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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으로 다시 쓰는 옛이야기
지현 외 지음 / 이프북스(IFBOOKS) / 2020년 7월
평점 :
품절
페미니즘 책은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와 <헝거>가 전부다. 전자는 이동진의 추천 500권 리스트에 있었기 때문에 읽었고, 두 번째 책은 그 첫 번째 책이 너무 좋아서 출간하자마자 바로 구매해서 읽었는데 전자보다 더 개인적이고 고통스러운 부분이 많아 읽으면서 조금 힘들었다.
페미니즘에 대해서 누군가 추천해달라고 하면 단연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어딘가 뒤틀려지기 시작하고 일부 극단적으로 흐르는 페미니즘 문제에 대해 잘 인지하고 있고, 아울러 이 '운동' 역시 역사가 짧고 그간 억눌렸던 무언가가 터져나와 여러가지 잡음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페미니즘의 진정한 의미와 필요성에 대해, 작가의 개인사와 더불어 말하고 있다. 매우 좋은 책이고, 나도 록산 게이가 말하는 페미니즘 정의에 동의한다.
페미니즘이란 결국, 여자와 남자는 동일한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다 - 라는 것을 말하는 정신이다. 어느 한쪽이 더 우월하다 아니다가 아니라.
서평단 모집에 당첨되서 받게 된 책, <페미니즘으로 다시 쓰는 옛 이야기>.
일단 우리나라 책이라는 점에서 흥미가 갔고, 무엇보다 나는 전래 동화, 구전, 신화를 워낙 좋아해서 우리나라의 옛 이야기를, 그리고 페미니즘으로 재구성했다는 책 컨셉도 마음에 들었다. 신화나 동화도 현재 유통되고 있는 전체관람가 어린이 버젼과 원작인 성인 버젼, 영화 만화 드라마 등 다양한 미디어 버젼들이 있는 만큼 우리나라 동화들을 페미니즘 시각으로 재구성한다는 점이 신선했다.
책 디자인이 특이하다.
마치 조선시대 책 마냥 옆이 이렇게 되어 있다.
그런 의도든 아니든, 어울린다.
작가 4명이 4가지 이야기 - 콩쥐팥쥐, 홍길동, 구미호,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 - 를 다루고 있고, 작품이 끝난 다음에 작가들이 각자 해당 이야기를 쓰게 된 이유와 해석이 곁들어져 있다. 마지막에 부록으로 단군신화 논문에서 페미니즘 시각에서 논의한 부분만 일부 편집되어 실려있다.
콩쥐팥쥐는 <신콩쥐팥쥐>,
홍길동전은 홍길동과 오누이 힘겨루기라는 우리나라 동화를 합쳐 <홍길영전>,
구미호는 유일하게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꼬리가 아홉인 이야기>,
선녀와 나무꾼은 그 둘의 장녀 입장에서 쓴 연극 대본, <하늘 재판극>.
다 좋았는데, 더 좋았던 부분은 옛 이야기들 뒤에 나오는 작가들 개개인이 쓴 분석 글들이었다. 몰랐던 사실도 알고 배울 부분도 많았다. 만약 강의를 한다면 한번 찾아가고 싶을 정도로 우리나라 동화, 역사 지식과 어그러지지 않은 페미니즘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신콩쥐팥쥐>
콩쥐가 동양미 삼백석에 빠져 용왕 만나고 임금님하고 결혼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시집 온 뺑덕 엄마랑 팥쥐랑 잘 지내면서 나중에 시집도 가고 애도 낳는 이야기다. 판타지가 사라진 콩쥐가 실존 인물이었다면 정말 이런 결혼을 해서 그런 남편을 만나고 그렇게 자식을 낳아 살았을 것 같다.
