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궁전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나는 절벽 가장자리에서 뛰어내렸지만 떨어져 죽기 직전에 뭔가 예사롭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내가 그렇게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 떨어져 내리는 두려움이 줄어들지는 않았더라도 그 두려움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새로운 조망을 얻은 것이었다. 나는 가장자리에서 뛰어내렸지만 마지막 순간에 뭔가가 팔을 뻗쳐 나를 허공에 걸린 나를 붙잡아 주었다. 나는 그것이 사랑이었다고 믿는다. 사랑이야말로 추락을 멈출 수 있는, 중력의 법칙을 부정할 만큼 강력한 단 한가지 것이다.

풀 오스터, 달의 궁전 중에서

 소설을 보기전에 이 글을 어디선가 먼저 읽었다. 그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었는데, 선입견으로 작용된 것일까, 소설속의 이 구절은 꽤나 색다르게 받아들여졌다. 실제로 우연에 우연을 따라 이야기가 전개되면서도 이야기의 가장 저변에 깔린 생각은 이 이야기인것 같다.

 제목대로 차고 기우는 것이 반복되는 달처럼, 주인공은 결코 순탄치 못한, 우연에 우연 겹친 삶을 달과 같은 곡선을 따라 덤덤하게 걸어나가고 있다. 마침내 최종부에서는 파국으로 순환이 끝난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이전과 같이 덤덤하게 달의 순환곡선을 따라 살아갈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

 나는 세상 끝까지 온 것이었고 그 너머로는 바람과 파도, 중국 해안까지 곧장 이어진 공허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여기가 내 출발점이야, 나는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여기가 내 삶이 시작되는 곳이야.

 나는 마지막 남은 석양이 사라질 때까지 한참이나 그 해변에 서 있었다(....)다음에는 언덕 뒤에서 달이 떠올랐다. 달아오른 돌처럼 노란 둥근 보름달이었다. 나는 그 달이 어둠 속에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 눈 한번 떼지 않고 밤하늘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