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를 리뷰해주세요.
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김주영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손에 잡았나 싶게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스릴러 소설이다, <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는. 씨네21북스에서 나온 소설답다고 해야 할지, 빠른 전개와 장면 전환 등 한 편의 영화를 본 기분이다.

평범한 목요일 저녁 7시 55분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부터 시작하여 새벽 1시 30분경까지, 6시간 동안 6명이 죽음을 당한다. 전화가 오기 전, 아카네에게 죽음을 당한 유코까지 포함하면 7명의 연쇄살인이 벌어진 것이다. ‘피의 목요일’이라고 불릴 만한 날이다. 그 7명은 살인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어쩌면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이이다.

사건의 중심에 있는 나미키가 죽이기로 결심한 인물은 셋. 10대 후반에서 20대까지, 그녀들과는 원죄(억울하게 뒤집어쓴 죄) 피해자 지원 단체를 통해 알게 되었다. 경찰의 무성의한 수사 태도, 사생활을 까발리는 언론, 가족의 파탄과 범죄자의 자식이라는 사회의 굴레와 차별로부터 가족을 지키는 사명을 띤 단체이다.

그중 마리에, 유키, 히토미 셋은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 이후, 이어진 어머니의 죽음 이후 고아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이들에게는 세상은 명확하게 이분법적으로 갈린다. 자신들을 지켜주는 원죄 피해자 지원 단체 사람들과 그 외의 사람들. 지원 단체의 젊은 남자들과 사귀면서 그녀들의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은 점차 위험한 방식으로 굳어진다.

“그 아이들은 ‘이쪽 편’ 사람한테는 철저하게 몸과 마음을 바쳐 헌신할 거야. 예쁘고 똑똑하고 씩씩한 데다 헌신적이니 남자한테는 최고의 여자잖아? 그런 여자를 갖고 싶지 않아?” 나마키가 그녀들 가운데 한 명을 옆에서 보듬어주기를 바란 의사 유코의 냉정한 판단이다.

나마키와 의사 유코는 그녀들이 자칫 이분법적인 세계관에 따라 ‘살인기계’로 ‘각성’을 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이들의 염려와는 달리, 카운슬러 아카네는 이 아이들의 ‘각성’을 기다린 인물이다. 아이들이 충분히 겪은 세상의 비열함에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는 각성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다.

7명의 살인의 시작은 각성을 막으려고 살인을 계획한 나마키를 먼저 죽이려고 나타난 아카네로부터 시작한다. 한때 연인이었던 아카네의 살인 미수는 섹스를 하는 순간에 이루어진다. 개미인척 개미를 잡아먹는 개미사마귀애벌레처럼 속을 숨기고 접근한 것이다. 이는 이후 나마키의 살인 전략이 된다. 방심한 순간을 노려서 살인을 저지르는 행각은 이어진다. 그리고 살인을 하는 순간, 발기를 통해 내면에 꿈틀거리는 욕망을 발견하게 된다.

어느새, 정의의 심판자에서 살인기계로 전락한 나마키. 옮긴이가 전하듯, 괴물과 싸우는 동안 괴물이 될 수도 있다는 니체의 말처럼 각성을 먼저 한 쪽은 원죄와는 상관이 없는 나마키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아직 각성을 하기 전인 그녀들 가운데 한 명을 각성으로 이끄는 역할을 하고 만다.

가장 친한 사이가 가장 위험한 상대가 될 수 있다는 점은 꽤 그럴듯하다. 하지만 ‘각성’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각성’의 결과로 살인마가 될 것이라는 짐작으로 살인을 하는 나마키의 논리는 납득이 잘 가지 않는다. 나마키가 개미사마귀애벌레처럼 그녀들에게 접근할 수 있었던 데에는 애초 가식이 아닌 몇 년에 걸쳐 성심껏 그녀들을 세심하게 보살폈던 경험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인데, 너무 쉬운 포기에 따른 무리한 선택이다.

물론, 각성을 하기 전의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살인을 계획하고 저지르는 아카네도 마찬가지, 각성을 이끄는 논리도 그렇지만, 애초 인간을 이쪽과 저쪽으로 쪼개듯 나뉠 수 있는 존재로 구분한다는 게 현실성이 떨어진다. 적어도 ‘사랑’ 혹은 ‘내 사람’을 지키기 위해 남을 죽일 수 있다는 ‘알라우네’식의 논리가 ‘돈’을 위해 살인이건 뭐건 저지르는 현실보다는 나을 수도 있겠다. 그래봐야 결국 각성한 그녀가 깨달은 사실은 ‘내 편’은 오로지 자신밖에 없다는 식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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