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과 농민, 천하대본의 길 두산동아 한국문화사 시리즈 27
국사편찬위원회 지음 / 두산동아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한국농업문화는 파종과 김매기, 수확이라는 삼농(三農)의 업을 통한 산물


요즘 한국농업에 대해 공부하다보니 이런 책도 발견하게되네요. 오랜만에 역사공부해봅니다. 전 역사 책이 가장 읽기가 힘들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시간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는 부담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이번은 서평이라기보다는 정리에 가까울 수 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글을 씁니다.


1. 철제농기구의 보급과 농사혁명(신석기-삼국시대)


한반도 농업의 역사적 증표는 신석기유물(BC 3,000-3,500년경, 돌낫, 보습, 갈돌 등)

청동기시대에는 주로 석제, 목제 농기구를 이용함. 보리,수수,조 등 재배, 벼재배를 시작하면서 정주성 부락 형성 보임.

4-6세기경 철제농기구와 우경 보급(고랑이 깊어지고 직선화됨: 벼,피,콩,밀,조 등 재배)

삼국시대 수전경영의 확대-수리관계시설(수통 등) 확충, 축제기술의 발달(판축법)


2. 고려시대 국가주도의 권농정책


유교의 내용을 바탕으로 민본-농본이념 승화

유달리 천재지변이 많았던 시대에 농사의 중요성 강조(농시=역의 중요성)

중농의 근거로 제시한 정관정요

풍년에 대한 기원과 추수에 대한 감사(팔관회) 국가적 행사로

농민수탈을 막기 위한 지방관제 수립(토지분급제를 통한) : 농민이 영농기반을 갖추도록 권농정책과 효제(孝第) 장려

토지이용 확대 노력(신전 개발)과 품종개발과 농법개발 노력


3. 조선전기 - 농업의 발달


권농정책 - 지방수령에게 농상에 힘쓸 것 강조(득인(得人) 중요시), 목민관의 주요 임무 중 하나가 감농(監農):농사의 감독과 흉년의 대비(진제장과 환자(換上)

고려말 황폐화된 농업기반 살리려 농지 개간 장려(개간 토지의 소유 가능하게 함), 둔전을 통한 연해지역 농지 개발, 양계(평안,함경도)지역 개간에 하삼도(경상,전라) 주민 이주시킴, 제언수축과 천방 개발(수리시설)

이앙법의 본격적 보급과 확산(노동력 절감, 샌상성 향상),농사직설 등 농서 편찬(16세기 후반은 지역농서 편찬도)

조선 초기 토지소유권이 국가에 있었으나 병작제(노비+자영) 중심의 지주제의 확대를 통해 점차 약화

장시의 성립(쌀과 면포 중심의 거래)

고려말 불교신앙조직체인 향도(香徒)가 향촌(鄕邨)으로 발전. 조선 초기 면리제의 시행(권농관이나 감고, 이정이 치리)과 자치조직(촌계 등)의 운영


4. 조선후기 - 농사기술의 발전과 농민지위의 변화


여성의 조혼이 늘면서 인구의 증가를 가져옴

왜란, 호란 이후 토지개간 확대 노력, 도서, 연안지역 대규모 개간

인구증가율에 비해 토지증가율은 낮아지면서 대토지소유자의 감소와 영세소농의증가를 가져옴(상속의 문제)

논농사의 증가(15세기 2:8의 비율이 19세기말 3:7로)

18세기는 삼남지방을 중심으로 이모작 시작(이앙법의 본격적 도입으로 : 이유는 밭농사에 인력을 투여하기 위한 방편)

인삼,담배 등 특수작물 재배시작


주로 기록물 해석이 주인 책인 관계로 새롭게 견해를 밝힐 내용은 없어보인다. 이 책을 정리한 이유가 우리농업의 현주소를 생각하기 위해 역사를 다시 한번 정리해보고자 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말을 붙일 필요는 없다 생각한다. 다만 현재 한국 농업의 산업적 측면이 한국의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정과 일제침략으로 인한 영향이 무엇인지, 그리고 광복과정과 산업화과정의 문제 등이 앞으로 더 해결해야 할 과제라 생각한다. 

또한 문화사라는 측면에서 한국농업문화의 특성 등을 파악하려 노력한 부분은 조금 약하지 않은가 생각이다. 사실 가장 필요했던 부분은 이러한 한국농업문화의 장점이 있고 그러한 부분을 오늘의 시대에서 어떻게 살릴 것인가라는 숙제였는데 이 부분은 조금 더 찾아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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