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전쟁의 흑역사 - 시장 질서를 박살 내고 세계경제에 자살골을 날린 무모한 대결의 연대기
이완배 지음 / 북트리거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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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전쟁의 흑역사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력 동원과 전쟁도 불사하는 치명적인 대결의 역사!

후추 전쟁부터 아편전쟁, 미중 무역 분쟁, 코로나19 경제 분쟁까지....



인간의 이기심을 찬양하라?

툭하면 경제의 발목을 잡고 평화를 끝장내는데도?!

시장 질서를 박살 내고 세계경제에 자살골을 날린 무모한 대결의 연대기를 기술한 책으로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흑역사 속으로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총 2부라는 큰 주제로 뜨거운 전쟁과 차가운 전쟁이라는 카테고리 속에 참혹한 전쟁들이 있었다는 사실과 끝없는 전쟁들이 보이지 않는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에 씁쓸함을 안고 읽어보았습니다.



플랜테이션의 비극을 아시나요?

열대, 아열대기후 지역에서 선진국이나 다국적 기업의 자본 및 기술과 원주민의 값싼 노동력이 결합되어 상품작물을 대규모로 단일 경작하는 농업 방식을 말합니다. 백인들이 노예를 사고파는 처참한 짓을 벌인 원인이 됐던 농업 방식입니다. 플랜테이션의 지역 농민들이 주로 재배하던 것은 주식으로 사용할 곡물인데, 기호식품용 작물을 위한 농지로 바뀌면서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굶어죽고 있습니다.

우리가 즐겨 먹는 바나나 또한 플랜테이션 작물에 속합니다. 미국 사업가 마이너 키스라는 자가 코스타리카로 건너가 철도를 깔고 그 주변의 부지를 모조리 바나나 농장으로 바꾸면서 철도 노선을 따라 바나나를 키우며 큰 수익을 얻자 과테말라의 땅도 싹쓸이해 바나나 플랜테이션 농장으로 만들어버리면서 철도 부설권을 얻기 위해 독재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얻고, 미국 정부가 개입을 하면서 쿠테타를 부추겨 민주 정부를 붕괴시켰습니다.

바나나란 과일이 이렇게 슬픈 역사를 가진 과일인지 중남미의 바나나 공화국에서 벌어진 바나나 전쟁을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바나나를 사이에 두고 일대 격전을 벌이는 두 번째 바나나 전쟁으로 강대국들의 추악한 민낯을 보고 말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과일'은 바나나가 아닐까요?




이 사진을 본 적이 있을까요? 이 사진은 미국 대공황기의 떠돌이 농민 여성입니다. 1936년 미국의 사진작가 도러시아 랭이 농업 안정국 조사 팀과 작업하면서 찍은 <이민자의 어머니>라는 유명한 사진입니다.

굶주림에 지친 엄마와 아이들로 보이는 사진인데, 그녀의 얼굴에 깊은 어둠과 근심 걱정이 깔려있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사진작가의 말에 따르면 그녀의 이름도 나이도,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묻지 못했는데... 그녀 스스로 다가와 자신은 32살이며 얼어붙어버린 땅에서 캐리 못한 야채들을 찾으러 나왔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주변에 새들이 날아다니자 아이들은 돌을 던지기 시작했고 돌에 맞은 새는 이들의 배를 채워줍니다. 이 사진은 미국 대공황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을 마치고 최강국 자리에 오를 정도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됐다가 삽시간에 극빈국처럼 돌변했습니다. 가난한 나라가 아니라 풍요로움의 상징이었던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이때를 대공황이라고 부릅니다. 당시 미국에 먹을 것이 부족해서 사람들이 굶어 죽은 게 아니라는 점이 아이러니합니다.

'왜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졌을까요?'

어긋나 버린 수요와 공급의 대참사라고 말합니다. 인류를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 같았던 기계화가 참사를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인간이 해야 할 일을 기계가 대신해 주면서 노동자들이 일자리로 잃게 되는 것이고, 이것이 자본주의 시대 최악의 참사로 불리는 대공황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1930년 이 참혹한 사태에 미국 정부가 자국 산업을 지켜 경제를 살린답시고 강력한 보호무역 카드를 들고나온 것입니다. 대선에서 성공한 후버는 당시 미국이 수입하던 물건에 관세를 대폭 올리는 전략을 들고나와 현대 경제사에서 가장 아둔한 보호무역 법안으로 불리는 [스무트-홀리 관세법]이 등장하면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유발한 경제 악화는 최악의 무역정책이 더해지며 처참할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미국은 어떻게 대공황을 견뎌냈을까요? 1933년 새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취임하면서 경제학자의 의견을 받아들여 공급 중심 경제에서 수요 중심 경제로 정책을 바꾸고, 뉴딜정책을 시행하면서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폐지하고 다시 자유무역 시장으로 복귀하면서 진정되었습니다.

