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자들 - 허용오차 제로를 향한 집요하고 위대한 도전
사이먼 윈체스터 지음, 공경희 옮김 / 북라이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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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정밀하게 만들어진 물건은 무수히 많다. 가까이 시계에서부터, 멀리 지구 밖 허블우주망원경까지. 시계의 작동원리와 망원경의 렌즈가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은 상상하기조차 쉽지 않다. 더 정밀할수록 성능이 낫기 때문에 정밀성은 역사와 함께 발전해 왔다. 지질학자이자 기자인 사이먼 윈체스터는 전작인 <교수와 광인>에서 옥스퍼드 영어 사전을 만드는데 열정을 바친 인물을 그렸다면, 이번 <완벽주의자들>에서는 과학기술 분야에 새로운 발명품을 만들기 위해 도전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정확한 시간을 측정하는 시계의 발전으로 영국은 바다를 지배했다. 다양한 시계를 제작했던 존 해리슨은 시계의 재료를 단단한 목재인 유창목으로 바꾸어 정확한 시계를 만들었다. 147일간의 항해에서 겨우 1분 54.5초의 착오가 발생했다. 


 

와트는 엔진을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해 실린더를 뜨겁게 유지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철제 총기와 대포의 주조에 능했던 윌킨스는 와트의 실린더에 증기 배출에 문제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대포의 천공 기술을 증기 엔진의 실리더 제조에 적용한다. 이로써 증기가 새지 않는 증기 엔진이 발명된다. 같은 시기에 증기 엔진의 동력만으로 작동이 되는 세계최초의 공장이 세워져, 숙련공들은 일자리를 잃게 된다.


 

정밀성을 추구하는 오차 범위는 점점 줄어들어, 자동차의 허용 오차 범위 0.000 000 000 1에 이른다. 로이스가 극소수 고객들에게 정밀한 차를 만들었다면 포드는 다수가 대상이었다. 포드는 대량생산과 낮은 가격을 위해 조립라인을 도입했다. 조립라인의 회전 덕분에 엔진 전체를 완성하는데 10시간에서 4시간이면 끝나게 된다. 포드사는 교환 가능한 부품을 공급해야 했기에 로이스사보다 더 정밀성을 추구했다.


 

기계 부품을 만들 때 사람의 개입으로 인해 잇따른 실수가 생겼다. 콴타스 항공기 사고의 원인은 부품 제조 과정에서 누군가 엔진의 터빈에 들어갈 파이프의 날을 잘못 고정시켜 튜브가 0.5밀리미터 얇아졌기 때문였다. 허블망원경이 처음에 만들어졌을 때 작업자가 0.1대신 1.0을 잘못 눌러 측정이 잘못 기입되어 고장을 일으켰다. 저자는 “정밀공학은 이제 어느 정도 한계에 도달한 것으로 보이며, 인간의 존재는 한때 정밀성 유지에 필수적이었지만, 이제는 도움보다 방해 요인이 되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정밀성은 제조업에서 현재 디지털 시대까지 허용오차 범위를 좁혀가며 발전해 왔다. 위대한 발명에 도전한 사람들과 더불어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시계숙련공의 일화를 들려준다. 정밀한 기계와 함께 장인들의 정신을 높이 평가하며 기술과 인간의 공생의 가능성을 강조한다. 정밀함에 도전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비정밀’한 인간의 자연스러움, 소박함의 가치를 발견해 본다.


“정밀하지 않은 자연 앞에서는 모든 것이 비틀대고

 아무것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정밀하다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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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적인 사회는 신이 죽은 후 스스로 복종할 다른 형이상학적 실체가 필요했는데, 사랑이 쓸 만했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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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방 The Black room K-픽션 26
정지아 지음, 손정인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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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정지아 작가가 쓴 <빨치산의 딸>의 후속 이야기다. 작가는 남로당 전남도당 위원장였던 아버지와 여맹위원장이었던 어머니의 딸이다. 남편과 동료를 잃은 어머니는 어느새 아흔아홉 살 노파가 되었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방에서 노모는 지리산에서 처절하게 싸웠던 전투를 잊지 못한채 살아간다. 작가는 늙어가는 엄마를 바라보며 뜨거웠던 빨치산의 현장과 가난과 멸시, 차별 속에서 살아온 그녀의 삶을 재구성한다.

