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누주드, 열살 이혼녀>를 리뷰해주세요
나 누주드, 열살 이혼녀
누주드 무함마드 알리.델핀 미누이 지음, 문은실 옮김 / 바다출판사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올해 3월, 예멘의회는 17세 미만 소녀들을 기준으로 <강제 조혼 폐지법안>을 통과시켰다. 또한 아랍권에서 강제 조혼으로 고통을 받는 비슷한 처지의 소녀들의 이혼 소송이 진행 중이다. (‘강제결혼 사우디 8세 소녀 사우디 법원 결국 이혼 허용’ - 서울신문, 2009.05.02) 관습처럼 신부 가족에게 결혼 지참금을 주고 어린 소녀를 사왔던 강제 조혼의 폐단이 점차 무너지고 있는 데에는 작년 4월 15일, 예멘의 10살 소녀 누주드 알리의 이혼 판결 소식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누주드 알리는 강제 결혼으로 2달여의 성폭행과 구타를 견디다 못해 목숨을 걸고 법원을 찾았고, 다행히 그곳에서 인권변호사 샤다 나세르를 만나면서 그 끔찍한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랍권의 강제 조혼의 끔찍함은 형사 사건이 아닌 민사 사건인 이혼 소송에서 보듯이 강제 조혼을 인신매매와는 전혀 별개인 관습처럼, 심지어 ‘아홉 살 소녀와 결혼하면 행복이 보장된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는 데에 있다.

그 지난한 삶은 누주드 만의 돌발적인 사건이 아니다. 16번의 임신과 세 번의 유산을 한 누주드의 어머니 쇼야는 누주드의 정확한 나이와 생일을 모른다. 다시 말해 호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열여섯에 조혼을 한 어머니 역시 가난과 문맹과 조혼의 예멘 여성들의 악순환 고리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이에 따라 누주드의 전남편인 30살의 파에즈 알리 타메르는 누주드의 나이가 13살인 줄 알았다고 법정 증언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다.

이는 또한 1999년 개정된 예멘의 결혼법에 의하면 2차 성징이 나타나는 13살 소녀인 경우 결혼 및 초야가 사회적으로 납득될 수 있다는 근거에서 나온 발언으로, 예멘을 비롯한 중동 지역의 조혼 풍습이 단순히 개인적인 사건이 아닌 사회적인 악습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강제 조혼, 성폭행, 구타, 고된 시집살이 등을 겪는 예멘 소녀들의 현실 고발과 그 굴레에서 벗어난 어린 누주드의 희망찾기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으로도 이 책을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   

다만 이 책이 인권 보고서인 동시에 누주드의 가족사를 담은 자서전이라는 점에서 강제 조혼을 시킬 수밖에 없는 예멘 최하층민의 삶에 대한 미시적인 접근을 놓쳐서는 안 된다. 수 세기동안 식민지였다가 이데올로기에 의해 남북국으로 대립을 했던 예멘의 근현대사는 우리의 역사와 많은 부분이 겹친다. 통일된 이후에도 2008년까지 4년 간 내전을 겪으면서 누주드의 가족과 같은 빈민들이 전형적인 도시 최하층민으로 전략했다는 점은 우리에게도 많은 부분을 시사한다.

지참금 거래나 마찬가지인 강제 조혼 같은 전근대적인 관습이 우리와는 상관없을지 모르지만 누주드의 비극이 어머니와 언니 모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천형처럼 짊어진 빈곤의 굴레에 의한 불행이 약자들 중에서도 가장 약자인 여성과 어린이에 집중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책 마지막 장을 덮으면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을 하기 위해 손을 든 초등학교 2학년으로 되돌아온 누주드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이 책의 수익금 중 일부는 중동 지역 어린이의 교육 지원과 강제 조혼 예방으로 쓰인다’는 문구를 볼 수 있다. 어린 나이에 너무나 큰 불행을 겪은 누주드가 앞으로 견디어야할 삶이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그녀가 개인적으로 감당하고 이겨내야 할 과거도 문제지만 무장단체의 故 엄영선 씨의 납치 살해 사건으로 알려진 곳인바, 대외적으로도 어린 소녀가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실로 만만치 않을 것이다. 

정치적 혼란이 자칫 보수적인 무슬림의 회귀를 불러올 경우, 관습법이라는 도그마에 도전장을 내고 서방 언론의 도움을 받은 누주드의 행동을 곱게 볼 리가 없는 사람들의 시선이 더욱 날카로워지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11살 누주드도 곧 여름 방학을 기다리고 있을까. 어쩌면 새롭게 공부하는 재미에 푹 빠져 다가오는 방학이 싫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누주드와 많은 소녀들의 용기에 응원을 보내는 방법이 이 책을 사서 읽은 정도만으로도 가능하다니,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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