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고양이 쿠로 1
스기사쿠 지음 / 시공사(만화)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세상은 넓고 또한 발전하기 때문에 '여태껏 본 책 중 최고다'라는 표현을 썼다가 몇달 안 지나 그걸 능가하는 책을 발견하고는 민망해하는 사태가 몇번 있었던지라 그런 표현을 쓰는 것은 조심하게 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현재까지의 지식을 토대로 쓰는 것이 '현재의 글'이라면, 나는 현재까지 본 고양이만화 중에 최고라는 표현을 감히 이 책에 붙여주고 싶다.

물론 '어떤' 고양이 만화를 원하느냐에 따라 감상은 달라질 것이다. '이타고올은 고양이의 숲'이나 '왓츠 마이클' 같은 타입의 얘기를 좋아하는 사람과 나와는 좀 거리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을 최고라고 표현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고양이책 스타일에 거의 완벽하게 들어맞으면서도 귀엽고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스타일이냐-그건 '거의 완전한 고양이 시점의 이야기'이다. 지나치게 의인화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인간 관찰적인 시점도 아니고, 고양이의 눈으로 고양이의 내면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도 의인화가 배제된, 절제되어 조용하되 오히려 더욱 깊은 파문을 일으키는 이야기. 바로 이 '쿠로'라는 고양이의 시점에서 그려진 짤막한 2페이지 연작만화 <묘한 고양이 쿠로>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반(半) 들고양이 쿠로가 태어나서 쭈욱 겪는 고양이 일상의 에피소드 엮음이다. '묘(猫)한 고양이 쿠로'라고 우리말 제목을 붙였는데, 정말 그렇다. 여기 나오는 쿠로는 의인화가 절제된 '진짜 고양이'의 감성에 가깝다. (아주 의인화가 없을 수야 물론 없지만, 같은 반 들고양이들을 다룬 '나비의 일상'과 비교하면 거의 없는 수준이다) 아무런 선입견 없이 쿠로는 담담하게 자신의 눈에 비친 세상을 이야기한다. 앙숙 오렌지, 고양이를 '자기식'으로 사랑하는 여우여인(어떤 식인지는 만화를 보면 안다;;), 어린 쿠로에게 동경의 대상인 보스 고양이, 그리고 갓태어나 버려져 얼어죽어가는 꼬마, 적인지 아군인지 판단이 어려운 뚱보소년 메라부, 그런 수많은 사람들과 고양이의 이야기들을 참 간결하고 깔끔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절대로 인간적인 감정 과잉을 넣지 않은 건조한 대사 스타일이지만 그게 오히려 더 묘(猫)한 파문을 불러일으킨다. 쿠로는 어디까지나 자기 눈에 비친 '사실'만을 서술하고 있을 따름인데, 그런 쿠로의 어투는 '사실'뒤에 숨어있는 '진실'을 인지할 수 있는 우리들 인간 독자에게 '사실'과 '진실'의 갭 사이에서 느껴지는 아이러니의 감정을 안긴다. 비극은 비극인대로, 좋은 일은 좋은일인대로. 그러고 보면 이런 화법은 '아이의 눈으로 어른의 세계를 볼 때'와 비슷하다. 하지만 아이는 아이, 고양이는 어디까지나 고양이인 법. 고양이 쿠로의 세상은 분명 고양이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는 세상이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에 어울리는 붓 스타일의 그림체도 참 좋았다. 그림이 너무나 귀여운 것이다. 이 작가는 정말로 고양이의 핵심을 잘 알고 있다!! 고양이의 어떤 매력이 인간들을 홀리는지 너무 잘 알고는 간결한 만화체로 그 부분을 과장하고 필요없는 부분은 과감히 생략하고 있는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녀 배달부'에 나오는 고양이 지지를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까? 그런데 그 지지보다 더 귀엽다!) 그렇다고 고양이를 왜곡한 것도 아니고, 정말 귀여운 부분만 잘도 잡아 그렸다는 느낌에 마냥 깨물어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책장을 넘겼다. 어쩜 이렇게 잘 그렸을까. * *

한마디로, 나는 이 책이 너무너무너무 좋았다. 읽는 내내 행복했다. 고양이 애호가는 말할것도 없고, 그렇지 않더라도 잔잔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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