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의 여자들>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여자들 - 고종석의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9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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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은 글쓰기로만 먹고 살고 싶다는 개인적인 소망-부질없는, 그러나 다행히 곧 제정신을 차린-의 롤 모델로 꼽은 작가(중의 한명)이다. 해박한 지식도 지식이지만 문장력이 손에 꼽을 만하다. 그래서 고종석의 개인적 관심사에 전혀 관심이 없으면서도, 그의 다양한 관심사를 덩달아 따라가고 만다. 

‘고종석의 여자들’도 마찬가지. 고종석이 어떤 여자를 좋아하든 말든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다. (글쓰기로 먹고 산다는 소망을 버린 이유부터 고종석이 왠지 모르게 미워졌다고 해야 할까, 글쎄 애증이라고 정리하겠다.) 더욱이 자기 이름을 제목에 버젓이 들이밀다니 이건 좀 너무하는 게 아닌가 싶더란 마이다. 아무리 책을 펴낸 출판사 개마고원의 기획위원이기로서니 이건 좀 월권이 아닌가 싶어서 책을 펴들었다.

그리고 단번에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고종석이 눈길을 주면 알아서 지식이 고이는지, 장르를 넘나들며 박학다식함이 밑절미가 되지 않았다면 이 책에서 소개하는 34명의 여자들이 등가의 비중을 갖추지 못했을 것이다.

서너 장 분량으로 짤막하게 소개하는 34명은 고종석의 편애 말고는 딱히 하나로 묶을 만한 게 없다. 대부분 실존 인물이지만 개중에는 소설 등장인물도 간간히 등장한다. 그중 소설 ‘겨울여자’ 주인공 이화는 소설보다 동명 영화에 출연한 장미희에게 끌렸다고 고백을 한다.

그러니까 누가 그 따위 시시콜콜한 개인 관심사에 관심이 있나 말이다, 라고 따져 묻고 싶지만 그게 한 장을 또 넘기면 정신없이 빠져 들게 된단 말이다. 그런 이유가 분명 내가 아는 인물도 종종 등장 하는데, 내가 단편적으로 아는 그이와 고종석이 풀어낸 그이 사이 격차가 사뭇 크다보니, 당황스러우면서도 고개를 주억거리고 만다. 

실존 인물이라고 하나의 틀로 묶을 수 있는 건 또 아니다. 지천명의 나이에 다다른 고종석의 관심사는 오락연예 프로그램 ‘미수다’ 출신의 엽기 아가씨 후지타 사오리 양에 대한 이른 바, 삼촌덕후스러운 글이나 故 최진실에 대한 안타까운 소회부터 격정의 시대를 앞장서서 이끌었던 로자 룩셈부르크, 클라라 체트킨, 라 파시오니라아 등등 종과 획을 넘나든다. 

여자와 수다 떠는 것이 섹스하는 것보다(적어도 그 못지않게) 즐거운 여자 애호가 자노파일(gynophile)이라고, 솔직히 다소 구차하게 들리지만, 소개하는 증거랄지 TV, 서적이 아닌 실제로 각별한 친분을 쌓고 지내는 친구 황인숙 시인, 강금실 변호사까지 다양하고도 무궁무진하다.

그렇다고 이 책 제목이 여성들이 아니라 여자들인 이유가 있는 게, 여자들에 대한 전폭적 지지를 표방하는 것도 아니다. 분명 고종석의 글이나 사직으로 보건대, 분명 여성적인 구석이 다분하리라 여겨지지만 고종석은 스스로도 말하지만 냉정한 현실주의자이다.

그 뒤 나는 순전히 내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 강금실이 공인활동을 하는 것을 말려왔다. (…) 사실은 강금실의 속마음을 알고도, 그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를 예측하고도, 내가 부질없는 짓을 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서울시장 출마를 앞두고 그녀가 의례적으로 의견을 물어왔을 때, 나는 반대했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결국 출마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279쪽

현실주의자란 적당히 포기할 줄도 알고, 타협할 줄도 알아야 한다. 한편으로 야박하게도 들릴 만한 에피소드이다. 그러나 독자 입장에선 냉정하게 현실을 분석하고 정리하고 판단하여 한쪽으로 쏠리지 않으려는 고종석의 중심잡기가 실로 약이 된다.

고종석이 선동과 음모와 낭설이 팔 할이 넘는 정치판에 대한 짤막한 글을 써낼 때면, 다른 누구의 글보다 눈길이 먼저 가는 이유는 현실주의의 밑동에 깊숙이 뿌리 내린 고종석의 내공을  모르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굳이 개인적으로 알아서 될 일도 아니고, 고종석의 책 한 권을 읽으면 단박에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굳이 부제를 달자면 ‘오십 줄 현실주의자의 여성 편력’ 쯤이 되겠다. 그리고 이왕 나무에 비교를 했으니 말인데, 굵게 뻗어 내린 뿌리부터 막 돋아나는 잎사귀까지 고종석의 과거와 현재를, 또 그이의 시인과 정치가라는 친구들에 대한 성향으로 보건대 미래까지 여자라는 기존으로 바라본 ‘고종석’이 도드라진다. 그래서 결국 이 책에 등장한 34명의 여자들이 또 가물가물하다.

글은 이렇게 쓰는 거라고, 또 한 수 가르치려는 게다. 젠장, 누가 원했느냔 말이다. 자꾸 사람을 들쑤시는데 아주 미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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