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동물원의 행복한 수의사
변재원 지음 / 김영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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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물원 반대론자였다. 대학교 1학년 때 동물원을 주제로 팀플 발표 과제를 한 적이 있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내게 동물권 이슈는 많은 사회 문제 중 하나일 뿐이었다. 하지만 발표 준비를 하면서 동물원의 기원과 그에 대한 비판을 들여다보다 보니 자연스레 동물권에 관심이 생겨났다. 동물원은 인간의 오락을 위해 처음 만들어졌으며, 동물의 권리는 철저히 짓밟히는 공간이었으니 당연히 사라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동물원과 동물권 이야기라는 말에 혹했는지도 모른다. 동물원과 동물권은 지향점이 상반되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이 책은 나의 편견을 깨부쉈다. 사회적 비판에 동물원은 계속해서 인간이 아닌 동물을 위한 시설로 조금씩 변해왔다. 동물원에서 나고 자란 동물들은 지금 당장 동물원이 사라지면 생존할 수 없다. 다친 야생 동물도 다시 야생으로 돌아가기 전에 회복할 공간이 필요하다. 동물원은 동물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공간인 것이다. 물론 형태는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져야 하겠지만.

저자는 수의사로서 아쿠아리움과 청주동물원에서 근무하며 보고 느낀 점을 풀어낸다. 1장에서는 열악한 환경의 아쿠아리움에서 초보 수의사로 근무했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당시 아쿠아리움에서 동물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저자 본인은 얼마나 부족했는지, 정말 이걸 다 밝혀도 되나 싶을 만큼 가감 없이 고백한다.

스트레스로 인한 자해로 꼬리를 잃은 알락꼬리여우원숭이가 잘 회복하도록 보살피기는커녕 “쓸모없어진 물건으로 취급”하고 방치한 아쿠아리움의 행태에는 정말 화가 났다. 하지만 동물과 저자의 교감이 드러나는 대목에서는 귀여운 장면이 상상돼서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기도 했다. 저자는 동물 학대가 자행되는 환경에서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동물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2장은 청주동물원에서 만난 동물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동물원이 집인 동물뿐만 아니라 동물원 안팎의 야생 동물의 이야기까지 담겨 있다. 3부에서는 저자가 바라는 이상적인 동물원의 모습을 그린다. 저자와 뜻을 함께하는 동료 수의사와 사육사들의 노력으로 동물원은 점차 동물을 위한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아프고 늙은 동물 등 약한 존재를 포용하고, 더 나아가 장애인도 동물원의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게 하고자 고민한다.

과거와는 달라진, 그리고 더 나아지고자 노력하는 모습에 동물원을 바라보는 내 시각도 조금 바뀌었다. 이상을 꿈꾸는 동물원 수의사의 이야기에 나도 함께 이상적인 동물원을 꿈꿔 본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가제본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지금의 청주동물원은 다치고 병든, 장애를 갖게 된 동물을 적어도 쓸모없어진 물건으로 취급하지는 않는다. 인식과 제도가 급변하고 있는 만큼, 곧 다른 동물 시설들도 이런 흐름에 동참해 주면 좋겠다. 아픈 존재에 대한 포용까지 배울 수 있는 공간, 이것이 오늘날 동물원의 또 다른 존재 가치라고 나는 믿는다. 태일이도 그런 시설의 넓은 공간에서 따뜻한 햇볕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내키지 않을 때는 사람들을 피해 내실에서 실컷 자면서 잘 지내다 가면 좋겠다. 다시 만나면 해주고 싶은 것이 많다. - P35

안전을 위해서라지만 멀쩡한 신체 일부를 훼손하지 않고는 전시하기 어려운 동물이라면 굳이 실내 사육을 고집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엄니를 갈거나 잘라내거나 발치한 바다코끼리가 그대로 건강하게 실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나는 회의적이다. 야생의 바다코끼리에게 엄니는 먹이를 찾고 천적 등으로부터 자신과 무리를 보호하는 수단이자 도구다. 특히 해변에 가라앉아 있는 먹이 생물을 캘 때 유용하게 사용된다. - P58

