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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속삭임 - Red Like the Sky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얼마 전 봤던 <블랙>과 같은 영화를 떠올렸다. 사실 눈물을 잔뜩 흘릴 준비를 하고 시작한 영화였다. 하지만 내 착각이었다. 이 영화, <천국의 속삭임>은 '그런' 영화가 아니었다('그런' 영화라 함은 장애를 소재로 사람의 마음을 쥐었다 놓았다 하는 힘든 영화를 말한다). 주인공 미르코, 따뜻한 친구 펠리체, 첫사랑 프란체스카, 그리고 그 친구들이 한바탕 벌이는 그들의 축제 이야기를 다룬 행복한 영화다. 그러니 미르코나 펠리체가 가진 시각장애인이라는 불편함은, 키가 큰 사람이 농구를 잘하고 다리가 긴 사람이 달리는 것에 유리한 것처럼, 오히려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이점을 가져다 준 축복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우리는, 앞으로도 세상의 모든 것을 눈으로 볼 우리는 후천적 시각장애인을 대할 때에 '그래도' 얼마 동안은 보았으니 다행이다,는 반응을 보인다. 미르코가 그렇게 시각을 잃었다. 어린이의 호기심이 불러온 우연한 사고였다. 목숨을 건진 것도 다행이라고들 하지만, 책에 대한 욕심도 많고 영화를 좋아하고 TV도 보고 싶은 미르코에게 그것은 큰 불행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보였던 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절망감. 정든 고향 친구들과 헤어지고 울타리같은 가족과 헤어져, 머나먼 곳, 타향에서 살아야하는 외로움. 어른들 모두는 미르코를 환자 취급하고, 장애인을 대하듯 '특별하게' 대한다.
하지만, 변하지 않았다. 보이던 것이 보이지 않았을 뿐이었다. 펠리체는 태어날 때부터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색깔도 모르고, 모양도 모른다. 그의 세계는 처음부터 그런 모습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다른 사람들 생각처럼 그렇게 이상하지 않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었다. 소리의 세계-. 자신들을 특별하게 취급하는 사람들에게서 벗어나 '어린이'로서의 순수함을 만끽할 수 있는 소리의 세계 말이다. 연극을 한들 재미가 없고, 볼 수가 없는데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단지 소리를 듣고 즐기기 위해 학교를 탈출해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하고,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만들고 즐기기 위해 새로운 소리들을 끝없이 만들어 녹음하기도 하고. 그러는 동안 그들의 세계는 반짝,하고 빛났다. 잊고 있었던 꿈이 되살아났다. 잊고 있었던 웃음도, 즐거움도, 자신감도. 보통의 세계에서 그들은 남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야하는 존재, 그래서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학교에서 배워야하는 존재였지만, 그들의 세계에서는 '그저' 어린아이들이었다.
누구든 그런 시절이 있다. 어른의 잣대로 모든 것을 재어보지 않던 시절, 말이 통하고 같이 놀면 즐거운 친구와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프란체스카는 눈이 보이지 않는 미르코에게 자전거 운전을 맡기고 자신은 뒷자리에 타기도 하고,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들과 '마치 눈이 보이는 것처럼', 혹은 '마치 눈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어울린다. 어른들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는 친구들은 미르코를 놀리지도 않고, "보고 싶었어"라며 따뜻하게 받아들인다. 사람을 만날 때, 직업이 뭔지, 얼마나 배운 사람인지, 지위가 어느 정도인지 따지고 재는 어른과는 아주 많이 다른 어린시절이 생각났다. 돌아갈 수 없을 만큼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려서 그리웠다.
미르코와 친구들이 만든 소리의 세계를, 눈가리고 경청하던 어른들이 감동한 것은 결국은 돌아갈 수 없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