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 쇼인 시대를 반역하다 - 일본 근현대 정신의 뿌리, 요시다 쇼인과 쇼카손주쿠의 학생들
김세진 지음 / 호밀밭 / 201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선택할 때는 제목과 표지의 매력도가 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제목을 잘 뽑았다. 표지도 그럴듯하다. 표지의 요시다 쇼인의 초상화는 그렇게 강렬하지는 않지만, 조선의 초상화와는 다른 이질적인 느낌을 주면서 뭔가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책은 우리가 잘 익숙하지 않은 일본의 사상가를 다루고 있다. 요시다 쇼인은 일본에서는 관련 도서만 해도 1,200권 이상이 나와 있을 정도로 대단하게 취급하는 인물인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이 사람을 전혀 모를까? 이토 히로부미는 잘 안다. 그가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을 멸망에 이르게 한 인물인데다가 안중근 의사에게 암살되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이토는 요시다 쇼인이 만든 사립학교인 쇼카 손주쿠의 학생이었다. 또한 일본제국군대를 만든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야마가토 아리토모도 요시다 쇼인의 제자다. 이토와 야마가토는 일본의 총리를 지낸 인물이면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조선을 식민지로 만드는 데 일등공신이다. 조선에게는 침략의 원흉인 셈이다. 


요시다 쇼인은 불과 30세의 나이에 반역죄로 사형당한 인물이다. 당시 에도막부에 대항해서 천황중심의 정치체제를 만들려고 기도했기 때문이다. 그가 죽은 해는 1859년이다. 미국의 페리제독이 이른바 흑선 4척을 가지고 일본에 개항을 요구한 해는 1853년이다. 1854년 일본은 미국과 조약을 맺으면서 개국의 길로 접어 들었다. 그 전에 이미 동아시아에서는 청나라가 1840년에 일어난 아편전쟁에 패해서 영국에게 불평등 조약을 맺었던 전력이 있었다. 서양세력의 침략이라는 해일이 몰려오고 있었던 시점이다. 일본 내부에서는 개항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이 시작되었다. 개항을 결정한 에도막부에 대항해서 일본천황을 옹립하고자 하는 존왕양이 운동이 시작되었다. 


유명무실했던 천황을 일본의 국체(국가의 핵심)로 삼고자 하는 운동이 조슈번과 사쓰마 번의 동맹(삿초 동맹)을 통해서 거세게 일어났다. 이 운동을 앞장서서 일으킨 선구자가 요시다 쇼인이다. 결국 그는 에도막부를 타도하려다가 자신이 타도되고 만다. 그는 사형당했지만 그를 따르는 제자들은 하나의 정치결사체를 이루어 존왕양이라는 목표를 향해서 똘똘 뭉쳐 움직이게 된다. 결국 1868년 에도막부는 타도되고 일본은 천황이 통치하는 메이지유신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이것이 일본 근대화의 기점이 되는 사건이다. 


올해는 메이지 유신 150돌이 되는 해이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메이지 유신을 기념하는 다양한 사업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비해서 우리는 너무 조용하게 넘어가는 것 같다. 일제강점기와 한국현대사에 대해서는 좀 알지만 일본근현대사에 대해서는 너무 무지했다. 한반도의 최근 100여년 역사는 일본사를 모르면 그 시야가 좁을 수 밖에 없다.특히 식민지의 역사는 식민지 본국의 역사를 모르면 절반도 모르는 셈이다. 우리 자신을 알기 위해서도 이웃을 알아야 한다. 이웃은 또 따른 내 자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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