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하얀 가면의 제국 - 오리엔탈리즘, 서구 중심의 역사를 넘어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해방후 한국 사회의 지상과제중 하나는 바로 근대화였다. 식민통치와 동족상잔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근대화는 우리가 반드시 이루어야 할 목표였던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물질적인 면에서만이 아니라 민주화라는 정치적인 면에서의 근대화도 동시에 - 비록 전자에 비해 그 과정이 많이 더디긴 했지만 - 이루어졌고,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흔히 말하는 대로 어느정도의 근대화가 이루어지고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된’ 지금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지난 근대화를 위한 움직임을 반성할 ‘여유’가 생기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근대화에 대한 반성은 선진국의 수세기에 걸쳐 이루어진 (우리와 비교해볼때 비교적) 완만한 근대화 과정이나 비교적 우리와 비슷한 수준의 성장을 이룩한 제 3세계국가의 근대화 과정과의 비교를 통한 우리의 근대화의 절차와 과정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루고 우리의 근대화 자체에 대한 본질적인 반성에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 없이 지난 반세기의 역사가 식민통치와 한반도를 초토화시킨 전쟁, 그리고 ‘위로부터의 근대화’를 추진한 군사독재정권라는 과정을 통해 심하게 왜곡되었고, 그러한 왜곡에 대한 반성만으로도 벅찼기 때문일 것이다.
박노자의 ‘하얀 가면의 제국’은 제목에서 드러나는 대로 ‘흰색(=서구)’, ‘제국’, ‘가면’이라는 세가지 요소를 통해 우리 사회의 근대화에서 나타나게 된 ‘하얀 가면이 진짜 얼굴이 되기를 간절히 비는 광적인 맹종’에 대해 비판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우선 그는 우리가 귀감으로 삼고 있는 서구 제국에 접근한다. 미국이 국내의 다양한 인종과 계급에 따른 내부 모순을 기독교 근본주의적 선민의식에 바탕한 ‘명백한 운명’라는 백인우월주의적이고 팽창주의적인 논리로 무마하여 넘어갈 뿐만 아니라 제 2차 세계대전부터 최근의 이라크전쟁에 이르기까지 대외전쟁을 정당화시키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정당화 과정을 통해서 전쟁중에 발생한 나치 포로의 반인권적인 대우, 태평양전쟁과 한국전, 베트남전에서 발생한 인종주의에 입각한 학살, 그리고 결코 민중의 자유와 평화를 위한 전쟁이 아닌 이라크전의 실체를 왜곡시키고 있다.
<2004년 1학기 서울대 서양사를 보는 시각>
이와 같은 제국의 모습은 서구 선진국, 즉 중심국가들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 영향을 받은 주변국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 주변국가들은 중심국가들과 같은 반열에 오르기를 원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에 비해 못한 집단과 국가들에 대해서는 중심국가가 자신을 보는것과 같은 시각을 가지고 - 다시말해 ‘가면을 쓰고’ - 대한다. 앞서 말한 미국의 제국적인 모습은 서유럽에 비해 한걸음 늦게 근대화가 진행되고 국민국가가 형성된 그의 조국 러시아 - 구 소련 - 에서도 드러난다. 공산화의 붕괴이후 급속도로 자본화가 진행되면서 공공서비스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극히 악화되고, 대기업의 정경유착 심화에 따른 시장경제의 불안한 상황이 러시아에서 지속되고 있으나, 근본적인 대책보다는 극우단체를 선동하여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사회내부를 억누르고 대외적으로는 대(對)체첸전쟁을 수행함으로써 모순을 무마하고 있다.
한국 사회와 비교해보았을때 그의 모국인 러시아는 우리나라와는 이념적으로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고, 그 과정에서 매우 큰 차이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국가주도의 후발 근대화가 추진되었고 이에 따른 비슷한 유형의 문제를 안고 있음에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과 러시아는 서로 서구의 ‘가면’을 쓰고 바라봄으로써 왜곡된 인상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러시아는 우리나라를 미국의 후광으로 발전한 위성국가중 하나로, 우리는 러시아를 망해버린 공산주의의 맹주국가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면’의 왜곡은 단순히 정치적인 것을 넘어서서 문화적인것에까지 이르는데, ‘전향(?)한 기독교적 보수주의자’인 도스토예프스키가 그의 전향 전적과 전향 이후의 정치적 행동에 대해서 비판없이 서유럽이 하는 그대로 따라서 우리가 세계문학의 거장으로 추켜세우고 있음을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러시아 뿐만 아니라 폴란드와 이스라엘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유럽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진 서유럽’의 대열에 끼어들지 못한 ‘주변국가’ 폴란드는 중심국가로 편입하기 위해 자국의 농민과 노동자를 희생시키는 모습이나 이라크전에 참전하는 등 중심국가에 대해 과잉충성을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 중심으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바른 시각을 통한 대우를 받고 있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러한 시각을 그대로 적용해 이슬람세계는 물론 아직 주변국가로 남아있는 동유럽국가들을 바라보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경우에 있어서도 중부유럽과 동부유럽에 거주하던 이디시어를 사용하는 온건좌파성향의 유태인인 이슈케나지나 오래전부터 이스라엘땅에 살던 아랍세계와 많이 뒤섞이게 된 유태인인 세파르디를 철저하게 배제하고 영국등의 중심국가들의 후원을 업고 시오니스트들이 교회층에서만 사용하는 히브리어를 국어로 하는 국가를 건설하였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건국배경은 다수를 차지하는 이슈케나지나 세파르디를 포용하지도 못하고 - 그들의 문화가 곧 유태인의 문화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정식 역사에는 포함되지 못한다 - 이전부터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과의 오늘날까지의 끝없는 분쟁을 야기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아랍과의 분쟁은 미국과의 이해관계와도 일치가 되어 이전까지는 언급되는 것조차 터부시돼었던 홀로코스트가 ‘20세기 최악의 사건’가 되면서 시오니즘을 오히려 정당화시키고 있다.
