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등에 벚나무가 자라는 흑인 노예 세서가 있다. 농장주들에게 수많은 매질을 당해 등이 “붉고 넓게 쫙 벌어져 수액이 가득하고, 나뭇가지가 갈라지는 곳”이 되었다. 성하지 않은 몸을 굽혀 나무 덤불 속을 기면서 세서는 탈출 중이다. 뱃속에 아이와 함께. 먼저 보낸 아이 셋과 노예제에서 풀려난 시어머니인 베이비 석스가 사는 124번지를 향해.
도망가는 도중에 아기를 낳고 가까스로 124번지에 도착한 세서. 아이들과 재회한지 한 달 만에 자신을 뒤쫓는 노예 사냥꾼들에게 발각이 된다. 세서는 자신의 딸이 그들에게 빼앗겨 노예농장으로 보내질 바엔 차라리 죽는게 낫다고 생각한다. 세서는 두 살 난 딸, 빌러비드를 자신의 손으로 죽인다. 124번지에는 베이비 석스, 세서 그리고 갓 태어난 덴버, 3대가 남는다. 죽은 원혼들이 나타나곤 하는 124번지에 어느 날, 세서와 노예 농장에서 함께 일했던 폴 디와 죽은 딸, 빌러비드의 혼이 방문한다.
미국의 흑인여성 작가 토니 모리슨이 쓴 <빌러비드>는 미국 노예제의 시대인 180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소설은 일부 노예제가 폐지된 1874년 시점에서 등장인물들이 과거로 플래시백하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흑인 노예들이 겪었던 참혹한 상황을 폴디의 경험담과 빌러비드에게 자신이 죽은 이유를 설명하면서 과거의 기억이 현재로 소환된다.
노예제를 주제로 한다면 핍박받고 상처 입은 인물들 이야기로 주를 이를 법도 한데, 작가는 3대에 걸친 흑인 여성을 주체적 인물로 그린다. 시어머니인 베이비 석스는 “멋대로 써먹다가 밧줄로 묶고 사슬에 채우고 자르고 빈손으로 버릴” 자신의 몸을 사랑하라고 연설을 하고, 세서는 노예 도망법에 저항하듯, 백인들의 손에 들어가 노예로 살아갈 바엔 차라리 자신의 딸, 빌러비드가 자신의 손에 죽는 것이 낫다며 딸을 죽인다. 자식의 목숨을 살해로 선택한 ‘자유’의 대가로 세서는 빌러비드의 원혼과 한바탕 한풀이를 겪어낸다.
소설을 들어가며, 작가는 노예제의 비참한 역사를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육천만 명 사람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썼다. 흑인노예제를 겪지 않았던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이 책은 얼만큼의 호소력이 있을까. 식민시기와 국가 폭력을 경험한 역사를 거쳐 왔기에 어떤 독자들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위안부할머니들, 제주 4.3 희생자들, 광주 5.18 등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토니 모리슨은 노예제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재현하며, 마주하고 싶지 않은 역사는 눈을 감는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우리 곁에 기억해야 할 일로 남아 있다고 말한다. 비이성적인 폭력에 의해 이유조차 알지 못하게 채 억울하게 죽어갔던 원혼이 당신의 문을 두드린다면,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달래줄 수 있을까. 소설은 124번지 뒤에 흐르는 시내 근처에서 빌러비드의 발자국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고 있다며 끝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