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으로 다시 쓰는 옛이야기
지현 외 지음 / 이프북스(IFBOOKS) / 2020년 7월
평점 :
품절


페미니즘 책은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와 <헝거>가 전부다. 전자는 이동진의 추천 500권 리스트에 있었기 때문에 읽었고, 두 번째 책은 그 첫 번째 책이 너무 좋아서 출간하자마자 바로 구매해서 읽었는데 전자보다 더 개인적이고 고통스러운 부분이 많아 읽으면서 조금 힘들었다.



페미니즘에 대해서 누군가 추천해달라고 하면 단연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어딘가 뒤틀려지기 시작하고 일부 극단적으로 흐르는 페미니즘 문제에 대해 잘 인지하고 있고, 아울러 이 '운동' 역시 역사가 짧고 그간 억눌렸던 무언가가 터져나와 여러가지 잡음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페미니즘의 진정한 의미와 필요성에 대해, 작가의 개인사와 더불어 말하고 있다. 매우 좋은 책이고, 나도 록산 게이가 말하는 페미니즘 정의에 동의한다.



페미니즘이란 결국, 여자와 남자는 동일한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다 - 라는 것을 말하는 정신이다. 어느 한쪽이 더 우월하다 아니다가 아니라. 





서평단 모집에 당첨되서 받게 된 책, <페미니즘으로 다시 쓰는 옛 이야기>.



일단 우리나라 책이라는 점에서 흥미가 갔고, 무엇보다 나는 전래 동화, 구전, 신화를 워낙 좋아해서 우리나라의 옛 이야기를, 그리고 페미니즘으로 재구성했다는 책 컨셉도 마음에 들었다. 신화나 동화도 현재 유통되고 있는 전체관람가 어린이 버젼과 원작인 성인 버젼, 영화 만화 드라마 등 다양한 미디어 버젼들이 있는 만큼 우리나라 동화들을 페미니즘 시각으로 재구성한다는 점이 신선했다. 




책 디자인이 특이하다. 


마치 조선시대 책 마냥 옆이 이렇게 되어 있다. 

그런 의도든 아니든, 어울린다. 



작가 4명이 4가지 이야기 - 콩쥐팥쥐, 홍길동, 구미호,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 - 를 다루고 있고, 작품이 끝난 다음에 작가들이 각자 해당 이야기를 쓰게 된 이유와 해석이 곁들어져 있다. 마지막에 부록으로 단군신화 논문에서 페미니즘 시각에서 논의한 부분만 일부 편집되어 실려있다.  



콩쥐팥쥐는 <신콩쥐팥쥐>,

홍길동전은 홍길동과 오누이 힘겨루기라는 우리나라 동화를 합쳐 <홍길영전>, 

구미호는 유일하게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꼬리가 아홉인 이야기>,

선녀와 나무꾼은 그 둘의 장녀 입장에서 쓴 연극 대본, <하늘 재판극>.



다 좋았는데, 더 좋았던 부분은 옛 이야기들 뒤에 나오는 작가들 개개인이 쓴 분석 글들이었다. 몰랐던 사실도 알고 배울 부분도 많았다. 만약 강의를 한다면 한번 찾아가고 싶을 정도로 우리나라 동화, 역사 지식과 어그러지지 않은 페미니즘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신콩쥐팥쥐>


콩쥐가 동양미 삼백석에 빠져 용왕 만나고 임금님하고 결혼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시집 온 뺑덕 엄마랑 팥쥐랑 잘 지내면서 나중에 시집도 가고 애도 낳는 이야기다. 판타지가 사라진 콩쥐가 실존 인물이었다면 정말 이런 결혼을 해서 그런 남편을 만나고 그렇게 자식을 낳아 살았을 것 같다. 



특히 좋았던 부분은 새엄마와 팥쥐와 잘 지내는 콩쥐 이야기. 작가의 분석 글 덕분에 처음으로 왜 뺑덕엄마와 팥쥐가 재혼을 - 그것도 가진 것 없고 돈도 못 벌고 가난한 장님 남자랑 결혼을 해야 했나 생각해 봤다. 작가 말처럼 당시 시대에는 여자 혼자, 그것도 애가 있는 여자가 혼자 사는데는 여러가지 어려움이 많으니 가진 것 없는 장님 남자라도 일단 여자라면 무조건 남자와 함께 해야 한다는 시대적 한계가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에 공감이 갔다. 마지막에 그렇게 홀로 있는 여자들의 공동체가 꾸려지는 부분도 좋았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의지하고 기생하는 게 아니라 서로 공존하고 도와주는 관계가 형성된다는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



한 가지 의문스러웠던 점은, 작가가 어렸을 때 읽었던 콩쥐팥쥐에는 팥쥐가 젓갈로 담가지는 결말이 있었다고 하는데 - 그걸 정말 어렸을 때 읽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왜냐하면 아이들 버전에는 젓갈로 담가지는 결말로 책이 출판되었을 것 같지 않아서. ...아니면 작가가 아이였을 때 콩쥐팥쥐의 다양한 버젼들을 찾아 읽다가 우연히 연령대에 걸맞지 않는 엔딩을 읽게 된 건가. 그랬다면 마치 신델레라 원본에서 계모가 실제로 자신의 친딸들의 발뒤꿈치와 엄지를 가위로 도려내서 피 철철 구두를 신게 한 원본 스토리처럼 충격적이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작가가 언급한 그 순결 지키기 은장도 말인데, 맞다. 작가의 의문처럼 “저렇게 짧아서 과연 자살이 될까?”처럼 실제로 은장도는 자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서 무용지물이었다고 알고 있다. 마치 손톱깍기로 자살하겠다고 소리지르는 거랑 똑같았다고 해야 하나. 남자 위협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하고. 예전에 나도 궁금해서 과연 그 옛날에 진짜 은장도로 자살할 수 있었나 알아봤었는데, 물론 목이나 손목에 찌르거나 그어버리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지만 날이 짧고 날카롭지 않아서 진짜 죽으려고 해도 굉장히 힘들게 힘들게 힘들게 죽거나 - 죽고 싶어도 못 죽었다고 한다. 





<홍길영전>



홍길동과 그 누나, 엄마의 이야기. 우리가 익히 아는 홍길동 이야기와 처음 알게 된 <오누이 힘 겨루기>라는 우리나라 전래 동화를 혼합시켜 만든 이야기, 홍길영전. 어, 나는 그래도 전래동화라면 어지간히(?) 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오누이 힘 겨루기>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그리고 홍길동전도 <아기 장수>라는 이야기에서 발전된 스토리라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됐다. 아 그럴 수 있지. 오호 재밌다.



흥미로웠던 점은 <오누이 힘겨루기>에도 다양한 버젼들이 존재하는데 마지막에 늘 딸이나 엄마가 죽는 이야기였다는 점이다. 그런 부분에서 작가의 말처럼 정말 시대적 정신의 한계라는 점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남녀 힘 대결이라는 요소를 민담에서 처음 봐서 개인적으로 한번 찾아보고 싶다.