사람 의약품도 그렇지만 동물 의약품도 외국에서는 어렵지 않게 사용하는 제품을 국내에서 구할 수 없는 상황을 자주 경험한다. 생리학적으로 완전히 다른 종의 특성에 맞춰 나온 약품이라도 국내에서는 쉬이 적용할 수 없는 실정이다. 외국의 야생에서 사는 동물을 데려다 전시하고는 있는데, 그 동물을 치료하기 위한 의약품은 사용할 수 없어 진료에 한계가 생기기도 한다. 적어도 특수 동물 진료에 필요한 약들은 제한적으로나마 쓸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 P72

수달사에 남은 먹이가 충분치 않은 날이면 왜가리는 물새장의 두루미 근처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때는 신기하게도 새장 안의 두루미들이 제가 먹고 남은 미꾸라지를 철망 밖의 왜가리 쪽으로 던져준다. 처음에는 철망 밖으로 떨어진 미꾸라지를 보고서도 그 상황이 믿기지 않아서 왜가리가 긴 부리를 이용해 철망 사이로 미꾸라지를 꺼내 먹거나 두루미가 먹으려고 미꾸라지를 집어 흔들다 철망 밖으로 날아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몇 번이나 반복되는 광경을 보면서 확신하게 되었다. 철망 안팎으로 내가 모르는 그들만의 연대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 P139

동물을 건강하게 관리하고 치료하겠다고 수의사가 되어 동물원의 동물병원에서 일하고 있는데, 그 동물병원 건물 때문에 다치고 죽는 새를 마주할 때마다 허탈감이 든다. 그럴 때면 마음을 짓누르는 죄책감과 책임감을 조금이나마 면피하고자 유리창에 충돌 방지 스티커나 붙여볼 뿐이다. 그 스티커마저 실제 효과보다 내 마음의 위안을 위한 게 아닐까 의심하면서. 인간이 이렇게나 이기적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 P153

따지고 보면 서식지 파괴, 외래종 밀반입 및 유기 등 문제의 원인은 전부 인간에게 있는데 또다시 인간에 의해 인간에게 해를 입히는 유해 조수 혹은 생태교란종으로 분류되어 인간의 손에 관리(라는 이름으로 제거)된다. 생태를 가장 교란하고 있는 종은 인간이건만 죄 없는 동물만 불명예를 뒤집어쓰고 죽임을 당하는 방식으로 책임을 다하고 있다. 심지어 포획되는 방식까지도 잔인하기 그지없다. 포상금을 노린 인간들의 총에 맞거나, 틀이나 덫에 갇히거나, 산 채로 묻힌다. 다친 동물을 살리는 일을 업으로 하다 보니 좀 인도적인 처분을 고민할 수는 없는지를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 P170

이곳에서는 누구도 무슨 동물이 더 비싼지, 새로 수급하려면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안락사와 매매 중 어느 쪽이 더 경제적인지 같은, 듣기조차 싫었던 말들을 아무도 하지 않는다. 그 어떤 동물이건 청주동물원에 들어오는 순간 가격표가 사라진다. 그 누구도 동물에 값을 매기지 않는다. - P177

청주동물원에서는 장애나 질병이 있는 동물을 특별 관리 대상으로 삼아 더욱 지극히 보살핀다. 몸이 불편해진 개체이니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더 편안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신경을 쓰는 것이다. 그런데 동물원에 장애인 관람객을 위한 편의 시설이 얼마나 설치되어 있던가? 장애 동물사 앞에 선 장애인 관람객을 마주한 순간, 부끄러움으로 달아오른 얼굴을 애써 숨기며 현장을 빠른 걸음으로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인간과 동물 중 무엇이 우선하냐는 의문이 아니었다. 아프고 병든, 혹은 장애가 있는 약한 존재를 더 배려하는, 인간이라면 당연히 품는 그 마음이 동물을 보살피고 돌볼 때는 본능과도 같이 작용하면서 왜 인간을 향해서는 작용하지 못했던 것일까? - P186

