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이란 무엇인가
야마모토 시치헤이 지음, 고경문 옮김 / 페이퍼로드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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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이란 무엇인가] 새로운 국화와 칼, 일본인이 파헤치는 일본의 행동원리를 말한다.

 

 

이책은 일본문화론의 대가 야마모토 시치헤이가 일본의 문자, 신화, 종교, 정치, 경제, 법 체계를 살펴보면서 일본인의 독창성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책이다.


그가 일본의 역사적 시점을 고대와 중세의 독자적 문화의 시대와 서구의 충격을 받는 시기와 이후 현대화시기라는 관점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내용은 이 책의 관점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마디로 이야기한다면 그는 일본의 문화는 독자적이며 근대화의 충격이 서구로부터 왔지만 자신들의 본성에 이미 자본주의적 본성이 있었으며 그러한 원동력이자본주의의 선두에 서게 된 배경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대문화를 얘기하는 많은 항목에서 중국과의 연관성과 자국의 독특성에 비중을 두고 있다. 사실 한국의 많은 사학자들이 일본과 한국의 문화연관성을 주장하고 있는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러한 것을 넘어 역사학계에서 폐기된 임나일본부설까지 그러한 설이 있다는 말로 등장시키는 것을 보면 자국문화를 강조하기 위해 그가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지 알게 해준다. 

이러한 그의 관점은 한국의 역사를 중국에 대한 레콘키스타(국권회복운동)라고 표현한데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한사군이 한반도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왜곡되었으며 차라리 한국과 중국의 치열한 관계였다고 보는 것이 맞는 인식이었을 것이다. 그가 일본은 섬나라라는 환경덕분에 안정적인 관계를 가졌다고 말하지만 동아시아 상황에서 독자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측면이 있다. 

특히 일본 문자인 가나의 독창성과 율령제 도입, 신사, 무사계급 등을 통해 말하고 있는 그의 이야기는 원인 없는 결과만을 말하는 듯한 느낌마져 든다. 사람들은 항상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싶어하고 듣고 싶어 한다. 너무 일본의 독창성에 집중한 나머지 동아시아에서의 문화의 흐름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다. 물론 그도 타국의 문물이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한국의 문물은 살짝 빠지고 중국의 문물만을 가지고 이야기한다. 한때 한국을 지배했던 그들이 한국의 문물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일반적인 일본지식인의 생각일 것이다. 

사실 이책을 읽으면서 일본인들의 일반적인 역사인식에 대해 알 수 있었다는 소득이 컷다. 동아시아 문화의 중심이라 생각하는 중국과도 맞설 수 있는 일본의 역사라는 관점과 자신만의 독창성을 강조하는 그의 생각은 일본인들의 자긍심을 높이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들의 법치권이 어지러워 장원관리를 맡는 사병조직이었던 무사계급(사무라이)이 경찰권을 맡았던 것이 무사정권을 만드었으며, 이것이 중국과는 달리 문화나 종교에게도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다. 많은 나라들이 고대에 불교를 도입했던 것은 정치적 안정을 위해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불교가 커지면서 갈등이 심해질 때 유학의 등장과 더불어 문권정치가 구성되는 것이 중국과 한국의 정치역사이다. 그러나 일본은 유학을 철학적으로만 받으들이고 자신의 신토(神道)와 불교를 혼합한 정치체제를 유지했다. 이것이 오늘날에도 천황을 떠받들고 있는 일본인의 뿌리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사진은 메이지유신을 그린 일본의 그림)

 

일본인 불교와 신토를 끝까지 유지했던 것은 그들의 사무라이 전통을 지키기 위함이다. 타국에서는 매우 위험하게 볼 수 있는 전통이지만 그들의 시작은 자신들의 안녕을 지켜주는 경찰권의 대신이었으며 그들을 정신적으로 지켜주었던 것이 불교와 신토인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정신은 오늘날에도 천황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작년 이명박대통령이 천황의 사과를 직접 언급한 것은 이러한 일본의 의식을 너무 과소평가한 행동이라는 것이 이책을 읽으면서 알 수 있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일본전체와 싸우겠다는 의사로 일본은 받아들였을 것이다. 우리가 싸울 때도 부모를 언급하면 끝장을 봐야 하는 것과 같은 행동이었던 것이다. 

신사는 한국인에게는 매우 낯선 존재이다. 절도 아니고 신당도 아닌 이상한 존재에 일본은 사생결단한다. 한국인들은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야스쿠니신사를 찾는 일본 정치인들의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다. 저자는 신사의 역할이 기청(起請)의 대상이었다고 말한다. 고대로부터 중요한 계약을 신사에서 하는 전통이 있었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계약의 중심이 신사가 되었으며 보통 중국이나 한국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는 방식이 그들은 신사에 맹세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공적으로 계약을 말하는 그들의 관습에 이미 자본주의적 습성이 내포되어 있었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이러한 말은 미국의 경제학자인 그레고리 클라크의 말은 인용한 대목에서 들어나고 있다. 클라크가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일본은 메이지유신이라는 반쪽짜리 혁명만으로 근대화와 공업에 이루었는데, 중국은 두번의 혁명을 겪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는가라는 기고를 했던 것을 인용하면서 그는 일본인의 천성에 이미 자본주의적 습성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본인도 일부 동의하는 측면이 있다. 개인적으로 일본을 무(武)의 나라라고 보고 있다. 이러한 그들의 속성은 당연히 기술을 강조하게 되고 그러한 측면이 자본주의적 측면에 부합하는 측면이 있는 것은 맞다. 그리고 섬나라의 특성상 무역업을 발전시키지 않으면 필요한 자원을 구할 수 없다는 요인도 이러한 자본주의 발전을 용이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 

사실 일본이나 한국, 중국이 모두 쇄국의 과정을 겪었지만 세나라가 취하는 태도는 전혀 달랐었다. 일본이 발빠르게 변화의 물결에 적응하는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킨데 비해 한국은 더욱 쇄국화를 추진하여 결국 일본의 총칼에 의해 근대화를 추진하게 되었다. 또한 중국도 외국의 대포의 외압으로 근대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누가 승자인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역사에서는 승자도 없으며 패자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바른 역사 인식 아래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오늘 이책을 통해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일본인들의 역사인식의 출발점이며 동아시아가 갈등이 아닌 대화의 모습을 이어가야 하는 이때에 우리가 가져야 할 긴 안목이다. 그들의 생각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서로가 말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는 자세부터 취해야 한다. 그리고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이해하고 이해가 않되는 것은 천천히 해나가는 긴 외교를 가져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정부당국의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민간채널의 확대를 위해 많은 배려를 해야 할 것이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의 지식인으로서 일본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감정적으로 일본은 어떻다가 아니라 일본인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우리의 생각도 전해보고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그러한 자세를 위해 우리 자신이 우리 역사를 좀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는 것도 필요하다. 자기정체성이 없는 국민은 국제관계에서도 주도적이 될 수 없다는 반성을 해야 한다. 누군가 한국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서평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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