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의 제국
그렉 크리처 지음, 노혜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미국은 어찌하여 현재 성인 인구 64%가 비만인 ‘비만의 제국’이 될 수밖에 없었던가.
저자 그렉 크리처는 정치적 의도와 산업적 고려, 사회적 경향, 이 모든 것이 연계되어 지금의 비만의 제국을 탄생시켰다고 주장한다.

첫번째, 닉슨 대통령 시절 농림부 장관으로 인명된 얼 버츠에 의해 미국 농업계의 생산 증대를 위해 팜유가 전면적으로 도입되면서 다양한 스낵류가 생산되기 시작했다.
두번째, 패스트푸드 업계의 경영난 타개를 위해 빅 메뉴와 세트 메뉴가 도입되었고 이는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었다(감자튀김의 경우 60년대 200칼로리였던 것이 현재는 610칼로리이며 맥도날드밀은 590칼로리에서 1550칼로리로 뛰어올랐다. 세트 메뉴를 패스트푸드 업계에 최초로 도입한 델 타코의 마초밀-이름부터 무시무시하다!!-의 무게는 1.8킬로그램이다).
세번째, 맞벌이 부부의 증대로 외식업이 발달하였고 유아 식욕에 대한 환상이 부채질되었다(아이가 먹고 싶어하면 먹고 싶어하는대로 냅두고, 먹여라). 또한 공교육 예산이 절감되면서 학교에 탄산음료 자판기가 설치되었고 패스트푸드 업계와 협력하여 학내 배달시스템이 도입되었다. 그리고 이른바 황제 다이어트(앳킨스 다이어트) 류의 허무맹랑한 신화가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었고 라지 사이즈 의류의 생산이 증대되면서 자신의 비만 정도가 왜곡되었다(라틴계 최초로 플래티넘 앨범을 발표한 래퍼 빅 펀의 경우 뚱뚱함을 찬양하면서 자신의 몸을 비대화시켰다. 100킬로그램이었던 그의 몸무게는 죽기 전 317킬로그램이 되어 결국 29세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의 가족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래퍼들은 모두 총에 맞아 죽는 줄 알았는데 먹는 것 때문에 죽다니!!”)
네번째, 공공 교육이 붕괴되면서 교육 시스템 내에 체육 교육 시간이 적어졌다.
다섯번째, 계층별로 비만에 대한 환상들이 증대되면서 특히 흑인 여성들의 경우, 자신의 비만 정도를 인지하는 수준이 현저히 낮았고, 흑인 남성들 역시 자신의 배우자에 선호치가 평균 이상의 체형의 여성들로 인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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