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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협력인가 - 비시 프랑스와 민족 혁명 ㅣ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87
박지현 지음 / 책세상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과거사 청산 문제에 있어서 존경을 넘어서서 안쓰럽다는 생각까지 들정도의 자세를 보이는 독일과 더불어 언급되는 나라가 프랑스다.
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에 점령당하고 항복하면서 파리를 포함한 프랑스 북부는 독일의 점령지로, 그리고 남부에는 비시를 수도로 하는 새로운 프랑스 정부가 성립된다. 프랑스 현대사에서 가장 어두운 시절이었던 비시정부가 바로 그것이다.
비시정부라하면 흔히들 단순히 독일에 협력하는 괴뢰정권으로 생각하고 과거사 청산 문제와 연결되면 당연히 청산되어야할 것으로 여기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비시정부는 단순히 눈 앞에 닥친 위기를 수습하고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했던 것이 아니라, 대다수의 국민의 동의를 통해 성립된 것이며, 이전까지 패전과 항복이라는 위기를 통해 고질적인 좌/우 대립을 끝마치고 '새로운 프랑스(그래서 비시정부의 정식 명칭은 기존이나 지금의 '프랑스 공화국'이 아닌 '프랑스 국(國)'이었다)를 만들 전화위복의 기회로 생각했던 것이다.
좌우파의 대립을 종식하고 '민족혁명'이라는 일종의 '제 3의 길'을 모색하는데는 좌/우익 진영이 모두 동의를 한 것이지만, 그렇지만 그것이 우리네의 신간회와 같은 좌우 합작이라거나 중국의 항일 국공합작과 같은 양상으로 이어진 것은 아닌것 같다. 당장의 대독노선을 어떻게 설정해야하는가에서부터 해서 좀 더 깊이 '프랑스가 패망한 이유'를 대혁명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 혁명 이념인 개인의 자유나 권리보다는 공동체의 이익과 권리를 중시하는 논리에서부터, 기술의 진보과 인간과 사회 윤리와의 관계를 연구하는 인간학, 그리고 농촌의 공동체에서 해결방안을 찾는등의 다양한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모습이 보여진다.
하지만 이런 민족혁명을 향한 이들의 노력은 대독노선을 둘러싼 정권의 잇다른 교체와 함께 무력하게 무산된다. 흔히 생각하는 비시정부의 (나치정권의 괴뢰정부라는데서 떠오르는) 파시즘적인 성격이라던가 일련의 대독협력(특히 유태인 문제와 더불어서) 정책들은 비시정권 말기에 있었던 일들이었다.
우리에게 있어서야 먼나라 이야기니까 과거청산할때마다 그저 단순히 예를 드는 것이 프랑스의 비시정권 문제지만, 생각만큼 간단한 일이 아닌 것이다. 분명히 우리가 청산해야 된다고 말하는 친일파만큼이나 골수적으로 친나치 노선을 보였던 정치가, 지식인들이 있었던 만큼이나 이 위기를 기회로 이용해 새로운 프랑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비시정부에 헌신을 했던 지식인들도 많았으며, 비시정부 말기에 이르러서 초창기의 '민족혁명'의 이상이 퇴색하고 친나치노선으로 일관하게 되면서 그제서야 비시정부를 포기하고 레지스탕스 활동을 벌인 사람들도 많았다. 이러한 비시정부가 가지고 있었던 민족혁명의 전통(?)은 아직도 적지않게 프랑스 지성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네 과거청산문제로 다시 돌아오면, 분명히 협력과 저항이라는 이분법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해서는 안된다. 협력에 있어서도 자발적인지 아니면 전화위복의 기회를 마련하기 위한 것인지, 어쩔수 없이 순응할 수 밖에 없었던 약자들도 과연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등 조금 더 세심한 관찰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이러한 구분을 하는 틈을 이용해서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지 않고 덮어버린다거나 왜곡하려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며, 청산의 목표가 단순히 과오를 저지른 사람들에 대한 처벌인지, 아니면 화해와 용서, 혹은 단순히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귀감을 얻는 정도에서만 그칠 것인지 등에 대한 문제등이 남게 될 것이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러한 비시정부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과거사 창선과 관련된 문제들은 분명히 우리의 어두웠던 시절을 되돌아 보는데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어쩌면 그토록 과거사 청산의 '모범'내지 '모델'로 언급하는 만큼이나 우리가 이 부분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