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라의 계곡 - In the Valley of Elah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전쟁 영화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보았던 시절이 있었다. 총을 쏘고, 폭탄을 터뜨리고, 사람이 죽어나가는 상황이 즐거워서는 절대 아니었다. 좀더 어린시절의 나는, 모든 상황이 끝나고 '영웅주의'가 승리하는 그 순간에(한때 전쟁 영화의 대부분은 '미국'이 정의의 편이었으니까) 감정 이입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서, 전쟁 영화가 단순히 선과 악의 대립으로만 보이지 않게 되었고 전쟁 영화라는 장르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고, 참혹하기만한 현실을 '영화'에서까지 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엘라의 계곡>은 본격적인 전투신이 등장하지도 않고, 전쟁이 끝난 후의 이야기를 담은 '반전영화'라길래 보기 시작한 영화였다. 배우들에 대한 호감도도 어느 정도는 작용했지 싶다. 영화를 보기 시작하고 영화의 중반에 이르렀을 무렵까지는 괜찮았다. 전쟁에 관련된 영화라기 보다는, '군인'이었던 아들의 살인사건을 쫓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린 스릴러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도대체 범인이 누굴까,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왜 마이크는 그렇게 죽어야만 했을까, 와 같은 질문을 끝없이 되뇌이며 영화를 보는 내내 흥미진진했다. 하지만, 역시, 중반 이후부터 이 영화가 본색을 드러냈다. 그래서 보는 내내 힘겨웠다.   

 아버지 행크는 아들의 죽음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집을 떠나 모텔에 머물면서 생활하고 있다. 그는 헌병대 출신의 퇴역 군인으로 나라를 위해 복무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아들인 마이크 역시 그러한 집안 분위기에 떠밀려 자원입대한 것으로 표현된다. 행크는 모텔에서도 신발을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고, 침대를 말끔하게 정리하고, 아들의 행적을 조사하기 위해 찾아간 술집에서도 예의를 차리는 원칙주의자이다. 그런 그가 사건의 진상을 밝혀나가면서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다.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게 되고,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되뇌이며 후회하고, 자책한다. 그런 그에게 낡디 낡은 성조기는, 거꾸로 매달린 성조기는 아들의 죽음과 맞바꾼 구시대의 유물일 뿐이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낡아가며 자신에게는 잊혀지길 바라는, 나라에 대한 '쓸데없고 뒤틀린' 애국심 말이다. 

 아들인 마이크는 밝고 착하며 유머러스한 아이였다. 하지만 가혹한 전쟁의 현실에서 그는 변할 수밖에 없었다. 비극적이고 비참한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여러가지 방법 중에 가장 큰 것이 자신을 버리는 것. 마이크는 자신을 버리고, 전쟁에서의 상황을 즐기는 유쾌한 '덕'이 되어 미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그에게 남은 것은 자괴감 뿐이었고, 너무나 다른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 마이크는 영화에서, 행크가 보는 사진과 영상으로만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참전하기 전의 마이크 모습을 생생하게 그릴 수 있었다. 영화 후반부에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하며 눈물짓던 마이크가, 영화가 끝난 후에도 너무나 그리웠다.   

 <엘라의 계곡>이란 제목은 다윗과 골리앗이 싸우던 장소를 의미한다. 그 누구도 이기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거인 골리앗을 물리친 꼬마 다윗. 그러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겠느냐는 행크의 말이 아직도, 귓가를 맴도는 듯하다. 전쟁, 그것 좀 안 하면 안 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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