요즘 경제 상황을 보면 미국 경제가 극심한 불황과 공황이 발생하기 직전의 모습으로, 환율상승이나 경기 침체로 인해 경제가 파탄 직면에 이르게 될 것처럼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 영향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인플레이션의 상승으로 화폐 가치가 하락하여 물가가 전반적으로,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을 보이면서 많은 서민들이 힘겨워하고 있습니다. 또한, 점점 인건비가 비싸서 많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사람 대신 로봇으로 대체되고 있는 모습들이 많이 눈에 띄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경제가 무너지고, 삶이 힘겹다고 느끼는 요즘 1920년대의 미국이 대공황을 겪었던 것처럼, 어찌 보면 비슷한 맥락으로 반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경제란, 경세제민의 약자로 '세상을 잘 다스려 민중을 구한다'라는 뜻입니다.

즉 경제 본연의 임무는 사회 구성원들이 보다 평화롭고 안정적으로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뭘까요? 역사의 일을 거울삼아 다가올 미래를 위해 발전하기 위함이 아닐까요?

아직도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총과 무기가 아닌 무역 전쟁을 통해 다양한 형태로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서로 자국을 보호한다며 보복을 하는 악순환은 끝은 결국 파국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현시점에 우리가 경제 전쟁의 역사를 돌아봐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전쟁과 분쟁이 아닌 평화와 화합으로 평화로운 경제 본연의 길을 찾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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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마지막 황실
이해경 지음 / 유아이북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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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친왕의 딸이자 마지막 왕녀가 말하는 구한말의 진실

대한제국 마지막 황실

마지막 왕조에서 황실의 자손으로 살아가는 삶은 어떠했을까요?

의친왕의 딸이 아직도 살아계시다니 놀랍기만 합니다.

그녀가 겪었던 마지막 왕녀로서의 삶과 한 세기 가까운 세월을 살면서 겪었던 한국 근현대사의 이야기들과 왜곡되었던 의친왕의 평가를 이야기하고자 책을 쓰셨다고 합니다.



이해경 여사를 통해 대한제국 황실과 구한말에 겪었던 역사가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고종 황제의 손녀이며 의친왕의 딸인 이해경 왕녀가 말하는 황실 가족의 삶을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실타래같은 기억들을 끄집어 내다 보면 옛기억이 절로 날 만큼 생생하다고 말합니다.

"나는 하루에 100년을 뛰었습니다."

내가 살던 궁과 다니던 학교 사이에는 시대적인 격차가 있었기 때문이다. 궁 안의 삶은 여전히 옛 풍습을 지키는 봉건시대였고, 학교는 날로 변화하는 개화 시대가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양쪽의 풍조에 다 발을 맞춰야 했다. 아침이면 봉건 시대에서 개화 시대로 건너갔다가 학교가 끝나면 다시 개화 시대에서 봉건시대로 되돌아가는 것이 날마다 반복되는 나의 일상이었다. ...... 42쪽에서

활달한 성격의 생모와 생이별하며 사동궁에서 의친왕비의 보살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어릴 때부터 철저히 지켜야 하는 궁중생활, 늘 시중드는 사람이 있었고, 특별대우를 받으며 학교 생활을 하지만, 친구조차 마음대로 사귈 수 없었고, 궁 밖으로 자유롭게 놀러 나갈 수 없는, 마치 깔끔하고 점잖은 감옥에 갇힌 것 같은 나날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6.25 전쟁이 끝나면서 바로 유학을 준비하게 됩니다.

더 이상 자유롭지 못한 이곳, 공포와 굶주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특별한' 가족이었기에 더 깊은 절망감에 빠져들었던 이곳에서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도망치기로 작정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 이제 떠난다. 잘 있거라, 나의 조국아!" 그렇게 떠난 때가 1956년이었습니다.