한가지 의아했던 부분은, 아들 홍길동에게 무쇠 신발을 신겨서 한양까지 걸어 갔다 오게 한 미션. 원작 <오누이 힘 겨루기>를 안 읽어봐서 세세한 내용은 모르겠는데 그렇게 살이 벗겨지고 무를 정도로 아픈 신발을 발자국을 남겨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고향에서 한양까지 왕복한다는 컨셉은 - 흥미진진하기는 한데 한편으로는 사기 치기 너무 쉬운 미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내가 너무 어른의 때가 묻은건가). 난 중간에 홍길동이 사기 칠 줄 알았는데 진짜 끝까지 그 신발을 신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 갔다와서 놀랐음. 그런데 마을 안에 들어와서도 쿵쿵쿵 소리나게 그 신발을 여전히 신고 돌아다니는 건 좀 미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미련하기 이전에 일단 아프잖아. 그리고 사또가 그 소리를 다 듣잖아. 공포감 조성으로 일부러 쿵쿵쿵 소리를 내는 거라면 이해라도 되는데 그것도 아니면서... 살점이 떨어질 정도로 아프다면서 왜 이미 다 도착한 마을 안에서 신발 안 벗어?




<꼬리가 아홉인 이야기>



유일하게 현대를 배경으로 쓴 이야기. 구미호가 그 꼬리 아홉 달린 구미호가 아니라 새로운 의미를 담아 썼는데, 스포일러가 될까봐 여기 못 쓰겠네. 구미호의 정체성을 이렇게 재해석한 부분이 신선했다. 그리고 읽으면서 가장 읽기 힘들고 불편했다.  진짜 이런 일들이 과거에도 현재에도 많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작가가 이문열의 소설 <아가>를 읽으면서 “토할 것 같았다”라고 말했는데, 나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거북하다고 느꼈던 책이 바로 <무진기행>으로 유명한 김승옥이 쓴 단편소설 <건乾>이였다. 여기서 주인공 남자 소년이 마을에서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여동생하고만 사는 착하고 예쁜 누나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어느 날 주인공 형과 형 친구들이 이 소녀를 멀리서 보면서 “야 우리 쟤 먹을래”라고 말하고 소년을 불러 네가 저 여자애에게 가서 오늘 밤 어디 어디에 나오라고, 꼭 혼자 오라고 말하라고 심부름을 시킨다. 주인공 소년은 그 뜻이 뭔지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면서 그 심부름을 행동으로 옮기고, 이상야릇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가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김승옥이 글을 잘 쓴다는 건 알고 있지만, 정말 너무 잘 써서 읽으면서 기분 더러워지는 스토리다. 



<하늘 재판 극>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 특이하게도 연극이다. 좋았다. 선녀와 나무꾼이 동화에서 나오듯이 마지막에 헤어졌는데, 이후 이 둘의 세 자녀 중 장녀인 ‘마야’가 아버지와 할머니랑 사슴을 고소에서 하늘나라에서 열리는 재판 과정을 담고 있다. 어머니 선녀는 아파서 누워 있기만 하고, 나무꾼은 새 장가를 들었고, 할머니랑 사슴은 증인으로 재판장에 온 사실 하나만으로 잔뜩 화가 나 있다. 재미있었다. 결말이 어찌 되나 너무너무 궁금했는데... 아 이런 오픈 엔딩으로 만드시다니.



작가가 피해여성센터에서 일하는 경력을 바탕으로 글을 써서 자녀 입장에서 겪는 가정 불화의 트라우마 심리가 잘 묘사되어 있다. 사슴이 사투리 쓰는 점만 빼고 다 좋았다. 성차별 인식에 대한 글이라면 특정 사투리를 악역인 사슴이 쓰는 것 역시 특정 차별 인식을 불러들일 수 있으니(더군다나 우리나라는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도 지역 감정이 심각한 나라잖아요) 그냥 다 깔끔하게 서울말 쓰는 게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부록 - 단군신화 논문 일부분>



와아. 이런 식으로도 단군 신화를 해석할 수 있구나. 오호. 책에서는 페미니즘 부분만 편집되어서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이 논문 전체를 한번 읽어보고 싶다. 나는 우리나라 단군신화가 그리스로마신화처럼 대중화되지 않은 게 안타까운 사람이라.... 그런 면에서 주민호의 <신과 함께>는 정말 여러가지면에서 수작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저자의 해석에는 - 곰과 호랑이가 왜 꼭(?) 여자 인간이였는지에 대한 해석에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구나, 라는 하나의 의견으로 존중은 하지만 그 의견에 공감이 되지는 않았다. 나는 그저 단순히, 그저 당신 곰을 섬기는 부족과 호랑이를 섬기는 부족이 있었는데 그 둘이 싸우다가 결국 곰족이 이겼다는 대중적인 해석에 더 공감하는 쪽이다. 물론 왜 신은 꼭 남자여야 하냐, 라고 질문을 던질 수 있지만 일단 과거에는 어쨌든 남성중심 사회였으니까. 제우스가 그렇게 바람둥이 신이 된 것도 진짜 바람둥이라서가 아니라 왕들과 귀족들이 ‘우리도 신의 자식이다’라는 걸 내세워 신성미를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에 자신의 아내와 딸들을 모두 제우스와 맺어지는 이야기를 만들어서라는 해석이 있지 않나. 그런 역사의 흐름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되어서, 비록 저자의 단군 신화 해석은 배울 점이 많았지만 같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진정한 페미니즘이란 결국, 여자와 남자는 동일한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다 - 라는 것을 말하는 정신이라고 믿는다.



왜 여남이 아니고 남녀냐, 왜 허스토리가 아니라 히스토리냐, 왜 군대 안 가고 왜 애 안 낳냐 - 라고 싸우는 게 아니라, 이러한 차이점들을 확고히 인지하고 논의하는 건 중요하지만 그 차이를 문제 삼아 서로 공격하면서 누가 더 우월한 성이라고 따지는 건 페미니즘 정신이 아니다. 과거에는 분명 남성 중심으로 사회가 흘러가는 부분이 있었지만(심지어 여자가 무대에 설 수 없어서 남자가 여장을 하기도 하지 않았나) 그 모든 건 역사의 일부이고, 이제는 단순히 피부 색깔이 다르다고 해서 사람을 동물원에 넣고 전시하거나, 아이들을 노동 인력으로 사용하고, 여자라고 투표를 할 수 없고 42.195km 올림픽 마라톤을 출전을 할 수 없다고 막는 세상이 아니다.



