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와일드 - 야외생물학자의 동물 생활 탐구
이원영 지음 / 글항아리 / 2025년 7월
평점 :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도전 1000곡〉이 끝나면 뒤이어 방영되는 〈TV 동물농장〉. 일요일 아침마다 반복되는 풍경이었다. 귀여운 동물들이 계속해서 나왔고, 종종 닭과 같은 사육 동물을 공격하는
야생동물이나 다친 동물을 구조하는 이야기, 동물원 소식 등도 소개됐다.
딱 그 정도였다. 내 삶에서 동물이 차지하는 자리는. 직접적인
대면보다는 TV 모니터를 사이에 두고, 동물의 이미지와 이야기를
소비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처럼 다소 (불)안전한
관계가 변화하기 시작한 건 펭귄을 좋아하면서부터였다. 내가 직접 펭귄을 볼 수 있는 곳은 크게 남극과
동물원 두 군데로 분류할 수 있다. (정확히는 남극부터 적도까지 각기 다른 펭귄 종이 분포해 있지만, 한국의 미디어 환경에서 주로 보이는 황제, 아델리, 젠투, 턱끈펭귄 등은 남극에 서식하므로 이 글에서는 논의 범위를
남극으로 좁혔다.)
야생과 비야생의 펭귄은 모두 저마다의 환경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원서식지인
남극은 기후 위기를 지구에서 가장 직격으로 맞고 있는 지역이고, 동물원의 펭귄은 야생에 미치지 못하는
환경으로 인해 건강에 이상이 생기거나 번식하지 않는 등 여러 문제에 시달린다. 즉, 펭귄의 귀여운 이미지뿐만 아니라 펭귄 그 자체를 좋아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환경 이슈와 동물권 전반에 눈이 가게
된다. 그러니까 모든 동물종, 그들의 삶에 관해.
“야외 생물학자의
동물 생활 탐구”라는 부제가 말해 주듯이 『와일드』는 다양한 동물의 독특하면서 동시에 일반적인 생태를
담고 있다. 동물 관찰법부터 동물의 짝짓기, 색, 서식, 의사소통 등 동물행동학 전반을 다룬다. 가령 양서류의 진화사를 연구하기 위해 양서류 1,400종의
계통 진화를 통째로 연구했다는 과학자, 펭귄의 분변에서 검출된 미생물이 펭귄 몸속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밝혀낸
것, 앨버트로스의 몸에 트랜스미터를 달아 불법 조업을 하는 선박을 찾아낸 이야기 등 흥미로운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게다가 도판도 풍부해서 동물을 많이 볼 수 있다.
동물을 사랑하는 동물행동학자의 시선으로 서술돼서 그런지 마치 남의 덕질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이를 포함해 여러 이유로 이원영 박사님 책은 믿고 읽는다. 현장에서
직접 동물을 연구하며 이룬 성과를 책에서 종종 소개하는 것도 포인트다. 이에 그치지 않고 과학적 사실이
품고 있는 의의와 가치를 드러내는 데까지 나아간다. 그리하여 『와일드』는 인간이 동물을 관찰하기 시작한
역사와 미시사부터 시작해, 동물생태를 거쳐, 여전히 침해되고
있는 동물권과 기후 위기로 인한 야생 환경의 변화를 논하기에 이른다.