80달러만 들고 떠났던 그녀가 1975년 생모인 김금덕 여사의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떠난 지 19년 만에 다시 고국 땅을 밟게 됩니다.

6.25전쟁이 끝나고 혼란한 시기에 돌아가셨던 아버지, 왕족 신분이었지만 화양리 사유지에 가매장의 형태로 모시게 되었는데 너무나도 삭막하고 초라한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많은 우여곡절끝에 1996년 의친왕과 의친왕비는 30여 년 만에 홍유릉 능역에 안장되었습니다.

이제 그녀의 가슴속에 응어리졌던 무거운 짐을 조금이나마 덜게 된 것입니다.

최초로 한국 고무신을 신은 이가 왕족 중에 항일 의식이 가장 강했던 의친왕 이강이었다. 의친왕이 신고 다녔다는 사실이 당시 신문에 널리 광고되고 나라 잃은 설움을 고무신 신는 것으로 달랬기에 당시 고무신을 시는다는 것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적 과시로 받아들이기까지 했다.

-이규태, <이듀태 역사 에세이>,<조선일보> 1999년 10월 1일

의친왕은 당시 사람들에게 항일 정신의 상징으로 여겨졌지만 나라를 되찾은 오늘날에는 아버지의 항일 업적이 폄하되고 왜곡되었다는 점을 안타까워하는 부분입니다. <나의 아버지 의친왕>편에서는 의친왕이 수년 전 독립운동단체인 대동단 활동, 상하이 임시정부로 탈출하려 했던 사건, 경남 거창에서 의병을 양성하려 했던 일들에 관한 자료와 이야기들을 이야기하고, 그러한 근거에 아버지 의친왕의 독립운동 사실을 인정해 달라고 '의친왕독립정신현장회'라는 단체가 회원 27명의 연명으로 국가보훈처에 '의친왕 이강 공의 독립 유공자 포상 신청'을 제출했지만, 보훈처의 서훈 심사 내규에 저촉되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독립 유공자로 인정받는것이 불가능 하다면 독립 투쟁에 관한 업적만이라도 제대로 인정받고 평가해주기를 바란다는 그녀의 바람이 담겨있습니다.



왕의 딸로서, 황제의 손녀로서, 궁에서 살았을 때의 모습등이 궁금해서 읽게 되었으나, 대한 제국 황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일부에 그칩니다.

대한 제국의 황실에서 특별대우를 받았던 어린시절과는 반대로, 일제 강점기와 6.25를 겪으며 민간인과 다름없는 공포와 절망감,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도망가듯 떠나야 했던 20대 이후의 삶, 그리고 재미동포로서의 삶까지 그녀가 겪었던 삶과 의친왕의 독립운동에 관한 초점에 맞추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제국을 끝으로 왕조의 막을 내리게 된 이유는 일본에 국권을 빼았기고, 항일에 대한 의지가 없었다고 평가를 했고, 저 역시 동감했던 내용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마지막 황실의 의친왕과 의친왕비, 그리고 황실의 자손들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녀의 바람처럼 그녀의 아버지 의친왕에 대한 인정과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져서 왜곡된 세간의 평가를 바로잡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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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워 모티브와 소품 - 일 년 내내 즐길 수 있는 코바늘뜨기
애플민트 지음, 구연경 옮김, 조수연 감수 / 참돌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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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내내 즐길 수 있는 코바늘뜨기

플라워 모티브와 소품



주변에 보면 솜씨 좋으신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재봉질을 하여 옷을 직접 해 입기도 하고, 코바늘 뜨기로 온갖 패션부터 생활용품까지 다양한 금손들이 계십니다. 그분들을 보면 어떻게 이런 것까지 손쉽게 만들 수 있을까? 싶은 궁금증과 함께 그들의 금손이 너무 부럽기만 합니다.

봄이 오고 있습니다. 이 책의 다양한 플라워 모티브를 보니 봄에 어울릴만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고, 코바늘을 통해서 다양한 모티브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렙니다.


코바늘로 뜰 수 있는 꽃의 종류가 이렇게도 다양한 줄 몰랐습니다. 45종이나 되는 다양한 꽃들의 도안을 만나볼 수 있고, 단순히 옷이나 가방의 형태가 아닌, 모티브를 서로 연결하여 가방, 패션 소품, 사계절 쓸 수 있는 숄이나 티 코스터 등 만들어놓은 디자인들을 보니 새롭기도 하고 만들어 보고 싶은 도전정신이 의욕이 마구 생깁니다.