페미니즘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는 내 입장에서 간혹 페미니즘이라고 주장하며 여기저기 떠드는 '과격 페미니스트'들을 보면 그건 페미니즘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여자가 남자보다 잘났어, 라고 말하는 정신이 패미니즘이 아닌데. 오히려 페미니즘이 정확히 뭔지도 모르고 그냥 무조건 남자가 나쁘다며 또다른 차별을 낳는 일부 사람들을 보면, 마치 종교가 달라서 사람 죽이는 게 당연하다는 테러리스트들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페미니즘이라고 하면 무조건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생기는 건데.



이러저러해도 결국 인류는 조금씩 더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고, 페미니즘도 처음 인종 차별 운동이 일어났던 것처럼, 아동 권리 운동이 일어났던 것처럼, 여자 투표권과 마라톤 출전권이 인정되었던 것처럼, 조금씩 더 좋은 방향으로 흐르기 위한 정신 중 하나라고 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계 경제가 만만해지는 책 - 새로운 세상을 이해하는 뉴노멀 경제학
랜디 찰스 에핑 지음, 이가영 옮김 / 어크로스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실 이 책은 출간 전 연재 이벤트로 받은 책이라, 서평 의무가 없다. 그런데 너무 좋아서 서평 남기려고. 별 5개에 5개 만점. 정말 세계 경제가 한번에 이해된다.

영화 <빅 쇼트>가 이해 안 가 중간에 좌절하고, TV 영화 <브렉시트>를 보면서 언론 캠페인 전략은 알겠는데 경제 이야기 하나로 유럽에서 나가는 국민투표 결과를 더 잘 이해하고 싶다면, 그리고 무엇보다, 세계 뉴스 보면서, 정치, 경제 뉴스가 이해가 되다가도 안되는 나같은 사람이라면 - 이 책은 대만족할 듯. 만약 나에게 아이가 있다면 아이와 함께 한 장씩 읽으면서 같이 공부할 것 같다. 부모도 공부하고 아이도 공부하고.

...오죽하면 출판사를 외워버렸다. 너무 마음에 들어서.

예일대 출신 작가가 자신이 학생 시절 예일대 교수한테 경제 관련 질문하다가 짜증나서 (아니 환율에 대해 물으면 간단하게 대답해주면 될 걸 왜 빙빙 돌리면서 그래프만 그리는거야 - 그리고 결국 내 질문에는 대답 안했잖아!) 경제 문제에 대해 자신처럼 답답할 사람 많을 것 같아 알아듣기 쉽게 글을 썼다고 하는데 - 정말 알아듣기 쉽게 썼다.


번역도 매우 잘 되어 있다.

(딱 한군데만 걸리는데, 이게 작가의 시니컬리즘이 가미된건지, 번역의 실수인지, 내 무지인지 - 아마도 내 무지가 답일 테지만. 누가 설명할 수 있음 해줘요.)

그리고 책 끝에 우리나라 출판사들이 많이 하는, 번역자의 후기가 없어서 좋았다. 물론 이 책은 경제 서적이니 문학 서적과 달라 그런 걸 수도 있지만 - 내가 여태까지 번역자 후기 중에 덕을 본 케이스는 <피로사회> 한 권밖에 없었다. 대체 왜 우리나라는 왜 번역가가 책 끝에 후기를 쓰는거지? 외국의 경우 외국 서적을 번역한 사람이 책 말미에 자신의 후기가 있는 경우는 (적어도 내가 읽어 본 책에서는) 없다.


요기, 요 위 사진이 유일하게 걸리는 번역 부분.

적자/적자 지출에 대한 부분인데, "믿기 힘들 만큼 즐거운 일"????? 일단 적자라는 건 어떤 경우든 안 좋은 거 아닌가? 그래서 적자 지출을 한다는 건 이미 돈이 없는데 마이너스 통장마냥 막 더 쓰는 상황을 말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왜 "믿기 힘들 만큼 즐거운 일"이지.

작가의 시니컬리즘인가, 번역 미스인가, 나의 무지인가.

...나의 무지일 가능성이 크니, 누가 잘 아는 사람이 설명해주면 좋겠다.



저자는 랜디 찰스 에핑.

이렇게 쉽게 경제 설명해 주는 책은 오랜만이다.

책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내가 평소에 궁금해하고 인터넷과 뉴스를 왔다갔다하며 머리가 아팠던 것들을 다 해결해주었다.

특히 브렉시트 부분과 기후 변화 관련 뉴딜 정책들.

어째 우리나라 그린뉴딜은 기후 변화에 초점이 맞춰지기보다는 디지털 변화에 더 중점을 둔 분위기이긴 하지만.


목차가 아주 훌륭함.

물론 경제에 대해서, 세계 경제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들은 나처럼 감탄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 책 직접 사서 막 선물하고 싶더라.



게다가 편집에도 상당히 신경 썼다는 게 느껴지는 게, 깔끔한 표지와 띠지도 그렇지만

이렇게 원본에서는 모두 책 뒤에 묶여 있는 경제 용어들을 한국 사정에 맞게, 한국 독자들에 더 걸맞게 장마다 바로 뒤에 재편집하고, 그리고 책 말미에는 이 단어들을 쉽게 찾을 수 있게 따로 단어 리스트를 넣은 것도 마음에 들었다.




실제로 나도 읽으면서 계속 왔다갔다 하면서 읽었고.

도움이 많이 되었다.



역시나 진짜 똑똑한 사람들은

어려운 것도 쉽게 설명할 수 있고,

쉬운 건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주는 사람들 같다.

작가랑 출판사 기억해 놨다가 여기서 나오는 책들을 유심히 봐야 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뉴노멀, 한 달 살기 크로아티아 한 달 살기 시리즈
조대현.이라암 지음 / 나우출판사 / 2020년 7월
평점 :
절판



발칸 반도 서부 아드리아해 근처에 있는 나라, 크로아티아. 나우 출판사에서 나오는 외국 여행 한 달 살기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첫 번째로 받은 책(한달 살기 가이드북, 유럽과 동남아시아)에서 실망을 해서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번 책은 좋다. 책 서문 부분에 나오는 크로아티아같지 않게 나온 지도 딱 한 장만 빼고.


전반적으로 정리가 잘 되어 있고, 만약 크로아티아를 여행한다면 추천하고 싶을 정도로 여러모로 유용한 정보가 많다. 무엇보다, 일단 적어도 전반적인 편집 전개 과정에 일관성이 있다.



동유럽을 갔다 온 친구들은 모두 유럽하면 동유럽이라고 하지만, 나는 발칸 반도는 화약고라는 이미지가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어 크로아티아뿐만 아니라 동유럽, 특히 발칸 반도를 여행하는 게 망설여졌다. 하지만 책을 보고 나니 아, 그래도 요즘은, 그래도 조금은 (그래도 예전보다는) 치안이 괜찮아지지 않았을까 - 하는 생각이 들더라.

크로아티아 가고 싶어졌다.



