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그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시신을 따라 공동묘지로 갔던 순간까지 어머니를 사랑했다. 그는 또한 회상 속에서도 어머니를 사랑했다. 그래서 그의 마음속에는 충실이 모든 덕목에서 최고의 것이라는 감정이 생겨났다. 충실은 우리들 삶에 하나의 통일성을 부여한다. 충실이 없을 때 우리의 삶은 수천의 순간적 인상으로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프란츠는 사비나에게 종종 그의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어쩌면 무의식적인 타산에서 그랬다고 볼 수도 있다. 그는 자기가 충실할 수 있다는 것이 사비나의 마음을 매료시킬 것이며 그렇게 해서 그녀를 자기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사비나를 매혹시킨 것이 충실이 아니라 배반임을 알지 못했다. <충실>이란 말은 그녀로 하여금 그녀 아버지를 회상시켰다. 소도시의 청교도였던 그의 일요일 취미는 해지는 숲의 모습과 화병에 꽂은 장미꽃다발을 그리는 것이었다. 아버저지 때문에 그녀는 벌써 아이 때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었다. 열네 살이 되었을 때 그녀는 동갑내기의 소년에게 반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걱정이 되어 일 년 내내 그녀가 혼자 외출하는 것을 금했다. 어느 날 아버지는 그녀에게 피카소의 복사물을 보여주었다. 그는 이것들을 웃음거리로 보고 재미있어 했다. 자기 동급반 소년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적어도 피카소의 이 입체파 그림을 사랑했다. 고등학교 졸어 후 그녀는 이제 드디더 자기 집을 배반할 수 있다는 즐거운 기분으로 프라하로 갔다.

배반. 그것은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혐오스런 것이라고 우리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선생님으로부터 들어왔다. 그런데 배반이란 무엇인가? 배반은 대열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배반은 대열에서 이탈하여 미지를 향해 출발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비나는 미지를 향해 출발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알지 못했다.

그녀는 미술대학에서 공부했다. 그러나 그녀는 피카소처럼 그려서는 안되었다. 그때는 의무적으로 소위 사회주의사실주의에 충실해야 했고 초,중,고등학교에서는 공산주의 정치가들의 초상화를 그렸던 시기였다. 아버지를 배반하려는 그녀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공산주의는 다른 아버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는 사랑을 금했고(당시는 청교도적인 시기였다) 피카소를 금한 아버지와 꼭같이 엄했고 편협했다. 그녀는 어느 프라하 극단의 형편없는 배우와 결혼했다. 그것은 그가 행패부리는 사람으로 소문 나 있어 그녀의 두 아버지에게 용납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 그녀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돌아온 하루 뒤에 그녀는 전보를 받았다. 그녀의 아버지가 슬픈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아버지가 장미꽃다발이 꽂힌 화병을 그렸고 피카소를 싫어한 것이 그토록 나빴단 말인가? 열네살 먹은 자기 딸이 임신하여 집에 오지나 않을까 하고 두려워했던 것이 그토록 비난스런 것인가? 그가 부인 없이 살 수 없었다는 것이 그토록 우스꽝스러운가?

다시금 배반에 대한 욕구가 그녀를 사로잡았다. 그녀는 남편에게(남편에게 그녀는 더이상 행패꾼을 볼 수 없었고 다만 성가신 술주정뱅이를 보았다) 자기가 그를 떠날 것이라고 통보했다.

B를 위해 A를 배반했던 사람이 B를 배반한다고 할 때 그 사람이 그렇게 함으로써 A와 화해했음을 반드시 일컫는 것은 아니다. 이혼한 이 여류화가의 삶은 배반당한 그녀 양친의 삶과 같지 않았다. 최초의 배반은 보상될 수가 없다. 그것은 일종의 연쇄반응을 불러 일으킨다. 이때 각 배반은 우리를 원조배반의 시발점으로부터 점점더 멀리 떨어지게 한다.

-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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