예~전에 코바늘을 해보려고 잠깐 시도했던 기억을 더듬어 코바늘뜨기의 기초를 먼저 읽어봐야 합니다.

수많은 플라워들을 뜨려면 도안을 보는 방법을 알아야 하니까요. 저처럼 뜨개질을 처음 시작하는 초보자들을 위해서 '베이직 레슨'으로 기초를 배워봅니다. 도안을 보고 어느 정도 작품을 만드실 줄 아는 분들은 '포인트 레슨'을 통해 손쉽게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렇게 다양한 플라워 모티브들을 엮어서 봄이 가득 담긴 숄을 만들고 싶습니다. 물망초, 프리뮬러, 비올라, 네모필라 등과 같은 플라워 모티브를 이용하여 코바늘로 만들어낸 숄인데, 너무 화사하고 포인트가 눈에 띄어 어느 누구나 걸쳐도 그 사람의 어깨에 봄이 온 것 같은 느낌이 드는것 같습니다. 단색으로만 만들었다면 밋밋할 수도 있을 텐데, 플라워들이 박혀있어 화사하고, 다양한 색들을 이용하여 피어나는 꽃송이들이 더욱 눈에 들어와 더욱 아름답습니다.

비올라와 네모 필라 숄을 만들 수 있는 도안입니다. 사용한 실의 종류와 바늘의 두께, 모티브를 뜨는 방법과 마무리하는 방법, 각 모티브를 연결하는 방법과 모티브의 배치도까지 어느 정도 코바늘로 도안을 보고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분들이라면 '아~이렇게 만드는구나..'싶겠지만, 저 같은 똥 손은 도안을 봐도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아요. 한 번도 도안을 보고 작품을 만들어본 적이 없어서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만들 수 있는지 이런 작품을 볼 때면 정말 신기하기만 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실과 바늘로 원하는 꽃망울을 만들어 모티브끼리 연결하여 가방도 만들고, 파우치도 만들고, 옷을 만들 수 있다는 즐거움을 저도 만끽해 보고 싶어서 책을 읽으며 여러 차례 도전해 보았는데 왕초 봉인 저에게는 아직 도안을 볼 줄 아는 능력이 없고, 입체적인 이해가 안 돼서 원하는 꽃을 만들어내질 못해서 아쉽습니다. 동영상이 포함되어 있다면 참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적어도 도안을 보고 뭔가를 만들 수 있는 정도의 초보자라면 원하는 플라워 모티브와 소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페이지마다 다양한 꽃들을 표현해낸 플라워 모티브들을 보니 소장하고 싶은 욕구가 마구 생깁니다. 저도 포기하지 않고 도안 보고 만드는 방법을 터득해서 아름답고 다양한 꽃들을 내 손을 통해 만들어내는 일상에서의 작은 행복을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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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서 인간으로 중세와 르네상스 미술
박영택 지음 / 스푼북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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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서 인간으로

중세와 르네상스 미술



[신에게서 인간으로 중세와 르네상스 미술]이란 도서는 초등 고학년 예술/취미 분야에 관한 책입니다.

중세 시대와 르네상스시대에 대해 공부를 했었지만, 르네상스가 고대 그리스 문화들의 부활이라, 즉 재생이라는 의미가 기억에 남을 만큼 열심히 외웠던 것 같아요. 중세 시대를 넘어 왜 다시 고대시대의 그리스 문화들이 이탈리아 피렌체를 중심으로 부흥을 하며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데 종교, 건축, 화가 등 자세한 설명과 덧붙여지는 미술작품들을 통해 한층 더 쉽고 재미있는 내용으로 배울 수 있었습니다.



양쪽의 그림에서 무엇이 느껴지시나요?

왼쪽은 중세 시대의 종교 그림이고, 오른쪽은 르네상스 시대의 종교 그림입니다.