추모관 안내판에도 적혀 있듯 동물원은 어쨌든 야생에서 살도록 진화한 동물을 좁은 우리에 가두어 기르는 곳이고, 그 우리에서 길러진 동물은 대부분 야생을 살아낼 수 없다. 동물을 위한 일이라 해도, 동물이 인간의 뜻을 이해할 리 없다. 그래서 우리는 동물에게 항상 빚진 마음을 가진다. 그 빚을 완전히 갚기란 요원한 일이다. 어쩌면 세상 어딘가에 동물원이라는 공간이 하나라도 남아 있는 한 영영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저 수십 개의 명패 앞에서 이제는 전시만을 위해 동물을 사 오지 않기로 했다고,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동물이 불편을 감내하도록 두지 않기로 했다고, 무분별한 번식으로 개체를 늘리지 않기로 했다고, 나아지는 동물원의 모습을 하나씩 말해볼 뿐이다.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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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아이들
한요나 지음 / &(앤드)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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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알고 있다. 사회가 요구하는 게 무엇인지, 자신이 무엇을 가져야 하는지, 그리고 그걸 누가 가지지 못했는지. 사회에서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는 구조는 학교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계급을 체화하며 자란다.

햇볕을 얼마나 쬘 수 있느냐에 따라 계급이 달라지는 세상이 있다. “볕이 잘 드는 정도”에 따라서 1구역부터 7구역으로 나뉜다. 가장 좋은 햇볕을 쬘 수 있는 1구역을 사람들은 선망한다. 그곳에서 자란 아이들은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까맣고 주근깨가 있다. 얼굴에 자신의 출생지와 계급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다. 모두가 볼 수 있는 신체 부위에.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출생 신분에 따른 계급을 어떻게든 극복하기 위해 자녀를 1구역에 있는 학교로 진학시키고자 하는 욕망은 현실과 닮았다. 계급에 따른 차별 또한 마찬가지다. 주하는 머리카락이 빨갛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차별의 대상이 된다. 주하의 동급생 하루는 아이들이 빨간 머리를 그들의 세계에서 배제하면서도 동경하고 있음을 꿰뚫어 본다. 빨간 머리의 아름다움과 그 뒤에서 오가는 소문 때문이다. 빨간 머리가 햇볕을 쬐는 효과를 지닌 럭스라는 물질을 만들어낸다는 소문. 그런 아이들은 ‘태양의 아이들’이라고 불린다.

태양의 아이들은 햇볕 없이도 살 수 있는 돌연변이 같은 존재다. 좋은 햇볕을 쬐는 일이 권리가 아닌 세상에서 태양의 아이들은 권력의 철저한 관리 감독하에 살아간다. 주하의 곁에 있기를 자처한 친구들은 차별과 혐오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서로 다른 개인들이 서로의 고유함을 존중하고 받아들임으로써 함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갖은 추측과 루머에 휩쓸리지 않고 타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직시할 때 비로소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성장한다.

권리를 쟁취하기는 너무나 어렵지만, 박탈당하는 건 너무나 쉽다. 사랑을 외치는 것보다 혐오하는 게 더 편리하다. 그럼에도 싸우고 연대함으로써 빛이 되고자 하는 존재들이 있다. 그들은 찬란한 태양이 되었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나는 믿지 않을 뿐이다. 사람도, 친구도, 환경도,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그래서 지금 내 곁에 있을 때 조금 다정할 수 있을 뿐이다. - P34

내가 1구역에 머물고 싶은 이유는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도 아니다. ‘안전’이 기본값인 생활을 하고 싶고, 어느 정도는 엄마 걱정도 할 줄 아는 착한 딸이고 싶다.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인정해 주었으면 좋겠고, 그러면 내가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P36

행복을 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너희와 우린 정말 다른 것 같긴 해. 어떻게 그런 단어가 쉽게 입 밖으로 나올 수 있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빌리와 레오니는 액세서리 가게에 가자는 이야기를 했다. - P68

