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투스 - 인간의 품격을 결정하는 7가지 자본
도리스 메르틴 지음, 배명자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8월
평점 :
절판


노진구는 왜 영민이랑 놀지 않을까.

(캐릭터가 늦게 나온 팩트는 논외로 치고) 왜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자신에게 친절하고 힘들 때 도와주는 영민이랑 놀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늘 괴롭히고 때리고 무시하는 퉁퉁이와 비실이와만 어울리는 걸까? 늘 궁금했다. 도라에몽이 온 미래에서 노진구는 퉁퉁이의 여동생과 결혼을 했고(그래서 망했고), 그래서 노진구의 후대손이 보내준 미래 로봇 도라에몽은 이런 노진구와 노진구의 후손을 구하기(?) 위해 이슬이와 결혼하는 미래를 만들려 고군분투한다. 그리고 그 결과 노진구는 이슬이와 결혼하게 된다. 하지만 미래는 늘 변할 수 있다고 한 도라에몽의 말처럼, 이슬이가 노진구가 아닌 영민이와 결혼하는 미래도 존재한다.



크랩 멘털리티(crab mentality).

상류층이 가지고 있는, 상류층에 가기 위해 가지고 있어야 할 7가지 아비투스(나는 간단하게 '특질'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저자는 이를 "타인과 나를 구별 짓는 취향, 습관, 아우라", "사회문화적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제2의 본성", "계층 및 사회적 지위의 결과이자 표현"이라고 칭한다)를 이야기하는 이 책에서, 상류층이 가지고 있고 상류층에 가기 위해 가지고 있어야 할(없으면 개발해야 하고 개발할 수 있다고 저자가 주장하는) 그 7가지 아비투스를 말하기 전에, "크랩 멘털리티"는 정확히 이 책의 시작과 끝, (서문과 8장 사회자본 아비투스에서) 2번 나온다. 그만큼 중요하다.





어부들은 게(크랩)를 잡으면 그냥 바구니에 넣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그 이유는 게들은 바구니에서 빠져나오려고 서로 밟고 끌어내리는 통에 결국 아무도 바구니에서 못 나온다고. 그래서 어부들은 아무 장치 없이도 쉽게 게를 잡을 수 있다고 한다. 크랩 멘털리티는 이런 심리 현상을 말한다. 어차피 못 올라가게 될 나무에 누군가 조금이라도 올라가는 낌새가 보이면 같이 끌어내리는 습성. 그리고 어차피 내가 못 올라갈 바에야 스트레스 받느니 그냥 같이 못 올라갈 사람들과 어울리겠다는 마인드. 저자 역시 7가지 아비투스의 부족이나 결핍보다는 이 크랩 멘털리티를 상류층 진입 장벽으로 가장 경계한다.



저자가 언급하는 상류층과 그들이 가지고 있는 7가지 아비투스, 그리고 상류층인 아닌 우리들도 그 7가지 아비투스를 익히면 연마하면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는 그 7가지 아비투스는 다음과 같다.

1. 심리 자본 - 어떻게 생각하고, 어디까지 상상하는가

2. 문화 자본 - 인생에서 무엇을 즐기는가

3. 지식 자본 - 무엇을 할 수 있는가

4. 경제 자본 - 얼마나 가졌는가

5. 신체 자본 - 어떻게 입고, 걷고, 관리하는가

6. 언어 자본 - 어떻게 말하는가

7. 사회 자본 - 누구와 어울리는가




각 장마다 해당 아비투스에 대한 설명과, 그 아비투스를 갖기 위해 훈련할 수 있는 방안과, 그리고 마지막에 관련 분야의 전문가의 Q&A 인터뷰가 3장 정도 실려있다.

내가 가장 관심있게 본 아비투스는 1번, 5번, 7번 - 심리 자본, 신체 자본, 사회 자본이었지만, 각 아비투스에 대해 주요점만 정리하겠다.




첫 번째 아비투스. 심리 자본 - 어떻게 생각하고, 어디까지 상상하는가

“낙관주의, 열정, 상상력, 끈기. 잠재력을 온전히 실현하느냐 아니면 중간 수준에 머물게 하느냐는 심리적 안정감에 달려 있다.”

