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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의 역사 1 - 풍속과 사회
에두아르트 푹스 지음, 이기웅 외 옮김 / 까치 / 2001년 3월
평점 :
인간이 다른 생물과 공통적으로 가지는 본성은 거칠고 변덕스러운 환경에 맞서 그 생존을 오랫동안 지켜내려는 것이다.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여 개체자신을 지속하려는 것과, 짝짓기를 하여 생존력이 강한 후세를 만들어 번창시키려는 것은 생물의 갖가지 행동을 이루는 욕구 전체이다. 이런 저차원적 동물적 본능에 대하여 인간이 다른 생물과 차이점이라고 자랑하는 것은 지능과 문명이다. 고차원적인 문명이 중요한 축으로서 세우는 경제와 문화는, 그 流麗한 어감에도 불구하고 개체유지와 후세번식이라는 앙상한 동물적 본능을 꾸미는 지능의 장식에 불과하다. 장식하는 와중에 언뜻 다가가는 진리는 뜻밖의 부산물이다.
인류 중 생산수단을 가지는 지배적인 무리들은 그들이 가지는 생존에의 우월적 지위를 고정하는 방편으로 도덕률을 이용한다. 권력이나 법률 기타의 장치들이 피지배층들의 무릎을 꿇리는 대신 투쟁의지를 자극하는 측면이 있다면, 도덕률은 생산수단을 갖지 못한 무리의 마음 깊숙이 녹아들어 투쟁의욕을 잃게 한다. 무산계급이 도덕과 종교의 장엄한 거죽에 취해있을 때 생존의지, 성적충동, 생산관계 등이 얽혀진 도덕의 심층이 작용한다.
영구불변한 도덕에의 순진한 바램도 헛되이, 생산관계가 급변하는 시대에는 인간이 만든 도덕의 거죽은 자연이 만든 성적충동을 견디지 못한다. 생산관계의 변화가 역사를 움직이는 源泉임이 알려질 때, 풍속이 역사의 眞皮임을 간파한 지성인이 나올 법하다.
1870년에 독일에서 난 푹스는 성실한 수집가와 저작자의 태도로서 르네상스, 절대왕정, 초기산업사회로 이어지는 유럽근세사를 통찰하고 있다. 역사가 벌어지던 때 이야기와 경박한 호기심도 끌만한 삽화는 그가 역사를 보던 원시적인 창이었고 또 후세가 볼 수 있는 유일한 창이다. 경박한 호기심은 사회가 강요하는 도덕과 아울러 사람들의 행동을 만들어내는 재료라는 점에서, 근엄한 표정을 짓는 제도권 지식인들의 백안시에도 불구하고, 風俗畵는 훌륭한 선택이었다. 독자들은 박물관에 온 듯한 분위기에서 사회경제사적 통찰을 얻을 수 있다.
토지가 압도적인 생산수단이던 봉건시대에서 상업자본이 스며들기 시작한 르네상스, 봉건귀족과 상인이 겨루고 있던 절대왕정시대, 산업혁명의 힘까지 가진 상인이 독보적인 지배자로 나서는 산업사회에 이르기까지, 도덕은 그들 경제적 지배계급의 시종이었다. 그들의 이익과 즐거움을 위한 도덕이 각 시대마다 발명되었고 무산계급에게 선전되었다. 재화를 독점한 지배계급은 성적 쾌락도 가급적 화려하게 즐기려고 했었다. 재화는 늘 부족한 법이므로 피지배계급으로부터 징발되었지만 성적 쾌락은 지배자들의 이해에 엇갈리지 않는 범위에서 좀 남겨두었던 모양이다. 모럴은 그 상태를 고정할 수 있도록 布敎되었다.
이러한 관점을 과거로 뻗치면 일부일처제는 사유재산을 후손에게 높은 확률로 넘기도록 여자에게 강요한 것일 뿐 경제적 강자인 남자가 그 처신을 다듬고자 만든 금제는 아님을 알 수 있다. 생산관계에 결부된 각 시대들은 칼로 자르듯 나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시기에 어떤 시대의 성향이 주도적이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지금에 있어서도 옛 시대들의 자취가 남아 있어서, 그 때의 도덕률의 흔적이 남아있다. 섹스는 길고 도덕은 짧으므로, 어떤 시대의 도덕에 묶여서 현재의 풍속을 애달파하는 것은 허망한 일이다. 현재의 풍속은 통찰하면 그만이고 자기가 설정한 도덕은 자신을 향하면 되는 것이다.
원전은 푹스는 혼신의 힘을 다해 지었고, 그 진실에의 솔직함으로 인해 히틀러에게 焚書되었다. 일본인 安田德太郞은 열정을 다하여 번역하였고, 그 번역물은 군국주의 일본치하에서 압수되었다. 1972년에 완료한 번역을 우리말로 거듭번역하였다고 한다. 重譯 역시, 발터 벤야민의 푹스評의 번역에 빗대어 볼 때, 충분히 성실하다. [2001-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