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 말하는 차가움은 무관심이 아니라 감정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 소란을 관조할 수 있는 조용한 공간을 의미한다. 거리를 두고 보면 어떤 법칙이나 관련성을 보게 되고, 대상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너무 가까이서 보면 대상은 그저 표면밖에없거나, 무질서하게 한데 뒤섞여 버리고 만다. 키스 직전에 상대의 얼굴이 흐릿해지는 것을 생각해 보라. 거리를 좀 두고 보자고 말하는 사람은 소위 ‘관점‘을 얻기를 바라는 것이다.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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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치의 상상력 - 질병과 장애, 그 경계를 살아가는 청년의 한국 사회 관찰기
안희제 지음 / 동녘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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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토피를 앓고 있는 아이와 나의 밤은 사납다. 두, 세 시간마다 상처가 나도록 자신의 몸을 긁는 아이. 옆에서 보초를 서는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간지러운 곳에 보습제를 바르고 아이스팩을 가져다 대고, 대신 살살 긁어주는 일뿐이다. 병원에서도 원인을 모르기에 피부 상태에 따라 항히스타민제와 스테로이드제를 써야 하는 질환이다. 건강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세상에서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몸을 제대로 관리 못한 '낙인'으로 찍히기 쉽다. 간지러워 하는 아이를 보며 나의 걱정은 아이의 10대, 20대에 가 있다. 난치병을 앓고 있는 청춘은 어떻게 자신의 질병과 싸우고 화해하며 자신의 하루를 지켜가고 있을까.

    

 (사진=곽할머니)

 

 

   진보 장애인 언론매체인 <비마이너>에서 칼럼을 쓰고 있는 안희제는 ‘아픈 청춘’이다. 그는 수능을 준비하던 해에 크론병 진단을 받았다. 몸 속 면역계가 이상이 없는 세포를 공격하여 과잉 면역반응을 보이는 병. 소화기 전체에 염증이 계속 생겨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한다. 법적으로 장애인 등록을 받지 못하고 겉으로 보기에 아파보이지 않아  저자는 매번 자신의 통증을 설명하고 편의를 구해야 한다. 약속과 수업을 취소하고, 일하고 놀다 갑자기 쓰러지는 일은 다반사다. 그는 소설가 한강의 표현을 빌려 자신의 통증을 “면도날을 뭉쳐 만든 구슬”과도 같다고 말한다.

 

    

   장애를 판단하는 기준은 뭘까. 장애의 대상은 신체에 가해진 시술과 필요한 보장구를 착용한 이들에게 해당한다. 관리 약물을 복용하며 몸을 통제하는 저자는 어디에 속할까. “나는 장애인인가, 비장애인인가, 그 사이에 뭔가가 있는가, 왜 나는 계속해서 입증되어야 하는가.” 안희제는 자신과 같이 난치병을 앓고 있고 있는 사람들, 장애를 겪으며 살아가는 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차별과 불편을 겪는지 면밀히 살핀다.

 

 

   장애의 중증 여부 심사는 대상자가 팔을 움직일 수 있는지, 혼자 밥을 먹을 수 있는지 등. 대개의 경우, 집 안에서 활동이 어느 정도 가능한지를 여부를 따진다. 지역 사회에서의 타인들과 어떻게 살아가는지, 다른 장소로의 이동 가능 여부, 독립적으로 학교 수업을 들을 수 있는지 등의 사회적인 활동 영역은 묻지 않는다. 대학에서 수업을 듣는 장애인들은 교수가 수업용 자료를 형평성이나 저작권을 이유로 미리 받지 못하고 영어수업에 필요한 속기사도 만나기 어렵다. 직장에서는 질병이나 장애를 가진 이들이 고용에서 배제되는 경우도 흔하다. 중증장애인에게는 최저임금을 안 줘도 된다는 법 조항까지 있다.

 

    

   삼성은 기술 홍보를 위해 영화 <두 개의 빛, 릴루미노>를 제작했다. 시각장애인도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주제를 담고 있지만 저자는 기술이 장애를 마치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영화에서는 시각장애인 옆에서 봉사하는 학생이 사진구도를 잡아주고 조언을 해준다. 그러면 장애인은 그에 따라 사진을 찍고 기뻐한다. 저자는 영화에서 장애인의 주체성은 보이지 않고 시각장애인이 사진 촬영과 같은 일을 성공하면 ‘정상성’을 획득하는 것처럼 보이게끔 한다고 영화를 비판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장애인들에게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한 ‘바람직한’ 욕망을 요구하는 게 아닌지 질문한다.