목차에서도 보여지듯이, 한눈에 봐도 크로아티아에 대해 정리가 잘 되어 있고 한 달 살기를 하기 위해 갖춰야 할 마음가짐을 비롯해 실질적으로 필요한 정보들 - 보험, 숙소, 시장/마트, 교통편 등 - 을 비롯해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나라뿐만 아니라 도시별로도 상당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래서 비록 제목처럼 한 달 살기를 하지 않아도, 1주일만 있든 1년을 있든 이 책 하나만 있으면 든든할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목차 마지막에는 크로아티아와 가장 근접한 국가 중 하나인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 대한 찹터도 짧게 있다.


아마도 크로아티아가 길게 뻗어 있는 부분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가장 맞닿아 있는 부분이 많아 삽입한 모양이다.




이 책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지도 부분.

크로아티아 관련 책이고 책 시작 부분(14, 15쪽)인데, 그래서 크로아티아 지도가 나오는 첫 부분인데 그 지도 사진이 - 저렇다. 물론 지도 자체에는 잘못된 게 아니다. 크로아티아는 실제로 저렇게 생겼고 길게 쭈욱 아래로 떨어져 좌악 이어지는 부분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맞닿아 있다.

그런데 그냥 딱 보면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밖에 보이지 않나?

크로아티아라는 나라를 보여주려면 적어도 크로아티아라고 글자로 쓰던지, 아니면 색깔을 조금 더 강하게 달리해서 다른 나라와 확실한 차별 점을 두었을 것 같다. 아니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라는 글자를 조금 더 작게 했으면 좋았을텐데.


유용한 정보가 매우 많다.

위에 이미 언급했듯이 한 달 살기가 아니라 그 이상이여도 이 책 한권이면 충분하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저렇게 도시 여러 곳을 일정에 따라 다양한 일정과 루트로 갈 수 있는 추천 포인트가 있다는 점이었다.

...지도는, 위 오른쪽 아래 사진처럼, 저렇게 색깔로 아예 나누어


다르게 했다면 더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일단 크로아티아 여행 계획이 있는 사람이라면 추천. 추천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 달 살기 가이드북 - 2020~2021 최신판 한 달 살기 시리즈
조대현.신영아 지음 / 나우출판사 / 202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책 제목을 확인한 순간부터 살짝 불안했었다. 한 달 살기 외국편이라는 아이디어는 좋은데, 그 한 권에 유럽과 동남아시아를 묶어버리다니. 나라 하나만 해도, 심지어 도시 하나만 해도 한 달 살기로 책 한 권이면 벅찰텐데 특정 국가도 아니고 유럽과 동남아시아라는 전혀 다른 두 대륙을 함께 묶어버리다니.


아무리 글을 잘 써도, 아무리 내용이 풍부해도, 아 아무리 그래도. 어딘가 벅찬 컨셉의 여행 책이다.



그리고 표지가... 저 동상이 나도 모르는, 굉장히 유명한 동상인지도 모르지만(만약에 그렇다면 미안합니다) - 그래서 오드리 햅번이 아이스크림 먹었던 그 분수대처럼 무언가 굉장히 의미있는 장소이고 상징성이 있는 동상일지도 모르지만 - 한 달 살기 컨셉, 게다가 유럽과 동남아시아를 다루는 여행 책자라는 점에서는.... 그다지 어울리는 표지 사진으로는... 글쎄. 적어도 여행 책을 자주 구매했던 구독자 입장에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목차도 자세히 보면 헷갈린다.

작가가 두 명이라 그런건지, 아니면 애당초 이 출판사의 편집부가 그냥 작가 개개인에게 특수한 작성 가이드라인을 주지 않고 그냥 그 두 명이 쓴 글을 넘겨 받은 후 자신들이 쓴 책 intro 부분에 모든 한 달 살기 여행 책자 시리즈에 들어가는 글을 넣고 다른 것도 그냥 자체 편집을 하겠다고 한 건지 모르겠지만 - 왜냐하면 이 출판사로부터 이 책과 더불어 크로아티아 한 달 살기 책자를 한 권 더 함께 받았는데, 그 책 intro 부분에도 똑같은 글이 있다. 물론 한 달 살기 시리즈 중 한권이니까 이 부분은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 - 그런데 이 intro에 실린 글을 시리즈에 들어가는 공통적인 글이라고 하기에는 좀 너무하다 생각이 드는 게, 이 책에서 바로 다음 장, 새로운 장에 앞에 intro에 썼던 글 중 두 문단이 그대로 똑같이 복사+붙이기해서 들어가 있다. ...으음.


이 외에도 그냥 목차만 봐도 (그리고 나중에 내용을 읽어도) 무언가 2가지 다른 형식으로 글이 써져 있고 이게 교집합 편집 - 그러니까 일관적인 편집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냥 교차 편집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목차뿐만 아니라 나중에 읽을 때도 여행 세부 국가, 도시 하나하나는 정보가 넘칠지 모르지만, 전체적으로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증거로 저 위에 있는 오른쪽 사진의 <동남아시아> 섹션을 봐주기를. <동남아시아> 밑에 소제목도 없이 바로 태국 치앙마이와 인도네시아 발리가 있고, 그 바로 밑에 같은 장에서 치앙마이 한달 살기와 발리 한달 살기가 있는 반면, 바로 그 다음에 나오는 큰 제목으로 베트남 호이안이 한 장을 차지하고 그 다음에는 태국 끄라비가 또 큰 장을 하나 차지한다.



...띄어쓰기 잘못된 곳도 몇 군데 발견했다. 예를 들어 발 띄우고 리. 이런 식으로 편집이 되어 있는 곳이 있다.

그리고... 물론 '요즈음'이 맞춤법이 틀린 단어가 아니라는 건 안다. 그런데 '요즈음' 보다는, '요즘'이라고 더 많이 사용하지 않나요?



위에 보이는 4장의 사진들 중 윗 칸의 2장이 바로 아까 말한 ‘복사+붙이기’식 문단 2개가 있는 장들.

그런데 그런 말들 외에도 똑같은 내용이 계속 발견된다. 작가 2명과 편집부의, 도합 3가지 서문 형식이 비슷한 내용으로 - 왜 한달 여행을 준비해야 하는가, 어떤 마음으로 준비해야 하는가를 다루는 서문에 해당하는 부분에 거의 같은 내용이 A-B-C 형식으로 반복된다. 그런 ‘시작 단계’의 내용이 이 책의 1/5을 차지한다. 아랫줄 오른쪽 사진에서 내가 마크를 해놨듯이, 저렇게 많다.

소설처럼 처음부터 주욱- 읽으면 왜 비슷한 말을 또하고 또하는지, 여행 시작하기 전부터 헷갈린다. ...선택적으로 읽는다면 이런 헷갈림은 없겠지만, 일반적으로 여행 시작 전 서문에 해당되는 부분은 처음부터 주욱 읽지 않나 싶어서 이런 형식의 편집을 한 출판사가 좀 아쉽다.

