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이 결혼을 말하다>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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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이 결혼을 말하다 - 두려움과 설레임 사이에서 길을 찾다
가야마 리카 지음, 이윤정 옮김 / 예문 / 2009년 10월
평점 :
“난 이제 경사는 안 간다. 조사만 갈거야.”
친구가 뭔 소리를 하나 싶었다. 서른 중반인 그녀는 봄, 가을 주말이면 결혼식, 돌잔치로 항상 바빴다. 어차피 결혼하면 회수할 돈이고, 게다가 성격 좋고, 오지랖도 넓고, 발도 꽤 넓어서(실제로도 발이 큰 편이지 싶다) 식만 올리면 하객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올 것이라는 기대에 꽉 차 있었단 말이다. 그녀의 입은 꽉 맞물려 있었다.
문제는 그녀에게 결혼 상대가 없다는 게다. 골드미스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꾸준하게 직장 생활을 해서 작은 회사라도 과장 자리에 올랐으니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조건이지만, 정작 주변에는 (나 같은) 친구들만 그득했다. 성격이 좋다보니 따르는 남자도 없지 않았는데, 의외로 털털한 성격에 까다롭지 않을까 싶었지만 결혼 상대를 고르는 눈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주변에 싱글인 건 몇 안 되는 사람들 뿐, 결혼 닦달도 슬슬 들어가더란 말이다. 그녀는 대부분 자기보다 어린 신부를 보는 고역과 친구들의 둘째 아이 돌잔치에 갈 때마다 받는 눈총을 견디지 못했다. 차라리 결혼 대신 일에 몰두하겠다는 여장부인 그녀는 술만 취하면 내 어깨에 기대어 울곤 하는 가녀린 몸, 아니 가녀린 성격인데 말이다.
이성 친구인 내가 곰곰이 따져보았다. 그녀가 아내로 괜찮을까? 솔직히 확신이 안 들었다. 그녀의 연애를 보았을 때, 그녀가 보는 친구와 애인과 결혼 상대자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경제, 외모, 사회적 지위를 까다롭게 따진다는 게 아니라, 친구에게는 너그러운 그녀가 애인한테는, 특히 결혼 얘기가 오갈 만큼 사귄 남자에게는 꽤 엄격한 생활 태도를 요구하더란 말이다.
친구와 남편을 대하는 자세가 너무 다른 그녀, 사실 좀 피곤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이가 들고, 학교, 회사, 교회, 동아리 등에서 지위나 입지가 어느 정도에 오른 그녀라면 자신의 짝을 두고, 주변의 시선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의 요구는 과연 스스로의 발로일까?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그런 이상한 감정, 경쟁, 사회의 압력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그 후에는 결혼을 하든 말든, 아이를 낳든 말든 사실 별 차이는 없다. 그랬을 때 결혼한 사람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도 자신이 선택한 인생에 만족하고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12쪽
정신과 의사인 가야마 리카가 쓴 <심리학이 결혼을 말하다>을 보면, 내 친구가 가장 개인적인 부분, 즉 양보하지 못할 부분이라고 생각했던 조건들이 알고 보면 사회의 종용에 따른 무의식적인 발로에서 나왔을지도 모른다는 혐의를 둔다.
우리나라처럼 만혼 증가, 결혼 기피, 인구 감소가 사회의 화두인 일본의 현재 결혼 풍도에 대한 분석서인 이 책은 ‘왜 여성들은 결혼을 기피하는가’에 대해 개인, 부모, 여성(젠더로서), 국가정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혼인 저자는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그만인 개인적인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결혼 기피 풍조의 배경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는 현실을 꼬집고 있다. (정신과 의사이자 교수인 그녀조차 이 책을 쓰기 전까지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고, 어쩌면 스스로도 개인적이라 치부했던 부분일 수 있다. 미혼 여성을 강박증 환자로 몰아가는 실로 무서운 이데올로기다!)
이 책이 어려운 논문이 아닌 일에 바쁘고 치이는 여성들을 위한 맞춤실용서처럼, 욘사마에 열광하는 중년 여성들, 연예계, 정치계, 문화계 여성들의 사연, 클리닉을 운영하면서 만난 환자들의 사례 등 다양한 예를 두어서 이해하기 쉽다.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할 분석은 지금은 누구나 당연시 여기는 서양의 기독교적인 결혼관인 일부일처제가 도입된 배경에 대한 접근이다. 저자는 서양에서 일부일처제가 도입되면서 동시에 진화론과 유전학이 소개된 역사를 들춘다. 유전적 우열이 곧 국력이라는 우생학적 접근이 여성들을 무조건 결혼으로 내몰고, ‘결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상대가 없어서 결혼을 못한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는 미혼 여성을 사회적 패배자로 몰고 있다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가장 개인적인 영역에 속하는 연애, 결혼, 출산이라는 인생의 중대사가 어느새 사회를 위한 것, 국가를 위한 것으로 탈바꿈한 상황, (…) 이런 의식은 지금도 여전히 정치가나 지식인들 사이에서 만혼화나 저출산 문제가 외교나 연금 문제와 같은 차원에서 논의되는 현실에 대해 우리는 느끼는 위화감과 맥락을 같이 한다’ 170쪽
문제는 여성들이 자각하는 대신 ‘일본의 경우 전통적 성역할 분담에 근거한 바람직한 가정을 만들려는’ 의도에 젊은이들이 순순히 따르는 ‘자발적인 국민 우생운동’이 부활했다고 지적한다.
사실, 이런 분석은 일본보다 빠르게 노령화 사회로 들어선 우리에게도 익숙한 구호이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농어촌에 기반을 둔 지자체마다 외국에서 신부 맞선을 주선하는 고육책까지 마련하면서 고심하는 형편이다. 그리고 언론을 비롯해 나부터도 ‘아이를 키우기 좋은 환경 개선’을 결혼 증가의 최우선 조건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양계장 불을 밝히면 닭이 알을 낳듯 환경을 조성하면 정말 결혼이 증가하고 저출산 문제가 해결될까? 아직 그 수순의 고민은 육아에 엄청난 부담을 갖는 우리 현실에서는 먼 얘기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것은 사회와 국가가 해야 할 기본적인 의무이지 저출산 문제의 대책이 될 수는 없다”고 못 박는다.
속이 다 시원한 명쾌한 대답이다. 개인적으로 동의하지만, 일본이 유럽 사회처럼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는가, 그리고 그 이후의 결혼관이 동일할 것인가, 라는 문제로 보면 유럽 수준의 보육 서비스, 육아 지원 사업의 확장은 단순히 저출산 대책이기보다 결혼과 가족과 국가를 둘러싼 사회 전반의 패러다임 전환이 뒤따를 것임으로 우선 유보할 지점이다.
심리학자인 저자는 이를 무시한다기보다 ‘심지어 여건도 안 되었는데 여건을 만들기 위해서 애를 낳으라고? 누구를 위해서? 니미 뽕이다’가 맞을 것이다. “공공연한 협박”을 멈추는 순간, 적어도 결혼을 개인적인 문제로 전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결혼을 떠나서 행복해지려면 현재 자신의 삶이 자발적인 선택의 결과라고 긍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랬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두고 따져보면서 주저하다가 나중에 그만큼 가치 있는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지를 두고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울한 조사만 찾겠다는 친구에게 딱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