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하다 앤솔러지 1
김유담 외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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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걷기라는 행위는 일반적으로 이동의 의미를 내포한다. 어느 방향으로 향하든, 목적지가 있든 없든. 그만큼 걷는 이유 또한 다양하다. 걷는 존재마다 걷는 이유가 전부 다를지도 모른다.

「없는 셈 치고」(김유담)에서 걷는 주체는 선화의 고모다. 고모는 선화와 친딸 민아를 함께 키우며 둘을 차별하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선화는 고모가 민아를 더 사랑한다는 사실을 쉽게 알아챈다. 선화는 눈치 보느라 일탈 없이 자란 반면, 민아는 부모와의 갈등이 쌓여 그들을 떠난다.

민아의 가출(내지는 출가)로 아픈 고모의 곁에는 선화가 남게 된다. 하지만 고모는 민아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황톳길을 걷는다. 고모의 황톳길 맨발 걷기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민아를 향해 가다가 목적지를 잃고 걷는 행위만 남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민아가 다시 돌아올 거라는 믿음으로, 자신의 걷기가 목적지를 향하길 바라는 간절함으로 고모는 계속 황톳길을 걷는다. 그리고 다시 출발 지점에 도착해 흙먼지를 털라는 표지판을 보며 발을 털 것이다. 신발을 털고 현관에 들어오라던 고모부가 살아 있던 시절, 즉 민아가 있던 시간이 되돌아오길 바라며.

「후보(後步)」(성해나) 역시 과거를 이야기한다. 주인공 근성은 퇴행성 관절염으로 인해 의사가 권한 대로 뒤로 걷는다. 근성이 뒤로 걸을 때마다 작중 시간 배경도 뒤로 후퇴한다. 걷기 행위와 과거 클럽 상수시에서의 추억이 병렬되며 “다들 앞서 걷는데 홀로 퇴보하고 있다는 생각”(p.51)의 센티멘털리즘이 진해진다. 근성의 ‘후보’는 퇴보의 불안감을 안고 과거를 되짚는 역순행적 행위가 된다.

반대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살기 위해 걷는 인물도 있다. 「유월이니까」(이주혜)는 ‘나’와 여자친구 ‘너’가 등장한다. ‘너’는 왕릉을 찾아다니고, ‘나’는 그 이유를 알지만 독자에게 직접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너’를 버리고 이사 간 동네의 공원에서 만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한다.

‘나’는 필수 가전인 백색 가전 파는 일을 하지만, 담배 냄새라는 이질성을 풍긴다. 정상성이라는 일종의 사회적 규칙에 맞는 삶을 살고 싶었으나 끝내 실패한 사람들이 풍기는 냄새를. ‘너’ 또한 백색 가전과 같은 삶을 살지 못했기 때문에 ‘죽음의 곁에서 걸음으로써 살아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살아낸 그들은 이제 유월을 맞이하고, 담배 냄새 대신 치자꽃 향기를 함께 맡게 될 것이다.

뒤이어 나오는 작품 마찬가지로 죽음을 다루지만, 동물이 나와서인지 앞선 작품보다 조금 더 명랑한 느낌이 든다. 「유령 개 산책하기」(임선우)는 죽은 개 하지가 유령이 되어 자신을 마지막으로 키워 준 영하를 찾아오면서 시작한다. 하지는 이전 보호자들에게 충분히 사랑받지 못해서, 이후에는 노견이라서 하지 못했던 것들을 유령 개가 되어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다. 가령 산책 같은 일을.

하지는 충분히 행복하지 못했어서, 미련이 남아서 돌아온 게 아닐까. 미련을 털고, 투명해지고, 떠나고 싶어서. 하지를 떠날 수 있게 할 유일한 인물이 바로 영하였을 것이다. 하지는 모든 것을 묻고, 애도하고, 작별 인사를 할 기회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유령 개를 산책시키는 영하 역시 마찬가지로 그제야 행복을 느낀다. 산책을 통해 하지는 자유로워지고, 영하는 작별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산책’을 한자로 쓰면 흩어질 산散에 꾀 책策이라고, 「느리게 흩어지기」(임현)에서 성희는 명길에게 말한다. 그들은 글쓰기 강좌를 수강하며 만난 사이다. 글쓰기는 “꾀를 내어 흩어지는 일. 흩어지기 위해 꾀를 내는 일”(p.178)인 산책과 정반대의 행위이다. 자기 얘기를 긁어모아 타인에게 보이는 것이니까. 글을 써내지 못하는 명길에게 글쓰기 강사는 산책하며 보이는 것과 생각나는 것들을 적으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명길은 타인과 연루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연루되고야 마는 인물로, 애초에 글쓰기와 어울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결국 명길은 다시 흩어지는 선택을 한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이동하거나 혹은 이동하려고 애쓰고, 그 과정에서 다른 존재와 연루되며 자신을 둘러싼 풍경도 변화한다. 우리가 걷는 동안 우리의 좌푯값은 계속해서 옮겨지고, 서로 만났다가 멀어지며 이야기를 흘린다.


