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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 88만원세대 새판짜기
우석훈 지음 / 레디앙 / 2009년 9월
평점 :
무서운 시대가 오고 있다. 이것은 조한혜정 교수가 추천사에서 밝힌 말이다. 무서운 사회란 어떤 사회인가. 조한혜정은 이렇게 말한다. "경쟁과 적대의 원리가 판을 치는 시대는 내부를 분열시키고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무시와 모욕으로 점철된 사회를 만들어 낸다." 한계가 없는 철저한 경쟁이 만들어내는 사회의 모습을 우리는 지금 보고 있는 중이다. 이보다 더한 시대가 올 수도 있다는 것일까?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사회가 이렇듯 경쟁과 적대의 원리에 충만한 곳이 될 것이라는 예감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우울했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없을까?
우석훈은 혁명이라는 주문을 불러낸다. 혁명이라는 용어는 9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현실적으로, 학문적으로 쓸모가 없어졌던 말이 아닌가. 그 대신에 개혁이라는 말이 지난 10년 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해왔다. 이명박 시대 2년차인 지금은 개혁이란 말조차도 사라져버렸다. 대신에 '잃어버린 10년'이니 '녹색성장'이니 '4대강 살리기'같은 빈껍데기 말들이 현 시대를 지배하는 언어가 되었다. 이런 시대에 2009년 지금 시점에서 혁명이라는 용어를 불러낸 우석훈의 의도는 무엇일까? 과연 우리 사회가 혁명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란 말이던가. 그리고 그가 주문한 혁명의 내용은 어떤 내용이던가.
우석훈이 원하는 혁명은 폭력혁명이 아니다. 찰리 채프린과 코코 샤넬로 대표되는 문화적이고 부드러운 혁명이다. 혁명의 주력부대는 20대로 본다. 우석훈은 20대 청년이 만명만 모이면 우리 사회에 획기적인 변화가 올 것이라고 장담한다. 우리 역사를 돌이켜보면, 80년대의 전대협 수준의 조직을 건설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말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런 수준의 에너지가 모이면 그것이 가지는 파괴력이 엄청날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우석훈은 유럽의 68혁명과 최근 일본의 반빈곤투쟁에 참여하는 청년들의 투쟁도 많이 참고하고 있다. 우리도 지난해에 100만 명 가까운 사람이 참여하는 대규모 항의시위가 있지 않았던가. 우석훈 말마따나 그 항쟁은 규모와 기간의 면에서 68혁명을 뛰어넘는 정도였는데, 왜 사회는 변하지 않았을까. 이것도 깊은 고뇌가 필요한 질문일 것 같다.
2008년의 촛불항쟁은 10대와 30-40대의 연대투쟁 같은 성격이 강했을까? 이른바 386세대의 부모와 그 자식인 10대들의 연대투쟁과 같은 의미를 지녔다는 진단도 많이 나왔다. 20대의 조직적인 참여는 많지 않았다. 20대는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모습의 집단적인 참여를 보여주지 못했으며, 그로 인해 그들은 사회에서 대접받지 못한다는 것이 우석훈의 진단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모여서 외치지 않으면 자기집단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집단의 요구를 관철시킬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20대들이 모여서 자기들의 요구를 명확하게 표현하고 정치적, 사회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면 시대의 희생양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얼마전에 우리는 경제위기를 넘어서는 대책으로 대졸 신입사원 연봉을 20-30% 삭감하는 조치를 취했다. 20대를 희생양 삼은 대표적인 조치의 하나인데, 여기에 대해서 20대는 조직적으로 반항하지 못했다. 이것이 20대의 집단적인 무력증을 보여준 하나의 사례로 거론되고 있기도 하다.
20대의 당사자운동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먼저 '20대 권리선언'을 할 필요를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주장하고 있는 권리는 노동권, 주거권, 보건권, 교육권이다. 여기에다가 군복무기간단축과 사회복무제도의 강화를 더하여 제안하고 있다. 사실상 이것은 사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론에서 주장하고 있는 핵심적인 사안들이다. 이미 유럽의 주요선진국들에서는 보편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미국만 예외라고 할 수 있다. 386세대들이 정치적 민주주의를 얻기 위해서 오랫동안 싸워왔다면 그 다음 바통을 이어받아서 사회적,경제적 민주주의를 정착하기 위해서 후배세대들이 투쟁해야만 민주주의는 완성에 이를 것이다. 이것을 해낼 수 없다면 우리는 복지국가의 문턱에서 좌절하고, 토건세력과 경찰이 힘쓰는 이류국가의 국민으로 늙어갈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한 전환은 빠를 수록 좋은데, 이것을 두손들고 환영할 세력보다는 온몸으로 막고 나설 세력이 더 많다는 것이 문제다. 이해당사자들이 앞장서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희망은 희망으로만 남을 뿐이다. 늘 그렇듯이 대리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