 

      

   사진과 간단한 설명이 실린 카드 형식의 뉴스는 음성을 지원한다. 하지만 사진이 담긴 카드에는 텍스트가 없기에 시각장애인은 무슨 사진이 실려 있는지 알 수 없다. 뉴스카드를 접하는 시각장애인이 이미지까지도 인식하길 바라는 저자는 언론사에 사진을 설명하는 텍스트를 음성으로 제공해 달라고 끈질기게 요구한다. "텍스트를 내놓으세요!" 그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이미지가 청각으로 번역되는 '감각 통역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픈 청년’ 안희제는 질병을 앓고 있는 이들이 조금이라도 살기 편한 세상을 상상한다. 이 책은 자신의 질병을 극복하려는 희망 찾기 이야기가 아니다. 저자는 담담히 크론병 환자로서 자신을 받아들이며, "나는 앞으로 아프게 살아갈 것이라고" 선포한다. 저자는 장애인인권단체에서 활동하고 인류학을 공부하면서 길러진 깊은 사유로, 질병을 가진 이들이 겪는 어려움과 우리 사회의 차별의 민낯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가족을 '몸의 경험을 함께 하는 사람들'로 새롭게 정의해 보면 어떨까. 저자는 아픔의 경험을 나누고 함께 돌보는 아픈 이들의 공동체를 꿈꾸고 상상한다. 징징거리는 이들이 많아져 서로 의존하기를 바란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이 연결되고 도울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 책을 읽으니 나도 '아토피 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3년 동안 밤마다 보초를 서왔기에 나도 제법 할 말이 있다. 아이의 고통을 제대로 헤아리는 것은 힘들지만, 아이의 피부상태, 음식과 환경에 따른 간지러움 정도, 아이의 기분, 치료과정을 기록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아이와 함께 '너무나 간지러운 살갗'. 그 아픈 몸의 언어를 쓰고 싶어졌다.

 

평범한 ‘청춘‘으로 보이는 사람이지만 ‘아파서‘ 그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는 사람. 그래서 나는 ‘아픈 청춘‘이다. ‘청춘‘이란 말은 얼마나 공허하고 무지하고 좁은가. - P25

민방위 교육은 철저히 건강한 비장애인 남성의 영역이다. 이런 교육만 받아서는 위급한 상황에 내 친구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손 놓고 바라봐야 한다. 내 주변에는 질병이나 장애가 있어서, 교육에 나오지 않는 몸을 가진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 P220

내가 나의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다른 아픈 사람의 이야기를 읽은 후였다. 그 이야기를 통해 나는 이야기할 수 있는 언어와 이야기하고자 하는 욕망을 찾았다. 이야기하는 아픈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아픈 저자가 많아질수록, 아픈 이야기를 나누는 아픈 사람의 공동체도 넓어질 것이다. -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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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글을 쓰고 책을 읽고, 텃밭에서 일하며 소박한 삶을 살고 계시는 박홍규 선생. 그에게 그림 이야기는 빼놓을 수 없다. 선생은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려왔고 학창시절에는 학교 앞에 아뜰리에를 차리기도 했다. 대학에서 법학과 학생들을 가르치며  ‘법과 예술’ 강의를 열었고 교내에서 개인 전시회도 열었다. 그가 지금까지 쓰고 번역한 200여 권의 서적 중에서 클림트, 고흐, 밀레, 오노레 도미에 등 미술관련 책에 눈길이 간다.

 

 

1950년, 열 살이 되던 해 박홍규 선생은 한 화가의 집에서 고야의 화집을 처음 보게 된다. 그 후부터 고야는 선생에게 화가의 원형이 되었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고야가 그린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를 실제로 본 그는 어릴 적 자신이 시달렸던 악몽의 원천이 그 괴물이 아니었을까,라고 회상한다. 그 괴물은 고야를 평생 지배한 "윤리, 도덕, 종교, 그리고 국가라는 괴물"이었다. 박홍규 선생은 현실도 고야가 고발한 괴물이 지배함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고야가 그렸던 괴물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고야는 30년간 스페인의 수석 궁중화가로 일했다. 그는 주로 장식 직물의 밑그림 작업인 칼톤을 그렸다.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 여성의 자립으로 지위가 약해진 남성, 그리고 프랑스 혁명 세력의 승리를 그림에 담았다. 궁중화가로 일하면서 고야는 아이러니하게도 개인 판화작품에 반체제 내용을 담았다. 범죄, 처형, 폭력적인 죽음을 주제로 삼았다. 그는 그리스 석고상을 모델로 그림을 그리는 기존의 미술 전통을 거부하고 있는 그래로 사물과 사람을 관찰하는데 집중했다. 고야의 관심사는 미술적인 기교와 독창성이 아닌 ‘사회정의’를 표현하는데 있었다.