고모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고모는 민아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다. 그 당연한 마음을 숨기려 공명정대한 사람처럼 굴다가 결국은 모두에게 심술궂은 사람이 되어 버렸다. - P29

오래된 물건을 어떻게든 고쳐 쓰는 관습 때문이기도 했지만 근성의 귀에는 고음질보다 저음질이 훨씬 편안했다. 선명함 속에선 받아들일 정보가 많고 그만큼 쉽게 피로해지곤 했다. 뭉개지고 흐리고 자글자글한 세계를 근성은 늘 더 선호했다. 지금의 고민을 잊을 수 있는 희미하지만 부드러운 세계를. - P49

남의 불행을 듣는 건 어찌 보면 조금 흥미롭기도 하고, 때론 자신의 불행과 비교해 위안을 얻기도 하는 꽤 묘한 악취미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 불행이라는 것도 너무 속속들이 자세하게 전해 듣다 보면 살짝 피곤해지기도 하고 가끔은 불쾌해지기도 하지요. 그럴 수 있는 이야기를 제가 선생님께, 아, 선생님이라고 불러도 되겠지요? 아무튼 선생님께 구구절절 들려 드리게 되어 우선 죄송하단 말씀부터 드립니다. - P97

유령 개는 목줄 없이도 이전처럼 내 옆에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걷다가 마음이 가는 곳에서 멈춰 섰다. 우체통과 가로등 밑, 풀숲과 느티나무 아래……. 전에는 그곳에 서서 냄새를 맡았다면, 지금은 냄새 대신 기억을 더듬는 듯했다. 멈춰 서 있는 시간일 길어질수록 하지의 몸은 약간 더 투명해지거나 혹은 약간 더 선명해졌다. 둘은 무슨 차이일까? 곰곰 생각하다 보니 알 것도 같았다. 내가 나인 것을 잊게 만드는 기억이 있는 한편, 내가 나라는 것을 더욱 선명하게 해주는 기억이 있지……. - P123

실은 걱정하고 있었거든요. 하지가 돌아온 이유가 지난번 생에 미련이 많아서 그런 것은 아닐까 해서요. 생전에 제가 하지를 사랑해 주지 못했어요. 그는 나에게 괜한 걱정이라고 말해 주었다. 개들을 너무 무시하지 말아요. 자신을 사랑해 주지도 않는 사람에게 함부로 돌아올 만큼 미련하지는 않으니까요. 그렇지만, 하고 내가 말을 이어 가려 하자, 그는 나에게 포크로 찍은 사과를 건네주었다. 무결한 사랑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요. - P142

명길은 누군가 자신의 영역에 함부로 침범하는 것이 불편했다. 마찬가지로 명길 자신이 누군가의 일에 끼어들거나 혹시라도 개입하게 되는 상황도 피하고 싶었다. 양쪽 모두 명길 스스로를 위한 일이었다.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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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하는 남성성 - 폭력과 가해, 격분과 괴롭힘, 임계점을 넘은 해로운 남성성들의 등장
한국성폭력상담소 기획, 권김현영 외 지음 / 동녘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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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혐오를 먹고 자라난 폭력은 방치(또는 묵인)될수록 증폭한다. 불합리한 사회 구조로 인한 불만은 도리어 약자에게 튀기 쉽다.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게 권력에 책임을 묻는 것보다 훨씬 편리하니까. 그러므로 폭력의 양태는 그 사회가 어떤 집단을 얼마나 취약한 소수자로 삼는지 고스란히 드러낸다.


다들 행복하게 사는데칼 들고 나갈거다”. 신림역 사건 가해자의 발언이라고 한다. 1장의 필자는 여성혐오의 근간에 남성으로서의 열패감이 있다고 지적한다. 여성혐오라는 사회적 문제가 곪을 대로 곪아 범죄로 나타난 것이다. , 문제의 시작은 범죄 행위가 아니라 남성중심적 젠데 질서에서 발현된 여성혐오에 있다.