그 1/5에 해당하는 여행 전 마음가짐에 대한 글들 중 ‘편하게 입고 다니자’는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당연히 한달이나 살 계획이니 편안하게 입고 다녀야 겠지만, 어떤 식당이나 공연장에는 반드시 정장을 입어야만 입장이 가능한, 알맞은 장소가 있다. 그래서 나는 장기 여행을 할 때 반드시 정장 하나와 구두 하나를 꼭 여행 가방에 넣고 떠난다. 이런 부분도 여행 tip으로 써 놓았으면 더 좋았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좋은 점도 물론 존재한다.

계속 언급했던 부분이지만, 여행 전 서문 부분 마음가짐에 해당하는 책의 1/5부분을 제외하고 여행하는 데 실질적으로 필요한 준비과정이나 현지에서 필요한 주요 정보들은 잘 되어 있다.

위 이미지에서도 보여지듯이 현실적인 비용 산출 과정, 한달 준비를 위해 단계적으로 거쳐야 하는 부분들 - 현지에 도착해서 할 수 있는 일들과 정보들은 활용하기 수월하다.

…그러나 여전히, 아무리 생각해도 유럽과 동남아시아를 한 권에 묶은 건 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확실하지 않지만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결과 아무리 생각해도 작가 2명이 모두 유럽과 동남아시아를 모두 다룬 후 그 내용을 그냥 대륙간으로 편집 일관성 없이 묶은 것 같은데, 그렇게 작가를 묶지 말고 그냥 대륙별로 따로 책으로 나누어 책 한 권이 아니라 두 권으로 나누어 출판하는게, 작가들에게도, 한 달살기를 외국에서 하려는 독자들에게도 더 효율적인 여행 가이드북이 되었을 거라 생각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비투스 - 인간의 품격을 결정하는 7가지 자본
도리스 메르틴 지음, 배명자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8월
평점 :
절판


노진구는 왜 영민이랑 놀지 않을까.

(캐릭터가 늦게 나온 팩트는 논외로 치고) 왜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자신에게 친절하고 힘들 때 도와주는 영민이랑 놀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늘 괴롭히고 때리고 무시하는 퉁퉁이와 비실이와만 어울리는 걸까? 늘 궁금했다. 도라에몽이 온 미래에서 노진구는 퉁퉁이의 여동생과 결혼을 했고(그래서 망했고), 그래서 노진구의 후대손이 보내준 미래 로봇 도라에몽은 이런 노진구와 노진구의 후손을 구하기(?) 위해 이슬이와 결혼하는 미래를 만들려 고군분투한다. 그리고 그 결과 노진구는 이슬이와 결혼하게 된다. 하지만 미래는 늘 변할 수 있다고 한 도라에몽의 말처럼, 이슬이가 노진구가 아닌 영민이와 결혼하는 미래도 존재한다.



크랩 멘털리티(crab mentality).

상류층이 가지고 있는, 상류층에 가기 위해 가지고 있어야 할 7가지 아비투스(나는 간단하게 '특질'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저자는 이를 "타인과 나를 구별 짓는 취향, 습관, 아우라", "사회문화적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제2의 본성", "계층 및 사회적 지위의 결과이자 표현"이라고 칭한다)를 이야기하는 이 책에서, 상류층이 가지고 있고 상류층에 가기 위해 가지고 있어야 할(없으면 개발해야 하고 개발할 수 있다고 저자가 주장하는) 그 7가지 아비투스를 말하기 전에, "크랩 멘털리티"는 정확히 이 책의 시작과 끝, (서문과 8장 사회자본 아비투스에서) 2번 나온다. 그만큼 중요하다.





어부들은 게(크랩)를 잡으면 그냥 바구니에 넣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그 이유는 게들은 바구니에서 빠져나오려고 서로 밟고 끌어내리는 통에 결국 아무도 바구니에서 못 나온다고. 그래서 어부들은 아무 장치 없이도 쉽게 게를 잡을 수 있다고 한다. 크랩 멘털리티는 이런 심리 현상을 말한다. 어차피 못 올라가게 될 나무에 누군가 조금이라도 올라가는 낌새가 보이면 같이 끌어내리는 습성. 그리고 어차피 내가 못 올라갈 바에야 스트레스 받느니 그냥 같이 못 올라갈 사람들과 어울리겠다는 마인드. 저자 역시 7가지 아비투스의 부족이나 결핍보다는 이 크랩 멘털리티를 상류층 진입 장벽으로 가장 경계한다.



저자가 언급하는 상류층과 그들이 가지고 있는 7가지 아비투스, 그리고 상류층인 아닌 우리들도 그 7가지 아비투스를 익히면 연마하면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는 그 7가지 아비투스는 다음과 같다.

1. 심리 자본 - 어떻게 생각하고, 어디까지 상상하는가

2. 문화 자본 - 인생에서 무엇을 즐기는가

3. 지식 자본 - 무엇을 할 수 있는가

4. 경제 자본 - 얼마나 가졌는가

5. 신체 자본 - 어떻게 입고, 걷고, 관리하는가

6. 언어 자본 - 어떻게 말하는가

7. 사회 자본 - 누구와 어울리는가




각 장마다 해당 아비투스에 대한 설명과, 그 아비투스를 갖기 위해 훈련할 수 있는 방안과, 그리고 마지막에 관련 분야의 전문가의 Q&A 인터뷰가 3장 정도 실려있다.

내가 가장 관심있게 본 아비투스는 1번, 5번, 7번 - 심리 자본, 신체 자본, 사회 자본이었지만, 각 아비투스에 대해 주요점만 정리하겠다.




첫 번째 아비투스. 심리 자본 - 어떻게 생각하고, 어디까지 상상하는가

“낙관주의, 열정, 상상력, 끈기. 잠재력을 온전히 실현하느냐 아니면 중간 수준에 머물게 하느냐는 심리적 안정감에 달려 있다.”

내가 가장 집중해서 본 챕터이기도 하다. 사실 ‘머리’는 어느 선에 가면 아인슈타인이 아닌 이상 다 비슷비슷하다. 다 비슷하게 똑똑하고, 비슷한 학교를 나왔고 비슷한 외국어와 인턴십, 학교 외 활동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내가 가장 관심 있게 본 자본은 바로 ‘심리 자본’이었다. 왜 똑같은 고통을 겪었을 때 누구는 좌절해서 나가 떨어지는데 누구는 금방 툭툭 털고 일어나는지, 그 차이가 궁금했다.

여기서는 그 차이가 바로 상류층의 7가지 아비투스인 ‘심리 자본’이고, 여기에 속하는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심리자본을 단련하고, 낙관적 사고방식을 발달시키고, 자아를 통제하며 역경을 견디는 연습”을 배운다고 써있다. 다시 말해 “회복탄력성의 중요성”을 상류층은 몸에 벨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고 그것을 터득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스포츠 정신, 자제력, 탄력성, 수용력 같은 성격 강화가 전문 지식 습득보다 더 중요하다. 미래의 엘리트들은 비가 오나 바람이 부다 운동을 하고, 엄격한 규칙을 따르고, 스파르타식 생활을 하며, 어려운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배우고, 역경을 견디고 인내하는 법을 익힌다. 고된 학교 생활을 저항력을 키우고 재산, 저택, 회사를 잃었을 때 이겨내는 아비투스를 형성한다.”

