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를 금하노라>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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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를 금하노라 - 자유로운 가족을 꿈꾸는 이들에게 외치다
임혜지 지음 / 푸른숲 / 2009년 9월
평점 :
며칠 전에 <녹색평론> 편집자이자 생태운동가인 김종철 선생님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허나 커다란 대학교 세미나실이 무색하게 몇 안 되는 사람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김종철 선생님은 오붓하니 좋다고 했다. 어차피 자신과 같은 얘기를 하는 사람들도 몇 안 되는 터, 들을 귀 있는 사람들만 들으면 족하다 한다.
생태에 바탕을 두고 종과 획으로 대한민국 사회를 진단하는 그의 얘기는 내가 몰랐거나 혹은 알아도 그러려니 하는 관성으로 사는 부분을 꼬집었다. 그의 얘기가 이른바, 보수 언론을 떠나 진보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쉬이 나오지 않는 이야기였다.
일례로 들자면 그는 오는 12월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기후협약을 두고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기후협약을 맺는 주체들이 정권 창출이 목적인 정치인들이고 보면, 그들의 선거판은 생리적으로 기업의 자본에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뿌리를 자본에 두고, 지구환경을 논한다는 자체가 난센스라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인 지구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데다,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그래도 이 정도면 됐지, 하는 식으로 살살 달래면서 세뇌를 한다는 것이다. 그이의 결론은 <녹색평론>지에서 늘 주장하듯이 자발적 공동체를 통한 순환 구조의 삶이며, 그게 가능한 이유는 딱 한 가지 ‘어울려 사는 재미’다. 그의 얘기는 내게 참 마중물 같아서 속에서 뭔가 솟구쳐 오르는 듯하나, 바쁜 일정에 쫓겨 강연을 채 다 듣지도 못하고 나와서는 도루묵이 되기 일쑤이다.
당장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를 확인하는 일이 바로 내 존재의 가치를 확인하는 기쁨 아니겠는가? 사회가 뒤집어지거나 말거나 변치 않는 나의 가치를 확인한 것. 이것이 인생의 횡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77쪽
마침 김종철 선생님의 말씀에 잘 맞는 삶을 읽었다. <고등어를 금하노라>의 저자 임혜지는 독일 남자와 독일에서 사는 52세 평범한 주부로 독일에서 건축 박사 학위를 받았으나, 그녀의 이름이 그 방면에서 그다지 유명한 것 같지는 않다.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데는 우리가 결혼 초반에 직업 세계에서 승승장구하지 못했다는 이유도 일부 작용했을 것이다. 우리 인생관이 확고하게 서기 전에 일에 대한 유혹이 먼저 들어왔다면, 승부욕이 강한 우리의 성격으로 보건대 진로를 그 방향으로 결정했을지도 모른다. 85쪽
그녀 스스로 말하길, 그녀는 프리랜서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거나 하는 식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실력이 부족하거나 경쟁에 뒤쳐졌다가 보다 남편과 두 아이가 여유자작하게 늘 행복한 삶이 화두이다.
물론 그랬어도 괜찮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우리는 지금과 다른 종류의 기쁨을 맛보았을 것이다. 내가 지금 아무런 후회 없이 이렇게 행복한데, 내가 가지 않은 길이라고 해서 폄하할 이유는 없다. 나는 이런 행복감이 나만의 거짓말인지 아닌지 고민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갖고 있는 것, 누리고 있는 것을 무척이나 사랑한다는 사실이다. 86쪽
그럼 그녀의 혼혈 아이들이 독일 최고 명문대라도 수석 합격한 것일까. (독일에는 세계적 명문 랭킹 대학이 없다. 하지만 개의치 않는 게 한두 개 대학의 실력이 국력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에 개의치 않는단다.) “우리 아이가 공부는 못해도 성격은 좋으니 걱정 마세요.” 아이의 유급을 걱정하는 학교 선생님을 두고 엄마랍시고 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내가 읽었을 때, 이 책은 국민 필독서가 되어야 할 책이다.