이처럼 『폭주하는 남성성』은 범죄를 통해 드러난 여성혐오와 그 기저에 있는 폭주하는 남성성에 대한 문제 제기로 포문을 연다. 이어지는 2장에서는 현실에서 여성의 바로 곁에 있는 남성들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구조로 발생하는지 밝힌다. 이로써 남성성에 의한 폭력은 여성 누구에게나 가해질 수 있는 일상성을 띠게 된다.


3장 역시 일상성을 바탕으로 하지만, 딥페이크에 초점을 맞춘다. 얼마나 많은 (여성들 곁에서 살아가는) 남성이 딥페이크 범죄에 가담했고, 그들이 그렇게 된 이유를 고찰하며 디지털 성범죄로 논의의 범위를 확장한다. 디지털은 일상이 되었고,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여성혐오 범죄는 당연히 디지털로도 이어질 수밖에 없음을 드러낸다.


4장과 5장은 디지털 성범죄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각각 사이버레커와 벗방이 어떤 방식으로 여성의 성을 착취하여 돈을 버는지 폭로한다. 6장과 7장은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를 중점적으로 살핀다. 그곳에서 행해지는 안티페미니즘 언어 사용(혹은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되던 언어를 안티페미니즘 언어로 낙인 찍기)과 실천 방향, 짤을 통한 여성혐오의 확산 및 강화를 이야기한다.


이토록 짧게 요약된 일련의 사건들은 오랜 시간 한국 사회 내에서 여성혐오를 계속해서 다지다가 마침내 단단하고 두껍고 거대한 여성혐오 덩어리를 만들어 낸다. 마지막 8장은 온오프라인 세계에서 공고해진 여성혐오와 폭주하는 남성성이 12.3 계엄 이후 현실에서 어떻게 폭발적으로 발현되었는지 따짐으로써 가장 최근의 담론에 이른다.


8명의 필자가 조금씩 다른 각도에서 다룬 여성혐오와 남성성은 결국 한곳에서 모인다. 사회 전반에 얽힌 여성혐오를 마주하고 파헤치면 그 끝엔 폭주하는 남성성이 있다. 가부장제라는 사회 구조로 인해 남성이 당한 피해를 여성, 장애인, 이주자 등 약자에게로 돌리며 역설적으로 가부장제에 부역하게 되는 결과를 맞이한다.


영원히 나아지지 않는 현실의 굴레에 청년 남성을 가둔 건 가부장제 시스템이지만, 모든 것을 페미니즘으로 책임을 돌린 청년 남성들은 현실을 직시하려 하지 않는다. 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꼬여서 이 지경이 된 것인지 궁금한, ‘성범죄, 극우화된 청년 남성, 젠더 갈등등에 관심 있는 모두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합법적이되 폭력 수단을 동원한 범죄 억제는 폭력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디시인사이드의 ‘살인 예고’ 글에 대한 댓글들이 범죄를 감행할 역량이 없는 허세를 조롱했던 점이나 폭력성의 과시가 범행의 맥락이 된 점을 고려하면, 강력한 처벌과 감시는 오히려 그를 무릅쓸 수 있는 남성성을 보여주기에 매력적인 조건으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41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데이트폭력’이라는 표현은 공권력이 개입하여 처벌해야 할 범죄의 심각성을 희석하여 연인 사이에 발생하는 불미스러운 일로 가볍게 비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교제폭력’ 용어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물론 친밀한 관계 내 폭력 피해를 국가 차원에서 엄중히 인지하고 대처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지금까지 데이트폭력이 경미하게 다루어져온 주된 이유가 그 용어의 낭만성 때문이라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교제폭력이라는 용어는 자칫 교제 중, 또는 교제 이후 발생한 폭력 피해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협소하게 여겨질 우려가 있다. 이 경우 교제 관계의 달성 여부와 관계없이 일방적인 관계에서 발생한 폭력 피해의 경험 등이 배제될 가능성이 크다. - P72

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그 기술을 악용한 새로운 유형의 성범죄가 함께 등장한다. 그러나 결국 이 모든 범죄의 원인은 하나로 귀결된다. 바로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인 현실에서 여성을 자원화해 착취하고 결속을 다지는 남성연대의 문제다. 다시 말해, 이건 단지 새로운 기술로 인해 생겨난 요즘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구한 젠더폭력의 역사 그 자체다. - P86

