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를 처음 접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상실의 시대』를 읽고 충격을 받았다. 소설을 이렇게도 쓰는구나 했다. 이후 『해변의 카프카』도 기대하면서 읽었는데, 어쩐지 독서 이후 드라이아이스처럼 머릿속에서 날아가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는 그런 걸 '하루키월드'라고도 하더라. 그래도 신작소설이 나올 때마다 늘 손이 간다. (눈보다 손이 가는 느낌을 뭐라고 할 수  있을까?)『1Q84』도 흥미롭게 읽었고,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가 순례를 떠난 해』도 그러했다. 『상실의 시대』를 읽으면서 서로 다른 여자들의 상을 상상해 보았고, 『해변의 카프카』를 읽으며 정말로 하늘에서 물고기가 떨어질듯 했고, 놀이터에 뜬 달을 보며 『1Q84』를 생각했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가 순례를 떠난 해』를 읽으면서는 역을 좋아해서 틈만 나면 지하철로 달려가는 꼬마아이 한 명을 생각했다.(꼬마는 진짜 지인이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가 순례를 떠난 해』는 이전의 작품들과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심리학적이고 상징적인 요소들은 여전히 많지만, 곳곳에 드러난 이전보다 명징해진  표현들에서 더욱 그러하다.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또는 없는) 것들, 사랑(또는 상처)을 주고 받을 때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들. 글이 순수하게 느껴진다.


"기억을 어딘가에 잘 감추었다 해도, 깊은 곳에 잘 가라앉혔다 해도, 거기서 비롯된 역사를 지울 수는 없어."(51) 


대학생 때 죽음만 생각하던 나날들을 쓰쿠루는 생각해 보았다. 벌써 16년 전 일이다. 그즈음 그는 생각했다. 그저 가만히 자신의 내면 깊은 곳만 응시하면 이윽고 심장이 자연스럽게 멈춰 버릴 것이라고. 정신을 날카롭게 집중하고 한곳에 초점을 맞추면 렌즈가 햇빛을 모아 종이에 불을 피우듯 심장에 치명상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의 뜻에 반해 몇 달이 지나도 심장은 멈추지 않았다. 심장은 그렇게 간단히 멈추지 않는 것이다.(427)



아카마쓰 게이(미스터 레드), 오우미 요시오(미스터 블루), 시라네 유즈키(미스 화이트), 구로노 에리(미스 블랙), 하이다와 쓰쿠루, 그리고 사라. 이들의 각각의 면모도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 색채의 풍성함 때문에, 허망하게 사라지지 않을 우정을 알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때 뭔가를 강하게 믿었고, 뭔가를 강하게 믿을 수 있는 자기 자신을 가졌어. 그런 마음이 그냥 어딘가로 허망하게 사라져 버리지는 않아."(436~437)



덧. 알라딘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검색해봤다. 생각해보니 처음이었다. 도서목록이 무지 많아서 놀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