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주식회사
잭 런던 지음, 한원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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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에 집어삼켜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신념 때문에 인간을 죽이기도 한다.


사람의 선택과 행동에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치는 것은 신념이 아닐까 싶다. 신념이야말로 성격과 그 외 기타 요인을 무력화하는 강력한 도구인 것 같다. 신념으로 인해 개인이나 집단이 좋은 방향으로 이끌려지기도 하지만 신념에만 매몰되어 역사적 비극을 일으키기도 하니 말이다. 그렇기에 신념은 양면적이고 복합적이다.


암살국의 보스 이반 드라고밀로프와 조직원들은 사회 정의에 반하는 인물만 살해한다는 신념으로 조직을 운영한다. 암살국의 외부인인 윈터 홀은 그들을 도덕광이라고 평가한다. 모이면 철학 이야기를 하고 누구보다도 윤리를 중시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도덕 원칙에 따라 사회악을 제거한다는 이유로 암살이라는 범법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홀은 암살국 보스에게 암살국 보스를 암살해 달라고 의뢰한다. 드라고밀로프는 홀과의 철학적 논쟁을 펼친 뒤 자신을 암살하는 게 옳다고 여겨 암살 의뢰를 수락한다. 홀은 드라고밀로프가 죽지 않길 바랐으나 드라고밀로프는 들어온 의뢰는 철회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깰 수 없다며 조직원들에게 자기를 암살하라고 지시한다. 쫓고 쫓기는 추격 속에서도 그들은 철학을 내려놓지 않는다. 윤리라는 그들의 목적과 신념이 그들을 폭력의 사이클로 몰아넣었음에도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드라고밀로프는 윤리라는 신념 때문에 암살국을 이끌어 왔지만 결국 그 화살은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그는 신념에 속박되어 있어서 자기 자신마저도 죽일 수 있는 인물이다. 선을 추구하다가 악을 저지르고 다시 악을 선의 논리로 정당화하지만, 선과 악 사이의 틈바구니에서 죽음으로 내몰린다. 선과 악, 정의와 불의의 사이에서 삶과 죽음이 교차한다. 그들의 신념에 따른 행동은 선악의 이분법을 작위적인 것으로 만든다. 하지만 끝내 한계에 다다르고 해묵은 질문을 다시 끄집어낸다. 그래서 윤리란 무엇이고, 윤리를 어떻게 실현해야 할까, 윤리를 실현한다는 게 가능은 할까.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법의 테두리 밖에서 활동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가장 엄격한 정직의 잣대가 필요해. 그게 없으면 파멸에 이르고 말 거야. - P21

우리는 계약을 파기하지 않습니다. 한 번도 파기한 적 없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가 한 말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면, 그 말이 세상을 지탱하는 뼈대처럼 단단하지 않다면, 삶에는 아무 희망이 없을 것이며, 본질이니 거짓이니 만물이 혼돈으로 곤두박질칠 겁니다. 우리는 이런 거짓을 부정합니다. 우리는 내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다는 걸 관철시키기 위해 행동으로 증명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동지들? - P189

누구에게나 살기 위해 싸우려는 본능이 있어. 하지만 갖은 이유로 정당화하는, 죽음에 대한 갈망도 숨어 있어. 우리는 그저 당신의 묘한 아버지의 삶에서 무엇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지켜보는 수밖에. - P229

구원은 우리가 내놓을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도덕에서 비롯돼야만 한다. 점점 커지는 세상의 도덕성 그 자체에서 비롯돼야 한다. -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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