사이버레커는 사회의 통념에 비추어 성폭력인 것과 아닌 것을 선별하고 ‘정의 구현’의 대상을 선정한다. 피해자를 위한다는 허울 좋은 명분인 ‘정의 구현’은 ‘보호할 만한’ 피해자와 ‘비난할 만한’ 피해자를 나누어 전자는 수동적인 존재로만 위치시키고 후자는 응징과 착취의 대상으로 삼는다. 사이버레커의 ‘진정한 피해자’ 선별로 파생된 댓글과 반응은 성폭력 엄벌주의와 함께 성폭력에 대한 통념, 피해자다움에 대한 전형을 재생산한다. - P132

신체 노출 강도가 더 세기 때문에 BJ가 감당해야 할 위험도 커짐에 따라 벗방은 여캠보다 ‘아래에’ 있는 방송으로 위치하게 된다. 일례로 여캠 시청자들은 BJ가 순응적으로 반응하지 않을 때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더 열심히 안 하면 벗방BJ가 된다"라며 경고를 날린다. 여캠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벗방을 하게 된다는 발언은 여캠에 일종의 수직적인 질서가 있고, 그 가장 아래에 벗방이 위치한다는 위계적 인식을 보여준다. - P148

남초 커뮤니티의 안티페미니스트들은 패배를 어떻게 해석했을까? 즉각적으로 터져나온 반응은 ‘오조오억’ 같은 ‘남혐표현’이 진짜 문제임에도 페미니스트들의 간계로 인해 숏컷만이 문제인 양 왜곡된 보도가 나왔다는 한탄이었다. 자신들의 전략이 정말로 효과적인지, 또 커뮤니티에서 통용되는 언어가 그 바깥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해될지를 검토해야 한다는 반성적 성찰은 거의 제기되지 않았다. 확실한 근거 없이 억지로 여론몰이를 시도한 게 오판이었다는 반응도 나왔으나, 많은 이는 좀 더 편리한 음모론적 해석에 기댔다. - P191

안티페미니즘 메시지를 전달할 때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할 때 역시 짤은 매력적인 선택지다. 메시지에 방해가 되는 맥락을 결락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유머의 탈을 쓰고 진지한 비판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짤의 정치적 이점을 알고 있었던 이준석은 이를 윤석열 유세에 활용했다. - P230

청년 남성들에게 페미니스트를 짓밟고 남자가 약자임을 부르짖는 것은 일종의 거대한 이데올로기 투쟁인 셈이다. 하지만 이런 명분만으로는 오프라인에서 실제 자신의 몸으로 집회에 참가하진 않는다. 어쨌든 ‘쪽팔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광장에서 ‘팀플’을 하던 여성들처럼 자기를 대신해 오프라인에 나서서 얼굴을 공개하는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하기보다는, 더 자극적인 콘텐츠를 요구하는 라이브 스트리밍 방송 시청자 같은 태도를 가지고 있다.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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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 야외생물학자의 동물 생활 탐구
이원영 지음 / 글항아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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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도전 1000곡〉이 끝나면 뒤이어 방영되는 〈TV 동물농장〉. 일요일 아침마다 반복되는 풍경이었다. 귀여운 동물들이 계속해서 나왔고, 종종 닭과 같은 사육 동물을 공격하는 야생동물이나 다친 동물을 구조하는 이야기, 동물원 소식 등도 소개됐다. 딱 그 정도였다. 내 삶에서 동물이 차지하는 자리는. 직접적인 대면보다는 TV 모니터를 사이에 두고, 동물의 이미지와 이야기를 소비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처럼 다소 ()안전한 관계가 변화하기 시작한 건 펭귄을 좋아하면서부터였다. 내가 직접 펭귄을 볼 수 있는 곳은 크게 남극과 동물원 두 군데로 분류할 수 있다. (정확히는 남극부터 적도까지 각기 다른 펭귄 종이 분포해 있지만, 한국의 미디어 환경에서 주로 보이는 황제, 아델리, 젠투, 턱끈펭귄 등은 남극에 서식하므로 이 글에서는 논의 범위를 남극으로 좁혔다.)


야생과 비야생의 펭귄은 모두 저마다의 환경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원서식지인 남극은 기후 위기를 지구에서 가장 직격으로 맞고 있는 지역이고, 동물원의 펭귄은 야생에 미치지 못하는 환경으로 인해 건강에 이상이 생기거나 번식하지 않는 등 여러 문제에 시달린다. , 펭귄의 귀여운 이미지뿐만 아니라 펭귄 그 자체를 좋아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환경 이슈와 동물권 전반에 눈이 가게 된다. 그러니까 모든 동물종, 그들의 삶에 관해.