 

80여 쪽 분량의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이 작품은 한영대역으로 구성되었다. K-픽션 시리즈 중 하나로 해외 영어권 독자들에게 한국문학을 소개하는 취지에서이다. 영어 번역은 대체로 매끄러운 편이나 사투리의 맛을 느낄 수 없어 아쉽다. 어쩔 수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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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둘이 항꾼에 살그라. 고로코롬이라도 살어야 안쓰겄냐.”

“Why don't you two just live together? That's a way to live on." (22쪽)

 

“먼 놈의 헥멩가가 술 담배 한나를 못 끊는다요! 완전히 멍충이가 될불믄 워쩔라고 그요?...가난배끼 물레준 것이 없음서 인자 짐뎅이꺼정 될라 그요?

“What kind of revolutionary can't quit drinking and smoking? What are you going to do if you become a complete idiot? ...All you left her was poverty, and now, do you want to be a burden, too? (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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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자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부학 책 《그레이 아나토미》의 비밀
빌 헤이스 지음, 양병찬 옮김 / 알마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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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기증 신청서를 앞에 두고 두려움이 밀려왔다. 뇌사자는 신장, 간장, 심장, 폐장, 췌장, 췌도, 소장, 안구, 손, 팔, 발, 다리 등을, 사후기증자는 안구, 뼈, 연골, 피부, 인대, 심장판막, 혈관 등 인체 조직 기능을 줄 수 있다. 몸의 일부를 “떼어 낸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죽음이 가까이 다가왔다. 몸의 일부를 선택할 수도 있다는데 어느 부분을 희망해야 할까. 해부학자의 눈을 빌려 인체에 대해 알고 나면 죽음의 “무작위성과 근접성”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작가 빌 헤이스는 의학과 과학 관련 칼럼과 기사를 꾸준히 써왔다. 어릴 적부터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마티스의 그림을 보며 “예술로서의 관능적인 몸”에 빠져들었다. 이후 여러 의학책을 읽으면서 인체에 관한 관심을 키워나갔다. 이 책은 해부학의 교과서라 불리는 <그레이 아나토미>의 저자 헨리 그레이와 삽화가 헨리 카터의 전기, 그리고 작가 자신의 해부실에서의 수련기를 담고 있다.

    

 

그레이의 전기를 쓰기 위해 헤이스는 1년 동안 세 번에 걸쳐 해부학 강좌에 참여한다. 참관인이 아닌 실습생들과 같이 메스를 들고 직접 해부도 한다. 약대생, 물리치료학과생, 의대생들과  해부학 수업을 함께한 저자의 기록은 생생하고도 섬세하다. 직접 장기를 만지며 묘사하고, <그레이 아나토미>에서 나오는 해부방식을 따라 절제한다. “폐가 텅 비고 가벼울 거라고 생각했지만 조직이 치밀하고 젖은 수세미 정도의 굳기를 갖고 있어요.” 그레이의 충고를 따라 많은 지방에 둘러 싸여 있는 콩팥은 시신을 뒤집어 마지막 갈비뼈에서 약 2센티미터 더 내겨간 곳에 메스를 긋는다.

    

 

 

한편, 저자는 삽화가인 카터가 쓴 일기를 따라 <그레이 아나토미>를 집필한 헨리 그레이의 삶을 추적한다. 1855년 그레이와 카터는 학생들을 위한 해부학 책을 편찬에 돌입한다. 그들은 학생들에게 적당한 가격에 내용이 정확한 강의 교재를 만들고자 했다. 기존에 3부작으로 나왔던 퀘인의 <해부학 요강>보다 단행본으로 만들어 학생들이 가볍고 휴대하기 쉬운 크기로 작업을 했다. 카터는 시간 절약을 위해 일부 삽화를 다른 해부학에서 복제했다.

 

    

 

인체의 기록을 남기기 위한 헨리 그레이, 카터 그리고 빌 에이스의 노력은 눈부시다. 그레이의 명성에 가려져 줄곧 고독감과 외로움 속에서 그림 작업을 했던 카터가 이 책의 주인공이 아닐까 싶다. 카터는 <그레이 아나토미> 집필을 마치고 인도에서 해부학교수로 후배들을 양성한다. 한센인들의 치료를 위한 연구와 인도 노동자들의 발이나 손에 생기는 균종에 관한 연구를 꾸준히 이어갔다.