내가 가장 집중해서 본 챕터이기도 하다. 사실 ‘머리’는 어느 선에 가면 아인슈타인이 아닌 이상 다 비슷비슷하다. 다 비슷하게 똑똑하고, 비슷한 학교를 나왔고 비슷한 외국어와 인턴십, 학교 외 활동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내가 가장 관심 있게 본 자본은 바로 ‘심리 자본’이었다. 왜 똑같은 고통을 겪었을 때 누구는 좌절해서 나가 떨어지는데 누구는 금방 툭툭 털고 일어나는지, 그 차이가 궁금했다.

여기서는 그 차이가 바로 상류층의 7가지 아비투스인 ‘심리 자본’이고, 여기에 속하는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심리자본을 단련하고, 낙관적 사고방식을 발달시키고, 자아를 통제하며 역경을 견디는 연습”을 배운다고 써있다. 다시 말해 “회복탄력성의 중요성”을 상류층은 몸에 벨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고 그것을 터득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스포츠 정신, 자제력, 탄력성, 수용력 같은 성격 강화가 전문 지식 습득보다 더 중요하다. 미래의 엘리트들은 비가 오나 바람이 부다 운동을 하고, 엄격한 규칙을 따르고, 스파르타식 생활을 하며, 어려운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배우고, 역경을 견디고 인내하는 법을 익힌다. 고된 학교 생활을 저항력을 키우고 재산, 저택, 회사를 잃었을 때 이겨내는 아비투스를 형성한다.”

여기서 저자는, 이러한 강하고도 유연한, 넘어져도 일어나는 오뚜기 정신 훈련의 심리 자본 아비투스가 없는 비상류층인 우리들에게 “긴장을 드러내지 말고 불평하지 말라”며 7가지를 제안한다. ...그런데 그 말들이 모두 다 현실적이고 팩트에 기반한 좋은 조언들인 건 알지만, 이런 상류층 심리 자본이 없는, 크랩 멘터리티로 가득한 집안과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과연 저자가 말한 심리 자본 단련/훈련이 가능할지 의문이 든다.




두 번째 아비투스. 문화 자본 - 인생에서 무엇을 즐기는가.

“선망과 존중을 받는 코드와 취향. 몸에 밴 고급문화와 탁월한 사교술이 고전적 문화자본이라면 주의 깊고 한결같은 생활양식 혹은 용기 있는 기행과 개별성이 새로운 트렌드의 문화자본이다.”

예상했던 것과 달리 저자는 문화 자본이 7가지 아비투스 중 가장 갖기 어려운 자본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상류층은 취향은 드러내되 거기에 많은 돈을 쓰지 않고, 지위에 따라 문화 취향이라는 것이 결정되기 때문에 그 환경에 놓여 있지 않은 사람은 당연히 그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건 그냥 나만의 비유지만, 1,000권이 넘는 서재가 있는 집에서 자라난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집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나마 그런 “상류층” 환경에서 자라나지 않은 아이들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책을 좋아하고 함께 독서를 즐기며 주말마다 도서관에 함께 가는 부모를 두는 것 뿐일거다.

예술, 외국어, 스포츠 취향 뿐만 아니라 격식과 무례함 또한 이 문화 자본 범주에 들어간다. 식습관도 당연히 들어간다. 책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젓가락질을 보면 그 사람이 어느 사회 계층에 속해 있는지 알 수 있다.




세 번째 아비투스. 지식 자본 -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졸업장, 학위, 전문 지식, 경력, 학술 및 기능 자격증, 자신의 지식과 역량으로 어떤 일을 해내는 능력.”

내가 여기서 포커스를 둔 부분은 졸업장, 학위, 전문 지식이 아니라, “자신의 지식과 연략으로 어떤 일을 해내는 능력”이다. 말장난 같아 보이는데 그렇지 않다. 저자도 졸업장은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한다. 당연하다. 어차피 어딘가를 가면 아인슈타인급 머리는 거의 없다. 다 거기서 거기다. 그래서 필요한 건 너나 나나 다 가지고 있는 그 졸업장이 아니라 그 졸업장 플러스 알파같은, 다른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 나는 저자가 다른 사람들처럼 졸업장, 전문지식 같은 것만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그 이상의 것을 이야기해서 좋았고 반가웠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좌절했다. 애초 상류층이 아닌 나에게 그런 “플러스 알파”를 몸에 익히는 게 저자의 생각과는 달리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모두가 교육과 전문성이 최고라고 말한다. 그러나 큰 도약을 하려면 다른 요소가 중요하다. 성격, 몸에 밴 분위기, 대담함, 여기에 더하여 올바른 사람들과의 친분, 최신 화제를 알면 가장 좋다. (...)

