 쌓인 증오와 반감이 영적 세계에서는 황금빛 사랑으로 변해 있는 것을 늙은 의사와 젊은 목사는 뜻밖에 알게 되었을지 모른다.-3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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