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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하는 남성성 - 폭력과 가해, 격분과 괴롭힘, 임계점을 넘은 해로운 남성성들의 등장
한국성폭력상담소 기획, 권김현영 외 지음 / 동녘 / 2025년 7월
평점 :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혐오를 먹고 자라난 폭력은 방치(또는 묵인)될수록 증폭한다. 불합리한 사회 구조로 인한 불만은 도리어 약자에게
튀기 쉽다.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게 권력에 책임을 묻는 것보다 훨씬 편리하니까. 그러므로 폭력의 양태는 그 사회가 어떤 집단을 얼마나 취약한 소수자로 삼는지 고스란히 드러낸다.
“다들 행복하게 사는데… 칼
들고 나갈거다”. 신림역 사건 가해자의 발언이라고 한다. 1장의
필자는 여성혐오의 근간에 ‘남성으로서의 열패감’이 있다고
지적한다. 여성혐오라는 사회적 문제가 곪을 대로 곪아 범죄로 나타난 것이다. 즉, 문제의 시작은 범죄 행위가 아니라 ‘남성중심적 젠데 질서’에서 발현된 여성혐오에 있다.
이처럼 『폭주하는 남성성』은 범죄를 통해 드러난 여성혐오와 그 기저에 있는 ‘폭주하는
남성성’에 대한 문제 제기로 포문을 연다. 이어지는 2장에서는 현실에서 여성의 바로 곁에 있는 남성들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 즉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구조로
발생하는지 밝힌다. 이로써 남성성에 의한 폭력은 여성 누구에게나 가해질 수 있는 일상성을 띠게 된다.
3장 역시 일상성을 바탕으로 하지만,
딥페이크에 초점을 맞춘다. 얼마나 많은 (여성들
곁에서 살아가는) 남성이 딥페이크 범죄에 가담했고, 그들이
그렇게 된 이유를 고찰하며 디지털 성범죄로 논의의 범위를 확장한다. 디지털은 일상이 되었고,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여성혐오 범죄는 당연히 디지털로도 이어질 수밖에 없음을 드러낸다.
4장과 5장은 디지털 성범죄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각각 사이버레커와 벗방이 어떤 방식으로 여성의 성을 착취하여 돈을 버는지 폭로한다. 6장과 7장은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를 중점적으로 살핀다. 그곳에서 행해지는 안티페미니즘 언어 사용(혹은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되던
언어를 안티페미니즘 언어로 낙인 찍기)과 실천 방향, 짤을
통한 여성혐오의 확산 및 강화를 이야기한다.
이토록 짧게 요약된 일련의 사건들은 오랜 시간 한국 사회 내에서 여성혐오를 계속해서 다지다가 마침내 단단하고 두껍고
거대한 여성혐오 덩어리를 만들어 낸다. 마지막 8장은 온오프라인
세계에서 공고해진 여성혐오와 폭주하는 남성성이 12.3 계엄 이후 현실에서 어떻게 폭발적으로 발현되었는지
따짐으로써 가장 최근의 담론에 이른다.
8명의 필자가 조금씩 다른 각도에서 다룬 여성혐오와 남성성은 결국
한곳에서 모인다. 사회 전반에 얽힌 여성혐오를 마주하고 파헤치면 그 끝엔 ‘폭주하는 남성성’이 있다. 가부장제라는
사회 구조로 인해 남성이 당한 피해를 여성, 장애인, 이주자
등 약자에게로 돌리며 역설적으로 가부장제에 부역하게 되는 결과를 맞이한다.
