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책쟁이들>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한국의 책쟁이들 - 대한민국 책 고수들의 비범한 독서 편력
임종업 지음 / 청림출판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우리나라 문맹률이 작년 기준으로 1.7%인 현실로 보면, ‘한국의 책쟁이’라는 한겨레신문 정기 꼭지는 꽤 근사한 생각이다. 하지만 문맹률과 독서량이 반비례할 법한데, 또 그게 아닌 것 또한 현실이다.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지만 그 역시도 무색하다.  

원인을 꼽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고, 그저 ‘보기’에 능한 이들은 많아도 ‘읽기’에 능한 이가 점점 드물기만 하다. 그래도 늘 애들한테 책을 읽어라, 읽어라 입버릇이 달라붙은 우리이고 보면 책 위에 책 두께만치로 먼지가 더께마냥 눌어붙을지언정, 귀한 줄은 아는 모양이다. 

어쨌거나 책 한권 들고 다니는 게 폼이 난다는 풍토라, 책시장이야말로 물건 회전이 가장 빠르고, 유행을 가파르게 치고 올라오는 바닥이다. 책 한 권을 내고 ‘모 아니면 도’인 로또판인거야 다 아는 사실이다 보니, 하루키의 신작 선인세가 십수억 원에 달하는 게 이해 못할 일도 아니란 말이다. 평론가가 말하길 인터넷 서점에 올라오는 리뷰를 보면 상품이 책일 뿐이지, 내용은 일반 기성품 품평이나 다를 바 없다고 한숨을 쉰다.  

신간이 억수로 쏟아져 나오는 요즘 과거 오래된 애물단지, 유행이 지나도 한참 지난 책을 보물단지마냥 끼고 사는 사람들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다. 임종업 한겨레신문 선임 기자가 자신이 신문에 쓴 기사를 모아서 낸 <한국의 책쟁이들>이다. 

해묵은 고전도 개정판이 시시때때로 나오는 판에 때깔(디자인)이 볼품없는 책들은 상품가치가 뚜욱 뚝 떨어져서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는 마련이다. 개중 책 중간상 김창기 씨 역시 책을 책으로 보기보다는 골동품 정도로 보는 장사꾼이지만, 그의 얘기가 한 자락 끼어있다고 해도 책 전체를 나무랄 정도는 아니다. 어쨌거나 그이 같은 이가 있어서 책에 소개된 나머지 인물들이 빛나는 것도 맞는 말이다.

책과 함께 평생을 살아온 이들의 각자가 책 한 권으로 나와도 모자라지 않겠으나 짤막한 신문 기사라는 애초의 한계에 몇 가지 얘기만 도드라져 보이는 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또 각자 비중이 차별을 둘 수 없었던 것 또한 같은 이유로 마땅치 않다. 띄엄띄엄 기사로 읽을 때는 몰라도 한꺼번에 몰아넣고 보니 기사마다 자연스럽지 않고 짜낸 듯이 보이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려나, 이 책은 임종업 기자의 것, 그의 입맛에 맞춘 것이니 불평은 그냥 이 정도다. 이들이 한국대표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서권기 문자향書卷氣 文字香, 이들은 몸에서 책의 기운이 풍기고 문자의 향기가 나는 상서로운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이 취미로 혹은 재산불리기로 ‘모으기’만 열중했다면 이 정도 경지에 이르지 못할 사람들이다. 

책에 소개된 인물들의 고민은 대충 한 가지로 모인다. 서재다. 거저로 기증을 하겠대도 만만치 않다는 얘기가 기사 여기저기에서 나온다. 사료 가치든, 희소가치든 뭐든 특출하지 않은 책은 갈 곳도 마땅치 않다. 그렇다면 파지나 불쏘시개로나 쓰일 일이다. 장서가 개인의 호불호에 따라 쌓은 책은 그래서 딱 자신의 업이다. 책을 읽는 일이 행복한 만큼 사다 나른 책들은 넘지 못할 산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이 사재기를 해서 산 게 아닌 이상, 그 특출한 안목은 우리의 역사이기도 하고, 또 상품만 판을 치는 책 시장에서 물려 배워 익힐 만한 건 확실하다. 위에서 선인세 얘기를 들먹였지만, 반대로 누구라도 팔리지 않는 책을 출간할 때에는 용기 혹은 무모함이 필요한 법이다.

이럴 때 책쟁이들의 존재는 그들의 뒤를 받쳐주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경지는 다 제각각이지만 내가 아는 책쟁이들만 해도 꽤 되는데, 책 같지 않은 책을 사는 건 어설피 아는 이들이나 범하는 실수지 이들의 책責이 아니다. 이 책에서 잘 드러나거니와 내가 아는 그들은 책 한 권을 사도 꼼꼼히 따지는 안목을 가진 이들이다. 책에 미친 대표적 인물 이덕무의 호 오우아거사(吾友我居士)처럼 책이 좋아서 스스로가 스스로의 친구로 살면서도 세상 만물과 친구로 사는 이들이 곧 이 다음 권을 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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