    

 

 

저자는 고야의 작품을 스페인 역사와 나란히 두고, 역사적 사건이 어떻게 고야의 작품에 영향을 줬는지 살핀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인해 고야는 계몽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로스 카프리초스>는 1797년부터 고야가 작업한 동판화로 사회의 악폐, 인습, 어리석은 남녀관계의 내용을 담고 있다. 고야는 권력층을 비판하고자, 무능한 집권자와 허영에 젖어있는 귀족을 당나귀로, 무지에 의해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 민중을 노새로 빗대었다. 또한 인간이 가진 비이성적 본성을 비판하며 인간을 반동물로 타락한 마녀의 형상으로 풍자하기도 했다. 고야의 작품 속 마녀와 기형적 괴물은 인간의 이성이 사라질 때 고개를 드는 ‘추악성’과 ‘폭력성’을 말한다.

 

1808년 스페인 독립전쟁 중 고야가 작업한 판화집 <전쟁의 참화>에는 체제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기근과 전쟁으로 인해 시민들이 겪는 불안감과 비참함, 그리고 전쟁의 참혹한 야만성을 인간과 동물이 합체된 그로테스크한 형상으로 묘사했다. 고야가 그린 정치범들과  죄수의 인권을 고발하는 그림은 미술사에서 보기 드물다. 고야는 판화를 작업하면서 전장에서 투쟁하는 여성들과 짓밟히는 민중의 모습을 그리며 그들과 연대하고자 했다. 저자는 고야가 하층을 구성하는 농부나 일용노동자에게 “인간의 얼굴을 부여”했으며, “민중으로부터 단결이라는 새로운 연대의 삶을 발견했다"며 고야를 높이 평가했다.

    

이 책은 2002년에 나왔던 <야만의 시대를 그린 화가, 고야>의 증보판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고야의 판화와 소묘를 중심으로 고야의 그림을 펼쳐 보인다. 스페인 역사 속 권력과 욕망에 맞선 고야의 저항을 역사적 사건의 전개와 촘촘히 엮어냈다. 고야의 그림은 그림 자체만으로 느끼고 감상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스페인 역사와 더불어 그림 속 배경을 이해해야 비로소 고야를 읽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저자는 주로 평론가 홋타 요시에의 주장에 반하는 의견을 내며, 고야의 작품을 해석했다. 책에는 두 명 정도의 다른 평론가의 의견도 짧게 언급은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고야의 작품을 평할때 요시에의 평론만을 주된 예시로 다루고 있어 다양한 평론가들의 의견도 있었으면 더 균형있는 시각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고야를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저자는 고야 시대를 전후하여 정치, 문화, 역사, 문학 등 스페인에  전반에 걸친 이야기를 무겁지 않게 담아내고 있다. 이 책을 고야를 따라 떠나는 스페인 인문 기행, 혹은 고야의 그림으로 읽는 스페인 역사기행으로 봐도 무방하겠다. 스페인 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관광가이드 서적과 <저항하는 지성, 고야>를 나란히 챙기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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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현장에서 찍힌 사진을 보며 우리는 전쟁의 참혹함을 얼마만큼 가늠할 수 있을까. 분쟁지역에서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우리가 느끼는 연민은 일시적인 것일까. <타인의 고통>은 2003년 세상을 떠난 작가이자 예술평론가인 수전 손택의 유작으로, 사진을 통해 본 전쟁에 관한 에세이다. 저자는 전쟁을 겪지 않고 단지 사진의 이미지만으로 전쟁을 알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일까 질문한다.


크림전쟁, 세포이 항쟁, 스페인 내전 등 전장에서 찍힌 사진은 전쟁의 모습을 진실하게 전달했을까. 초창기 전쟁 사진 중에는 사진이 재구성과 재연출을 거친 경우가 많았다. 즉 사진 기자가 전쟁터를 재해석했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구도를 잡는다는 것이며, 구도를 잡는다는 것은 뭔가를 배제한다는 것이다.” 