영원히 나아지지 않는 현실의 굴레에 청년 남성을 가둔 건 가부장제 시스템이지만, 모든
것을 페미니즘으로 책임을 돌린 청년 남성들은 현실을 직시하려 하지 않는다. 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꼬여서
이 지경이 된 것인지 궁금한, ‘성범죄, 극우화된 청년 남성, 젠더 갈등’ 등에 관심 있는 모두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합법적이되 폭력 수단을 동원한 범죄 억제는 폭력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디시인사이드의 ‘살인 예고’ 글에 대한 댓글들이 범죄를 감행할 역량이 없는 허세를 조롱했던 점이나 폭력성의 과시가 범행의 맥락이 된 점을 고려하면, 강력한 처벌과 감시는 오히려 그를 무릅쓸 수 있는 남성성을 보여주기에 매력적인 조건으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41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데이트폭력’이라는 표현은 공권력이 개입하여 처벌해야 할 범죄의 심각성을 희석하여 연인 사이에 발생하는 불미스러운 일로 가볍게 비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교제폭력’ 용어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물론 친밀한 관계 내 폭력 피해를 국가 차원에서 엄중히 인지하고 대처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지금까지 데이트폭력이 경미하게 다루어져온 주된 이유가 그 용어의 낭만성 때문이라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교제폭력이라는 용어는 자칫 교제 중, 또는 교제 이후 발생한 폭력 피해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협소하게 여겨질 우려가 있다. 이 경우 교제 관계의 달성 여부와 관계없이 일방적인 관계에서 발생한 폭력 피해의 경험 등이 배제될 가능성이 크다. - P72
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그 기술을 악용한 새로운 유형의 성범죄가 함께 등장한다. 그러나 결국 이 모든 범죄의 원인은 하나로 귀결된다. 바로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인 현실에서 여성을 자원화해 착취하고 결속을 다지는 남성연대의 문제다. 다시 말해, 이건 단지 새로운 기술로 인해 생겨난 요즘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구한 젠더폭력의 역사 그 자체다. - P86
사이버레커는 사회의 통념에 비추어 성폭력인 것과 아닌 것을 선별하고 ‘정의 구현’의 대상을 선정한다. 피해자를 위한다는 허울 좋은 명분인 ‘정의 구현’은 ‘보호할 만한’ 피해자와 ‘비난할 만한’ 피해자를 나누어 전자는 수동적인 존재로만 위치시키고 후자는 응징과 착취의 대상으로 삼는다. 사이버레커의 ‘진정한 피해자’ 선별로 파생된 댓글과 반응은 성폭력 엄벌주의와 함께 성폭력에 대한 통념, 피해자다움에 대한 전형을 재생산한다. - P132
신체 노출 강도가 더 세기 때문에 BJ가 감당해야 할 위험도 커짐에 따라 벗방은 여캠보다 ‘아래에’ 있는 방송으로 위치하게 된다. 일례로 여캠 시청자들은 BJ가 순응적으로 반응하지 않을 때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더 열심히 안 하면 벗방BJ가 된다"라며 경고를 날린다. 여캠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벗방을 하게 된다는 발언은 여캠에 일종의 수직적인 질서가 있고, 그 가장 아래에 벗방이 위치한다는 위계적 인식을 보여준다. - P148
남초 커뮤니티의 안티페미니스트들은 패배를 어떻게 해석했을까? 즉각적으로 터져나온 반응은 ‘오조오억’ 같은 ‘남혐표현’이 진짜 문제임에도 페미니스트들의 간계로 인해 숏컷만이 문제인 양 왜곡된 보도가 나왔다는 한탄이었다. 자신들의 전략이 정말로 효과적인지, 또 커뮤니티에서 통용되는 언어가 그 바깥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해될지를 검토해야 한다는 반성적 성찰은 거의 제기되지 않았다. 확실한 근거 없이 억지로 여론몰이를 시도한 게 오판이었다는 반응도 나왔으나, 많은 이는 좀 더 편리한 음모론적 해석에 기댔다. - P191
안티페미니즘 메시지를 전달할 때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할 때 역시 짤은 매력적인 선택지다. 메시지에 방해가 되는 맥락을 결락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유머의 탈을 쓰고 진지한 비판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짤의 정치적 이점을 알고 있었던 이준석은 이를 윤석열 유세에 활용했다. - P230
청년 남성들에게 페미니스트를 짓밟고 남자가 약자임을 부르짖는 것은 일종의 거대한 이데올로기 투쟁인 셈이다. 하지만 이런 명분만으로는 오프라인에서 실제 자신의 몸으로 집회에 참가하진 않는다. 어쨌든 ‘쪽팔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광장에서 ‘팀플’을 하던 여성들처럼 자기를 대신해 오프라인에 나서서 얼굴을 공개하는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하기보다는, 더 자극적인 콘텐츠를 요구하는 라이브 스트리밍 방송 시청자 같은 태도를 가지고 있다.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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