전문 지식은 대학, 워크숍, 인터넷 강의에서 얻는다. 창의성 계발법은 그사이 철저히 연구되어 누구나 읽고 그대로 실천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경영은 다르다. 공식 사규와 조직 관리, 뒤에 감춰진 기능과 비밀 규칙은 대학에서 가르쳐주지 않고 책과 브로그를 통해 배우기도 어렵다. 운이 좋으면 성공과 권력의 게임 규칙을 어려서부터 집에서 배운다. 얼마나 많이, 정확히 배우느냐는 부모의 지위에 달렸다. 부모의 개인적인 경험에 따라 통찰의 규모가 다르다. 부모가 어떤 기업 구조에 익숙하냐에 따라 자녀들의 생존과 경력 전략이 다르게 발달한다. 가장 중요한 롤모델인 부모가 사원으로서 넓은 사무실에서 맡은 업무를 처리하느냐 아니면 경영자로서 꼭대기 층에서 결정을 내리느냐가 차이를 만든다.”

“평범한 이들은 좋은 성적과 졸업장으로 노력하는 자세를 익히고 성과를 통해 두각을 나타내는 법을 배운다. 반면 시장의 변화, 사업 영역, 기업 문화, 전략적 승진 준비 등은 조명을 받지 못한다. 부모 스스로 그런 것들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사회 최상층의 아비투스는 당연히 다르다. 예를 들어 권력 위치에 있는 부모는 대개 학교와 성적에 관대하다. 그들은 잔들에게 다음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전문 지식은 좋고 유용하다. 어차피 사람들은 미래의 도전 과제를 해결할 수 있기를 바라니까. 하지만 전문적인 세부 내용보다 어쩌면 다른 것이 훨씬 더 이로울 수 있다!

상류층 자녀들은 집에서 다른 것을 배운다. 어떤 분야가 유망한가. 어떤 태도가 외교적 존중을 드러내는가. 권력자들과 관계 맺는 법, 3년 뒤에 어디에 있고 싶은지 명확히 아는 법, 어려서부터 확고한 목표를 다져야 하는 이유, 보수 좋은 회사에 곧장 입사하는 것보다 경영 수업 인턴십이 더 나은 이유, 지도자가 되는 법... 계층별 사고방식의 차이가 자녀들의 직업 전망에 영향을 미친다.”

“전공 선택, 인내심, 끈기, 좌절을 이겨내는 힘. 특히 올바른 후원자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회사 다닐 때 개인적인 일들이 너무 많이 떠올라 읽으면서 어떤 부분은 울 일이 전혀 없는, 감상적인 부분이 전혀 없는 맥락임에도 불구하고 그 때 일들이 너무 많이 떠올라 힘들었다.

“기업은 매우 복합적인 조직이다. 완전히 파악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사내 권력관계와 비공식적 후원 체계를 모르고 지나칠 위험이 아주 크다. 그런 것을 간파하는 데는 이론적 전문 지식이 아니라 암묵적인 규칙과 행간을 읽는 주의력이 더 유용하다. 누구에게 권력이 있는가, 경영진이 중시하는 것은 무엇인가, 누가누구와 친한가, 시장 현황은 어떠한가, 누가 비공식적 여론 선도자인가, 어떤 프로젝트가 현재 진행 중인가, 어떤 유형의 직원이 구세주로 통하고 빨리 승진하는가. “

그래서 이런 상류층 교육과 문화를 못 받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마음대로) 행동하기 -> 인식하기 -> 반응하기”를 제안하는데... 무슨 도덕책마냥 가장 올바르고 정확한 말이지만 이게 과연 가능할지 - 사실 잘 모르겠더라. 왜냐하면 회사에서 상류층에 접근 가능한 위치에 올라가면 사실 저런 게 눈에 안 보이거든. 그래서 망하거든요.




네 번째 아비투스. 경제자본 - 얼마나 가졌는가.

“소득, 현금 자산, 부동산, 주식, 연금, 보험, 예산되는 상속 재산 등 모든 물질적 재산.”