이야기는 제국, 혹은 제국의 가면을 쓰고 바라본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보이는가라는 문제로 돌아온다. 전통적인 가치를 복원하고자 일어난 동학농민운동은 군사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해야했던 박정희와 서구의 근대화가 지상 과제인 사람들에게 근대지향적인 민중혁명으로 탈바꿈되었다. 이와 같이 우리 역사마저 있는 그대로가 아닌 서구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평가하는 작업은 남한사회뿐만 아니라 북한사회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공산주의 정권을 수립하면서 정국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신속한 국가 발전을 위해 북한은 유교적인 요소를 채택한 것이지만, 서구에서는 오히려 유교적인 것을 기본적으로 하고 공산주의가 덧붙여진 것으로 간주하여 북한 정치의 특수성을 찾는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을 북한 자신이 받아들여 자신을 ‘유교적 사회주의’사회로 정의할 뿐만 아니라 남한 사회 역시 자신들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는 ‘유교적 자본주의’사회로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두 사회의 민족주의는 근대화와 제국주의와 맥락을 같이 하게 되면서 정말 그럴 의도가 없다 하더라도 자민족 중심적이고 폭력적이고 팽창적인 성격을 띄게 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가면을 벗어던지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의 문제가 남게된다. 지금까지의 방법대로 ‘가면’이 ‘피부’가 되도록 노력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게되면 우리의 역사를 우리 자신이 있는그대로 보지 못할뿐더러 그 과정에서 민중이 겪게 되는 피해가 지금까지의 근대화에서 겪었던 것보다 더 심해질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거꾸로 중심과 주변의 위치가 역전되게끔 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런다는 것은 주변부의 열등감의 표출이 될 수도 있고, 오히려 이것이 거꾸로 중심부의 권위와 위상이 강화될 뿐이다. 중심과 주변이 변증법적인 관계를 거쳐 섞이는 방법도 있겠지만, 이러한 방법도 결국에는 또다시 새로운 중심을 만들게 될 것이다. 남은 것은 결국 중심과 주변을 구분짓는 요소들의 기준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일 뿐이라는 생각을 갖고 그러한 중심과 주변의 구별자체를 해체시켜 ‘가면’을 벗어던지고 있는 그대로를 보는 방법일 것이다. 다시 말해 서구의 근대화는 우리의 지상과제도 아니고, 역사 발전에 있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아닌, 역사의 진행과정에서 생겨난 한 단계일 뿐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얀 가면의 제국’은 분명히 한국 사회의 근대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서구 중심주의적 사고를 비판하는 것을 주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우리의 급속한 근대화 과정에서 드러난 모순들을 단순히 일일이 열거하기보다는 중심부의 제국을, 그리고 우리와 마찬가지로 중심부로 편입하고자 가면을 쓴 채 제국인 양 하는 주변부 국가들의 사례를 많이 다루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이러한 다른 나라의 예를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근대화에 내재되어있는 문제점의 근본적인 원인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근대화의 과정에서 발생되는 모순을 군사주의와 제국주의의 폭력적인 성격이 다분한 민족주의를 통해 무마시키고 정경유착이 유난히 심한 러시아의 모습에서 지난 시절의 우리 사회의 일면이 떠오르고, 국민국가 수립과정에 있어서 다수의 동포를 문화, 역사적으로 완전히 배제해버리고 아랍에 대해 끊임없는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시오니스트들의 나라 이스라엘에서도 우리사회의 일면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은 우리의 문제가 단순히 한국의 특수성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적지 않은 국가들이 안고 있는 문제로서 이러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연대를 통한 해결방안의 모색이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