영국 정부는 크림전쟁 중 파견된 사진기자에게 전쟁을 긍정적인 인상으로 남게 찍으라고 지시한다. 그래서 사진기자는 전사자, 불구자, 환자를 찍는 대신, 옥외에서 잡담을 즐기는 장교들이나, 대포를 손질하고 여가 시간을 즐기는 군인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실제 전쟁은 카메라가 잡히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한편, 전쟁의 참혹함과 충격을 전달하기 위해 사진기자들은 시신을 옮겨 재배열을 하고, 이오 섬에 정복을 자랑하기 위해 실제보다 좀 더 큰 국기를 게양하는 일을 재현하기도 했다. 전쟁에서 찍힌 사진은 사진기자의 의견, 편견, 환상이 담겨 있다.


전쟁이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전쟁에 관해 무관심하다. 영상으로 촬영된 전쟁의 참상은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그대로 시청자들에게 전해진다. 손택은 우리가 전투와 대량 학살을 끊임없이 티비 화면으로 접하게 되면 전쟁은 오락거리로 치부된다고 말한다. 전쟁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타인 역시 볼거리로 소비되고 만다. 전쟁터의 희생자들에게 연민을 느끼는데 한계가 있다. 저자는 우리가 그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그 고통에 연루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을 증명하는 것이다.”


<타인의 고통>은 우리와는 상관없는 먼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지만 고통을 받는 이들이 우리와 같은 지도상에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전쟁 속에서 아픔을 겪는 사람들의 고통은 우리와 연결되어 있다. 한 장의 사진으로 전쟁의 참상과 희생의 이유를 다 알수는 없다. 하지만 사진에 서사가 있다면 어떨까. 사진과 함께 사진기자의 설명이 덧붙여진다면 사진이 찍힌 정황을 이해하기 수월할 것이다. 손택은 무의식적으로 전쟁의 사진을 보고 소비하는 우리들에게 “고통과 연결하는 숙고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전장의 사진을 보며 사진 이면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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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모임에서 <타인의 고통>을 읽었다.

번역때문인지 역사, 문화적 배경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인지 책 읽기가 쉽지 않았다는 의견이 많았다. 각 챕터마다 소제목을 붙어가면서 읽어가면 각 챕터의 핵심을 찾는데 도움이 될수도 있겠다. 전작인<사진에 관하여>를 먼저 읽고 <타인의 고통>을 읽었다면 훨씬 이해하기가 수월하지 않았을까. 책에서는 유럽과 미국관련 전쟁을 주로 예시로 들었기에 수전 손택이 말하는 희생자들의 고통을 체감하는 데 한계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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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참화>가 보여주는 병적인 잔인함은 보는 사람을 자각시키고 분노하게 만들며, 감정에 상처를 입힌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예술처럼, 고야의 예술도 도덕적 감정과 슬픔을 둘러싼 역사의분기점인 듯하다. 그 깊이를 알 수 없고, 독창적이며, 보는 사람들에게 큰 노력을 요구한다. 고야와 더불어, 고통에 반응하는 새로운기준이 예술에 들어 왔다(그리고 동료 의식이라는 새로운 주제도가령 어느 건물에서 부상당한 채 실려 나오는 노동자의 모습을담은 그의 그림이 그렇다). 

전쟁의 잔인함을 보여주는 그의 묘사는 관람객의 감수성을 겨냥한 공격의 일환으로 구성된다.각 이미지마다 아래에 적힌 의미심장한 문구들은 사람들을 자극한다.모든 이미지가 그렇듯이 그의 이미지는 와서 보라는 일종의 초대지만, 오히려 그 아래에 달린 설명은 그렇게 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 P73

예술가는 데생이나 그림을 ‘제작‘ 하고 사진작가는 사진을 찍는다‘라는 관습적인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일상 언어는 고야의동판화처럼 손으로 만든 이미지와 사진 사이의 차이점을 뭔가 확고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렇지만 사진 이미지도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세밀한 모사로 만든 구성물이라는뜻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일종의 모사라는 점에서, 당시에 일어난어떤 일을 그저 투명하게만 보여줄 수는 없다. 사진 이미지도 누군가가 골라낸 이미지일 뿐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구도를 잡는다는 것이며, 구도를 잡는다는 것은 뭔가를 배제한다는 것이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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