특히 좋았던 부분은 새엄마와 팥쥐와 잘 지내는 콩쥐 이야기. 작가의 분석 글 덕분에 처음으로 왜 뺑덕엄마와 팥쥐가 재혼을 - 그것도 가진 것 없고 돈도 못 벌고 가난한 장님 남자랑 결혼을 해야 했나 생각해 봤다. 작가 말처럼 당시 시대에는 여자 혼자, 그것도 애가 있는 여자가 혼자 사는데는 여러가지 어려움이 많으니 가진 것 없는 장님 남자라도 일단 여자라면 무조건 남자와 함께 해야 한다는 시대적 한계가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에 공감이 갔다. 마지막에 그렇게 홀로 있는 여자들의 공동체가 꾸려지는 부분도 좋았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의지하고 기생하는 게 아니라 서로 공존하고 도와주는 관계가 형성된다는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
한 가지 의문스러웠던 점은, 작가가 어렸을 때 읽었던 콩쥐팥쥐에는 팥쥐가 젓갈로 담가지는 결말이 있었다고 하는데 - 그걸 정말 어렸을 때 읽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왜냐하면 아이들 버전에는 젓갈로 담가지는 결말로 책이 출판되었을 것 같지 않아서. ...아니면 작가가 아이였을 때 콩쥐팥쥐의 다양한 버젼들을 찾아 읽다가 우연히 연령대에 걸맞지 않는 엔딩을 읽게 된 건가. 그랬다면 마치 신델레라 원본에서 계모가 실제로 자신의 친딸들의 발뒤꿈치와 엄지를 가위로 도려내서 피 철철 구두를 신게 한 원본 스토리처럼 충격적이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작가가 언급한 그 순결 지키기 은장도 말인데, 맞다. 작가의 의문처럼 “저렇게 짧아서 과연 자살이 될까?”처럼 실제로 은장도는 자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서 무용지물이었다고 알고 있다. 마치 손톱깍기로 자살하겠다고 소리지르는 거랑 똑같았다고 해야 하나. 남자 위협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하고. 예전에 나도 궁금해서 과연 그 옛날에 진짜 은장도로 자살할 수 있었나 알아봤었는데, 물론 목이나 손목에 찌르거나 그어버리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지만 날이 짧고 날카롭지 않아서 진짜 죽으려고 해도 굉장히 힘들게 힘들게 힘들게 죽거나 - 죽고 싶어도 못 죽었다고 한다.
<홍길영전>
홍길동과 그 누나, 엄마의 이야기. 우리가 익히 아는 홍길동 이야기와 처음 알게 된 <오누이 힘 겨루기>라는 우리나라 전래 동화를 혼합시켜 만든 이야기, 홍길영전. 어, 나는 그래도 전래동화라면 어지간히(?) 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오누이 힘 겨루기>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그리고 홍길동전도 <아기 장수>라는 이야기에서 발전된 스토리라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됐다. 아 그럴 수 있지. 오호 재밌다.
흥미로웠던 점은 <오누이 힘겨루기>에도 다양한 버젼들이 존재하는데 마지막에 늘 딸이나 엄마가 죽는 이야기였다는 점이다. 그런 부분에서 작가의 말처럼 정말 시대적 정신의 한계라는 점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남녀 힘 대결이라는 요소를 민담에서 처음 봐서 개인적으로 한번 찾아보고 싶다.
한가지 의아했던 부분은, 아들 홍길동에게 무쇠 신발을 신겨서 한양까지 걸어 갔다 오게 한 미션. 원작 <오누이 힘 겨루기>를 안 읽어봐서 세세한 내용은 모르겠는데 그렇게 살이 벗겨지고 무를 정도로 아픈 신발을 발자국을 남겨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고향에서 한양까지 왕복한다는 컨셉은 - 흥미진진하기는 한데 한편으로는 사기 치기 너무 쉬운 미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내가 너무 어른의 때가 묻은건가). 난 중간에 홍길동이 사기 칠 줄 알았는데 진짜 끝까지 그 신발을 신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 갔다와서 놀랐음. 그런데 마을 안에 들어와서도 쿵쿵쿵 소리나게 그 신발을 여전히 신고 돌아다니는 건 좀 미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미련하기 이전에 일단 아프잖아. 그리고 사또가 그 소리를 다 듣잖아. 공포감 조성으로 일부러 쿵쿵쿵 소리를 내는 거라면 이해라도 되는데 그것도 아니면서... 살점이 떨어질 정도로 아프다면서 왜 이미 다 도착한 마을 안에서 신발 안 벗어?
<꼬리가 아홉인 이야기>
유일하게 현대를 배경으로 쓴 이야기. 구미호가 그 꼬리 아홉 달린 구미호가 아니라 새로운 의미를 담아 썼는데, 스포일러가 될까봐 여기 못 쓰겠네. 구미호의 정체성을 이렇게 재해석한 부분이 신선했다. 그리고 읽으면서 가장 읽기 힘들고 불편했다. 진짜 이런 일들이 과거에도 현재에도 많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작가가 이문열의 소설 <아가>를 읽으면서 “토할 것 같았다”라고 말했는데, 나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거북하다고 느꼈던 책이 바로 <무진기행>으로 유명한 김승옥이 쓴 단편소설 <건乾>이였다. 여기서 주인공 남자 소년이 마을에서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여동생하고만 사는 착하고 예쁜 누나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어느 날 주인공 형과 형 친구들이 이 소녀를 멀리서 보면서 “야 우리 쟤 먹을래”라고 말하고 소년을 불러 네가 저 여자애에게 가서 오늘 밤 어디 어디에 나오라고, 꼭 혼자 오라고 말하라고 심부름을 시킨다. 주인공 소년은 그 뜻이 뭔지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면서 그 심부름을 행동으로 옮기고, 이상야릇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가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김승옥이 글을 잘 쓴다는 건 알고 있지만, 정말 너무 잘 써서 읽으면서 기분 더러워지는 스토리다.