이럴 땐 꼭 노범도 연구소도 가족처럼 느껴져서 혼란스럽다. 좋은 의미로 해석하는 게 나쁠 건 없지만, 나에게 좋을 것도 아닌가? 그렇다면 하루의 관심과 지지도 좋게만 해석해서는 안 될까? 나는 자꾸 홀로 벽을 세우게 됐다. 환대를 받아들이는 하루처럼 행동하는 건 어려웠다. - P135

눈에 띄지 않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것은 불가능을 배워야 한다는 것과 같았다. 꽃이 꺾이지 않으려면 예쁘지 않으면 된다고 했던 할머니 말이 떠올랐다. 그런 말을 들은 날엔 할아버지가 귀신같이 알아챘다. 그리고 풀이 짓밟히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꽃을 피우는 것뿐이라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나의 빨강을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매일 저녁 식사 후, 내 머리카락을 빗어 주던 손길. 가짜가 아닌 것은 잊히지 않는다. - P142

외울 것도 기억해야 할 것도 없다. 노력해서 가지고 있는 것들이 아니다. 몸에 자연스럽게 남아 있는 기억과 흔적들. 무대 위에 오른 가수가 자연스럽게 뱉는 멜로디와 같은 것. 넘치도록 받았던 사랑에 관한 것이다. - P147

역시 차이와 차별의 문제일까? 환경이나 문화 차이의 문제도 있을까? 우리는 언제부터 구역이 나뉘어 살아가고 있었나요? - P246

"무지개 언어가 있는 곳이 있을지도 몰라."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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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 빛과 물질의 탐구가 마침내 도달한 세계
그레고리 J. 그버 지음, 김희봉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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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서 루틴은 다음과 같다. 먼저 본격적으로 독서를 시작하기에 앞서 책을 피아노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는다. 그러고 나서 책을 펼친다. 책을 읽지 않는 시간에는 책 사진도 보정하고, 마음에 드는 문장들을 카드 이미지로도 만든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노트북으로 서평을 쓴다.

이러한 일련의 행위를 하는 데 필요한 감각은 극단적으로 말해서 시각이면 충분하다. 물론 책장을 넘기고 키보드를 두드릴 때 아무런 촉감도 느껴지지 않는다면 상당히 느낌이 이상하겠지만, 이를 이 행위의 필수 요건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 종보다 시각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고 한다. 누군가가 정보를 생산하는 일, 내가 그 정보를 받아들이는 일, 받아들인 정보를 재생산하는 일 모두 시각에 의존하여 행해진다. 청각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시각보다는 지속성과 안정성이 떨어진다. 인간은 정보를 전달하는 데 후각을 이용하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보임/보이지 않음에 관한 문제는 늘 중요하게 다뤄졌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은 보여주지 않을지 계산해야 하니 말이다.

문학에서도 보이지 않음은 오랫동안 화두가 되어 왔다. 투명 인간 혹은 인간과 물건을 보이지 않게 하는 도구에 관한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 플라톤이 살던 시대에서부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이야기를 통해 보이지 않음에 대한 욕망을 표출하던 인류는 과학으로 보이지 않음을 실현하고자 노력했다.

『보이지 않는』은 광학과 SF소설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보임/보이지 않음의 긴 역사를 이야기한다.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자외선과 적외선의 발견부터 현재 진행 중인 투명 망토 연구와, 더 나아가 보이지 않음을 연구하다가 발견한 것들을 다른 분야에 적용한 예시까지 아우른다. SF 작가들이 과학자들보다 먼저 상상해 낸 것, 혹은 새로운 과학적 발견에 영향을 받은 작품도 광학의 역사와 엮어낸다.