좋아하는 마음은 지키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그건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존중과 존경이기도 하다. 존경과 존중은 한번 내주면 순환하는 습성이 있는 것 같다. 인간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동물이
직면한 위기에 책임을 지거나 지지 않는 행위는 끝내 인간에게 되돌아온다. 결국 우리는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래야 하니까. 동물을 그저 소비하는 대상으로, 타자로만 대해서는 안 되는 관계니까 말이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면서 한 짝과 사는 게 자연스럽고 규범적인 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파트너를 바꾸지 않고 일생을 보내는 건 위험한 전략이다. 우선 스스로 고른 짝이 좋은지 나쁜지 함께 지내보기 전엔 알기 어렵다. 따라서 만약 평생을 한 파트너와 보내야 한다면 파트너를 매우 심사숙고해서 결정해야 한다. - P68
실제 펭귄들 사이에선 따뜻한 안쪽으로 파고 들어가려는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내부로 파고 들어가려는 개체들과 자리를 지키려는 개체들이 뒤섞이며 허들링 집단은 하나의 생명체럼 역동적으로 꿈틀거린다. 그 과정에서 안팎의 개체들이 경쟁을 하며 계속해서 자리가 바뀌는데, 이 모습을 사람의 눈으로 언뜻 보면 마치 서로 양보하고 도와주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 P120
자연은 시간에 순행하는 계절에 따라 변화한다. 자연 속에서 살아간다는 건, 흐르는 시간 속에서 환경의 변화를 받아들이며 그동안 터득해온 생존 전략을 가지고 그러한 변화를 버텨내는 것을 의미한다. 살아남은 것은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연에 순응한 존재이다. - P147
어업 활동을 하는 곳엔 먹을 게 많기 때문에 새들은 어선을 따라다니기도 한다.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앨버트로스의 몸에 달린 작은 트랜스미터를 볼 수 없다. 장비를 부착한 새들은 의도치 않게 배에서 발생하는 신호를 모아들인다. 새들은 인도양 섬에서 마치 특수 임무를 받고 하늘을 나는 정찰기처럼 정기적으로 연구진들에게 신호를 보내 왔다. 그렇게 들어온 위성신호를 분석한 결과, 실제 조업 신고를 하지 않은 채 활동 중인 어선의 비율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배타적 경제 수역EEZ 내에 머물던 약 3분의 1이상의 어선이 선박자동식별시스템Automatic Identification System, AIS을 켜지 않고 있었다. - P179
박새는 나무 구멍이나 돌 틈에 둥지를 짓고 새끼를 키우며, 암수가 둘 다 먹이를 구해 온다. 각기 따로 사냥을 할 때도 있지만 가끔 둥지에 도착하는 시점이 겹칠 때도 있는데, 이럴 땐 한쪽이 양보하듯 날개를 펄럭이는 몸짓을 보였고 그러면 다른 짝이 먼저 둥지에 들어가서 먹이를 주고 나왔다. 이는 굳이 비좁은 둥지에 둘이 같이 들어가는 대신 차례를 기다렸다 번갈아 들어가는 모습처럼 보였다. 도시타카는 이러한 행동을 ‘당신 먼저 몸짓after you gesture’이라 이름 붙였는데, 이 행동은 짝과 있을 때만 나타났고 혼자 있을 땐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 P272
"캐시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고, 한 번 숨을 들이쉬더니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습니다. 나는 녀석을 놓아주었고, 녀석은 그대로 바닥으로 가라앉았죠." 돌고래는 인간과 달리 자발적 호흡을 하기 때문에 숨 쉬는 행위를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원한다면 숨을 쉬지 않음으로써 저산소증을 유발해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얘기다. 오배리는 캐시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계기로 동물이 감정적 고통을 느낀다는 데 확신을 갖게 된 그는, 이후 동물해방운동에 투신한다. - P283
시설에서 사육 중인 펭귄이 번식을 하지 않는 이유를 묻는 관계자의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남극에서 사는 펭귄이 한국까지 와서 좁은 수조가 있는 밀폐된 공간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너무 큰 스트레스로 보입니다." 그리고 반문했다. "이런 곳에서 번식을 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요?" 매년 야생에서 펭귄을 관찰하는 나 같은 연구자 입장에서, 갇혀 지내는 펭귄들을 본다는 것 자체가 안타까운 일이었다. - P298
오늘 지나친 골목부터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야생까지, 드넓은 지구에서 동물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자. 그 모습을 관찰하고, 관찰한 결과물을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면 거기서 어떤 가능성이 생겨날지도 모른다. 그 가능성을 믿으면서, 내가 관찰한 바를 사람들과 나누는 작업이 의미 있는 일이라 여기면서, 나는 오늘도 동물을 만나러 나선다. - P36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