야외 생물학자의 동물 생활 탐구라는 부제가 말해 주듯이 『와일드』는 다양한 동물의 독특하면서 동시에 일반적인 생태를 담고 있다. 동물 관찰법부터 동물의 짝짓기, , 서식, 의사소통 등 동물행동학 전반을 다룬다. 가령 양서류의 진화사를 연구하기 위해 양서류 1,400종의 계통 진화를 통째로 연구했다는 과학자, 펭귄의 분변에서 검출된 미생물이 펭귄 몸속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밝혀낸 것, 앨버트로스의 몸에 트랜스미터를 달아 불법 조업을 하는 선박을 찾아낸 이야기 등 흥미로운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게다가 도판도 풍부해서 동물을 많이 볼 수 있다.


동물을 사랑하는 동물행동학자의 시선으로 서술돼서 그런지 마치 남의 덕질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이를 포함해 여러 이유로 이원영 박사님 책은 믿고 읽는다. 현장에서 직접 동물을 연구하며 이룬 성과를 책에서 종종 소개하는 것도 포인트다. 이에 그치지 않고 과학적 사실이 품고 있는 의의와 가치를 드러내는 데까지 나아간다. 그리하여 『와일드』는 인간이 동물을 관찰하기 시작한 역사와 미시사부터 시작해, 동물생태를 거쳐, 여전히 침해되고 있는 동물권과 기후 위기로 인한 야생 환경의 변화를 논하기에 이른다.


좋아하는 마음은 지키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그건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존중과 존경이기도 하다. 존경과 존중은 한번 내주면 순환하는 습성이 있는 것 같다. 인간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동물이 직면한 위기에 책임을 지거나 지지 않는 행위는 끝내 인간에게 되돌아온다. 결국 우리는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래야 하니까. 동물을 그저 소비하는 대상으로, 타자로만 대해서는 안 되는 관계니까 말이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면서 한 짝과 사는 게 자연스럽고 규범적인 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파트너를 바꾸지 않고 일생을 보내는 건 위험한 전략이다. 우선 스스로 고른 짝이 좋은지 나쁜지 함께 지내보기 전엔 알기 어렵다. 따라서 만약 평생을 한 파트너와 보내야 한다면 파트너를 매우 심사숙고해서 결정해야 한다. - P68

실제 펭귄들 사이에선 따뜻한 안쪽으로 파고 들어가려는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내부로 파고 들어가려는 개체들과 자리를 지키려는 개체들이 뒤섞이며 허들링 집단은 하나의 생명체럼 역동적으로 꿈틀거린다. 그 과정에서 안팎의 개체들이 경쟁을 하며 계속해서 자리가 바뀌는데, 이 모습을 사람의 눈으로 언뜻 보면 마치 서로 양보하고 도와주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 P120

자연은 시간에 순행하는 계절에 따라 변화한다. 자연 속에서 살아간다는 건, 흐르는 시간 속에서 환경의 변화를 받아들이며 그동안 터득해온 생존 전략을 가지고 그러한 변화를 버텨내는 것을 의미한다. 살아남은 것은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연에 순응한 존재이다. - P147

어업 활동을 하는 곳엔 먹을 게 많기 때문에 새들은 어선을 따라다니기도 한다.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앨버트로스의 몸에 달린 작은 트랜스미터를 볼 수 없다. 장비를 부착한 새들은 의도치 않게 배에서 발생하는 신호를 모아들인다. 새들은 인도양 섬에서 마치 특수 임무를 받고 하늘을 나는 정찰기처럼 정기적으로 연구진들에게 신호를 보내 왔다. 그렇게 들어온 위성신호를 분석한 결과, 실제 조업 신고를 하지 않은 채 활동 중인 어선의 비율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배타적 경제 수역EEZ 내에 머물던 약 3분의 1이상의 어선이 선박자동식별시스템Automatic Identification System, AIS을 켜지 않고 있었다. - P179

박새는 나무 구멍이나 돌 틈에 둥지를 짓고 새끼를 키우며, 암수가 둘 다 먹이를 구해 온다. 각기 따로 사냥을 할 때도 있지만 가끔 둥지에 도착하는 시점이 겹칠 때도 있는데, 이럴 땐 한쪽이 양보하듯 날개를 펄럭이는 몸짓을 보였고 그러면 다른 짝이 먼저 둥지에 들어가서 먹이를 주고 나왔다. 이는 굳이 비좁은 둥지에 둘이 같이 들어가는 대신 차례를 기다렸다 번갈아 들어가는 모습처럼 보였다. 도시타카는 이러한 행동을 ‘당신 먼저 몸짓after you gesture’이라 이름 붙였는데, 이 행동은 짝과 있을 때만 나타났고 혼자 있을 땐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 P272

