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마지막 황실
이해경 지음 / 유아이북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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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친왕의 딸이자 마지막 왕녀가 말하는 구한말의 진실

대한제국 마지막 황실

마지막 왕조에서 황실의 자손으로 살아가는 삶은 어떠했을까요?

의친왕의 딸이 아직도 살아계시다니 놀랍기만 합니다.

그녀가 겪었던 마지막 왕녀로서의 삶과 한 세기 가까운 세월을 살면서 겪었던 한국 근현대사의 이야기들과 왜곡되었던 의친왕의 평가를 이야기하고자 책을 쓰셨다고 합니다.



이해경 여사를 통해 대한제국 황실과 구한말에 겪었던 역사가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고종 황제의 손녀이며 의친왕의 딸인 이해경 왕녀가 말하는 황실 가족의 삶을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실타래같은 기억들을 끄집어 내다 보면 옛기억이 절로 날 만큼 생생하다고 말합니다.

"나는 하루에 100년을 뛰었습니다."

내가 살던 궁과 다니던 학교 사이에는 시대적인 격차가 있었기 때문이다. 궁 안의 삶은 여전히 옛 풍습을 지키는 봉건시대였고, 학교는 날로 변화하는 개화 시대가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양쪽의 풍조에 다 발을 맞춰야 했다. 아침이면 봉건 시대에서 개화 시대로 건너갔다가 학교가 끝나면 다시 개화 시대에서 봉건시대로 되돌아가는 것이 날마다 반복되는 나의 일상이었다. ...... 42쪽에서

활달한 성격의 생모와 생이별하며 사동궁에서 의친왕비의 보살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어릴 때부터 철저히 지켜야 하는 궁중생활, 늘 시중드는 사람이 있었고, 특별대우를 받으며 학교 생활을 하지만, 친구조차 마음대로 사귈 수 없었고, 궁 밖으로 자유롭게 놀러 나갈 수 없는, 마치 깔끔하고 점잖은 감옥에 갇힌 것 같은 나날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6.25 전쟁이 끝나면서 바로 유학을 준비하게 됩니다.

더 이상 자유롭지 못한 이곳, 공포와 굶주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특별한' 가족이었기에 더 깊은 절망감에 빠져들었던 이곳에서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도망치기로 작정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 이제 떠난다. 잘 있거라, 나의 조국아!" 그렇게 떠난 때가 1956년이었습니다.

80달러만 들고 떠났던 그녀가 1975년 생모인 김금덕 여사의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떠난 지 19년 만에 다시 고국 땅을 밟게 됩니다.

6.25전쟁이 끝나고 혼란한 시기에 돌아가셨던 아버지, 왕족 신분이었지만 화양리 사유지에 가매장의 형태로 모시게 되었는데 너무나도 삭막하고 초라한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많은 우여곡절끝에 1996년 의친왕과 의친왕비는 30여 년 만에 홍유릉 능역에 안장되었습니다.

이제 그녀의 가슴속에 응어리졌던 무거운 짐을 조금이나마 덜게 된 것입니다.

최초로 한국 고무신을 신은 이가 왕족 중에 항일 의식이 가장 강했던 의친왕 이강이었다. 의친왕이 신고 다녔다는 사실이 당시 신문에 널리 광고되고 나라 잃은 설움을 고무신 신는 것으로 달랬기에 당시 고무신을 시는다는 것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적 과시로 받아들이기까지 했다.

-이규태, <이듀태 역사 에세이>,<조선일보> 1999년 10월 1일

의친왕은 당시 사람들에게 항일 정신의 상징으로 여겨졌지만 나라를 되찾은 오늘날에는 아버지의 항일 업적이 폄하되고 왜곡되었다는 점을 안타까워하는 부분입니다. <나의 아버지 의친왕>편에서는 의친왕이 수년 전 독립운동단체인 대동단 활동, 상하이 임시정부로 탈출하려 했던 사건, 경남 거창에서 의병을 양성하려 했던 일들에 관한 자료와 이야기들을 이야기하고, 그러한 근거에 아버지 의친왕의 독립운동 사실을 인정해 달라고 '의친왕독립정신현장회'라는 단체가 회원 27명의 연명으로 국가보훈처에 '의친왕 이강 공의 독립 유공자 포상 신청'을 제출했지만, 보훈처의 서훈 심사 내규에 저촉되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독립 유공자로 인정받는것이 불가능 하다면 독립 투쟁에 관한 업적만이라도 제대로 인정받고 평가해주기를 바란다는 그녀의 바람이 담겨있습니다.



왕의 딸로서, 황제의 손녀로서, 궁에서 살았을 때의 모습등이 궁금해서 읽게 되었으나, 대한 제국 황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일부에 그칩니다.

대한 제국의 황실에서 특별대우를 받았던 어린시절과는 반대로, 일제 강점기와 6.25를 겪으며 민간인과 다름없는 공포와 절망감,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도망가듯 떠나야 했던 20대 이후의 삶, 그리고 재미동포로서의 삶까지 그녀가 겪었던 삶과 의친왕의 독립운동에 관한 초점에 맞추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제국을 끝으로 왕조의 막을 내리게 된 이유는 일본에 국권을 빼았기고, 항일에 대한 의지가 없었다고 평가를 했고, 저 역시 동감했던 내용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마지막 황실의 의친왕과 의친왕비, 그리고 황실의 자손들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녀의 바람처럼 그녀의 아버지 의친왕에 대한 인정과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져서 왜곡된 세간의 평가를 바로잡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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