 

 

빌 헤이스가 직접 메스를 들고 인체를 해부하며 느낀 경이로움은 고스란히 독자들에게 전해진다. 실습강사와 동료들과의 다채로운 일화는 우리를 해부실 현장으로 데려간다. 저자는 우리의 인체가 체계적인 구조 속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우리 몸은, 우리 삶은 꾸준히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해부실에서 그 생명의 박동 소리를 재생해 본다.

 

“무릎, 어깨, 팔꿈치, 관절을 해부하며 인간의 운동 메카니즘을 빠삭히 알게 되었다. 눈을 깜빡이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든, 팔,다리를 빠르게 움직이며 폐를 들썩이든 운동이란 뭔가를 향해 질주하는 것이다. 목표점을 향해, 결승선을 향해, 최선을 다해 맨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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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작곡가 페린씨에게

 

스트릭랜드처럼 고립된 타히티 산속으로 도망치지 못하고 런던에 남겨진 페린씨. 포레스트 힐 도로가에 움막을 치고 오선보로 벽지를 두를 수밖에. 어둠이 내린 방에는 바닥에 눌어붙은 침대와 피아노 한 대만이 놓여 있다. 피아노 한 대면 충분한 세상.

    

 

여자 친구는 일주일에 3번만 방문이 가능했다. 곡을 쓰고 피아노를 치는 시간외의 것들은 모두 소음이었다. 노을이 커튼 사이로 젖어들면 출근 세수를 할 시간. 그는 지난 밤 아니, 세달 전부터 썼다 지워지기를 반복하는 악보 위 음표들을  내려놓지 못한다. 사라질까 두려워 붙들고 늘어져야 하지만, 밥벌이에 서둘러야 할 시간. 가슴 주머니와 바지 주머니에 선율들을 주섬주섬 담고 넥타이를 두른다. 살그락거리는 아내도, 달그락거리는 아이도 없기에, 현관문은 그냥 닫으면 된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템즈강 남쪽을 향해 쏟아져 내려오는 양복 물결 사이로 한 사나이가 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선율을 놓쳐서는 안 된다.” 가슴을 매만지고 또 매만진다. 그의 이름이 새겨진 공연 소식이 런던 시가지에 펄럭인다. 이제 그 이름 가지고 곡 쓰고 , 학생들을 가르치면 하루벌이 그만해도 되지 않나. 하지만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매일 피아노 연주하는 것을 숙명이라 여기는 당신. 오늘도 호텔 바, 레스토랑, 클럽 뒤편에 놓인 피아노 앞에 앉아, 출석부에 작대기 하나 긋는다.

    

 

두려운 고요와 고독에서 탄생한 음악은 한 개인을 넘어 다른 음악가들과 손을 잡는다. 악보는 첼리스트, 하프 , 트럼본, 타악기 연주자를 한데 모아 하나의 하모니를 만들어 낸다. 함께 피아노를 치며 지휘하는 그는 완벽한 웃음을 짓는다. 한밤중에 흘렸을 그의 눈물은 그 누구도 보지 못했다.

    

 

아마존 밀림지역 보호를 위한 음악을 만들고, 프리모 레비의 글을 바탕으로 곡을 쓰고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이들을 위한 영화음악을 만들면서, 그의 음악은 한 개인에서 인류애로 걸어 나간다. 그는 악보 안에서 유토피아를 노래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받아든 사진 한 장.

결혼을 믿지 않는다는 그가, 한 손에는 어린 아이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오선보에 곡을 쓰고 있다니! 서머싯 몸이 현실과 예술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요구에 그는 절충안을 택했다.

 

페린씨,

오늘 밤엔 어떤 곡을

쓰고 계시나요?

    

 

 

 

 

    

결국 내가 받은 인상이란 정신의 어떤 상태를 표현하고자 하는 거대한 안간힘이 거기에 있었다는 점이었다. 나를 그처럼 당황하게 만든 원인도 바로 그러한 면에 있는 것 같았다. 스트릭랜드에게는 색채와 형태들이 어떤 특유한 의미가 있음이 분명했다. 그는 자기가 느낀 어떤 것을 전달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었고, 오직 그것을 전달해야겠다는 생각만을 가지고 그림을 그려냈던 것이다. - P212

우주의 혼을 발견하고 그것을 표현해 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 그림들에 혼란과 당혹감을 느꼈지만 한편으로 너무나 뚜렷이 드러나 있는 정서에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왠지 모르게 나는 스트릭랜드에게 꿈에도 기대하지 않았던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억누를 수 없는 어떤 공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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