보이지 않도록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믿던 시대부터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보이지 않게 할 수 있는 기술을 발명해 낸 지금까지. 인류는 계속해서 보이지 않음을 향해 나아왔다. 이야기와 과학도 함께 발전했다. 보이지 않음에 대한 욕망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므로 이야기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투명 인간이 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 대답에 따라 역사도 달라질 테니 이제 욕망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뉴턴의 광학 연구는 빛의 물리학을 이해하는 데 집중하여 본질적으로 "빛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려 했다는 점에서 선구적이었다. 뉴턴의 가장 유명한 업적은 흰색 빛이 가시광선의 모든 색이 모여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그는 유리 프리즘을 사용하여 흰색 빛을 무지개색으로 분리하여 이를 입증했다.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유명한 음반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Dark Side Of the Moon》의 표지를 본 사람이라면 프리즘에 의해 갈라지는 빛의 그림을 보았을 것이다. - P46

웰스는 "마술이 작동한 뒤에 판타지 작가가 해야 할 일은 다른 모든 것을 인간적이고 현실적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소한 것들을 세밀하게 다듬어야 하고, 처음의 가정을 엄밀하게 따라야 한다. 주요 가정에서 벗어나 다른 것을 꾸며서 덧붙이거나 하면 바로 설정이 엉켜서 흐리멍덩해진다." - P148

시설물을 보호하는 것은 보이지 않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겸손하고 달성 가능한 목표다. 50퍼센트만 투명해지는 투명 장치는 숨기는 방법으로는 매우 비효율적이지만, 해양 망토가 파도의 50퍼센트를 튕겨 낸다면 파괴될 구조물이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다.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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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주식회사
잭 런던 지음, 한원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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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에 집어삼켜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신념 때문에 인간을 죽이기도 한다.


사람의 선택과 행동에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치는 것은 신념이 아닐까 싶다. 신념이야말로 성격과 그 외 기타 요인을 무력화하는 강력한 도구인 것 같다. 신념으로 인해 개인이나 집단이 좋은 방향으로 이끌려지기도 하지만 신념에만 매몰되어 역사적 비극을 일으키기도 하니 말이다. 그렇기에 신념은 양면적이고 복합적이다.


암살국의 보스 이반 드라고밀로프와 조직원들은 사회 정의에 반하는 인물만 살해한다는 신념으로 조직을 운영한다. 암살국의 외부인인 윈터 홀은 그들을 도덕광이라고 평가한다. 모이면 철학 이야기를 하고 누구보다도 윤리를 중시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도덕 원칙에 따라 사회악을 제거한다는 이유로 암살이라는 범법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홀은 암살국 보스에게 암살국 보스를 암살해 달라고 의뢰한다. 드라고밀로프는 홀과의 철학적 논쟁을 펼친 뒤 자신을 암살하는 게 옳다고 여겨 암살 의뢰를 수락한다. 홀은 드라고밀로프가 죽지 않길 바랐으나 드라고밀로프는 들어온 의뢰는 철회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깰 수 없다며 조직원들에게 자기를 암살하라고 지시한다. 쫓고 쫓기는 추격 속에서도 그들은 철학을 내려놓지 않는다. 윤리라는 그들의 목적과 신념이 그들을 폭력의 사이클로 몰아넣었음에도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드라고밀로프는 윤리라는 신념 때문에 암살국을 이끌어 왔지만 결국 그 화살은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그는 신념에 속박되어 있어서 자기 자신마저도 죽일 수 있는 인물이다. 선을 추구하다가 악을 저지르고 다시 악을 선의 논리로 정당화하지만, 선과 악 사이의 틈바구니에서 죽음으로 내몰린다. 선과 악, 정의와 불의의 사이에서 삶과 죽음이 교차한다. 그들의 신념에 따른 행동은 선악의 이분법을 작위적인 것으로 만든다. 하지만 끝내 한계에 다다르고 해묵은 질문을 다시 끄집어낸다. 그래서 윤리란 무엇이고, 윤리를 어떻게 실현해야 할까, 윤리를 실현한다는 게 가능은 할까.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법의 테두리 밖에서 활동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가장 엄격한 정직의 잣대가 필요해. 그게 없으면 파멸에 이르고 말 거야. - P21

우리는 계약을 파기하지 않습니다. 한 번도 파기한 적 없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가 한 말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면, 그 말이 세상을 지탱하는 뼈대처럼 단단하지 않다면, 삶에는 아무 희망이 없을 것이며, 본질이니 거짓이니 만물이 혼돈으로 곤두박질칠 겁니다. 우리는 이런 거짓을 부정합니다. 우리는 내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다는 걸 관철시키기 위해 행동으로 증명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동지들? - P189