여기서 저자는, 이러한 강하고도 유연한, 넘어져도 일어나는 오뚜기 정신 훈련의 심리 자본 아비투스가 없는 비상류층인 우리들에게 “긴장을 드러내지 말고 불평하지 말라”며 7가지를 제안한다. ...그런데 그 말들이 모두 다 현실적이고 팩트에 기반한 좋은 조언들인 건 알지만, 이런 상류층 심리 자본이 없는, 크랩 멘터리티로 가득한 집안과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과연 저자가 말한 심리 자본 단련/훈련이 가능할지 의문이 든다.




두 번째 아비투스. 문화 자본 - 인생에서 무엇을 즐기는가.

“선망과 존중을 받는 코드와 취향. 몸에 밴 고급문화와 탁월한 사교술이 고전적 문화자본이라면 주의 깊고 한결같은 생활양식 혹은 용기 있는 기행과 개별성이 새로운 트렌드의 문화자본이다.”

예상했던 것과 달리 저자는 문화 자본이 7가지 아비투스 중 가장 갖기 어려운 자본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상류층은 취향은 드러내되 거기에 많은 돈을 쓰지 않고, 지위에 따라 문화 취향이라는 것이 결정되기 때문에 그 환경에 놓여 있지 않은 사람은 당연히 그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건 그냥 나만의 비유지만, 1,000권이 넘는 서재가 있는 집에서 자라난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집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나마 그런 “상류층” 환경에서 자라나지 않은 아이들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책을 좋아하고 함께 독서를 즐기며 주말마다 도서관에 함께 가는 부모를 두는 것 뿐일거다.

예술, 외국어, 스포츠 취향 뿐만 아니라 격식과 무례함 또한 이 문화 자본 범주에 들어간다. 식습관도 당연히 들어간다. 책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젓가락질을 보면 그 사람이 어느 사회 계층에 속해 있는지 알 수 있다.




세 번째 아비투스. 지식 자본 -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졸업장, 학위, 전문 지식, 경력, 학술 및 기능 자격증, 자신의 지식과 역량으로 어떤 일을 해내는 능력.”

내가 여기서 포커스를 둔 부분은 졸업장, 학위, 전문 지식이 아니라, “자신의 지식과 연략으로 어떤 일을 해내는 능력”이다. 말장난 같아 보이는데 그렇지 않다. 저자도 졸업장은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한다. 당연하다. 어차피 어딘가를 가면 아인슈타인급 머리는 거의 없다. 다 거기서 거기다. 그래서 필요한 건 너나 나나 다 가지고 있는 그 졸업장이 아니라 그 졸업장 플러스 알파같은, 다른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 나는 저자가 다른 사람들처럼 졸업장, 전문지식 같은 것만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그 이상의 것을 이야기해서 좋았고 반가웠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좌절했다. 애초 상류층이 아닌 나에게 그런 “플러스 알파”를 몸에 익히는 게 저자의 생각과는 달리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모두가 교육과 전문성이 최고라고 말한다. 그러나 큰 도약을 하려면 다른 요소가 중요하다. 성격, 몸에 밴 분위기, 대담함, 여기에 더하여 올바른 사람들과의 친분, 최신 화제를 알면 가장 좋다. (...)

전문 지식은 대학, 워크숍, 인터넷 강의에서 얻는다. 창의성 계발법은 그사이 철저히 연구되어 누구나 읽고 그대로 실천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경영은 다르다. 공식 사규와 조직 관리, 뒤에 감춰진 기능과 비밀 규칙은 대학에서 가르쳐주지 않고 책과 브로그를 통해 배우기도 어렵다. 운이 좋으면 성공과 권력의 게임 규칙을 어려서부터 집에서 배운다. 얼마나 많이, 정확히 배우느냐는 부모의 지위에 달렸다. 부모의 개인적인 경험에 따라 통찰의 규모가 다르다. 부모가 어떤 기업 구조에 익숙하냐에 따라 자녀들의 생존과 경력 전략이 다르게 발달한다. 가장 중요한 롤모델인 부모가 사원으로서 넓은 사무실에서 맡은 업무를 처리하느냐 아니면 경영자로서 꼭대기 층에서 결정을 내리느냐가 차이를 만든다.”

“평범한 이들은 좋은 성적과 졸업장으로 노력하는 자세를 익히고 성과를 통해 두각을 나타내는 법을 배운다. 반면 시장의 변화, 사업 영역, 기업 문화, 전략적 승진 준비 등은 조명을 받지 못한다. 부모 스스로 그런 것들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사회 최상층의 아비투스는 당연히 다르다. 예를 들어 권력 위치에 있는 부모는 대개 학교와 성적에 관대하다. 그들은 잔들에게 다음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전문 지식은 좋고 유용하다. 어차피 사람들은 미래의 도전 과제를 해결할 수 있기를 바라니까. 하지만 전문적인 세부 내용보다 어쩌면 다른 것이 훨씬 더 이로울 수 있다!

상류층 자녀들은 집에서 다른 것을 배운다. 어떤 분야가 유망한가. 어떤 태도가 외교적 존중을 드러내는가. 권력자들과 관계 맺는 법, 3년 뒤에 어디에 있고 싶은지 명확히 아는 법, 어려서부터 확고한 목표를 다져야 하는 이유, 보수 좋은 회사에 곧장 입사하는 것보다 경영 수업 인턴십이 더 나은 이유, 지도자가 되는 법... 계층별 사고방식의 차이가 자녀들의 직업 전망에 영향을 미친다.”

“전공 선택, 인내심, 끈기, 좌절을 이겨내는 힘. 특히 올바른 후원자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회사 다닐 때 개인적인 일들이 너무 많이 떠올라 읽으면서 어떤 부분은 울 일이 전혀 없는, 감상적인 부분이 전혀 없는 맥락임에도 불구하고 그 때 일들이 너무 많이 떠올라 힘들었다.

“기업은 매우 복합적인 조직이다. 완전히 파악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사내 권력관계와 비공식적 후원 체계를 모르고 지나칠 위험이 아주 크다. 그런 것을 간파하는 데는 이론적 전문 지식이 아니라 암묵적인 규칙과 행간을 읽는 주의력이 더 유용하다. 누구에게 권력이 있는가, 경영진이 중시하는 것은 무엇인가, 누가누구와 친한가, 시장 현황은 어떠한가, 누가 비공식적 여론 선도자인가, 어떤 프로젝트가 현재 진행 중인가, 어떤 유형의 직원이 구세주로 통하고 빨리 승진하는가. “

그래서 이런 상류층 교육과 문화를 못 받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마음대로) 행동하기 -> 인식하기 -> 반응하기”를 제안하는데... 무슨 도덕책마냥 가장 올바르고 정확한 말이지만 이게 과연 가능할지 - 사실 잘 모르겠더라. 왜냐하면 회사에서 상류층에 접근 가능한 위치에 올라가면 사실 저런 게 눈에 안 보이거든. 그래서 망하거든요.