"캐시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고, 한 번 숨을 들이쉬더니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습니다. 나는 녀석을 놓아주었고, 녀석은 그대로 바닥으로 가라앉았죠." 돌고래는 인간과 달리 자발적 호흡을 하기 때문에 숨 쉬는 행위를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원한다면 숨을 쉬지 않음으로써 저산소증을 유발해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얘기다. 오배리는 캐시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계기로 동물이 감정적 고통을 느낀다는 데 확신을 갖게 된 그는, 이후 동물해방운동에 투신한다. - P283

시설에서 사육 중인 펭귄이 번식을 하지 않는 이유를 묻는 관계자의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남극에서 사는 펭귄이 한국까지 와서 좁은 수조가 있는 밀폐된 공간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너무 큰 스트레스로 보입니다." 그리고 반문했다. "이런 곳에서 번식을 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요?" 매년 야생에서 펭귄을 관찰하는 나 같은 연구자 입장에서, 갇혀 지내는 펭귄들을 본다는 것 자체가 안타까운 일이었다. - P298

오늘 지나친 골목부터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야생까지, 드넓은 지구에서 동물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자. 그 모습을 관찰하고, 관찰한 결과물을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면 거기서 어떤 가능성이 생겨날지도 모른다. 그 가능성을 믿으면서, 내가 관찰한 바를 사람들과 나누는 작업이 의미 있는 일이라 여기면서, 나는 오늘도 동물을 만나러 나선다. - P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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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하마스를 모른다 - 금기와 편견 너머, 하마스를 이해하기
헬레나 코번.라미 G. 쿠리 지음, 이준태 옮김, 팔레스타인평화연대 감수 / 동녘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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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간혹 좋은 책은 불온한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 이제부터 비밀을 말해 주겠다고 속삭이는 듯, 무언가를 폭로할 듯한 느낌을 풍기며. 이 책을 읽기 전에 이러한 인상을 받았다. 권력이 무엇을 억압하는지 드러내고 결국에는 그에 대항하게 할 것 같다는 그 인상에 넘어갔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하마스를 몰랐던 내게 하마스가 어떤 조직인지 설명해 줬다. 팔레스타인과 하마스에 대한 5회 차의 대담을 기록한 책으로, 하마스의 탄생 배경부터 팔레스타인 내외부에서 하마스의 위치, 지향점 등 하마스에 관해 폭 넓게 다룬다. 이 내용이 낯선 독자를 위해 용어 설명, 하마스 헌장, 각종 관련 보고서 등 풍부한 배경지식도 부록으로 함께 담았다.


부록으로 수록된 하마스 문건 〈우리의 서사…… 알아크사 홍수 작전〉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75년의 가차 없는 점령과 고통을 겪고, 해방과 우리 민족의 귀환을 위한 모든 시도가 실패한 후에, 또한 소위 평화 프로세스마저 참담한 결과로 끝났다. [다음과 같은 현실에서 전 세계는 팔레스타인 민족이 무엇을 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인가.]” (p.276)

(책에서 볼드 처리된 부분은 대괄호로 표시했다.)


팔레스타인이 피해자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하마스는 그 지역에서 활동하는 무장 테러 조직인 줄 알았다. 이 책은 그런 나의 시선을 바로잡아 줬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 학살이 하마스라는 조직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유대 국가 설립 운동인 시온주의는 서방의 지지를 받았고, 그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희생됐다. 학살 피해자는 순식간에 가해자가 되었다.


하마스에 대한 오해 역시 겹겹이 쌓여 있었다. 시온주의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하마스가 잘못 하나 하지 않은 무결한 집단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동안 서구 사회를 통해 비친 것처럼 하마스가 민간인을 공격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데 혈안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전문가들은 명백히 밝힌다. 반인권적 폭력을 행사하는 건 이스라엘이다. 서구 사회는 이스라엘의 행태를 묵인하고 하마스를 악마화하는 데 동조해 왔다. 특히나 미국은 미국의 입맛에 맞는 지도자를 서아시아에 세우기 위해 이스라엘을 지지함으로써 식민주의 체제를 지속시키려 한다.