누구에게나 살기 위해 싸우려는 본능이 있어. 하지만 갖은 이유로 정당화하는, 죽음에 대한 갈망도 숨어 있어. 우리는 그저 당신의 묘한 아버지의 삶에서 무엇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지켜보는 수밖에. - P229

구원은 우리가 내놓을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도덕에서 비롯돼야만 한다. 점점 커지는 세상의 도덕성 그 자체에서 비롯돼야 한다. -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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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를 판 사나이 열림원 세계문학 5
아델베르트 샤미소 지음, 최문규 옮김 / 열림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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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슐레밀은 악마에게 그림자를 파는 대가로 계속해서 금화가 나오는 주머니를 얻는다. 슐레밀은 엄청난 부를 가지게 되지만 그림자가 없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비난받는다. 얼핏 보면 재물을 향한 욕심을 비판하는 평면적인 교훈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았을 때 그렇게 해석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림자 상실이 단지 부에 대한 탐욕의 결과라는 교훈을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결말은 둘 중 하나였을 거라고 예상한다. 슐레밀이 영영 그림자를 잃은 채 사람들에게 비난받으면서 살거나, 아니면 악마를 이겨서 그림자를 되찾거나. 그러나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렇다면 그림자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지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그림자가 없는 세상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림자가 없는 사람(또는 사물 등 모든 것)은 물리학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즉 그림자의 부재는 과학에서 벗어난 것, 세계가 작동하는 일반 법칙에서 이탈한 것이다. 슐레밀은 그림자를 잃음으로써 세상의 보편적인 것과는 다른 존재가 된다. 그가 세상의 일반 법칙에 구속되지 않은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기에 그림자를 팔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일명 보편성, 정상성에서 벗어난 존재에게 사람들은 이질감을 느낀다. 다른 존재는 쉽게 혐오의 대상이 된다. 사회 구성원들은 슐레밀이 그림자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타자화한다. 그는 그림자를 잃고 정상성의 범주 바깥으로 옮겨짐으로써 인간 사회에서 추방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슐레밀도 자신이 이전의 죄로 인해 인간 사회로부터 차단되었”(p.118)다고 고백한다. 그렇지만 자신이 거래한 상대가 악마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으니 굳이 따지자면 그의 죄명은 무지의 죄 내지는 돌다리를 두들겨 보지 않은 죄 정도가 되지 않을까. 과연 그가 남들보다 더 큰 죄를 지었다고 할 수 있을까.


슐레밀에게 그림자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저자 역시 작품에서 돈 자체를 멀리해야 하는 대상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러니 그림자를 둘러싼 사람들의 인식이야말로 이 작품에서 돈보다도 더 중요한 포인트이지 않을까 싶다. 슐레밀은 누구보다도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웠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내 마음에는 벌써 어떤 예감이 싹트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 업적과 덕성보다 돈이 훨씬 중요할지라도 실은 그림자야말로 그런 돈보다도 훨씬 더 귀중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 P32

자, 정말 제가 누군지 모르시나요? 저는 보잘것없는 악마입니다. 탁월한 기예를 주어도 친구들로부터 배은망덕만을 되받는 학자이자 물리학자처럼 보이는 그런 악마 말입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약간의 실험을 즐기는 것 이외에는 이 지구상에서 다른 어떤 것도 즐기지 않는 악마입니다. - P75

우리는 단지 동일하게 수동적으로 작동되는 동시에 능동적으로 작동하는 수레바퀴로서 그 안에 물려 있을 뿐이지. 존재해야만 하는 것이 일어나는 것이고, 존재해야만 했던 것이 일어났던 것이며, 그러한 섭리 없이는 그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아. 마침내 내 운명에서, 그리고 내 운명을 공격하는 이들의 운명 속에서 나는 그러한 섭리의 수용을 배웠던 거야.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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