네 번째 아비투스. 경제자본 - 얼마나 가졌는가.

“소득, 현금 자산, 부동산, 주식, 연금, 보험, 예산되는 상속 재산 등 모든 물질적 재산.”

음 사실 이 부분은 뭐... 나는 IMF때 정말 집이 망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걸 느꼈기 때문에(그리고 그 와중에 친척들이 우리 집 망한 걸 고소해하는 것도 덤으로 느꼈기 때문에), 그냥 집에 빚이 없으면 그걸로 됐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아비투스처럼 크게 와닿지 않았다.

단, 상류층은 어렸을 때부터 자녀들에게 철저하게 경제 교육을 시킨다는 부분,

그리고 돈을 다루는 방식이 품격을 결정한다 - “이웃집 부자는 고급 SUV를 타지 않는다” - 금시계, 고급 차, 명품을 철철하고 다니지 않는다 - 는 부분은 새겨 넣었다.


다섯번째 아비투스. 신체자본 - 어떻게 걷고, 입고, 관리하는가.

“스스로 얼마나 매력적이고 건강하고 활기차다고 느끼는지에 대한 판단. 사람들은 외형에서 사회적 지위, 내적 가치를 유추한다.”

“신체 자본을 넉넉히 가진 사람에게서는 자연스럽게 돈과 성공이 느껴진다. 늘 갈망했던 곳에 도달하면 신체에서 안정감이 발산된다. 심지어 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돌아다녀도 성공 아비투스는 드러난다. 성공이 커질수록 행동이 자연스러워지고, 더 편안해지며, 사회적 상승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특징인 신체적 어색함이 줄어든다. 몸매, 피부, 걸음걸이, 미소, 몸짓언어와 시선에 미묘한 차이가 생긴다. 아무에게도 자신을 입증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자본 유형과 마찬가지로 신체 자본 역시 계층마다 불균등하게 배분되어 있다. 신체자본의 차이가 일찍 드러난다. 어떤 체형으로 살아갈지, 어떤 기운을 몸에서 발산할지, 어떤 태도로 몸을 대할지가 유년기에 정해진다. 10세 이전에는 계급 조건 때문에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그 영향이 어른이 되었을 때 다시 나타난다. 모든 사람이 건강을 최고의 재산이라고 말하지만 신체를 대하는 태도는 계급마다 크게 다르다. 신체를 대하는 태도는 체중, 흡연, 술, 운동, 섭식. 저마다 다섯 요소 모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한 요소칸큼은 모든 계층이 똑같다. 모두가 술을 너무 많이 마신다. 나머지 네 요소에는 큰 차이가 있다.

하류층은 열 명 중 네 명이 과체중인데 상류층은 한 명뿐이다.

흡연은 하류층은 1/3, 중산층은 1/4, 상류층은 1/5가 피운다.




그 외에도 스포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상류층이면 골프와 승마만 말할 것 같은데 의외로 “진정한 보스는 마라톤을 즐긴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부분을 읽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아는 대표들은 대부분 달리기를 즐겼던 게 기억이 났다. 마라톤이 반드시 “보스의 스포츠”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많은 리더들이 마라톤을 즐기는 스포츠에 넣는 이유는 “스포츠에서 자신과 싸워 이기는 사람은 다른 일에서도 높은 성과를 올린다”라는 것이라고 한다.

흥미로웠던 점은 “마라톤 같은 기록 스포츠 종목은 숭고한 금욕주의를 연상시키는 체형”이자 “건강과 동시에 개성을 형성하기 때문에 상류층에게 매우 매력적”이라고 언급한 부분이다. “마라톤은 일반적인 스포츠보다 훨씬 더 많은 체력과 정신력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마라톤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내 주변에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여섯번째 아비투스. 언어 자본 - 어떻게 말하는가

“유창한 언변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다양한 관점에서 구체적, 객관적으로 주제를 설명할 수 있는 능력. 어디에서 무슨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말해야 할지 아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내가 쓰는 언어가 내 지위를 드러낸다.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의 원작 <피그말리온>을 쓴 조지 버나드 쇼가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하다. “출신이 아니라 언어가 사람을 만든다”는 것. 길거리에서 품위없는 영어를 쓰며 꽃을 파는 일라이자 두리틀을 6개월동안 언어 교정을 하여 상류층 귀부인으로 만들겠다고 하고 그걸 성공시킨 극 내용은, 판타지같지만 현실에서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다른 아비투스보다) 스스로 개발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도 있다.

그런데 어려운 점은 그 다음이다.

‘우두머리와의 스몰토크’처럼 언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그 상황을 파악하고 적절한 이야기를 하는 능력을 개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물론 이 책의 저자는 개발할 수 있다면서 7가지 제안을 하는데, 나는 도덕책처럼 보이는 그런 제안들보다 오히려 그 뒤에 나오는, 얀 샤우만이라는 사람과의 인터뷰 내용이 더 인상적이었다.

얀 샤우만은 상류층 언어를 쓰기 위한 방법으로 “시기심과 조급함 없이 소통하라”고 조언한다.

“자유와 자기 결정권이 없으면 언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표현의 간접성과 조심성은 공격의 여지를 덜 만듭니다. 신중치 못한 표현 방식에는 시기, 두려움, 신랄함이 필요 이상으로 많이 섞여 있습니다. 반면 성공한 사람은 결코 삶을 탓하는 것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러면서 상류층 언어를 누구나 쓸 수 있다,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하고, 그 근거로 독서를 언급한다.

“물론입니다. 극복하고 높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자신의 안락한 구역을 떠날 의지가 있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준비가 되었다면요. 잘 알려졌듯이 독서는 단조로운 표현을 없애줍니다. 독서의 질에 따라 언어 발달의 중대한 기반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 처음에는 서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계속 사용하면 조금씩 더 나아집니다. 인내를 통한 언어 수행이죠.”

그리고 이 다음에 진짜 중요한 이야기를 얀 샤우만이 한다.

“성공의 오르막에는 갈림길이 있고, 거기서부터는 혼자 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걸림돌 한두 개를 길에서 치워줄 결정권자를 자기편으로 얻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연히 동정심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결정권자가 왜 나를 위해 힘을 써야 하지? 그런 일은 기본적으로 관심 혹은 눈높이를 맞춘 소통을 통해 일어납니다. 나는 다른 ‘보통 사람’과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나를 특별하게 하는가? 이런 질문을 받기 전에 미리 구체적인 대답을 준비해둬야 합니다. 즉, 결정권자가 나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구체적인 이익 세 가지를 말할 수 없으면 잠재적 멘토와의 대화를 절대 시도해서는 안됩니다. 이익 세 가지를 찾으려면 당연히 잠재적 멘토의 직업적, 사회적, 개인적 삶을 연구해야 합니다. 그 사람에 대해 많이 알수록 대화에 성공하기가 더 쉽습니다.”