그동안 나는 하마스에 대한 악마화에 휘둘려 자세한 내막을 살펴보지 못했다. 역사는 단순하지 않은 인간들이 얽히고설켜 만들어진다. 그만큼 역사에는 단단히 꼬여 풀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면면이 아주 많음에도 하마스를 너무나 납작하게만 바라봤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는 승자의 이야기라고들 한다. 승자는 거의 강자다. 지금 국제 사회의 강자는 미국이다. 즉 미국이 쓰는 현대사에 좌지우지되기 쉽다. 미국과 미국이 지지하는 이스라엘은 힘의 논리로 팔레스타인을 식민지와 마찬가지인 상태로 만들었다. 식민주의는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모양을 조금씩 바꿔가며 계속해서 등장할지도 모른다. 역사적으로 늘 그래 왔으니까. 그러나 피해자는 늘 싸웠다. 식민주의에 저항하지 않는 민족은 없다.


아마도 저는 저항이 핵심어가 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는 팔레스타인인들, 그리고 아랍 사람들과 민족 전체로 보면 이들이 하마스를 지지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종교나 민족주의 같은 것들 때문이 아니라 바로 저항 때문이에요. - P82

저는 이전 연구에서 이스라엘이 살해하는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하마스와 모든 팔레스타인 정파가 살해하는 이스라엘 민간인의 약 15배에서 20배에 이른다고 정리한 바 있습니다. 살해된 이스라엘 민간인 1명당 15명의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죽는다는 거죠. 하지만 모든 언론의 논의와 논란은 이스라엘 민간인을 살해하는 팔레스타인인들만을 다룹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여러 이유로 동등한 언로를 가지고 있지 않고 동일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지 않으니까요. - P95

테러리즘 서사는 갈등을 정치적으로 해결할 가능성을 제거해버리죠. 그들을 완전히 제거한다는 군사적 해결책만 남는데,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 하마스 같은 풀뿌리 운동 조직을 대상으로 그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집단학살을 자행한다는 의미예요. - P116

하마스는 전쟁도 시도해보고, 정치적 접근을 통한 타협도 시도해보고, 반식민주의 투쟁의 비폭력적 표현인 귀환대행진도 있었는데,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은 거죠. 결국 이런 상황으로 인해 강경파들이 돌아와서 극적이고 격렬한 파열음을 낼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무대가 만들어진 겁니다. - P123

국제 사회가 그토록 강조해온 인권 원칙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은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했던 방식과 뚜렷하게 대조되면서 국제 사회의 문제점 역시 잘 보여줍니다. 그래서 여기서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팔레스타인인의 목숨이 우크라이나인의 목숨보다 덜 중요하다는 식의 인종주의적 요소가 작용하고 있다고 느끼죠. - P129

이들은 자주 주권에 대해, 그리고 저항을 통한 민족자결권에 대해 언급해요. 그건 ‘유엔이나 국제 사회가 우리에게 부여했기 때문에 생기는 주권’이 아니에요. 저항을 통해 쟁취하는 주권이죠. 그런 정신이 민족자결권에 잘 새겨져 있어요. - P137

현재 이스라엘의 책임 있는 자들은 가자지구를 한두 번도 아니고 필요하다면 세네 번도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권한을 신에게서 부여받았다고 믿고 있어요. 일부 팔레스타인인은 이스라엘의 생존권을 인정하는 데 동의하겠지만,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의 생존권이 어디서도 없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화답은 없었던 겁니다. - P214

현재 하마스가 공식적으로 채택한 서사는, 이건 시온주의와의 싸움이지 유대인들과의 싸움이 아니라는 거예요. 하마스 지도자들은 네투레이 카르타 쪽 근본주의 유대교 대표단과도, 그리고 세속 유대인 대표단과도 접견해요. 유대인들과 문제가 없죠. - P216

서구에서 하마스를 보는 방식이나 하마스를 악마화하는 방식과 관련해서, 사람들이 이런 소위 여성 권리나 퀴어의 권리를 민족 해방 투쟁에 대한 모든 종류의 지지를 굴절시키는 몽둥이로 사용한다는 게 놀라워요. 마치 서구가 여성 권리나 동성애자의 권리의 개척자인 것처럼요. 정말 어처구니가 없죠.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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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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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바움가트너가 알루미늄 냄비를 태운다. 그리고 탄 냄비를 만졌다가 손바닥을 덴다. 바움가트너는 그렇게 시작한다. 누구나 살면서 여러 번 보거나 들어 봤을 법한 아주 흔한 이야기로. 하지만 바움가트너의 기억이 이야기를 흔치 않게 해 준다.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오로지 자신만이 품고 있는 냄비에 얽힌 기억이. 냄비가 타 버려 못 쓰게 되면서 그 속에 담겼던 기억이 튀어나온다. 10년 전에 죽은 아내 애나의 이야기다.


