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릿 - Secret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비밀은 비밀로 지켜질 때에만 매력적이다. 혹시 비밀이 드러났다 하더라도 내가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일원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게 되면 그것 역시 매력적이다. 하지만 이 영화 <시크릿>은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여러가지의 비밀을 남김없이 드러냄으로써, '모든' 사람이 아는 비밀을 '마치 모르는 것처럼' 이끌어가기 시작한다.  

 사실 한국 영화에서 스릴러 장르라는 것은 왠만큼 이야기가 탄탄하지 않고서야, 영화로 만들어지면 일단 혹평부터 들을 것을 감수해야 한다. 외국의 탄탄한 스릴러 영화를 보며 눈이 한껏 높아진 관객들은 일단은 단점부터 찾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단점이 생각보다 적을 때, 잘 만들어진 스릴러 영화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윤재구 감독의 전작(물론 각본가로서의 전작이었지만) <세븐데이즈>는 의외의 호평을 받으며 흥행가도를 달렸다. 김윤진의 안정된 연기력도 물론이거니와, 탄탄한 시나리오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연출이 삼박자를 고루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 <시크릿> 역시 감독의 이름을 듣고 기대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나 역시 <모범시민>과 <시크릿> 두 스릴러 영화를 저울질하다 그래도 윤재구 감독의 데뷔작을 보고 싶은 마음으로 <시크릿>을 선택했으니까.    

 상업성을 지닌 데뷔작으로는 훌륭하다. 관객들의 긴장감을 유지시키면서도 적절한 때에 긴장을 늦추게 하는 여유를 보인다. 긴장감의 핵심은 '아내를 지키고자 하는 형사의 비밀'이 언제 탄로나느냐와 '살인사건이 있던 날 아내는 무엇을 했느냐'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동생의 죽음에 복수를 하려는 남자 그리고 무슨 이유 때문인지 비밀을 미끼로 협박하는 남자와 얽혀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지며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이러한 긴장감은 반복될 수록 식상해지는 기분이 드는데, <시크릿>은 캐릭터의 힘을 빌어 그 긴장을 이완시킨다. 김성렬(차승원)의 동료인 최형사(박원상)는 굉장히 호쾌한 타입의 남자로 시원시원한 언행이 웃음을 주고, 악인으로 등장하지만 특이한 말투와 행동으로 웃음을 주는 재칼(류승룡)은 극의 흐름을 쥐었다 놓았다 한다. 차승원 역시 날카로운 눈빛과 매서운 얼굴로, 혹은 간절하고 애절한 얼굴로 관객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인다. 하지만 모든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는 아내 지연 역을 맡은 송윤아의 연기(혹은 지연이란 캐릭터 자체)는 아쉽다. 지나치게 평면적인 인물이라, 비밀을 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등장해도 전혀 긴박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때문에 그녀가 등장할 때면 극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멈추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대본을 그대로 읽는 것 같았다. 이제껏 송윤아의 연기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기에 더욱 아쉬웠다.   

 등장하는 인물이 한정되어 있어 범인의 정체를 눈치채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마지막에 가서 범인의 입으로 밝혀지는 이야기는 그래서 놀랍지 않다(어쩌면 옆사람의 추리 덕분에 일찍 깨달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조폭들에게 둘러싸인 위험한 상황에서 둘만 존재한다는 듯이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는 성렬과 지연의 모습도 뜬금없었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중에 밝혀지는 또 하나의 비밀도 뜬금없었지만, 이 영화, 나쁘지는 않았다. 비밀 자체는 그다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가장 친밀한 부부 사이에 숨겨진 '비밀'이라는 것이 문제. 각자 다른 것을 지키려는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믿지 못해 소통의 부재가 생기고, 겨우 이어져왔던 균형은 깨지며,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쫓고 쫓기는 '비밀'의 긴장감이 아니라, 친밀해야 할 사람들 사이에 생기는 '비밀'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전반부의 그 몰입감이 후반부로 가면서 급속도로 약해지는 것이 아쉽지만 그 전반부만으로도 꽤 기억에 남을 영화인 듯 하다. 윤재구 감독의, 더 발전된 다음 영화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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