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방의 계절
연소민 지음 / 모요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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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젊은이들에게 위로와 힐링이 되어주는 소설

공방의 계절

"모아둔 돈이 많은 것도 아닌데, 감정에 못 이겨 정말 홧김에 질러버렸던 거죠. 그리고 깨달았어요. 무기력이 가장 무서운 건, 감정이 회복됐을 때 그 시기를 돌아보면 나조차도 이해를 못 한다는 것을요. 기운이 나기 시작하면 과거의 나는 거두면 안 되는 존재가 되어버려요. 그리고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내가 저지른 일들을 뒷수습하느라 바쁘죠. 그렇게 뒷수습하자며 무작정 집을 뛰쳐나와 우연히 들어간 곳이 소요였어요. 카페인 줄 알았거든요. 거창한 계기도 없고, 계획적으로 취미를 가지려 한 것도 아니에요. 별거 없죠?"

방송 작가를 그만두고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게 된 유정민, 그렇게 별생각 없이 우연히 들어간 그곳은 바로 소요입니다.

'그날의 계절을 그릇에 담다'

'마음을 굽는 공방, 소요'

아름다움, 슬픔, 약간의 신비로움. 소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모여 만들어낸 공간이 소요입니다.

소요, 그곳에서 상처 혹은 삶의 고민들을 갖고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P186.

난독증이 나으면,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 일을 해야 할 것 같은 정민은 자신의 정신이 온전치 않다는 것도 두려웠지만, 지극히 정상이 되는 것도 두려웠다. 병을 붙들고 있는 것은 아직 조금 더 쉬어도 된다는 허가증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정민은 '쉼'에 대해 어떠한 허락도 필요치 않았다. 언제까지 쉬고 언제부터 일어설지는 자신이 정할 일이었다. 자신의 속도를 헤아려 스스로 휴식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을 때야말로 사람은 진정 성숙해지는 걸지도 몰랐다.

P.198

"내가 남들보다 길게 공부하고 헤매면서 깨달은 게 뭔 줄 알아? 길은 절대 한 번의 선택으로 좁혀지지 않는다는 거야. 지금의 입시는 어린 나이에 벌써 길을 확정 지으라는 게 아니야. 오히려 길을 넓혀 주는 시작일 수 있어. 넌 앞으로 더 많은 선택을 하게 될 거야. 그러니까 지금의 선택을 섣불리 판단하지 마. 멈추지 않고 나아가기만 한다면 네가 원하는 샛길이 분명 나타날 거야. 대신 그땐 누구를 실망시키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대범하게 방향을 틀어야 해....."

P.218

나는 이미 동굴에서 나오는 법을 알아. 나오는 날을 미루고 싶었을 뿐이야. 내가 닳을까 봐, 나를 지키기 위해서 그랬어. 그러니 동굴에서는 내가 알아서 나올게. 혼자 나오는 건 아니니까 이제 내 걱정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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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를 통해 만들어지는 그릇 하나, 도자기는 수만 번의 손을 거쳐 모양이 나오고, 몇 번의 구워냄 끝에 얻는 것이 값지듯, 사람도 그런 것 같습니다.

이야기 속에서 소요 공방의 회원들은 흙을 만지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아픔을 나누고, 흉터가 아물어 질때즈음 성장해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인공 정민은 방송작가로 글을 쓸 때 단 한 번도 '나를 표현한다'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건 아마도 철저히 타인을 위한, 시청자가 원하는 글만 써야 했기 때문이었겠지요. 실체 없이 하얀 좋이에 씐 검은 글씨는 정민의 이야기를 표현하기에 충분치 않다는 걸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나다움'이란 뭘까요? 20대, 30대, 점점 나이를 먹을수록 '나'라는 자신에 대한 생각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젊었을 땐, 오로지 나만 생각했고, 그때의 '나'를 되돌아보면 저도 한 번쯤은 동굴 속에 갇혀 나오려고 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만 해도 두렵고, 무수히 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도망치거나 회피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내 선택에 있어 확신이나 자신감이 없으니 힘들었고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은 나날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럴 때, 저에게도 소요 같은 공방을 만났더라면 지친 마음을 달래줄 수 있지 않았을까요?

지금이라도 <공방의 계절>을 만나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후반으로 갈수록 저장하고 싶은 구절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만큼 마음을 위로해 주는 작가님의 한 구절, 한 구절이 마음에 와닿았고, 정민을 대신해서 작가님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더욱 소중하게 대하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타고난 행복이 부족해도, 사랑스러움이 부족해도, 채워갈 수 있다는 말을 되새기며 도자기처럼 천천히 남은 삶을 뜨겁게 구워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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