…나는 황금같은 기회가 있었는데, 그 기회를 다 날려버린 거다. 대표와도, 부대표와도.



마지막 일곱번째 아비투스. 사회 자본 - 누구와 어울리는가.

“누구를 아는가. 개인이나 집단과 얼마나 잘 지내는가. 든든한 가족, 훌륭한 롤모델, 도움을 줄 수 있는 인맥, 진정성 있는 멘토, 결정권자와의 친분, 서로를 격려하는 동료, 영향력, 권력, 가시성.”

여기서 중요한 건 먼저, 타고난 출신을 받아들일 것, 그리고 일단 세상은 그런 면에서 불평등하다는 것을 인정할 것.

“평범한 사람들이 고되게 일하고 경쟁에서 살아남아 마침내 중간쯤에 머무는 반면 상류층에서는 가족이라는 동맹군이 번개처럼 빠르고 빛나는 경력 쌓기를 가능하게 한다.” 기본적으로 경제자본과 문화자본이 많은 가정에서는 자연스럽게 상류층의 언어, 사고, 행동을 흡수할 확률이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이 얘기 다음으로 상류층도 상류층 자신이 타고난 사회 자본을 당연한 것처럼 살고 있고 그것이 얼마나 큰 자본인지 인지는 못하지만, 살아가면서 그 타고난 사회 자본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발전시키는데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렇게 상류층조차(?) 노력하는 상류층 사회 자본에 우리가 합류하려면, 그 과정이 일단 본인이 어색함을 물론이요 가족과 기존의 친구들에게조차 크랩 멘털리티때문에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을 현실적으로 말해준다. 그 예로 모차르트를 드는데, 이걸 버티기 위한 방법으로는 그냥 견디고 계속 꾸준히 그 새로운 세계 - 상류층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거 외에는 없다고 말한다. 노력하다 보면, 어색함이 익숙해지다보면 결국 나도 어느 새 그 무리가 되어 있을 거라고.

그런데 개인적으로 그게 과연 가능한지 모르겠다. 저자가 언급하는 이 때의 크랩 멘털리티는 심히 공감이 갔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친척들을 만날 때마다 알 수 없는 위압감과 공격성을 느꼈는데, 그게 바로 어른들 중에 친가와 외가를 통틀어 서울 거주에 SKY대학 출신이 우리 아빠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걸 나중에, 나이가 훨씬 들어 알았다. 아빠 등록금때문에 시골 땅을 팔아야 했다는 이야기를 아직도 하니, 안봐도 뻔하지 않은가. IMF때 집이 “망했다”라는 것보다 더 화가 났던 건 그런 우리 집 사정을 친척들이 고소해하는 걸 느꼈을 때였다. 내 친구들 중에 누구는 자기 친척들은 옥스퍼드, 하버드, 코넬 출신이라 한국에서 대학 나온 자신이 비교되서 스트레스 받는다고 하던데, 그 친구한테 나는 그 반대가 더 스트레스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창피해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저자가 말하는 크랩 멘털리티를 나는 속속들이 이해한다.

“이것이 빈곤층 자녀의 운명이다. 만약 가족 중 처음으로 대학에 다닌다면, 모범 없이 무언가가 되기 위해 대학 시절 내내 자신과 싸워야만 한다. 또한 출신 아비투스에서 스스로 벗어나야 한다. 부모가 대학 공부의 필요성을 모르기 때문에 순풍을 받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되레 역풍과 자주 싸워야 한다. 이를 테면 부모와 친척들이 위로 오르려는 그들의 노력을 항상 격려하며 동행하지 않는다. (...) 갈등과 소외감이 퍼진다. 부모는 두려움이 생기고, 성공한 자녀는 부모보다 자신이 더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가족 최초의 대졸자는 가족과의 관계에서 스스로 그림자가 된다. 그들은 자신의 의견을 입 밖에 내지 않고 외국어를 쓰지 않고 내키지 않는 가족 예식이라도 군말 없이 참여한다. 점점 짧아지는 방문에서 가능한 한 불쾌감을 유발하지 않는 것이 중요해진다. 반면 그들은 가족의 자랑이고 모든 문제의 해결책을 알고, 영향력을 가졌으며 급할 때는 약간의 돈도 가정에 보탤 수 있다. 이런 대안을 생각하면 기분이 조금 나아지지만 역시 좋지는 않다. 어느 쪽이든 괴롭긴 마찬가지다. 그들은 더는 출신 계급에 속하지 않고 더 높은 계급에도 아직 완전히 속하지 못한다.”

“하지만 모두가 출신 아비투스를 뛰어넘을 수 있다. 성공을 드러내는 외형, 고급 취향, 관계에 적응할 수 있다. 가족의 눈에 허황되어 보이는 목표를 추구하고 직업적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할 수 없다. 그들은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난 또래와 똑같은 사회자본을 가질 수 없다. 그들이 정복한 그들의 가족에게 완전히 열리지 않을 것이다. 가족이 아무리 자부심을 느끼고 사랑해도 안된다. 축하 파티나 시상식에서도 옛날 지인들과 새로 사귄 지인들이 서로 겉돌 것이다. 계급 상승자라는 낙인은 결코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같은 계급의 누군가가 더 높은 계급으로 올라가려 할 때 박수갈채를 보내지 않는 것은 정상이다. (...) 대부분의 주변인은 그런 새로움을 반기지 않을 것이다. 너답지 않아! 그래봐야 아무 소용없어! 너랑 안 어울려! 대락 이런 얘기를 듣는다.”

그래서 이 마지막 아비투스, 사회 자본에서 인상이 찌푸려졌다. 좋은 멘토를 구하고, 자신을 증명하고, 영향력을 드러내고. 물론 말로는 가능하다. 저자는 계속해서 우리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노력하면 상류층이 가지고 있는 아비투스를 가질 수 있다고. 그런데 나는 자꾸 고개를 젓게 된다.

==============================



결국 노진구가 영민이와 놀지 않는 건 이 크랩 멘탈리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이 말하는 아비투스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지금 이것보다 더 많고, 원래 썼던 글도 이것보다 길지만, 개인적인 일들을 쓰는 건 여기까지가 좋은 것 같아 그냥 마무리하려고 한다.

상류층에 대해 적나라하게 분석한 책이다. 강력 추천한다.

비상류층도 상류층의 아비투스를 가질 수 있다고 저자의 주장에 대해서는... 글쎄. 모르겠다.

크랩 멘털리티는 생각보다 강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