음 사실 이 부분은 뭐... 나는 IMF때 정말 집이 망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걸 느꼈기 때문에(그리고 그 와중에 친척들이 우리 집 망한 걸 고소해하는 것도 덤으로 느꼈기 때문에), 그냥 집에 빚이 없으면 그걸로 됐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아비투스처럼 크게 와닿지 않았다.

단, 상류층은 어렸을 때부터 자녀들에게 철저하게 경제 교육을 시킨다는 부분,

그리고 돈을 다루는 방식이 품격을 결정한다 - “이웃집 부자는 고급 SUV를 타지 않는다” - 금시계, 고급 차, 명품을 철철하고 다니지 않는다 - 는 부분은 새겨 넣었다.


다섯번째 아비투스. 신체자본 - 어떻게 걷고, 입고, 관리하는가.

“스스로 얼마나 매력적이고 건강하고 활기차다고 느끼는지에 대한 판단. 사람들은 외형에서 사회적 지위, 내적 가치를 유추한다.”

“신체 자본을 넉넉히 가진 사람에게서는 자연스럽게 돈과 성공이 느껴진다. 늘 갈망했던 곳에 도달하면 신체에서 안정감이 발산된다. 심지어 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돌아다녀도 성공 아비투스는 드러난다. 성공이 커질수록 행동이 자연스러워지고, 더 편안해지며, 사회적 상승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특징인 신체적 어색함이 줄어든다. 몸매, 피부, 걸음걸이, 미소, 몸짓언어와 시선에 미묘한 차이가 생긴다. 아무에게도 자신을 입증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자본 유형과 마찬가지로 신체 자본 역시 계층마다 불균등하게 배분되어 있다. 신체자본의 차이가 일찍 드러난다. 어떤 체형으로 살아갈지, 어떤 기운을 몸에서 발산할지, 어떤 태도로 몸을 대할지가 유년기에 정해진다. 10세 이전에는 계급 조건 때문에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그 영향이 어른이 되었을 때 다시 나타난다. 모든 사람이 건강을 최고의 재산이라고 말하지만 신체를 대하는 태도는 계급마다 크게 다르다. 신체를 대하는 태도는 체중, 흡연, 술, 운동, 섭식. 저마다 다섯 요소 모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한 요소칸큼은 모든 계층이 똑같다. 모두가 술을 너무 많이 마신다. 나머지 네 요소에는 큰 차이가 있다.

하류층은 열 명 중 네 명이 과체중인데 상류층은 한 명뿐이다.

흡연은 하류층은 1/3, 중산층은 1/4, 상류층은 1/5가 피운다.




그 외에도 스포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상류층이면 골프와 승마만 말할 것 같은데 의외로 “진정한 보스는 마라톤을 즐긴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부분을 읽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아는 대표들은 대부분 달리기를 즐겼던 게 기억이 났다. 마라톤이 반드시 “보스의 스포츠”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많은 리더들이 마라톤을 즐기는 스포츠에 넣는 이유는 “스포츠에서 자신과 싸워 이기는 사람은 다른 일에서도 높은 성과를 올린다”라는 것이라고 한다.

흥미로웠던 점은 “마라톤 같은 기록 스포츠 종목은 숭고한 금욕주의를 연상시키는 체형”이자 “건강과 동시에 개성을 형성하기 때문에 상류층에게 매우 매력적”이라고 언급한 부분이다. “마라톤은 일반적인 스포츠보다 훨씬 더 많은 체력과 정신력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마라톤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내 주변에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여섯번째 아비투스. 언어 자본 - 어떻게 말하는가

“유창한 언변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다양한 관점에서 구체적, 객관적으로 주제를 설명할 수 있는 능력. 어디에서 무슨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말해야 할지 아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내가 쓰는 언어가 내 지위를 드러낸다.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의 원작 <피그말리온>을 쓴 조지 버나드 쇼가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하다. “출신이 아니라 언어가 사람을 만든다”는 것. 길거리에서 품위없는 영어를 쓰며 꽃을 파는 일라이자 두리틀을 6개월동안 언어 교정을 하여 상류층 귀부인으로 만들겠다고 하고 그걸 성공시킨 극 내용은, 판타지같지만 현실에서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다른 아비투스보다) 스스로 개발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도 있다.

그런데 어려운 점은 그 다음이다.

