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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좋은 사람
줌파 라히리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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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편의 단편을 모은 작품의 영어판 표제는 `길들지 않은 땅Unaccustomed Earth‘이다. <그저 좋은 사람>은 옮긴이 혹은 편집자가 국내 판으로 옮기면서 바꾼 제목이다. 인도 벵갈 출신 부모를 두었지만 이주민인 부모를 따라 영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지금껏 줄곤 살면서 글을 쓰는 줌마 라히리의 소설집은, 스스로가 겪었고 또 겪고 있을, 미국 혹은 다른 나라를 떠도는 인도 이주민들의 삶을 자분자분하게 다룬다.

그러니 너대니얼 호손의 <주홍글씨>에서 따온 단편소설 ‘길들지 않는 땅’이 표제로 내세우기에 더 맞지 싶지만, 내 정서에는 ’길들지 않은 땅‘보다는 역시 ’그저 좋은 사람‘이 잘 맞았다.

조금 있으면 엄마를 찾으며 소리를 치고 아침을 달라고 할 것이다. 아이는 아직 어렸고, 수드하는 아이에게 그저 좋은 사람일 뿐 다른 의미는 없었다. 그녀는 부엌으로 가서 찬장을 열어 위타빅스 한 봉지를 꺼내고 우유를 냄비에 데웠다. ‘그저 좋은 사람’ 209~210쪽

돌이 갓 지난 아이에게 엄마의 존재는 그저 좋은 사람일 뿐이지 않은가. 우유를 먹여주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재워주기만 하면 누구라도 상관없는 일이다. 사실이지만 애써 외면하려고 드는 냉혹한 인식은 주인공 수드하와 남동생 라훌과의 관계 확장이다.

인도인 부모를 두었으나 이민한 부모를 따라 미국에서 나고 자란 남매의 삶이란 사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자국어를 모르는 이주민 아이들과, 순혈주의를 강조하는 한국이고 보면 다문화가정 아이들과 다를 바 없다. 다만 소설 전체에 걸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도인이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는 게, 한국의 이주민 아이들,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처지와 절대 상반되지만 말이다.

‘성공한 이주민 자녀들의 삶’을 다른 이 소설은 당장 쫓겨날 처지에 있거나 경제적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상황조차 풀지 못하는 우리 처지에서 보면, 먼 얘기이나 아이들의 성장 이후 정체성 문제가 그 못지않은 중요한 갈등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수드하는 ‘어린 시절은 주목받지 못하고 지나갔지만, 남동생만은 미국의 어린아이로 제대로 된 기억을 남겨주겠다고 마음먹’는다. 미국 사회에서는 인도인 부모(부모는 은퇴한 이후에 다시 인도로 돌아간다. 이런 회귀는 소설집 곳곳에서도 비슷하게 등장한다.  

부모 세대는 어쩔 수 없이 이질적일 수밖에 없다는 암시이다.)보다 여섯 살 많은 수드하가 부모에 가깝다. 그 역할을 자진해서 맡았던 ‘그저 좋은 사람’인 수드하에게 전도유망했던 라훌의 방황과 보잘것없는 미국하층민으로 전락한 모습이 마지막 꽤나 실망스러운 것이다.

‘유전자가 부모에게서 바로 온 게 아니라 더 멀리, 잊혀진 근원에서 온 듯’한 라울의 생김새는 코시안이 그렇듯이 벗지 못할 굴레다. 그렇다고 생김새에 따른 인도식 삶이 맞지도 않는다. 속내는 피자와 커피를 즐기는 미국인일 뿐이다.

그리고 그런 두려움은 이제 자신의 아이에게로 전염된다. 인도인 유전자를 타고 태어나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영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엄마, 나이 차가 많이 지는 이복 누나를 데리고 결혼한 나이 많은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한국과 다문화사회인 미국, 인도인들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영국에서의 삶이 똑같이 변주될 수는 없지만 수드하를 비롯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갈등과 방황이 어렵지 않게 짐작된다.

연작소설 <헤마와 코쉭>의 두 주인공 헤마와 코쉭은 먼 옛날 유목민이었던 인도유럽어족 선조들처럼 세계를 떠돈다. 이들에게 미국은 각기 미국 이주민 부모의 여정에 따랐을 뿐인  중간 경유지에 지나지 않는다. 

인도에서 태어나서 부모를 따라 미국에서 자라서 사진기자가 되어 남미로 중동으로 유럽을 떠도는 코쉭은 이탈리아에서 우연히 헤마를 만난다. 그는 떠돌이 생활을 접고 편집자로 홍콩으로 떠나기 직전이다. 10대 시절, 같은 벵갈 출신이라는 이유로 잠시 같이 기거했던 코쉬를 기억하는 헤마 역시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 전공으로 교수가 되었고, 관광 겸 이탈리아를 찾았다가 코쉭을 만난다. 그녀는 전통적인 인도 남자와 결혼을 하러 인도로 떠나기 전이다.

이들은 20년 만에 과거 흐릿한 인도식 가족의 보잘것없는 추억을 되새기며 뜨겁게 사랑을 나누지만, 정착과는 거리가 먼 두 ‘세계인’의 삶은, 각자 나라나 민족이나 공동체가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거둔 성과를 포기하지 못한다. 각자의 삶의 반경에 따라 이들은 헤어진다.

이들은 서로 그저 좋은 사람, 이방인이다. 소설집은 내내 찐득하게 엉겨 붙지 못하는 그저 좋은 사람들인 채인 이들의 미약하고 흐릿한 흔적들을 세심하고 꼼꼼하게 되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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