두 그림만 봐도 명확한 차이가 느껴집니다. 중세 시대에는 그림을 그릴 대상을 사실대로 그리면서 그림을 통해 영적인 느낌과 정해진 규칙에 따라 그리며 글을 모르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좋은 교육수단이 되어주었습니다. 반면, 르네상스 시대의 종교적인 그림은 중세 시대의 그림과는 사뭇 다른 과학적이며 합리적인 창의성을 지닌 미술로 더 사실적이고 자연주의적인 그림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해외 유럽들을 여행하다 보면 성당들을 마주치게 되고, 굉장히 우뚝 솟은 모습들을 많이 봤을 겁니다.

그러한 대성당은 고딕 미술의 대표물입니다. 12세기 중반부터 뾰족한 형태의 천장을 만들는 기술이 이루어집니다.

고딕 이전의 로마네스트 성당의 천장은 터널식 아치인 데 반해 1100년경에는 돌을 재료로 하면서도 높고 튼튼하게 지을 수 있는 천장이 등장합니다. 중세 사람들은 위로 뻗어 올라 하늘에 가 닿고 싶다는 열망을 성당 건축을 통해 표현했습니다. 높은 천장은 인간을 초월한 힘에 대한 강한 동경과 신으로부터 구원받고 싶다는 간절함을 그것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기둥과 기둥 사이를 마치 우산살처럼 연결해서 이룬 천장과 뾰족한 모양의 아치는 더 넓게 보이고, 길고 큰 장들로 인해 대량의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데 그 빛을 이용해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들게 됩니다. 중세 시대 사람들은 대다수 사람들이 문자를 몰라 성경을 읽지도, 기도문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대성당의 높은 곳에 있는 조각이나 스테인드글라스의 세부적인 도상이 지닌 의미를 알 수 있었다고 하는데, 가끔은 글이나 말보다 창작물을 통한 메시지 전달이 강력할 때가 있나 봅니다.

스테인드글라스로 채워진 대성당을 둘러보고 있노라면 입이 턱 벌어지면서 어떻게 만들었지 정말 궁금하니다. 너무나 위대해 보이는 건축물 앞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담겨있을지, 그 덕에 높고 높은 천장을 바라보면 신에게 더 가까이 가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들 것 같습니다.



르네상스의 대표 미술가 중 한 사람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피렌체 화가들이 입체적인 표현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윤곽선을 확실히 했던 그림들과는 다르게 엷고 부드러운 윤곽과 희미한 그늘을 통해 미의 다양성을 보여줬습니다. 그는 자연을 개선하는 게 아니라, 자연을 정확히 모방해야 하고, 독창적이고 다양한 표현을 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창조적인 상상력의 역할을 중요하게 여겨서인지 <모나리자>는 심리적인 분위기를 감돌게 하고 자연의 신비성을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을 가지고 아직까지도 많은 이야깃거리가 회자되고, 다양한 상상력을 담은 해석들이 나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현재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 중심의 사실주의적인 그림과 완숙미가 돋보이는 그림들을 보면 르네상스의 전성기가 여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르네상스 예술이 오늘날까지 이어져오는 것을 보면 분명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거장들의 등장을 통해 르네상스 예술이 정점을 찍을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중세 시대와 르네상스의 그림과 건축물과 종교적 이야기들을 서로 비교해가며 어떻게 차이가 있는지, 시대별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렇게 바뀌게 된 배경들을 읽다 보니 130페이지의 분량이 순식간입니다. 두 시대의 명확한 차이와 작가가 중점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에 포인트를 짚어가며 오랫만에 미술이라는 주제로 깊게 파헤쳐본 시간이었고, 설명이 어렵지 않아서 쉽고 재미있게 읽은 것 같습니다. 분명 아이에게 도움이 되고자 읽기 시작한 책인데, 제가 공부를 한 느낌입니다. 르네상스가 탄생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 자세히 읽을 수 있었고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읽는다면 시대적인 지식과 그림에 대한 배경지식을 더 쌓을 수 있는 좋은 책이라 생각됩니다. 이제 저의 습득된 지식을 바탕으로 아이와 함께 중세 시대와 르네상스의 미술에 대해 이야기를 해봐야겠습니다.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제품 또는 서비스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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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방의 계절
연소민 지음 / 모요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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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젊은이들에게 위로와 힐링이 되어주는 소설

공방의 계절

"모아둔 돈이 많은 것도 아닌데, 감정에 못 이겨 정말 홧김에 질러버렸던 거죠. 그리고 깨달았어요. 무기력이 가장 무서운 건, 감정이 회복됐을 때 그 시기를 돌아보면 나조차도 이해를 못 한다는 것을요. 기운이 나기 시작하면 과거의 나는 거두면 안 되는 존재가 되어버려요. 그리고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내가 저지른 일들을 뒷수습하느라 바쁘죠. 그렇게 뒷수습하자며 무작정 집을 뛰쳐나와 우연히 들어간 곳이 소요였어요. 카페인 줄 알았거든요. 거창한 계기도 없고, 계획적으로 취미를 가지려 한 것도 아니에요. 별거 없죠?"