‘우두머리와의 스몰토크’처럼 언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그 상황을 파악하고 적절한 이야기를 하는 능력을 개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물론 이 책의 저자는 개발할 수 있다면서 7가지 제안을 하는데, 나는 도덕책처럼 보이는 그런 제안들보다 오히려 그 뒤에 나오는, 얀 샤우만이라는 사람과의 인터뷰 내용이 더 인상적이었다.

얀 샤우만은 상류층 언어를 쓰기 위한 방법으로 “시기심과 조급함 없이 소통하라”고 조언한다.

“자유와 자기 결정권이 없으면 언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표현의 간접성과 조심성은 공격의 여지를 덜 만듭니다. 신중치 못한 표현 방식에는 시기, 두려움, 신랄함이 필요 이상으로 많이 섞여 있습니다. 반면 성공한 사람은 결코 삶을 탓하는 것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러면서 상류층 언어를 누구나 쓸 수 있다,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하고, 그 근거로 독서를 언급한다.

“물론입니다. 극복하고 높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자신의 안락한 구역을 떠날 의지가 있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준비가 되었다면요. 잘 알려졌듯이 독서는 단조로운 표현을 없애줍니다. 독서의 질에 따라 언어 발달의 중대한 기반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 처음에는 서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계속 사용하면 조금씩 더 나아집니다. 인내를 통한 언어 수행이죠.”

그리고 이 다음에 진짜 중요한 이야기를 얀 샤우만이 한다.

“성공의 오르막에는 갈림길이 있고, 거기서부터는 혼자 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걸림돌 한두 개를 길에서 치워줄 결정권자를 자기편으로 얻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연히 동정심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결정권자가 왜 나를 위해 힘을 써야 하지? 그런 일은 기본적으로 관심 혹은 눈높이를 맞춘 소통을 통해 일어납니다. 나는 다른 ‘보통 사람’과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나를 특별하게 하는가? 이런 질문을 받기 전에 미리 구체적인 대답을 준비해둬야 합니다. 즉, 결정권자가 나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구체적인 이익 세 가지를 말할 수 없으면 잠재적 멘토와의 대화를 절대 시도해서는 안됩니다. 이익 세 가지를 찾으려면 당연히 잠재적 멘토의 직업적, 사회적, 개인적 삶을 연구해야 합니다. 그 사람에 대해 많이 알수록 대화에 성공하기가 더 쉽습니다.”

…나는 황금같은 기회가 있었는데, 그 기회를 다 날려버린 거다. 대표와도, 부대표와도.



마지막 일곱번째 아비투스. 사회 자본 - 누구와 어울리는가.

“누구를 아는가. 개인이나 집단과 얼마나 잘 지내는가. 든든한 가족, 훌륭한 롤모델, 도움을 줄 수 있는 인맥, 진정성 있는 멘토, 결정권자와의 친분, 서로를 격려하는 동료, 영향력, 권력, 가시성.”

여기서 중요한 건 먼저, 타고난 출신을 받아들일 것, 그리고 일단 세상은 그런 면에서 불평등하다는 것을 인정할 것.

“평범한 사람들이 고되게 일하고 경쟁에서 살아남아 마침내 중간쯤에 머무는 반면 상류층에서는 가족이라는 동맹군이 번개처럼 빠르고 빛나는 경력 쌓기를 가능하게 한다.” 기본적으로 경제자본과 문화자본이 많은 가정에서는 자연스럽게 상류층의 언어, 사고, 행동을 흡수할 확률이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이 얘기 다음으로 상류층도 상류층 자신이 타고난 사회 자본을 당연한 것처럼 살고 있고 그것이 얼마나 큰 자본인지 인지는 못하지만, 살아가면서 그 타고난 사회 자본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발전시키는데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렇게 상류층조차(?) 노력하는 상류층 사회 자본에 우리가 합류하려면, 그 과정이 일단 본인이 어색함을 물론이요 가족과 기존의 친구들에게조차 크랩 멘털리티때문에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을 현실적으로 말해준다. 그 예로 모차르트를 드는데, 이걸 버티기 위한 방법으로는 그냥 견디고 계속 꾸준히 그 새로운 세계 - 상류층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거 외에는 없다고 말한다. 노력하다 보면, 어색함이 익숙해지다보면 결국 나도 어느 새 그 무리가 되어 있을 거라고.