<하늘 재판 극>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 특이하게도 연극이다. 좋았다. 선녀와 나무꾼이 동화에서 나오듯이 마지막에 헤어졌는데, 이후 이 둘의 세 자녀 중 장녀인 ‘마야’가 아버지와 할머니랑 사슴을 고소에서 하늘나라에서 열리는 재판 과정을 담고 있다. 어머니 선녀는 아파서 누워 있기만 하고, 나무꾼은 새 장가를 들었고, 할머니랑 사슴은 증인으로 재판장에 온 사실 하나만으로 잔뜩 화가 나 있다. 재미있었다. 결말이 어찌 되나 너무너무 궁금했는데... 아 이런 오픈 엔딩으로 만드시다니.
작가가 피해여성센터에서 일하는 경력을 바탕으로 글을 써서 자녀 입장에서 겪는 가정 불화의 트라우마 심리가 잘 묘사되어 있다. 사슴이 사투리 쓰는 점만 빼고 다 좋았다. 성차별 인식에 대한 글이라면 특정 사투리를 악역인 사슴이 쓰는 것 역시 특정 차별 인식을 불러들일 수 있으니(더군다나 우리나라는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도 지역 감정이 심각한 나라잖아요) 그냥 다 깔끔하게 서울말 쓰는 게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부록 - 단군신화 논문 일부분>
와아. 이런 식으로도 단군 신화를 해석할 수 있구나. 오호. 책에서는 페미니즘 부분만 편집되어서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이 논문 전체를 한번 읽어보고 싶다. 나는 우리나라 단군신화가 그리스로마신화처럼 대중화되지 않은 게 안타까운 사람이라.... 그런 면에서 주민호의 <신과 함께>는 정말 여러가지면에서 수작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저자의 해석에는 - 곰과 호랑이가 왜 꼭(?) 여자 인간이였는지에 대한 해석에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구나, 라는 하나의 의견으로 존중은 하지만 그 의견에 공감이 되지는 않았다. 나는 그저 단순히, 그저 당신 곰을 섬기는 부족과 호랑이를 섬기는 부족이 있었는데 그 둘이 싸우다가 결국 곰족이 이겼다는 대중적인 해석에 더 공감하는 쪽이다. 물론 왜 신은 꼭 남자여야 하냐, 라고 질문을 던질 수 있지만 일단 과거에는 어쨌든 남성중심 사회였으니까. 제우스가 그렇게 바람둥이 신이 된 것도 진짜 바람둥이라서가 아니라 왕들과 귀족들이 ‘우리도 신의 자식이다’라는 걸 내세워 신성미를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에 자신의 아내와 딸들을 모두 제우스와 맺어지는 이야기를 만들어서라는 해석이 있지 않나. 그런 역사의 흐름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되어서, 비록 저자의 단군 신화 해석은 배울 점이 많았지만 같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진정한 페미니즘이란 결국, 여자와 남자는 동일한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다 - 라는 것을 말하는 정신이라고 믿는다.
왜 여남이 아니고 남녀냐, 왜 허스토리가 아니라 히스토리냐, 왜 군대 안 가고 왜 애 안 낳냐 - 라고 싸우는 게 아니라, 이러한 차이점들을 확고히 인지하고 논의하는 건 중요하지만 그 차이를 문제 삼아 서로 공격하면서 누가 더 우월한 성이라고 따지는 건 페미니즘 정신이 아니다. 과거에는 분명 남성 중심으로 사회가 흘러가는 부분이 있었지만(심지어 여자가 무대에 설 수 없어서 남자가 여장을 하기도 하지 않았나) 그 모든 건 역사의 일부이고, 이제는 단순히 피부 색깔이 다르다고 해서 사람을 동물원에 넣고 전시하거나, 아이들을 노동 인력으로 사용하고, 여자라고 투표를 할 수 없고 42.195km 올림픽 마라톤을 출전을 할 수 없다고 막는 세상이 아니다.
페미니즘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는 내 입장에서 간혹 페미니즘이라고 주장하며 여기저기 떠드는 '과격 페미니스트'들을 보면 그건 페미니즘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여자가 남자보다 잘났어, 라고 말하는 정신이 패미니즘이 아닌데. 오히려 페미니즘이 정확히 뭔지도 모르고 그냥 무조건 남자가 나쁘다며 또다른 차별을 낳는 일부 사람들을 보면, 마치 종교가 달라서 사람 죽이는 게 당연하다는 테러리스트들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페미니즘이라고 하면 무조건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생기는 건데.
이러저러해도 결국 인류는 조금씩 더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고, 페미니즘도 처음 인종 차별 운동이 일어났던 것처럼, 아동 권리 운동이 일어났던 것처럼, 여자 투표권과 마라톤 출전권이 인정되었던 것처럼, 조금씩 더 좋은 방향으로 흐르기 위한 정신 중 하나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