방송 작가를 그만두고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게 된 유정민, 그렇게 별생각 없이 우연히 들어간 그곳은 바로 소요입니다.

'그날의 계절을 그릇에 담다'

'마음을 굽는 공방, 소요'

아름다움, 슬픔, 약간의 신비로움. 소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모여 만들어낸 공간이 소요입니다.

소요, 그곳에서 상처 혹은 삶의 고민들을 갖고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P186.

난독증이 나으면,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 일을 해야 할 것 같은 정민은 자신의 정신이 온전치 않다는 것도 두려웠지만, 지극히 정상이 되는 것도 두려웠다. 병을 붙들고 있는 것은 아직 조금 더 쉬어도 된다는 허가증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정민은 '쉼'에 대해 어떠한 허락도 필요치 않았다. 언제까지 쉬고 언제부터 일어설지는 자신이 정할 일이었다. 자신의 속도를 헤아려 스스로 휴식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을 때야말로 사람은 진정 성숙해지는 걸지도 몰랐다.

P.198

"내가 남들보다 길게 공부하고 헤매면서 깨달은 게 뭔 줄 알아? 길은 절대 한 번의 선택으로 좁혀지지 않는다는 거야. 지금의 입시는 어린 나이에 벌써 길을 확정 지으라는 게 아니야. 오히려 길을 넓혀 주는 시작일 수 있어. 넌 앞으로 더 많은 선택을 하게 될 거야. 그러니까 지금의 선택을 섣불리 판단하지 마. 멈추지 않고 나아가기만 한다면 네가 원하는 샛길이 분명 나타날 거야. 대신 그땐 누구를 실망시키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대범하게 방향을 틀어야 해....."

P.218

나는 이미 동굴에서 나오는 법을 알아. 나오는 날을 미루고 싶었을 뿐이야. 내가 닳을까 봐, 나를 지키기 위해서 그랬어. 그러니 동굴에서는 내가 알아서 나올게. 혼자 나오는 건 아니니까 이제 내 걱정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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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를 통해 만들어지는 그릇 하나, 도자기는 수만 번의 손을 거쳐 모양이 나오고, 몇 번의 구워냄 끝에 얻는 것이 값지듯, 사람도 그런 것 같습니다.

이야기 속에서 소요 공방의 회원들은 흙을 만지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아픔을 나누고, 흉터가 아물어 질때즈음 성장해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인공 정민은 방송작가로 글을 쓸 때 단 한 번도 '나를 표현한다'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건 아마도 철저히 타인을 위한, 시청자가 원하는 글만 써야 했기 때문이었겠지요. 실체 없이 하얀 좋이에 씐 검은 글씨는 정민의 이야기를 표현하기에 충분치 않다는 걸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나다움'이란 뭘까요? 20대, 30대, 점점 나이를 먹을수록 '나'라는 자신에 대한 생각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젊었을 땐, 오로지 나만 생각했고, 그때의 '나'를 되돌아보면 저도 한 번쯤은 동굴 속에 갇혀 나오려고 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만 해도 두렵고, 무수히 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도망치거나 회피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내 선택에 있어 확신이나 자신감이 없으니 힘들었고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은 나날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럴 때, 저에게도 소요 같은 공방을 만났더라면 지친 마음을 달래줄 수 있지 않았을까요?

지금이라도 <공방의 계절>을 만나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후반으로 갈수록 저장하고 싶은 구절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만큼 마음을 위로해 주는 작가님의 한 구절, 한 구절이 마음에 와닿았고, 정민을 대신해서 작가님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더욱 소중하게 대하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타고난 행복이 부족해도, 사랑스러움이 부족해도, 채워갈 수 있다는 말을 되새기며 도자기처럼 천천히 남은 삶을 뜨겁게 구워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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