“어라? 고등어 먹는 게 왜 변태야? 개고기는 괜찮고 고등어는 변태야? 자기는 독일 사람이니까 생선 안 먹고 자랐지. 나는 한국 사람이라서 고등어가 고향 음식이란 말이야.” “그럼 앞으로는 당신만 먹어. 다른 사람들까지 먹을 필요는 없잖아. 바다 생선 안 먹고도 잘 살아온 사람들까지 맛을 들여 엄청나게 먹어대니 씨가 안 마르겠어? 정작 생선에 의지해온 사람들은 먹을거리를 빼앗긴 셈이고 말이야. 그건 변태야.” “으이그, 그럼 나도 먹지 말라는 소리지. 그냥 안 먹고 말지. 어떻게 나 혼자 먹으려고 고등어를 굽겠어? 근데 당신 말이 맞네. 알았어.” 63쪽
고등어를 금하노라, 라는 제목의 연유가 된 대화는 친환경 혹은 동물보호 단체 회원들의 대화가 아니다. 평범한 저녁 식탁에 모인 식구들끼리 나누는 대화다. 침 튀어가며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이러니 어떠니? 하고는 그래? 알았다, 는 식이다. 평범하다고 하지만 몸에 배이지 않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삶이다. 이게 고행이 아니라 머리로 따지고 마음으로 이해하기 전에 즐거운 일상이다.
이들이 4인 식탁에서 서로 존중하는 방식은, 과장을 하자면 고등어를 통해서 세계인을 대상으로 확장한다. 그깟 고등어 안 먹는 게 뭐가 대단할까 싶지만, 구호가 크면 클수록 늘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증거일 뿐이지 않은가. 내 가족이 소중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반대로 누군가 공존을 위해 노력할 때 우리 가족의 삶이 행복하다는 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인다. 물론 당연하다고 말을 하지만 대부분 말 뿐이다.
1등을 외치는 승자독식사회의 절정인 한국에 비해 독일이 좀 더 성숙한 분위기라는 건 알지만 그 안에서도 이런 가치가 보편은 아니라고 말한다. 삶이 예배가 되는 삶이라는 구호를 많이들 쓰는데, 딱 이들이 사는 방식이 삶이 공존이 되는 삶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거창한 이슈로 무게를 잡는 책이 아니다. 임혜지 아줌마의 독일생활기는 폐경을 맞은 뒤 조심스런 성생활, 극과 극인 남편과의 아옹다옹 다툼, 난독증으로 고생했던 두 아이의 어린 시절, 한국과 독일을 떠나 밉살스런 아줌마들(특히 시어머니)의 소소한 일상부터 독일국적을 취득하지 않았다고 했을 때 놀라는 독일인들과 한국인들의 이중적인 태도 등등 그녀를 둘러싼 삶 전반을 조근조근 설명한다.
그녀와 그녀의 식구들의 이야기도 읽는 재미가 쏠쏠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보고 읽고 참여한 환경, 인권, 교육, 나치즘(독일이다 보니 특히) 등 민감하고 무겁고 중요한 주제에 대해 이렇게 여유롭고 편안하고 아기자기한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풀면서도 핵심을 정확하게 꿰뚫어서 설명한 세미나, 강연, 책, 캠페인을 알지 못한다.
나는 나처럼 조금은 치사하고 비겁한 보통 사람도 자유와 자긍심에 빛나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는 걸 고백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지구 저편에서 이미 그렇게 살고 있거나 또는 그렇게 살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격려를 받고 싶었다. 281쪽
보통 사람, 이 책을 학자나 정치가나 운동가 딱지 붙는 치들이 쓰지 않았다고 해서 평가가 절하되거나 이대로 흐지부지 책 무덤에 파묻혔다가 파지가 되는 건 아닐까, 조마심이 난다. 책을 읽고 이런 우려를 하기는 정말 처음인데 이 책의 주제는 바로 이런 권위의식의 철저한 깔아뭉개기다! 특히 이데올로기에서 도덕으로 살짝 갈아탄 권위주의! 하여, 자칫 여성주간지에 실릴 만한 주부 에피소드가 수필집 코너가 아니라 인문학 코너에 분류되었는지 누구든 이 책을 보면 그런 의심을 거두지 않길 바란다.
누가 읽어도 좋지만 무엇보다 부모와 아이가 꼭 함께 읽고, 토론하고, 대화를 나눴을 때 제대로 빛을 발하리라 믿는다. 대한민국 부모라면 사사건건 간섭하는 자녀의 가치관, 진학, 성, 장래 희망, 가치관 등을 두고 그녀는 아이들의 선택과 판단에 맡긴다. 유독 그녀가 한 가지만은 막았는데, 중독 우려가 있는 컴퓨터 게임이다. 그녀가 막는 딱 한 가지를 우리 부모들은 인정하고, 나머지는 정 반대다. 누가 정답일까? 하나마나한 소리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누가 보통 사람이고, 누가 이상한 사람인지 판단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