그런데 개인적으로 그게 과연 가능한지 모르겠다. 저자가 언급하는 이 때의 크랩 멘털리티는 심히 공감이 갔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친척들을 만날 때마다 알 수 없는 위압감과 공격성을 느꼈는데, 그게 바로 어른들 중에 친가와 외가를 통틀어 서울 거주에 SKY대학 출신이 우리 아빠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걸 나중에, 나이가 훨씬 들어 알았다. 아빠 등록금때문에 시골 땅을 팔아야 했다는 이야기를 아직도 하니, 안봐도 뻔하지 않은가. IMF때 집이 “망했다”라는 것보다 더 화가 났던 건 그런 우리 집 사정을 친척들이 고소해하는 걸 느꼈을 때였다. 내 친구들 중에 누구는 자기 친척들은 옥스퍼드, 하버드, 코넬 출신이라 한국에서 대학 나온 자신이 비교되서 스트레스 받는다고 하던데, 그 친구한테 나는 그 반대가 더 스트레스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창피해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저자가 말하는 크랩 멘털리티를 나는 속속들이 이해한다.

“이것이 빈곤층 자녀의 운명이다. 만약 가족 중 처음으로 대학에 다닌다면, 모범 없이 무언가가 되기 위해 대학 시절 내내 자신과 싸워야만 한다. 또한 출신 아비투스에서 스스로 벗어나야 한다. 부모가 대학 공부의 필요성을 모르기 때문에 순풍을 받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되레 역풍과 자주 싸워야 한다. 이를 테면 부모와 친척들이 위로 오르려는 그들의 노력을 항상 격려하며 동행하지 않는다. (...) 갈등과 소외감이 퍼진다. 부모는 두려움이 생기고, 성공한 자녀는 부모보다 자신이 더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가족 최초의 대졸자는 가족과의 관계에서 스스로 그림자가 된다. 그들은 자신의 의견을 입 밖에 내지 않고 외국어를 쓰지 않고 내키지 않는 가족 예식이라도 군말 없이 참여한다. 점점 짧아지는 방문에서 가능한 한 불쾌감을 유발하지 않는 것이 중요해진다. 반면 그들은 가족의 자랑이고 모든 문제의 해결책을 알고, 영향력을 가졌으며 급할 때는 약간의 돈도 가정에 보탤 수 있다. 이런 대안을 생각하면 기분이 조금 나아지지만 역시 좋지는 않다. 어느 쪽이든 괴롭긴 마찬가지다. 그들은 더는 출신 계급에 속하지 않고 더 높은 계급에도 아직 완전히 속하지 못한다.”

“하지만 모두가 출신 아비투스를 뛰어넘을 수 있다. 성공을 드러내는 외형, 고급 취향, 관계에 적응할 수 있다. 가족의 눈에 허황되어 보이는 목표를 추구하고 직업적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할 수 없다. 그들은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난 또래와 똑같은 사회자본을 가질 수 없다. 그들이 정복한 그들의 가족에게 완전히 열리지 않을 것이다. 가족이 아무리 자부심을 느끼고 사랑해도 안된다. 축하 파티나 시상식에서도 옛날 지인들과 새로 사귄 지인들이 서로 겉돌 것이다. 계급 상승자라는 낙인은 결코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같은 계급의 누군가가 더 높은 계급으로 올라가려 할 때 박수갈채를 보내지 않는 것은 정상이다. (...) 대부분의 주변인은 그런 새로움을 반기지 않을 것이다. 너답지 않아! 그래봐야 아무 소용없어! 너랑 안 어울려! 대락 이런 얘기를 듣는다.”

그래서 이 마지막 아비투스, 사회 자본에서 인상이 찌푸려졌다. 좋은 멘토를 구하고, 자신을 증명하고, 영향력을 드러내고. 물론 말로는 가능하다. 저자는 계속해서 우리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노력하면 상류층이 가지고 있는 아비투스를 가질 수 있다고. 그런데 나는 자꾸 고개를 젓게 된다.

==============================



결국 노진구가 영민이와 놀지 않는 건 이 크랩 멘탈리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이 말하는 아비투스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지금 이것보다 더 많고, 원래 썼던 글도 이것보다 길지만, 개인적인 일들을 쓰는 건 여기까지가 좋은 것 같아 그냥 마무리하려고 한다.

상류층에 대해 적나라하게 분석한 책이다. 강력 추천한다.

비상류층도 상류층의 아비투스를 가질 수 있다고 저자의 주장에 대해서는... 글쎄. 모르겠다.

크랩 멘털리티는 생각보다 강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