바움가트너는 사고로 급작스럽게 아내를 잃고 혼자가 된다. 그때로 되돌아간다고 해도 애나는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며 자신은 애나를 말리지 못할 것이라고 애도 상담사에게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죽어요. 젊어서 죽고, 늙어서 죽고, 쉰여덟에 죽죠. 다만 나는 애나가 그리워요, 그게 전부예요. 애나는 내가 세상에서 사랑한 단 한 사람이었고, 이제 나는 애나 없이 계속 살아갈 길을 찾아야 해요.”(p.41)


바움가트너는 심리적 환지통을 느끼며 살아간다. 애나의 상실 전후의 이야기가 이쪽에서 저쪽으로 자연스럽게 옮겨 가며 전개된다. 어떤 때에는 바움가트너 의식의 흐름대로, 또 어떨 때는 그가 꺼내 본 애나의 글을 통해서. 애나의 유년 시절과 자신의 유년 시절, 바움가트너 자신도 몰랐던 가족의 이야기, 애나가 죽고 8년 뒤 만난 여성, 애나의 작품을 연구하겠다는 학생의 등장까지.


그의 삶은 한 편의 잘 짜인 영화가 아니라 우연의 연속으로 빚어졌다. 마치 원래 삶이란 그런 것이라는 듯이. 불행도 행복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불쑥 고개를 내미는 게 원래 인생이라는 듯이. 바움가트너』는 인간의 삶을 각색하지 않는다. , 너도 그렇잖아, 라고 바움가트너가 말을 거는 듯하다.


바움가트너가 냄비를 태우고 손을 덴 뒤 자잘한 사건 사고가 쌓이고 쌓인다. 마치 그의 삶처럼. , 냄비의 소실은 그의 삶을 은유한다. 냄비는 미처 치우지 못한 애나의 흔적이었다. 흔하고 사소하고 일상적인 냄비라는 물건은 소실됨으로써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촉매로 작용하게 된다. 냄비에 얽힌 기억을 공유하던 존재가 떠나고 그 냄비마저 까맣게 타 버린다. 일부러 치우지 않은 애나의 글만이 유일한 그녀의 흔적으로 남는다. 모든 것은 우연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건들은 우연에 기댄 채, 우연이 겹겹이 쌓인 채 전개된다. 겹겹의 우연은 바움가트너라는 사람을 만들었지만 동시에 그를 짓누른다. 냄비로 시작된 기억의 촉발은 운전으로 이어진다. 거기에도 애나와의 기억이 얽혀 있고, 그가 운전대의 신비라는 책을 쓰고 있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이제 어떤 우연이 그를 맞이할지는 알 수 없다.


선생님도 그런가요, 네? 검침원이 말한다.
나도라니, 뭐가요? 바움가트너가 말한다.
좋아하지도 않는 이름을 계속 갖고 있어야 하는 거요. - P15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은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발을 바닥에 딱 붙인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위태로운 내적 공간에 살고 있었고, 그로 인해 두 손에 감당할 수 없이 넘쳐 나는 시간을 들고 있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 P61

바움가트너는 지금도 느끼고 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고, 지금도 살고 싶어 하지만 그의 가장 깊은 부분은 죽었다. 그는 지난 10년간 그것을 알고 있었으며, 지난 10년간 그것을 알지 않으려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 P66

어떤 사건이 진실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실제로 진실이어야 할까, 아니면 설사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해도, 어떤 사건의 진실성에 대한 믿음이 그것을 진실로 만드는 것일까? 그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느냐 아니냐를 알아내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확실성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면 어떻게 될까? - P184

할아버지가 1백여 년 전에 떠난 도시를 찾아가려고 이 먼 길을 와서 거기 도착하기도 전에 죽고 말다니 이 얼마나 큰 아이러니이며, 나는 속으로 말했다, 또 이 얼마나 무시무시하게 어울리는 일인가. - P187

웃음이 아니라, 적어도 웃음 자체가 아니라, 우리 둘 다 그 오래전 스치듯 지나간 짧은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는 이상한 사실, 그리고 그 순간의 기억을 우리가 공유했다는 이유로, 사실 아직도 서로 아는 것은 전혀 없는데도 우리 둘 다 우리 사이에 어떤 연결이 생긴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두 배로 이상한 사실.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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